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56화 (56/181)

§56화 15. 예금의 탄생(3)

카터가 초조한 표정으로 가게 안을 서성이기 시작했다.

벌써 몇 명의 용병이 다녀갔는지 모를 정도로 오늘 하루 수없이 많은 용병들이 자신의 가게에 찾아와 차용증서를 금화로 교환해갔다.

“오늘만 벌써 1,000달란트나 빠져나갔다. 알고는 있니?”

카터의 말에 근처에 있던 록펠러가 수긍하듯 고개를 살며시 끄덕여주었다.

“네, 장부는 저도 보고 있는걸요. 당장은 아니지만 좀 더 지나면 위험할 거 같긴 해요.”

“이러다 정말 큰일 나게 생겼어. 지금 우리에겐 여기 용병들에게 내줄 금화가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없는 금화까지 대출해 줬으니까.”

영지 내부와 용병 캠프에서는 카터 방코가 실제로 가지고 있지 않은 금화를 담보로 한 차용증서가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카터 방코에서 이자 수익을 위해 찍어낸 가짜 돈이 시중에 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차용증서가 한꺼번에 카터 방코로 모인다면 카터 방코는 그날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그만한 양의 금화를 카터 방코에서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러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그만한 금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땐 정말 큰일 나는 거 아니냐?”

걱정한 기색이 역력한 카터와 다르게 록펠러의 표정은 그저 담담하기만 했다.

“당연히 그렇겠죠.”

“아니, 그렇게 있지 말고 무슨 대책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대책이야 당연히 있죠.”

그제야 록펠러가 미소를 드러내자 카터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대책이 있다고?”

“네.”

“무슨 대책? 당장 용병들이 여길 다 떠나는 판국에 그만한 금화를 준비할 수 있다는 말이냐? 영주님께 빌려준 금화를 당장 돌려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카터 아저씨, 저 잠깐 조슈아랑 밖에 좀 다녀올게요.”

“밖에를 나간다고? 지금 이 시국에? 대체 어디를 가려고?”

“당장 금화가 부족하니 그 금화를 가져올 수 있는 곳에 가야겠죠?”

씩 웃어 보이는 록펠러가 가게 안에서 금화를 세공하고 있던 조슈아를 불러냈다.

“조슈아, 형이랑 어디 좀 다녀오자.”

“어디? 갑자기 어딜 가는 거야?”

“너도 아는 곳이야.”

록펠러의 부름에 조슈아는 만사를 제쳐두고 그를 따라나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터가 여전히 한숨을 푹 내쉬며 혹시 모를 사태에 식은땀이 나는 걸 느꼈다.

‘대체 어디서 금화를 가져온다는 거야. 어디 가서 금화를 빌려온다는 소린가? 하지만 우리가 굳이 금화를 빌려올 필요가…….’

이 순간 카터는 금화가 없다는 사실에 분개하는 영지민들과 용병들이 이제 휴짓조각이나 다름없는 차용증서를 내던지며 자신의 가게 앞에 찾아와 요란스레 농성을 벌이는 장면을 상상해 봤다.

정말이지 악몽이나 다름없는 순간일 것이다.

‘제발. 아무 일이 없어야 할 텐데.’

록펠러를 따라 가게를 나선 조슈아는 앞서가는 록펠러에게 말을 붙였다.

“록펠러 형, 지금 어디 가는 거야?”

“교회.”

“교회? 교회는 왜?”

카터 방코의 이자 장사는 오늘 이날까지도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가장 큰 채무자라 할 수 있는 영주는 금화로 갚아야 할 이자 빚을 자신의 차용증서로 대신하고 있었고, 또한 토템전쟁의 종료로 인해 드워프들을 상대로 하는 맥주 장사가 이젠 예전 같지 않아서 카터 방코는 운용할 금화가 다소 부족한 상태였다.

‘가게 일이야 아주 잘 되고 있어. 문제는 이번 고비를 어떻게든 넘겨야 한다는 거지.’

영주가 착실하게 이자 빚만 금화로 잘 갚았더라도 록펠러가 오늘 교회에 찾아가는 일은 단연코 없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영주가 갚아야 할 빚이 많았고, 거기다 영주가 꾀를 쓰기 시작하니 그게 문제가 된 것이다.

‘꽤 많은 금화가 필요할 거야. 한두 사람도 아니고 수많은 이들이 우리의 차용증서를 금화로 바꿔가길 원할 테니까.’

