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50화 (50/181)

§50화 14. 전쟁은 누군가를 살찌운다(2)

이른 아침.

앤드류와 조슈아는 매일같이 그랬던 것처럼 당나귀 수레 여러 대를 이끌고 시장으로 향했다.

도착한 시장 안은 한산하지 않고 제법 시끌벅적했다.

시장 상인들은 용병 캠프에 납품해야 하는 식재료 준비에 부산을 떨고 있었고, 또 그것을 나를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떠들거나 아니면 시장 상인의 부름을 받아 식재료를 당나귀 수레에 싣고 있었다.

여기서 시장에 모인 아이들은 전부 다 앤드류와 조슈아가 고용한 아이들이었다.

둘만으로는 규모가 크게 늘어난 용병 캠프에 식재료를 전부 다 납품할 수 없기에 추가적으로 고용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장 안에서 또래 아이들에게 지시를 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 앤드류는 이전에 록펠러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릴 수 있었다.

“정말로 가고 싶다고?”

“응, 진짜 가고 싶어.”

영주의 딸처럼 사관학교로 가고 싶다는 앤드류의 말에 록펠러는 짧게 고심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사제가 된 넷째처럼 둘째의 선택도 나름 존중해 준 것이다.

“좋아. 네가 정 가고 싶다면 말리진 않을게. 거기 가서 여러 인맥을 쌓는 것도 너나 우리 가족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 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언제 가고 싶은데?”

“이번에 하는 일이 끝나면 바로 가고 싶어. 그래도 괜찮겠어?”

식재료 납품하는 규모가 커짐에 따라 앤드류와 조슈아가 벌어들이는 수입도 꽤나 짭짤해졌지만, 록펠러가 방코와 맥주 독점으로 벌어들이는 수입보다는 한참을 못 미치고 있었다.

어찌 됐건 집안의 가장인 록펠러의 허락이 필요했던 앤드류가 맏형인 록펠러의 허락을 구했고, 록펠러는 이를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가고 싶다면 지금 당장 가도 괜찮아. 그게 네 선택이라면 존중해 줘야지.”

“아니야. 여기서 하던 일은 마무리 짓고 가려고. 그리고 또래 애들을 고용해서 내가 있어야 돼. 내가 아니면 애들이 조슈아 말을 잘 안 듣거든. 조슈아는 아직 애잖아. 주먹질도 못 하고.”

고용한 아이들을 통솔하는 일은 전부 앤드류가 맡고 있었다.

마을 아이들 중에서 나이가 많기도 했지만 주먹 싸움도 잘해서 또래 중에선 대장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런 면모가 강한 자신감을 낳아 사관학교로 진학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지만, 어찌 됐든 식재료를 납품하는 일에 앤드류는 꼭 필요한 존재였다.

“그럼 그 일이 끝나고 다시 얘기하자. 그때라도 생각이 바뀌면 형한테 말해.”

록펠러는 사관학교로 가고 싶다는 둘째가 아쉬웠다.

그나마 셋째 조슈아는 자신과 뜻이 맞아 방코 일에 관심을 두고 있었지만, 둘째와 넷째는 아니었던 것이다.

여기서 막둥이 루시아는 아직 어려 무엇을 논할 처지가 되지 않았다.

“알았어. 생각이 바뀌면 바로 말할 게.”

그렇게 마친 대화를 상기시킨 앤드류가 당나귀 수레에 가득 실린 식재료를 보고선 아이들을 통솔하기 시작했다.

“각자 맡은 곳으로 가! 그리고 일 끝나면 여기로 다시 모이는 거 잊지 말고!”

앤드류의 외침에 각자 맡은 당나귀 수레에 몸을 실은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

“응! 이따가 봐!”

그렇게 시작한 일과는 이른 오후쯤 전부 끝낼 수 있었다.

늘어난 일손만큼 일하는 시간 역시 줄어든 것이다.

당나귀 수레를 직접 끄는 조슈아가 한없이 조용한 둘째 앤드류를 향해 목소리를 냈다.

“저기 앤드류 형.”

셋째의 부름에 앤드류는 느릿하게 반응해 주었다.

잠시 딴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응?”

“앤드류 형은 정말 사관학교에 가서 용기병이 될 거야?”

“어? 어…… 응.”

“용기병 말고 나처럼 방코 가서 금세공업자가 되면 안 돼? 나 요즘 금속세공술 배우고 있는데 진짜 재밌어. 내 손으로 직접 금화를 만든다니까? 어때 앤드류 형, 정말 신기하지 않아?”

