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59화 (59/181)

§59화 15. 예금의 탄생(6)

“저는 항상 신과 교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약 영주님이 진 빚을 전부 돌려받을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중에 일부를 교회에 기부할 생각입니다. 이건 제 진심입니다.”

“돌려받은 것의 일부를 기부하겠다고?”

“네, 그게 요한 님께 보답하는 제 마음이라 그렇습니다.”

“훌륭하군. 자네 같은 사람이 많아야 할 텐데.”

“주교 각하, 제가 말했잖습니까? 정말 뭘 해도 크게 될 사람입니다.”

“저같이 작고 보잘것없는 신도는 항상 신과 교회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뿐입니다.”

피터 사제장이 이제까지 가져온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여기 주인은 딱 자기밖에 모르네. 물론 교회 일에 크게 간섭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크게 챙겨주는 것도 없었지.”

듣고 있던 베르키스 주교도 나섰다.

“체스터가 딱 자네 같았으면 좋았으련만. 체스터는 그렇지가 않아.”

농담 반, 그리고 별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지만 록펠러에겐 다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 사람들도 은근히 영주에게 불만이 많은 상태야. 그만큼 영주가 교회 일에 무관심했다는 소리겠지.’

“영주님께서 딱 저 같았어도 참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한숨 쉬던 피터 사제장이 반응을 보였다.

“그러게 말이야. 하지만 어쩌겠나? 저렇게 태어난걸. 그냥 그러려니 해야지.”

록펠러는 은근슬쩍 둘의 반응을 살피며 선을 넘어서는 발언을 이 자리서 해보기로 했다.

나름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었다.

‘어차피 그렇게 되길 소원하니까.’

“저 같은 사람이 여기 영주로 태어났으면 참 좋았을까요?”

그 말을 던지자 잠시 정적이 흘렀으나, 사제장이나 주교 모두 농담이라 생각했는지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랬다면 오죽 좋았을까.”

베르키스 주교의 말에 피터 사제장도 목소리를 냈다.

“차라리 여기 영주가 자네였으면 더 좋았겠지. 자네야 항상 교회를 먼저 생각해 주니까. 자네 같은 사람이 없어.”

둘의 반응을 듣고 록펠러는 옅게 웃어 보였다.

‘반응은 썩 나쁘지 않은데?’

“두 분의 말씀대로 저야 항상 교회를 위하는 마음뿐이죠.”

이것만으로 예단하긴 아직 어려웠으나 농담이라도 둘의 반응이 썩 나쁘지 않을 걸 보니 록펠러는 자신이 영주의 자리에 올랐을 때 둘의 반발은 아마 적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었다.

‘하긴 자기들에게 잘해준다는 굳이 뭐라 하진 않겠지.’

이왕지사 물어봤으니 록펠러는 선을 넘어서는 발언을 또 해보기로 했다.

앞서 반응이 나쁘지 않았으니 한 번 더 해보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거야 뭐 제 생각이지만 여기 영주님께서 만약 이대로 쭉 진행하신다면 정말 빚쟁이가 되실 텐데, 그렇게 되면 저희 카터 방코에서 영지 일부를 갖게 됩니다. 그런데 영지를 갖는다는 건…… 저희 같은 자들도 영주님처럼 귀족 같은 게 될 수 있는 겁니까?”

그 말에 경험 많은 두 교인이 제 턱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뭐, 가능이야 하겠지. 땅이 있으면 그게 귀족이 아니고 뭐겠는가?”

“어차피 집안의 성이라는 것도 널리 알려지다 보면 자연스레 가문이 되는 것이고,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면 모두의 인정을 받아 귀족이 될 수도 있는 거겠지. 보다 확실하게 하려면 황실의 인정을 받는 게 가장 빠르겠지만.”

“그럼 여기 영주님은 어떻게 되시는 겁니까? 영주님의 땅을 가지고 저희가 귀족이 된다면 영주님께선 이를 곱게 보지 않으실 텐데요?”

그 물음에 표정을 구긴 채 답변을 한 건 바로 베르키스 주교였다.

물론 여기서 그가 나쁘게 생각하는 대상은 당연히 영주 체스터였다.

