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57화 (57/181)

§57화 15. 예금의 탄생(4)

좋은 말들이 오갔기에 둘은 서로를 마주 보며 미소 짓기 바빴다.

그러다 무언가를 생각해 낸 피터 사제장의 얼굴에 근심이 깃들기 시작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자 문제가 걸렸던 것이다.

이자는 교회에서 금기시되는 사항이었다.

그게 문제가 된 것이다.

“크흠…….”

좋은 취지로 말이 나왔기에 피터 사제장도 록펠러의 제안을 무조건 거절하며 냉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좋았던 사세장의 표정이 갑작스레 변하자 록펠러가 이를 보고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혹시 이자 때문인가? 이자가 교회엔 안 좋은 거라서?’

록펠러도 이 문제로 인해 며칠간 고심을 했었다.

사제장과는 좋은 관계에 있었지만 사제장이야 뼛속까지 교회 사람.

그에게도 입장이라는 게 있을 수 있었다.

아무리 이자 수익이 교회에 득을 주는 경우라지만 원칙적으로 교회에선 이자를 금하고 있었으니까.

하여 록펠러는 꾀를 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어차피 같은 뜻이라도 표현에 따라서는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혹시 이자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록펠러가 넘겨짚듯 던진 말에 피터 사제장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런 부분이 없잖아 있네. 물론 자네야 좋은 취지로 그런 말을 해줬겠지만 우리 교회가 이자 수익으로 득을 본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위쪽에서 안 좋은 말들이 나올 수가 있어.”

변방의 작은 교회가 교단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그 교회에서 교단의 교리에 어긋날 수도 있는 어떠한 일을 진행한다면 그에 따른 합당한 설명과 명분이 있어야만 했다.

그게 교단이라는 다소 수직적이고 불편한 조직 사회였으니까.

“나야 그걸 염려하는 걸세. 나는 괜찮아. 그냥 주변 눈치가 보일 뿐이지.”

“그렇군요. 저도 이자를 싫어하는 교회에서 제 제안을 그냥 수락할 것 같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여 이렇게도 생각해 봤습니다.”

“어떻게 말인가?”

잠시 뜸을 들이던 록펠러가 전에 생각해 둔 것을 꺼내 들었다.

“원칙적으로 교회에서 금하고 있는 건 대출에 대한 이자입니다. 하지만 이번 건 예금에 따른 보상료 개념이죠. 이걸 쉽게 설명하기 위해 사제장님께 이자라 표현했지만, 엄연히 대출 이자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흠…… 듣고 보니 자네 말도 맞는 것 같군. 이자가 아닌 보상료 개념이라…… 그리 해석될 수도 있겠어.”

짧게 생각해 보던 피터 사제장이 이내 고개를 주억이기 시작했다.

일단 교회에서 금하고 있는 이자는 록펠러가 말했던 것처럼 대출에 따른 이자였던 것이지 다른 이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록펠러의 말은 계속됐다.

“교회에선 그 재산을 제게 맡겼고, 저야 그것을 품고 있으니 나름의 사명감과 감사의 표시로 매달 교회에 보답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그게 맞는 거지.”

“그리고 대출 이자는 감히 신의 힘을 이용해 제 이득을 취하는 행위지만, 예금에 따른 보상료 개념은 그것과는 정반대로 오히려 신께 감사하고 그것을 교회에 보답하는 개념인 것입니다.”

그러자 사제장이 갑작스레 고개를 저었다.

물론 부정의 뜻은 아니었다.

“그건 아닐세. 어차피 보상료 개념이라면 신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네. 그러니 굳이 그런 식으로 해석하지 않아도 된다네.”

“하지만 다른 교인들은 사제장님과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이런 식의 설명은 나름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 하지만 난 아닐세. 자네의 순수한 의도를 아마 신께서도 모르진 않을 거야.”

어떻게든 좋게 해석하려는 사제장의 모습에 록펠러는 속으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교회에서 대출 이자를 금했던 건 어떻게 보면 그들이 이자놀이로 재미를 보는 고리대금업자를 눈꼴시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저런 식으로 이자에 대한 태도가 바뀔 수 있을까?