자랑하듯 말하는 셋째의 말에 앤드류도 아쉬움을 느꼈으나, 지금 당장 마음이 가는 곳은 돈이 아닌 그녀였다.

‘걔가 여기 영주 딸만 아니었어도.’

대답 없이 침묵하는 앤드류는 이전 기억을 다시 끄집어냈다.

그때도 지금과 같이 조슈아와 함께 식재료를 납품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묵묵히 당나귀 수레를 끌고 가던 조슈아가 저 멀리 다가오는 낯익은 누군가를 보고선 다급히 목소리를 냈다.

“앤드류 형! 저기 스텔라 아가씨야!”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앤드류가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리며 조슈아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시끄러! 목소리 좀 낮춰.”

“아, 왜? 저기 스텔라 아가씨잖아. 스텔라 아가씨!”

그 부름에 응한 스텔라가 말을 타고 두 형제에게 다가왔다.

바람을 타고 흘러오는 그녀의 향기가 앤드류의 코끝에 닿자 앤드류는 저도 모르게 볼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안녕 조슈아? 앤드류도 같이 있었네.”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 영지에 머물고 있었던 스텔라는 사관학교 입학 시기가 다가오자 다시 황도로 향했고, 그 과정에서 우연히 로스메디치 집안의 두 형제와 마주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앤드류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고, 붙임성이 좋은 건 그 동생인 조슈아뿐이었다.

“또 어디 가시는 거예요?”

“이제 돌아가야지. 여기에 너무 오래 있었어.”

깐깐하고 꼬장꼬장한 영주를 생각해 본다면 스텔라는 제법 친절하고 붙임성이 좋은 편이었다.

그리고 귀족다운 우월한 외모까지.

그녀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는 앤드류가 잠시 딴청을 피우고 있을 때, 이를 모르는 조슈아는 신나서 저 혼자 떠들어댔다.

“정말요! 잘됐다. 저희 형도 곧 사관학교에 간대요! 이거 아셨어요?”

스텔라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형? 누구?”

“여기 앤드류 형이요!”

“야, 시끄러!”

조용하던 앤드류가 쓸데없는 소리를 한 조슈아에게 성을 내자 이를 지켜보던 스텔라가 입을 가리며 웃기 시작했다.

“야, 앤드류. 너도 여기 와서 생도가 되려고?”

직접적으로 자신을 불렀기에 어쩔 수 없이 화답하는 앤드류가 그녀를 보다 속에서 쿵쾅거리는 무언가를 느끼게 됐다.

“어? 어…… 응. 가족들한테는 이미 말해놨어.”

“무슨 생각으로 생도가 되고 싶은 거야? 여긴 생활 자체도 엄격하고 육체적으로도 많이 힘든 곳이야. 그런데도 여기에 오고 싶어?”

아무리 영주 딸이라지만 처음 만났을 때부터 둘은 서로에게 반말을 했었고, 스텔라 본인도 앤드류에겐 말을 놓으라고 이미 예전부터 말한 상태라 앤드류는 이 상황에서 거리낌 없이 반말을 내뱉어주었다.

“야! 내가 그 정도도 못 할 거 같아? 그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지!”

“다행이네. 자신감은 넘쳐흘러서. 거기가 생각보다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거든?”

“그래 봤자지.”

“그럼 내가 거기서 선배가 되는 건데, 가서도 서로 모른 척하기 없기다? 그거 규율 위반이야.”

“어? 응…….”

대화를 마친 스텔라가 떠나가자 이를 본 조슈아가 손까지 크게 흔들어가며 떠나가는 그녀를 배웅해 주었다.

“스텔라 아가씨! 조심히 가세요! 그리고 다음에 꼭 봐요!”

“조슈아 너두.”

뒤로 시선을 흘리는 스텔라가 방금 전 발끈했던 앤드류를 힐끔 쳐다보더니 이내 시선을 돌렸다.

두 형제야 부담 없이 만났지만 그녀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로스메디치라…….’

로스메디치.

몬테펠트로 영지에선 그다지 보잘 것 없는 여러 평민 집안 중 하나였으나, 그건 불과 1년 전 이야기였다.

그녀의 아버지인 영주 체스터는 언제부터인가 평민 집안인 로스메디치 집안의 눈치를 보고 있었고, 그게 영지 방어를 위해 조달했던 돈 때문이었다는 것을 그녀는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서재에 앉아 이번 달에 낼 이자 생각으로 골머리를 썩이던 자신의 아버지가 아직도 눈에서 아른거리고 있었다.

‘저기 맏형이란 사람은 성격이 참 까다롭던데. 보기보다 쉽지 않은 사람이었어.’

