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58화 (58/181)

§58화 15. 예금의 탄생(5)

미소를 띠는 록펠러가 입을 열었다.

“제 제안에 오히려 주교 각하께서 관심을 보이셨다니, 교회와 요한 님께 보답하고자 하던 제 마음이 잘 전달된 것 같아 기쁜 마음뿐입니다.”

록펠러는 곧바로 다음 말을 이어주었다.

“앞서 피터 사제장님께 제안했던 그대롭니다. 하늘 같은 교회의 재산을 제가 품는 것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매달 3퍼센트의 수익을 보장해 주려고 합니다.”

예금 이자라는 게 없는 세상에서 록펠러의 제안은 정말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것도 3퍼센트씩이나? 허허…… 그렇게 하는 이유가 있나? 보통의 경우라면 오히려 금화 보관료 명목으로 금화를 받아가게 마련인데,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금화를 주겠다고?”

“아마 다른 방코에서는 보관료 개념으로 일을 진행할 겁니다. 하지만 저희 같은 경우는 매일 같이 신과 요한 님, 그리고 교회의 높으신 분들께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일반적인 경우를 대입할 수 없겠죠.”

“그것참 흥미롭군.”

나름 만족했는지 베르키스 주교가 저 혼자 고개를 주억였다.

“리옹에서도 정말 수많은 방코가 있지만, 자네처럼 그런 파격적인 제안을 한 곳이 없었네. 나 역시 방코에 금화를 맡겨서 수익을 챙겨준다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야. 이건 아마 제국, 아니, 대륙 전체를 통틀어도 없을 일이지.”

그 말에 록펠러의 입가에 걸려 있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다른 이들은 신과 교회에 감사하는 법을 모르는 겁니다. 감히 교회의 재산을 품는데 보관료를 받다니요?”

록펠러가 보란 듯이 고개를 저어주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겁니다.”

“지극히 공감하는 말일세. 그래, 리옹을 포함해서 제국 전역에서 감히 허락도 없이 신의 힘을 이용해 고리대금업을 하는 그런 놈들하고 비교해 봤을 때 자네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로군. 신을 대하는 태도부터가 달라.”

“말씀 감사합니다. 저야 그런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허허, 그런데 그 수익은 확실히 보장될 수 있는 것인가? 3퍼센트면…… 적잖은 돈일 텐데?”

“네, 물론입니다. 저희는 금화 환전을 비롯해 금화 보관, 그리고 대출에 따른 이익까지 여러 방면에서 수익들을 창출해 내고 있습니다. 저희가 진행하는 사업이 번창하면 번창할수록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일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베르키스 주교는 제 수염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나는 솔직히 여기 이야기를 듣고선 처음엔 이해가 잘 되질 않았네. 금화를 맡겼으면 응당 보관료나 받아야지, 그런데 수익을 내주겠다니? 지금도 그렇지만 아무튼 그렇다네.”

“정 의심스러우시면 저희에게 전부가 아닌 일부만 시험 삼아 맡겨보시면 됩니다. 저희야 약속한 대로 매달 그 정도 수익을 챙겨드릴 테니, 이를 가만히 지켜보시다가 나중에 판단해도 되실 겁니다.”

“거기서 원금은 무조건 보장되는 건가?”

“물론입니다. 원금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저희 방코에 오셔서 찾아가시면 됩니다.”

“허허…… 아직도 갈피를 못 잡겠군. 자네 제안이 너무 좋아서 말이야. 가만히 묵혀둘 금화를 맡기면 오히려 수익을 챙겨주겠다니.”

“다 신과 교회에 보답하고자 하는 제 마음입니다. 부디 의심 없이 좋게만 생각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록펠러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근처에 있던 피터 사제장이 그들 사이에 불쑥 끼어들었다.

“주교 각하, 저 같은 경우는 여기 이 록펠러 청년과 카터 방코를 무조건 신뢰하고 있기에 저희 금화 전부를 맡겨볼 생각입니다. 주교 각하께선 리옹에 계셔서 잘 모르시겠지만 이곳 영지에서 카터 방코가 아주 잘나간다는 건 지나가는 개도 아는 일입니다. 그리고 드워프 관련 맥주 사업도 있잖습니까? 그것도 다 이 청년이 제안하여 시작한 일입니다.”