“그거야 영주 잘못이지. 그러니까 누가 빚을 지라고 했나? 빚이라는 것도 죄악이야. 딱 자기가 갚을 수 있을 정도만 빌려야지. 그 이상 넘어가면 죄악이 아니고 대체 뭐겠나?”

“그렇군요. 만약 여기 영주님께서 빚 때문에 잘못되신다면 여기는 지배자가 없는 땅이 될 텐데, 물론 그 자리를 땅만 가진 저희가 감히 차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록펠러가 말을 이었다.

“본디 지배자라는 것은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희 같은 방코 업자가 땅을 가졌다고 해서 영주님 같은 사람은 될 수 없겠죠. 영지민의 지지가 없잖습니까?”

“그건 맞는 소리지. 땅만 가졌다고 해서 지배자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라네.”

“땅만 가졌다고 해서 지배자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야. 영지민의 절대적인 지지가 있어야지.”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은근슬쩍 운을 뗀 록펠러가 다음 말을 던져보았다.

“그런데 말입니다. 만약 그 땅도 가지고 있고, 어쩌다 영지민의 지지도 받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 사람은 여기 영주가 아닌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될 텐데.”

이것은 록펠러가 둘에게 진정으로 묻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런 사람이 나온다면 두 분께서는 그를 지지하실 의향이 있으신 겁니까?”

베르키스 주교의 표정이 약간 굳어졌다.

“그런 질문은 갑자기 왜 하는 겐가?”

“아직 미숙한 호기심에 궁금해서 한번 여쭤봤습니다. 제 질문이 불쾌하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불쾌할 게 뭐 있나? 우리야 신과 교회에 잘해주고 믿음 역시 투철한 자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는 거지. 안 그런가 피터?”

“네, 주교 각하 말씀이 백번 옳습니다. 저희 같은 교인이야 한 영지를 어질고 평화롭게 다스리며, 저희와 교회에 충성하는 자라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피터가 말을 이었다.

“차라리 여기 영주보다, 다른 영주가 생겨 여길 다스리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럴 일이야 아마 없겠지만, 저도 은근히 여기 영주에게 불만이 있는 상태입니다. 누구는 챙겨줄 필요도, 그 의무도 없는데 여기까지 찾아와서 우릴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난리인데, 또 누구는 그 의무조차 망각한 채 우리가 죽든 말든, 그저 나 몰라라 하는 아주 파렴치한 녀석입니다. 그저 제 살길만 찾기 바쁜 녀석이죠. 가지고 있는 신앙심도 의문이고.”

록펠러는 그저 조용히 고개만 끄덕여주었다.

‘그렇게 생각한다 이 말이지?’

모든 대화가 끝났을 때.

마지막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그럼 저는 두 분께서 제 제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예금에 따른 보상료는 금화를 예치한 기간에 따라 계산되는 것이니, 이를 염두에 두셨으면 좋겠습니다.”

되도록 빨리 금화를 맡기라는 말.

이에 따른 화답 역시 록펠러가 예상하던 것이었다.

“알겠네. 내 바로 금화를 보내도록 하지.”

“나도 리옹에 돌아가면 바로 보낼 생각이니, 앞으로 잘 부탁하겠네.”

그렇게 교회 일을 마치고 카터 방코로 돌아온 록펠러는 초조한 기색으로 가게 안을 지키고 있던 카터와 만나게 됐다.

“어떻게 된 거냐? 얘기는 잘 된 거냐?”

카터의 물음에 록펠러는 진한 미소부터 날려주었다.

“네, 그쪽 일은 잘 해결됐어요.”

“그래? 그럼 금화를…….”

아직 예금에 대한 개념이 없던 카터는 록펠러가 교회에 가서 금화를 빌려온 것이라 생각했다.

“거기서 빌려온 거냐?”

“아니요, 아저씨. 금화를 빌려온 게 아니라 그쪽 금화를 저희 가게에 예치시킨 거죠.”

“금화를 예치시켰다고?”

카터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내가 알기론 그쪽 사람들은 금화 보관료까지 내면서 금화를 맡길 사람들이 아닐 텐데?”