영지의 빚 문제로 방코를 찾아간 그녀는 방코 주인인 카터와 상담을 하였고, 그 과정에서 가게의 실세가 가게 주인인 카터가 아니라 그가 고용했던 어린 조수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록펠러 로스메디치.

자신과 같은 또래인 앤드류의 형이었으며, 겉으로 봤을 땐 방코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는 어린 조수에 불과했으나 대화를 나눠보니 제법 어른스러운 자였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진 빚 문제로 록펠러와 여러 대화를 나눠봤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진 못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든 돌아오는 대답은 늘 똑같았던 것이다.

“당장 낼 이자가 부담스럽다면 이번에 한해서 조금 깎아드릴 순 있습니다. 하지만 이자 없이 원금만 갚는 일은 절대 허락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낸 이자만 보면 머잖아 원금에도 미칠 거 같은데, 이건…… 조금 너무한 거 아닌가요?”

그녀의 불만에 록펠러는 오직 미소로만 화답해 주었다.

“스텔라 아가씨. 아가씨께서 걱정하는 마음이야 십분 이해하지만 어차피 영주님께서 땅을 담보로 하셨으니 큰 문제는 없으실 겁니다. 담보라는 건 그래서 잡아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럴 수 없다는 건 그녀가 잘 알았으나, 상대는 앞뒤가 꽉꽉 막힌 방코 조수였다.

사람들이 왜 방코라는 곳을 그토록 증오하는지 그녀는 그제야 알게 됐다.

돈을 빌려 갈 땐 천사 같은 곳이었지만, 막상 갚을 때가 되면 악마로 돌변하는 곳이 바로 방코였던 것이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앤드류에게 말해보면 되나?’

걱정이야 있었으나 앤드류가 언젠간 사관학교로 온다는 말에 그녀는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앤드류와 친하게 지내면 그의 맏형인 록펠러에게 좀 더 사정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스텔라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이를 흘겨보던 조슈아가 옆에 잇던 앤드류에게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근데 앤드류 형.”

“응? 왜?”

“형, 혹시 스텔라 아가씨 좋아해?”

난데없는 소리에 앤드류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대꾸했다.

“뭐?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아니야 절대.”

“에이, 나 벌써 눈치챘어. 앤드류 형, 스텔라 아가씨 좋아하는 거지? 그래서 갑자기 사관학교에 가고 싶다고 한 거 아냐?”

“아니라니까. 너 그리고 조용히 해라. 그러다 맞는다?”

“또 또 때린다!”

“아직 안 때렸거든?”

“아무튼 앤드류 형 마음 다 알았어. 앞으론 스텔라 아가씨가 오면 조용히 할게. 불러도 말도 못 붙이면서.”

방금 전처럼 스텔라가 찾아와 말을 붙였던 것도 전부 다 조슈아 덕분이었다.

조슈아의 붙임성이 없었다면 아마 남남처럼 떠나갔을 것이다.

그것을 알았기에 앤드류가 아쉬웠는지 목소리를 냈다.

“야, 그건 아니야.”

“뭐가?”

“아니라니까. 그런 거 아니니까 괜히 밉보이지 말고 스텔라한테 인사나 잘해.”

“근데 형은 왜 스텔라 아가씨한테 반말해?”

“반말은 무슨. 그냥 걔가 처음부터 그렇게 하라고 했어. 자기는 신경 안 쓴대. 그래서 난 쟤가 그냥 평민인 줄 알았지.”

“평민치곤 너무 귀족티가 나지 않았어?”

“평민이라고 다 가난하냐! 우리처럼 돈 좀 있는 사람도 있는 거지.”

“아무튼 형은 진짜 사관학교에 갈 거야?”

그 물음에 앤드류가 망설이던 시간은 꽤 짧았다.

“응, 가서 용기병이 되려고. 마법은 못 써도 제국엔 화약이란 게 있잖아. 그걸 믿어보려고.”

누구 때문에 그 생각을 굳혔다는 건 앤드류가 간직한 비밀이었다.

“그러다 정 안 맞다 싶으면 다시 돌아오면 되지. 어차피 록펠러 형은 내가 록펠러 형처럼 방코 일 하는 걸 원하는 것 같던데.”

그 말에 조슈아가 반색했다.

“앤드류 형, 가서 안 될 거 같으면 빨리 돌아와. 그때 가면 내가 이미 금세공업자가 되어 있을 테니까.”

조슈아가 말을 이었다.

“난 록펠러 형처럼 돈을 엄청 많이 벌 거야. 진짜 엄청나게 많이 벌어서 우리 집안을 대륙에서 가장 큰 부자로 만들 생각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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