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53화 (53/181)

§53화 14. 전쟁은 누군가를 살찌운다(5)

그 말을 끝으로 이자벨라는 제이슨과 함께 가게에서 조용히 떠나갔다.

미련 없이 떠나간 그녀는 이 자리서 자신이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없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록펠러에게 그 답을 강요하지 않고 떠난 건 어차피 그에 대한 답은 그의 입이 아닌 시간이 말해줄 거라 믿었던 것이다.

떠나는 발걸음을 옮기며 그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훗날 이곳에 다시 찾아올 기회가 있을 때 그는 현재와 같은 모습일까?

아니면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있을까?

‘궁금하긴 하네.’

전과 다르게 조용히 떠나가는 그녀를 두고 록펠러는 잠시간 서서 눈가를 좁혔다.

‘나이트로드라…….’

소설 속 히로인과 만난 것은 생각보다 재밌는 일이었지만, 왠지 록펠러는 소설 속 그들과 만나는 게 이번만이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을 머릿속에서 쉬이 지울 수가 없었다.

돈과 얽히지 않는 세력은 단연코 없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설 자신이라면 나이트로드 외에 다른 이들도 만날 기회가 있지 않을까?

‘저 여자도 봤으면 언젠간 칼날여왕도 보겠네. 트리니티를.’

이때 록펠러에게 다가오는 또 다른 조수가 있었다.

안에서 카터를 도와 금화를 세공하고 있던 록펠러의 동생, 조슈아였다.

조슈아는 언제부터인가 록펠러 밑으로 들어가 카터 방코의 일을 배우기 시작했고, 훗날 금세공업자가 되기 위해 금화세공기술을 전수받는 중이었다.

“록펠러 형, 방금 누구야? 손님이야?”

록펠러가 조슈아를 보며 옅게 웃었다.

“맞아. 보기 드문 아주 귀한 손님이지.”

“그게 누군데?”

“마법사야.”

“진짜? 방금 마법사가 다녀갔다고?”

“응, 마법사야.”

조슈아는 황급히 가게 밖으로 뛰쳐나가 방금 전 가게 밖으로 나간 두 마법사를 찾아 거리 위를 두리번거렸다.

운이 좋았을까?

조슈아는 저 멀리 어둠의 장막 속으로 자취를 감추는 두 마법사를 볼 수 있었다.

“와! 마법사다! 대박.”

마법사를 봤다는 흥분감도 잠시.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온 조슈아가 록펠러에게 자랑하듯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록펠러 형! 나 방금 마법사 보고 왔어! 마법으로 순식간에 사라지던데?”

신이 난 조슈아가 요란스레 떠들자 소란을 듣고 나온 카터가 목소리를 냈다.

“또 무슨 일이냐? 누가 왔다간 게냐?”

“카터 아저씨, 완전 대박이에요! 방금 이 가게에 마법사가 왔다 갔어요!”

“뭐? 마법사가?”

“네! 진짜 마법사요! 방금 밖에서 마법으로 사라지는 것까지 제가 봤다니까요!”

“그래?”

카터도 놀란 표정이었으나 조슈아에 비해선 그리 크지 않았다.

“그렇구나. 마법사가 왔다 갔어…… 그럼 여기서 완전히 떠나간 게냐?”

그 물음은 곧바로 록펠러에게 이어졌다.

록펠러는 고개를 끄덕이며 옅게 긍정해 주었다.

“네, 물어봤는데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하긴 싱클레어 쪽 마법사면 오래 붙잡아두는 게 어렵긴 하겠지. 애당초 단가도 안 맞았을 테고.”

“그렇겠죠. 아마 선의보다는 그들 이익에도 어느 정도 부합되는 일이라 상대적으로 낮은 보수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머물러 있었겠죠. 그쪽 귀한 분께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거나 뭐 그런 식이요. 보다 정확한 건 당사자들이 알고 있을 테지만 제 선에선 이 정도 추측할 수 있겠네요.”

“나도 그 생각이다. 아무 이유도 없이 여기에 오래 있진 않았겠지.”

록펠러는 토템 전쟁의 최대 수혜자였다.

이곳 영주는 토템 전쟁으로 인해 오히려 빚에 시달려 가난해지고 있었지만, 그런 영주에게 돈을 빌려주고 추가적으로 드워프와 거래까지 한 록펠러는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유해졌으니까.

문득 교회 일이 생각났는지 카터가 아쉬움을 삼키며 지난 일을 꺼내 들었다.

“그나저나 요즘따라 밖이 조용한 걸 보니 국경 근처에서 일어난 전쟁도 곧 종식될 것 같구나. 고블린들이 오크들이 가지고 있는 마석 광산을 차지하기 위해 드워프와 일부러 전쟁을 일으켰다는 소문이 있긴 한데, 그거야 우리가 알 수 없는 일이고.”