피터 사제장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게 바로 카터였다.

“그분이 정말 여기다 금화를 맡긴다고 했느냐?”

“네, 대신 보관료 없이요.”

“보관료를 안 받는다고? 그게 무슨…….”

“오히려 매달 3퍼센트 이자 수익을 챙겨드리기로 했어요.”

“뭐, 뭐라고?”

카터는 제가 잘못 들은 줄로만 알았다.

“그게 무슨 소리냐? 우리가 매달 3퍼센트씩 금화 보관료를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이자 수익을 챙겨주기로 했다고?”

“네, 그렇게 됐어요.”

카터는 도무지 납득이 안 됐는지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가 록펠러에게 따지듯 물어보았다.

“그게 무슨 정신 나간 소리냐? 우리가 금화 보관료를 받아도 모자랄 판국에 오히려 이자 수익을 주겠다고? 지금 제정신이냐?”

그러자 록펠러와 함께 교회를 다녀왔던 조슈아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카터 아저씨, 저희야 무조건 이득이니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

“이게 어떻게 이득이야? 쓸데없이 우리 돈을 내주게 생겼는데.”

록펠러가 말을 아꼈고, 그 대신 조슈아가 나서서 나머지 설명을 해주었다.

물론 전부 록펠러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우선 저희의 대출 이자는 6%에요. 그리고 금화 예치에 따른 이자 수익 3%를 본래 금화 주인에게 돌려주게 되죠. 만약 저희 가게에서 건전한 대출이 전부 나간 상태라 가정했을 때 저흰 그 차이의 3%씩 계속 이득을 보는 거죠.”

손가락까지 펼쳐 이해타산을 따져보던 카터가 마지못해 수긍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래도, 우리 수익률이 작아지잖니?”

조그마한 항변에 록펠러가 나섰다.

“당장 수익률은 작아질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하면 자금을 운용하는 규모가 달라질 겁니다. 쉽게 말해 100달란트의 6퍼센트를 먹는 것보단 10000달란트의 3퍼센트를 먹는 꼴이 되겠죠. 왜 그렇게 되냐고요?”

록펠러가 말을 이었다.

“다른 방코에서는 금화 예치에 따른 금화 보관료로 오히려 마이너스 수익이 나지만, 저희는 금화 예치에 따른 보상료 개념으로 3%씩 이자를 챙겨주니 이 소식을 들은 금화 주인들이 너도나도 할 거 없이 저희 쪽으로 찾아와 금화를 맡길 겁니다. 그럼 저희 방코는 다른 방코보다 운영하는 자금 규모가 아주 커지겠죠.”

이후 나선 건 조슈아였다.

“그럼 수익률에선 3퍼센트를 손해 보지만, 수입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6달란트와 300달란트니까, 와우~ 294달란트의 차이가 생기겠네요.”

“그게 294달란트나 차이가 난단 말이냐? 수익률이 3퍼센트나 줄어드는데?”

“극단적으로 예를 들어 설명한 거예요. 이렇게 하면 이해가 쉽잖아요.”

조슈아가 카터를 향해 물었다.

“그럼 카터 아저씨. 규모를 작게 해서 6달란트를 먹으실래요? 아니면 규모를 키워서 300달란트 먹으실 건가요?”

“그야…….”

“그런 거예요. 당연히 300달란트를 먹어야겠죠. 그게 당연한 거니까.”

카터가 충분히 이해했다고 생각한 록펠러가 눈가를 좁혔다.

‘은행이란 곳도 사실 남의 돈으로 돈을 버는 곳이지. 이걸 대부분 사람들은 모르고 있지만.’

어찌 됐건 당장 급한 불은 끄게 됐다.

당장 수많은 용병들이 찾아와 금화를 찾아간다고 해도 카터 방코의 신용이 무너질 일은 없을 것이다.

“어찌 됐건 당장 필요한 금화를 교회 쪽에서 수급하게 됐으니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저희 가게가 문 닫을 일은 없어졌네요. 당장 용병들에게 내줄 금화야 충분해졌으니까.”

한 차례 위기를 넘겼으니 이젠 공격할 차례였다.

“이제 슬슬 다음 단계로 가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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