대충 계산해 봐도 카터 방코에선 그들에게 내줄 금화가 부족한 상태였다.

그래서 이를 타개하기 위해 록펠러가 교회가 가지고 있는 금화까지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 금화를 가져올 수만 있다면 당장 당면한 문제를 아주 쉽게 해결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 거지.’

그렇게 교회에 도착하게 된 록펠러와 조슈아는 이전과 다르게 활기를 잃은 보리와 홉의 경작지를 보게 됐다.

‘전쟁이 끝나긴 끝난 모양이야. 그렇게 바빴던 곳이 저렇게나 한가해지다니.’

교회 안쪽으로 찾아가니 록펠러는 그리 어렵지 않게 로스메디치 집안의 넷째, 레오를 만날 수 있었다.

“레오야.”

“록펠러 형님. 조슈아 형님도 같이 오셨군요. 여기까진 무슨 일로 오셨나요?”

주말마다 찾아오는 교회인지라 레오와 만나는 게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었으나, 그래도 떨어져 사는 동생과 만난다는 건 그들에게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눈 그들은 레오의 안내를 받아 사제장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형님들에게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래서 피터 사제장님을 한번 만나보려고. 아마 우리 제안에 흡족해하실 거야.”

“아마 그럴 겁니다. 피터 사제장님은 록펠러 형님과 카터 방코를 좋아하시니까요.”

레오는 최근 들어 부쩍 수심이 깊어진 피터 사제장을 떠올릴 수 있었다.

‘최근 들어 표정이 어두워지긴 했어. 맥주 사업이 예전 같지가 않으니까.’

레오가 생각하기엔 그의 얼굴이 어두워진 이유가 드워프와 벌였던 맥주 사업이 잘되지 않자 이전처럼 교회 재정이 어려워질 것을 걱정한 것으로 보였다.

‘부디 모두에게 좋은 결과가 있어야 할 텐데.’

록펠러와 조슈아는 레오의 안내를 받아 그리 어렵지 않게 피터 사제장과 만날 수 있었다.

셋째 동생과 함께 찾아온 록펠러에게 피터 사제장은 언제나 그렇듯 미소로써 그들을 맞아주었다.

“어서 앉게나.”

그렇게 자리에 앉게 된 록펠러는 피터 사제장의 표정이 예전 같지가 않음을 빠르게 눈치챌 수 있었다.

이유야 물어보지 않아도 뻔했다.

맥주 사업이 이전 같지가 않은 것이다.

“최근 들어 안 좋은 일이 있으신 겁니까?”

“안 좋은 일? 아니, 그런 일은 없네.”

“표정이 좋지 않으셔서요.”

록펠러가 운을 떼자 피터 사제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자네도 알다시피 이제 맥주 사업은 재미를 못 보게 됐어. 드워프들이 우리와 더 이상 거래를 안 하려고 하더군. 떠나는 마당에 아쉬울 게 없는 모양이야.”

“그럴 수밖에 없겠죠. 일단 전쟁은 끝나가니까요. 드워프들도 여기 맥주에 더 이상 목매지 않을 겁니다. 자국으로 돌아가면 맥주야 어디서든 공급받을 수 있으니까요.”

“예전에 배짱 좋게 장사할 때가 좋았지. 그때도 다 자네 덕분이었는데.”

“저도 그때가 그립습니다. 저나 여기 교회나 참 좋았던 시절이었죠.”

그런 사제장에게 록펠러가 뜻밖의 제안을 던져보았다.

“저기 피터 사제장님.”

그가 시선을 주자 록펠러가 다음 말을 잇기 시작했다.

“혹시 교회 재정 문제로 골치를 앓고 계신다면 저희 차원에서 교회에 도움이 될 만한 제안을 한번 해볼까 하는데…… 이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제안이 있다고?”

그 말에 피터 사제장은 바로 반색할 수 있었다.

“또 좋은 사업 아이템이 있는 겐가? 그런 게 있는 거야?”

록펠러와 엮여서 좋은 일밖에 없었기에 피터 사제장이 갖는 기대는 생각보다 컸다.

그런 사제장에게 록펠러는 은연중 미소를 띠며 말을 이어주었다.

“이걸 좋은 사업 아이템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최근 들어 수심이 깊어진 사제장님을 보니 제 마음이 너무 아파서요. 그래서 교회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이 뭐 없을까 제 나름대로 생각 좀 해봤습니다.”