‘어차피 저들이 내세운 교리라는 것도 저들의 이해관계 혹은 이익에 따라 충분히 바뀔 수도 있는 거지.’

“그렇게 말해주시니 저야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래도 교단이란 조직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하여 사제장도 그 생각이 계속 바뀌고 있었다.

‘아무리 이쪽에 좋은 취지로 말했다지만 이 일을 나 혼자 독단적으로 진행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겠어. 생각 여하에 따라선 그것을 이자로 몰아세우며 나와 이 교회를 매도할 수가 있으니…….’

하지만 그도 경험이 많은 교인이었다.

또한 록펠러의 제안을 그냥 거절할 정도로 여유롭지가 않았고, 그 어떤 곳보다 경직된 교단이라는 조직 내부에서 보내온 세월이 있었으니 제 나름대로 꾀를 내보기로 했다.

‘그래, 차라리 그게 좋겠군. 나 혼자 이걸 결정하는 것보단 차라리 리옹에 계신 베르키스 주교 각하께 말이라도 해봐야겠어. 모르긴 해도 이 일을 싫어하진 않으실 거야. 누구 좋은 일인데?’

생각을 마친 피터 사제장이 입을 열었다.

“우리 교회가 좋은 일인데, 자네가 한 제안을 굳이 마다할 이유가 있겠는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자네 뜻대로 해석해도 되고, 아니면 내 식대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네.”

“제가 괜히 처음부터 이자라 말해 사제장님을 불편하게 했다면, 죄송합니다. 보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아닐세, 자네가 처음부터 그렇게 설명했으니 나도 빠르게 이해할 수 있었네. 신의 힘으로 제 이익을 취하는 행위는 분명 나쁜 일이지만, 그게 교회를 위한 일이라면 이는 마냥 나쁘게 볼 수 없는 일이라네.”

역시 모든 건 해석하기 나름이었다.

“또 다른 시각에서 보면 신께서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살찌운다는 개념이 아니겠는가?”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록펠러가 설핏 웃자, 피터 사제장도 웃어 보였다.

“하지만 나 혼자 이번 일을 독단적으로 진행할 순 없는 노릇이네. 하여 리옹에 계신 베르키스 주교 각하께 물어보아 나름대로 허락을 구할 생각이니, 정 급한 게 아니라면 며칠만 기다려 줄 수 있겠나?”

카터 방코에서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금화가 있어 당장 교회의 금화를 가져오지 않는다고 해서 방코에 큰 문제가 생길 정도는 아니었다.

‘영지에 있는 용병 부대가 한순간에 우르르 빠져나가진 않을 테고, 이런저런 핑계로 중간중간에 가게 문을 닫아 쉬어주면 며칠 정도야 충분히 버틸 수 있지.’

하지만 길어서 좋을 건 없으니 초조한 기색을 감춘 록펠러가 미소만 지어 보였다.

“저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리하겠습니다.”

“아무튼 자네 덕분에 근심 하나를 덜게 생겼군. 자네는 역시 교회의 은인일세. 내 항상 고마워하고 있으니, 언제든 필요한 때가 있다면 머뭇거리지 말고 이쪽으로 와주게나. 교회에서 도와줄 일이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도와줄 테니.”

“말씀 감사합니다. 사제장님께서 절 그렇게 봐주시니 그저 송구할 따름입니다.”

“하하하!”

그리고 며칠 뒤.

사제장이 불러 다시 찾아간 자리엔 놀랍게도 붉은 성복의 늙은 교인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록펠러는 그가 누구인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설마 리옹에 있다는 그 사람인가? 베르키스라는 주교 각하라는 사람이 말이야.’

그의 얼굴을 아는 건 아니었으나, 붉은 성복은 교단에서도 고위 성직자만이 입을 수 있었고, 사제장도 입지 못하는 그 옷을 그가 입고 있다는 건 그의 정체를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정보였다.