카터가 록펠러의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저렇게 전쟁이 끝나게 되면 결국 우리만 덕을 보게 생겼어. 추가적으로 교회와 독점적으로 거래하는 너도 말이다.”

말을 마친 카터가 잠시 뜸을 들이다 아쉬운 말을 뱉어주었다.

“그 일에 나도 좀 끼워주지 그랬니? 그런 이유로 여기서 돈을 빌려 갈 줄 알았다면 나도 그 일에 낄 걸 그랬다. 나야 남는 게 돈인데…….”

“그랬으면 좋았겠죠. 하지만 저도 그 일에 확신이 없었어요. 망해도 저 혼자 망하면 되는 일인데, 굳이 아저씨까지 끌어들여서 같이 망할 이유는 없잖아요?”

“그래도 말이다. 어디 네가 해서 실패한 일이 있었더냐? 앞으로 그런 일이 있으면 너만 해 먹지 말고 나도 좀 끼워주거라. 너 혼자만 해 먹지 말고.”

그 말에 록펠러가 피식 웃었다.

“카터 아저씨, 저 혼자 해 먹은 게 아니잖아요? 교회랑 같이 한 건데.”

“그런데 영주님은 아직도 그 일에 대해 모르시는 게냐?”

“알고 계시긴 해요. 전에 우연히 만났거든요. 거기서 교회에 이자 없이 돈을 빌려줬다고 하니까 영주님께서 꽤 놀라시긴 했어요.”

이자 없이 무언가를 빌려주는 것.

카터의 상식으론 힘든 일이었다.

“그건 그렇고 너도 배짱 한번 좋구나. 그런 일에 이자도 없이 돈을 빌려주다니. 그게 그냥 돈을 주는 것과 무슨 차이냐?”

“그렇게 보시면 안 되죠. 만약 제가 그런 식으로 돈을 빌려주지 않았으면 교회가 주도적으로 맥주 관련 사업을 독점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렇기야 한데…….”

“그래서 저 혼자 진행한 거잖아요. 어차피 망해도 저 혼자 망하는 건데. 대신 저는 재미 좀 봤구요. 좀 크게 봤죠.”

록펠러 자신이 말했던 것처럼 큰돈을 벌기 위해선 크게 2가지 방법이 있었다.

하나는 사업.

다른 하나는 앉아서 불로소득을 챙기는 것.

“흠……. 그래 네 말처럼 어느 정도 배짱이 있어야 돈을 벌 수 있겠지. 나는 그런 배짱도 없는 모양이야.”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카터 아저씨는 절 들이셨던 게 나름 모험이었잖아요?”

“그거야…… 그렇긴 하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던 카터가 문득 영주와 관련된 일이 떠올라 이를 록펠러에게 물어보았다.

“그보다 영주님께 대출해 준 일은 네 말처럼 되어가는구나.”

영주에게 큰돈을 빌려준 지 벌써 1년이란 시간이 지나갔다.

그사이 영주는 빚에 시름하다 록펠러의 예상처럼 금화가 아닌 종이뿐인 차용증서로 이자를 대신 갚기 시작했다.

영지 세금으로 걷히는 ‘진짜 돈’은 지키면서 자신의 신용으로 창조한 ‘가짜 돈’으로 둘을 기만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자가 감당이 안 되는지 매달 갚아야 하는 이자를 차용증서로 대신하기 시작했어.”

“그렇죠. 제 말대로 됐죠?”

모두 다 계획대로였으나 카터는 머릿속에서 한 가지 걱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이 땅의 주인인 자였다.

그런 자였기에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는 걱정.

바로 ‘배째라’였다.

“그런데 말이다. 저렇게 차용증서만 남발하고 있는데, 우리가 제대로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그게 걱정이다.”

“설명은 드렸잖아요? 저희는 그 일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정말 그래도 되는 거냐?”

“네, 어차피 그것은 저희가 받아낼 게 아니거든요.”

록펠러는 이 자리에서 함께하고 있는 조슈아가 충분히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강조하듯 다음 말을 이어주었다.

“오히려 저희가 나서서 할 일은 영주님의 채무상환능력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영주님께서 빚 갚을 생각을 영원히 못 하도록 지금보다 더 빌려드리는 거죠.”

“더 빌려준다고?”

록펠러는 생각보다 잔인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네, 더 빌려줘서 아예 못 갚게 만들어야 돼요. 그리고 그 빚이 정점에 다다랐을 때.”

록펠러의 눈빛이 마치 맹수의 눈처럼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 빚에 먹히게 될 거예요.”

“빚에 먹힌다고?”