맥주 사업을 계기로 이곳 수익이 크게 늘었다는 건 베르키스 주교도 잘 아는 내용이었다.

그것을 계기로 이곳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니까.

“아, 그 사업 제안을 이 청년이 했었나?”

“그렇습니다, 주교 각하.”

“그렇군. 그렇다면 자네는 이 청년을 아주 많이 신뢰하고 있겠어.”

“물론이죠. 저는 이 록펠러란 청년을 아주 많이 신뢰하고 있습니다. 그때도 자기 혼자 하면 될 일을 굳이 교회에 보답하겠다고 제게 찾아와 그 일을 제안했던 겁니다. 이 얼마나 기특하고 대견스러운 일입니까?”

“그런데 드워프와 관련된 맥주 사업은 요즘도 잘되고 있나? 밖을 보니 좀 휑한 거 같던데.”

“그건 아닙니다. 요즘 들어 맥주 사업은 통 재미를 못 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전쟁이 끝나간다는 게 이유겠죠. 그래서 제 나름대로 근심 어린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여기 이 사람이 찾아와 이번에도 아주 좋은 제안을 했습니다. 그 보상료 말입니다.”

“훌륭하군. 자네, 아주 좋은 인복을 가졌어.”

“무슨 그런 말씀이십니까? 주교 각하께서도 오늘 이 자리서 이 청년을 만났으니, 따지고 보면 주교 각하께서도 인복이 생긴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한차례 호탕하게 웃어 재끼던 베르키스 주교가 록펠러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래, 자네 이름이 록펠러라고 했나? 로스…….”

“네, 록펠러 로스메디치입니다.”

“그래 로스메디치. 내가 기억력이 안 좋아 자꾸 말해야 이름을 외울 수 있다네.”

“아닙니다. 편하게 록펠러라 불러주십시오.”

“그건 아니지. 자네 이름하고 집안까지 똑바로 기억해야 그게 예의지. 자네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교회의 은인인 자인데 내가 그럴 수 있겠나?”

“말씀이라도 감사합니다.”

좋은 표정으로 록펠러를 쳐다보던 베르키스 주교가 말을 잇기 시작했다.

“자네 이야기는 여기 피터에게 많이 들었었네. 하여 나도 자네 제안에 조금 관심이 있네만…… 어떤가? 나도 그대 방코에 금화를 맡기면 여기 피터처럼 보상료를 챙겨줄 수 있겠는가?”

기다리던 말이 나왔다.

록펠러는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그의 기대에 부합해 주었다.

“저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저와 카터 방코를 믿고 맡겨만 주신다면 원금은 무조건 지켜드리고 매달 3퍼센트의 수익까지 확실히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저 말을 듣기 위해 지금까지 대화를 한 것이었다.

원하던 답변이 나오자 베르키스 주교도 꺼릴 것 없이 웃어 보였다.

“하하하! 정말 좋은 친구로군. 내 살면서 이런 귀한 사람을 이제야 만나게 되다니. 없던 인복이 이제 와 터지는 느낌이야.”

나름 만족했는지 저 혼자 고개를 끄덕이던 베르키스 주교가 다음 말을 이어주었다.

이건 그만의 감사 표시였다.

“언제든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리옹 쪽으로 서신이라도 보내주게. 내 다른 곳은 몰라도 자네가 보낸 편지라면 무조건 받을 테니. 그리고 그리 어렵지 않은 부탁이라면 응당 들어줄 것이야. 암, 그렇고말고.”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지, 감사할 건 바로 나지. 내 주변에 자네 같은 사람들이 많아야 할 텐데…… 사람들이 그렇지가 않아. 전부 제 욕심을 다스리지 못해 교회를 등한시하고 있지. 그건 좋지 못한 일이야. 안 좋은 일이지.”

대화 자체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록펠러의 기대처럼 베르키스 주교도 예금 이자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고, 그 일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따로 도와준다는 말까지 나온 상태였으니까.

‘슬슬 그 이야기를 꺼내도 될 것 같은데?’

이 순간 록펠러는 곧 다가올 영지의 혼란에 대해 생각하며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둘을 제 편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야 자신이 계획하고 있는 보다 완벽해질 테니까.

“저기…… 주교 각하.”