“그렇게라도 말해주니 정말 고맙네. 그래서 무슨 제안을 하고 싶은 겐가?”

그 물음에 록펠러는 생각해뒀던 것을 그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큰 건 아닙니다. 다만 교회 안에서 놀고 있는 금화가 다소 아쉽게 느껴져서요.”

“여기 금화가 아쉽게 느껴졌다고?”

드워프와 관련된 맥주 사업으로 생긴 수익은 전부 록펠러와 교회가 반반씩 나눠 가졌었다.

그 금화에다가 또 이제까지 교회에 성금으로 받은 금화도 있을 것이니, 록펠러는 그 금화에 대해 논하는 것이었다.

“네, 제가 직업병이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디에 큰돈이 있는 걸 두고 보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흐음…….”

아무리 이 교회의 은인이라고 하지만 교회의 금화를 탐내는 자를 사제장이 좋게 볼 리가 없었다.

“나는 벌써부터 자네가 무슨 소리를 할지 걱정되는군. 괜히 여기서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않는 게 좋다네.”

사제장의 표정이 굳자 록펠러가 웃으며 잠시 경색된 분위기를 깨뜨리고자 했다.

“하하,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하늘 같은 교회의 재산을 어찌 저 같은 자가 탐하려 하겠습니까? 단지 저는 이곳에 있는 금화가 보다 의미 있는 일에 쓰이길 원하는 겁니다.”

“정확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가? 아무리 들어도 나는 자네 의도를 잘 모르겠네.”

사제장이 말을 이었다.

“여기 금화를 탐하려는 것도 아닌데, 뭣 하러 여기 금화를 논하는 겐가? 관심을 꺼도 당연히 꺼야 할 교회의 재산인데.”

“교회의 재산은 당연히 교회의 재산입니다. 하지만 그 재산을 저희 카터 방코에 맡겨주신다면 저희가 매달 3% 이자를 챙겨드리겠습니다.”

그 말이 나옴과 동시에 피터 사제장의 낯빛이 크게 변했다.

“뭐, 지금 뭐라고 했나? 이자 수익으로 세상에 3%나 주겠다고?”

록펠러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네, 저희 카터 방코에 교회의 금화를 맡겨놓으시면 매달 맡겨놓은 금화의 3%를 이자 수익을 챙겨드리겠다는 말입니다. 이건 교회를 위해서도 아주 좋은 일이죠.”

사제장은 여전히 의심하는 얼굴이었다.

“보통은…… 금화 보관료라는 명분으로 되려 수수료를 떼가지 않나?”

“네, 맞습니다. 하지만 그건 예전의 일입니다. 저희 카터 방코는 날로 그 규모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게 다 교회의 은덕이죠.”

록펠러는 사제장이 이 일에 대한 자세한 내막은 모르길 바랐다.

어차피 예금이자 3퍼센트라고 해봤자 대출이자 6퍼센트를 계산해 본다면 무조건 카터 방코가 그 차익의 3%씩 이득인 셈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전까지의 관례를 철저히 깨부수는 아주 파격적인 제안인지라 피터 사제장은 그러한 자세한 내막에 대해선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저 방코처럼 이자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사실에 잔뜩 흥분하고 있을 뿐.

“그럼 그 은덕에 당연히 보답해 드리는 게 저희가 가져야 할 당연한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정, 정말로. 방코에 우리 금화를 맡겨놓으면 이자 수익으로 3%를 챙겨준다는 말인가? 그럼 1,000달란트를 맡기면 매달 30달란트가 생기는 꼴이겠군. 그리고 12달이면 360달란트고.”

그 물음에 록펠러는 더욱 진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 생각하신 그대롭니다. 사제장님께서는 그저 아무것도 안 하시고 매달 저희에게 맡기신 금화의 3%를 이자 수익으로 가져가시는 겁니다. 그럼 굳이 힘들게 일을 안 해도 되고, 앞으로 교회 재정 문제로 너무 걱정하실 필요도 없게 되는 겁니다.”

“허허…… 자네.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군. 우리 교회를 위해 그렇게까지 해주다니. 세상에 금화 보관료도 안 받고 오히려 이자까지 챙겨주려 하다니. 요한 님이 자넬 가만히 놔두겠는가? 자네 같은 교회의 은인은 무조건 천국으로 가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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