“설마…… 리옹에서 오신 베르키스 주교 각하십니까?”

록펠러가 넘겨짚듯 묻는 말에 두 교인의 얼굴에서 진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주교 각하를 언제 뵌 적이 있었나?”

사제장이 물었고, 같이 있던 베르키스 주교가 환한 미소로 입을 열었다.

“자네 말대로 아주 영특한 청년이로군. 그래, 자네 말대로 내가 바로 그 사람이라네.”

자기소개를 마친 주교를 향해 록펠러가 깍듯이 예를 보였다.

“미천한 자가 리옹의 높으신 분을 뵙습니다.”

록펠러가 고개를 숙여 주교가 내민 반지에 입을 맞추자 베르키스 주교는 만족했는지 저 혼자 고개를 주억여주었다.

“그래, 자네 이름이 록펠러라고? 록펠러…….”

주교가 뒷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말끝을 흐리자 근처에 있던 피터 사제장이 재빠르게 나섰다.

“로스메디치 집안입니다. 주교 각하, 예전에 데이비드 로스메디치라는 의사가 있지 않았습니까?”

“데이비드?”

“붉은 가운을 입고 다닌 그 의사 말입니다. 저희 교회나 리옹 교구에도 몇 번씩이나 찾아가 예배도 많이 하고 성금도 많이 냈던 자입니다.”

“아, 그런 자가 있었나? 붉은 가운이라고?”

잠시간 생각해 보던 주교가 그제야 기억났는지 격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오! 이제야 기억났네. 미안하군. 예전에 그런 자가 있었지. 맞아. 그런 용한 자가 있었어. 의술이 성자에 버금갈 정도로 재주가 아주 좋은 사람이었지.”

“여기 있는 이 청년은 그자의 손주 되는 사람입니다.”

“아 그렇군. 훌륭한 의사 밑에서 아주 훌륭한 사람이 나왔군.”

그렇게 로스메디치 집안을 기억해 낸 둘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그저 웃기 바빴다.

그 모습을 보고 록펠러는 리옹의 주교라는 자가 무슨 이유에서 여기까지 찾아왔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딱히 의도했던 일은 아니었는데 일이 아주 잘 풀렸어.’

리옹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자가 왜 굳이 변방의 교회까지 찾아왔을까?

이유야 뻔했다.

그도 여기 있는 사제장처럼 이자 수익에 관심이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야기가 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찌 됐건 나한테는 좋은 일이지.’

“실례되는 말씀이지만, 리옹의 아주 높으신 분께선 여기까진 어쩐 일로 오신 겁니까?”

그런 록펠러의 물음에 사제장이 먼저 나섰다.

“크흠! 좀 전에 얘기했었던 그…… 보상료 있지 않나? 그것과 관련해서 오셨네.”

“아, 예금에 따른 보상료 말이십니까?”

“그렇네. 그 일로 찾아오셨어. 내가 관심을 보인 것처럼 주교 각하께도 자네 제안에 나름 관심이 가셨던 모양이야.”

“그렇습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주교가 나섰다.

“그 이자 얘기나 한번 해보게. 그 이야기를 들으러 여기까지 왔으니.”

그러자 근처에 있던 피터 사제장이 난리였다.

“주교 각하, 이자가 아니라 정확히 보상료입니다.”

베르키스 주교는 표정부터 구기고 봤다.

“보상료든 뭐든. 어차피 그게 그거지.”

“그래도 그 의미가 다르지 않습니까?”

“어차피 교회에 다 좋은 일일세. 그게 무슨 의미가 됐든 신과 우리 교회에 좋은 일인데 무슨 상관인가?”

“그거야…… 맞습니다만.”

주변 눈치를 봐야만 하는 사제장과 다르게 주교라는 자는 별로 가릴 게 없는 모양이었다.

베르키스 주교는 곧바로 록펠러를 찾았다.

“자네가 한번 말해보게. 나야 그 일이 흥미로워 여기까지 왔으니.”

이 좋은 기회를 록펠러가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

‘이건 천운이야. 이런 기회를 차버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