“왜 그런가? 갑자기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겐가?”

“방금 전에 하셨던 말이 있잖습니까? 도와주시겠다는…….

“음, 내게 무슨 부탁할 거라도 있나?”

“그게…… 다름이 아니고. 제게도 나름 고민이 있어서요.”

“고민? 무슨 고민 말인가?”

그러자 근처에 있던 피터 사제장이 더 난리였다.

“아니, 고민이 있으면 나한테 먼저 말했어야지! 지금까지 말하지도 않고 혼자 끙끙 앓고 있었나?”

“그게…… 쉽게 말할 수 없는 부분이라 그렇게 됐습니다.”

“대체 무슨 걱정인데 그리 표정이 안 좋아.”

“다름은 아니옵고.”

슬슬 록펠러가 운을 떼기 시작했다.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도 전부 다 차용증서로 위기를 모면하고 있는 영주로 인해 발생한 일이었다.

물론 그것도 록펠러가 전부 의도한 바였지만.

“주교 각하나, 피터 사제장님께서는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서 말해보게.”

“저희에게 돈을 빌려 간 이가 있다면, 그에게서 돈을 돌려받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당연하지.”

“당연하고말고. 누가 돈을 빌려 가서 안 갚고 있었나?”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여기 영주님이 있잖습니까?”

영주를 논하자 곧바로 반응을 보인 건 베르키스 주교였다.

영주가 여기선 하늘이라지만 리옹의 주교인 그에게 있어 여기 영주는 하찮은 존재였던 것이다.

“체스터 말인가?”

“네, 영주님께서 저희에게 빌려 가신 돈이 좀 많습니다.”

“그럼 체스터가 그 돈을 안 갚기라도 했나?”

“그건 아닙니다. 다만 영주님의 재정 상황이 날로 악화되고 있습니다. 하여 언젠간 채무불이행이 진행될까 그게 걱정인 겁니다.”

“채무불이행? 체스터가 그런 사람은 아닌데…… 투박하지만 나름 의리는 있는 사람일세.”

록펠러의 말이 이어졌다.

“물론 저도 여기 영주님 사정을 십분 이해하고 있는 바입니다. 영지와 근접한 곳에서 일어난 토템전쟁으로 인해 영주님께서도 많은 돈이 필요하셨겠죠. 그건 저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주님께서 매달 갚아야 하는 이자가 제가 봐도 이젠 우려되는 수준입니다. 그래서 언젠간 채무불이행에 직면하실 거 같은데, 그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그게 걱정인 겁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피터 사제장이 나섰다.

“그럴 일을 대비해서 영지 일부를 담보로 잡지 않았나?”

“그건 맞습니다. 그 일에 대비하여 영지 일부를 담보로 잡긴 했습니다.”

“그럼 됐지 무슨 걱정인가?”

록펠러가 작은 목소리로 항변했다.

“저희는 일개 방코 업자일 뿐입니다. 하늘 같은 영주님을 상대로 힘을 쓸 수 없는 입장입니다.”

그러자 피터 사제장이 크게 목소리를 냈다.

“그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말게. 나야 하상 자네 편이니까. 그때 내가 증인까지 서지 않았나? 그런데 그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다는 건 나와 교회를 기만하는 행위일세. 그런 건 용납될 수 없는 일이지.”

가만히 듣고 있던 베르키스 주교도 한마디 해주었다.

“돈을 빌려 갔으면 응당 갚아야지. 만약 거기서 문제가 생긴다면 나도 목소리를 낼 생각이니 여기 영주 뜻대로 되진 않을 거야. 물론 우리에게 너무 큰 강제성은 없다네. 하지만 교회에 밉보인다는 건 여기 민심을 잃는 일이지. 체스터도 완전 바보는 아니니 꼭 그렇게까진 하지 않을 걸세.”

둘의 답변을 들은 록펠러가 나름 만족했다.

‘훌륭하군.’

하지만 이들도 언젠간 말이 바뀔지도 모르는 능구렁이 같은 자들이었다.

당장이야 제 이익이 있어 자신의 편을 들어준다지만 그때 가서 영주에게 무슨 달콤한 제안이라도 받는다면 또 모를 일.

하여 록펠러는 그들이 자신을 무조건 지지해야만 하는 그 이유를 이 자리서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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