“네, 그런 경우 한 번도 못 보셨나요? 빚 때문에 부자였던 사람이 한순간 거지가 되는 일이요.”

“글쎄다. 누굴 그렇게까지 만들어 보질 않아서.”

“그럼 이번에 보시겠네요. 빚에 먹히는 사람을.”

옅게 웃는 록펠러가 근처에 있던 조슈아에게 말을 이었다.

“사람은 칼로 죽이는 게 아니야.”

조슈아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록펠러를 바라보자 록펠러가 나머지 말을 이어주었다.

“빚으로 깔아뭉개서 최대한 고상하게 죽이는 거지.”

조슈아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이자 근처에 있던 카터가 다시 말을 붙였다.

“일단 네 말대로 빚을 키우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텐데. 그 시기를 대충 언제쯤 보고 있는 게냐?”

“계산이야 따로 해봐야겠지만, 영주님이 발행하신 차용증서가 너무 많아지면 아마 그때가 될 거예요. 즉, 저희가 영주님이 써준 차용증서를 받지 않는 순간부터 영주님은 빚에 깔려 죽겠죠. 아마 감당할 수 없을 거예요. 애당초 그 순간을 위해 영주님의 빚을 키울 생각이니까.”

만약 그날이 온다면.

그리고 록펠러의 생각대로 모든 게 흘러간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여러 상황을 가정해 보던 카터가 걱정스러운 말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이다. 만약 네 말처럼 된다면 이 영지에 큰 혼란이 찾아올 텐데…….”

적어도 영주는 제 자리를 지킬 수 없을 것으로 보였다.

그 많은 빚을 감당할 수 없다면 야반도주라도 하는 게 상책이었으니까.

“영주님이 빚도 안 갚고 도망이라도 치면 그땐 어떻게 되는 거냐?”

“그럼 이전에 담보로 받았던 영지 땅을 저희가 갖게 되겠죠. 잊으셨어요? 처음에 영주님이 여기서 8,000달란트를 빌려 가실 때 영지 땅을 담보로 잡았던 거? 채무자가 도망쳤으니 채권자야 당연히 권리행사를 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거야 알고 있지. 하지만…… 내가 걱정하는 것은 그렇게 되면 여긴 누가 영주가 되냐 이 말이다. 우리가 땅을 가진다고 해서 여기 주인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영주는 땅의 주인이기도 했지만, 영지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자리를 일개 방코 업자가 앉을 순 없었다.

땅은 가져도 영지민의 절대적인 지지가 부재인 상황이었으니까.

그 물음에 록펠러가 나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영주를 향한 절대적인 지지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걸까?’

“빈자리가 있다면 당연히 그 자리에 합당한 사람이 앉게 되겠죠.”

카터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누가 말이냐? 네 말대로 땅은 우리가 가지고 있고, 차기 영주가 될 사람이 있다면 우선 우리에게 찾아와 그 땅을 사가야 할 텐데.”

록펠러의 미소는 그대로였다.

“저야 모르죠.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때가 되면 그 자리에 맞는 사람이 자연스레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테니까요.”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카터는 여전히 근심 가득한 표정이었다.

영주에게 큰 빚을 안겨 돈을 벌 수 있는 건 좋았으나, 영지 사정이 극도로 불안정해지는 건 그다지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알았다. 그걸 우리가 걱정해 봤자 좋을 건 없겠지. 놔두면 다른 영주가 찾아와서 차지하던가 하겠지, 뭐.”

여기서 카터는 자기가 영주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는 상태였다.

땅을 가졌어도 지지하는 세력이 없다면 영주라는 자리는 쉽게 앉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절대 아니고.’

그렇다고 저 아이가?

카터는 절대 아니라고 봤다.

‘그건 아니지. 저 아이가 머리는 비상하게 굴려도 그건 아니지. 무슨 영주야. 그것도 저렇게나 새파란 나이에.’

반면 록펠러의 생각은 달랐다.

록펠러는 제 입으로 말했었다.

어떤 빈자리가 있다면 그 자리에 합당한 사람이 그 자리에 앉게 될 거라고.

‘내가 앉아도 될 자리를 굳이 남에게 내줄 필요는 없겠지.’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문제는 새 영주가 되려고 하는 사람의 지지 세력이었다.

영지민들의 절대적인 지지가 없다면 영주란 자리는 앉으려고 해도 앉을 수가 없는 것이다.

‘모두들 날 지지하게 될 거야. 왜냐면 난 모두의 구원자가 될 예정이니까.’

그 구원자란 건 대체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답은 오직 록펠러만이 알고 있었다.

‘모두 날 인정할 수밖에 없을 거야.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아무튼 걱정 마세요. 다 잘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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