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49화 (49/181)

§49화 14. 전쟁은 누군가를 살찌운다(1)

몬테펠트로 영지 밖에서 일어난 두 세력 간의 전면전.

토템전쟁으로 인해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천둥산맥의 주인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그들과 전쟁을 벌인 레드스킨의 오크들도 아니었다.

그럼 누구였을까?

그들은 몬테펠트로 영지 안에 위치한 교회와 그 교회를 몰래 지원해 준 로스메디치라는 평민 집안이었다.

‘신의 은총이야.’

피터 사제장은 오늘도 흡족한 미소를 띤 채 넓게 펼쳐진 보리와 홉의 경작지를 둘러보았다.

그가 보는 곳곳엔 이번에 새롭게 들어온 어린 사제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교회의 부흥을 위해 오늘 하루도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교회가 차츰 커져가고 있었다.

이는 분명 좋은 일이었다.

‘살다 보니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재정적인 문제로 골머리를 앓지 않는 날이 올 줄이야.

‘이 모든 게 다 요한 님과 로스메디치 집안의 어린 주인 덕분이겠지. 정말 감사해야 돼.’

이 순간 피터 사제장은 자신과 교회에 뜻밖의 행운을 가져다준 록펠러란 방코 조수를 떠올렸다.

아마 그 소년이 없었다면 이만한 행복은 절대 누릴 수 없었으리라.

‘나이답지 않게 아주 성숙한 아이야. 솔직히 다 큰 성인이라고 해도 믿겠어.’

이따금씩 너무 어른스러운 모습이 이질적이기도 했지만, 이런 부분에 대해선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한 집안의 가장이 됐으니 그런 성숙한 모습이야 당연한 거겠지. 일찍 철이 든 거야.’

산책하듯 교회 밖 경작지를 거닐던 피터 사제장이 저 멀리 눈에 익은 어린 사제를 보고선 또다시 입가에 미소를 드리웠다.

‘저기 있었군.’

레오가 록펠러와 닮아 호감이 가는 부분도 있었지만, 레오의 성실하고 착한 부분 또한 피터 사제장이 레오를 좋게 보는 이유 중 하나였다.

“레오야, 거기 있었구나.”

레오를 찾아간 피터 사제장이 목소리를 내자, 다른 사제들과 함께 보리와 홉을 재배하고 있던 레오가 그의 부름에 응해주었다.

“안녕하세요, 사제장님.”

“그래, 일할 사람도 많은데 쉬엄쉬엄하거라. 네가 일하지 않아도 주변에 일할 사람이야 널리지 않았느냐?”

그러자 레오는 주변 사제들을 의식하며 손사래부터 쳤다.

“아, 아닙니다. 저는 괜찮아요.”

“아니다. 평생 여기에 있을 게 아니라면 네게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좋겠구나.”

“전 정말 괜찮아요.”

피터 사제장이 눈가를 좁히며 생각했다.

그는 록펠러가 부탁하듯 남긴 말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었다.

“레오를 키우고 싶다고? 교인으로서?”

“네.”

짧게 대답한 록펠러는 사제장과 단독으로 만난 자리에서 제 바람에 대해 전해주었다.

“저는 레오가 교인으로서 크게 성장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레오가 저희와 같은 길을 못 가더라도 말입니다.”

“교인으로서 크게 키우고 싶다라…….”

한 평생 교인으로 있었으면서 피터 사제장이 차지할 수 있었던 자리는 바로 변방에 위치한 작은 교구의 주인이었다.

직함은 사제장.

자신 위로는 주변 교구를 통괄하는 주교의 자리가 있었으나, 주교는 아무나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어디 가문 출신이냐는 것도 중요했고, 교단 내부에서도 어느 정도 입지를 다져야만 어렵게 차지할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주교라는 자리였으니까.

‘그리고 법황청하고 인연도 있어야지.’

그러니 이를 염두에 두고 잠시 생각에 잠기던 피터 사제장이 조심스레 입을 열기 시작했다.

“교인으로서 크게 성장하려면 결국 법황청으로 갈 수밖에 없다네. 하지만 아무나 법황청에 갈 수 있는 건 아니지.”

“하긴 아무나 갈 수 있는 건 아니겠죠.”

“모든 일에는 순서라는 게 있지. 이런 변방 교구에 있는 사제가 크게 될 순 없어. 우선 이곳에서 추천서를 받아 보다 큰 교구로 자리를 옮겨야 하고, 거기서 또 추천서를 받아 법황청으로 가는 게 가장 이상적이긴 하네.”

피터 사제장의 말은 계속됐다.

“그게 아니고서야 평민 출신의 자제가 갑작스레 법황청으로 갈 순 없는 법이라네.”

사제장의 솔직한 조언에 록펠러는 감사의 뜻을 전해주었다.

“말씀 감사합니다.”

“우선 레오가 아직 어리니 좀 더 지켜보다가 내가 리옹에 있는 교회에 추천서를 한번 써보겠네.”

리옹은 제국 수도인 황도 다음으로 제국에서 널리 알려진 도시 중 하나였다.

정식 명칭은 리옹 특별상업지구.

제국 변방에 위치한 몬테펠트로 영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상업적으로 크게 발달한 도시였고, 리옹에 위치한 교구는 인근 영지에 위치한 모든 교회들을 통괄하고 있었다.

그런 곳에 레오를 추천해 보겠다고 하자 록펠러는 나름 만족한 얼굴이었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제가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마주 웃는 건 피터 사제장도 마찬가지였다.

“하하, 그 정도야 당연히 해줘야지. 자네 덕분에 나와 이 교회가 덕을 본 게 얼만데. 자네는 모르겠지만, 이번 사업으로 우리 교회가 교단으로부터 관심을 받게 됐다네. 아주 좋은 일이지.”

교회에 바쳐지는 성금 중 일부는 상위 교구로 흘러들어가 궁극적으로 법황청으로 모아지고 있었다.

그러니 교단에서는 많은 성금이 올라오는 교구에 특별히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고,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별 볼 일 없었던 변방의 작은 교구에서 갑작스레 많은 성금이 올라오기 시작하자 자연스레 관심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교단의 관심은 곧 교구의 승격.

그러니 피터 사제장의 미소가 끊이질 않았던 것이다.

“이게 다 자네 덕분이라네. 살다 보니 베르키스 주교 각하에게 안부 편지나 받아보고 말이야. 내 생전 이런 날이 찾아올 줄이야 누가 알았겠나?”

베르키스 주교?

소설에서 몇 번 들어본 이름이었다.

“베르키스 주교 각하라 하시면…… 리옹에 계신 분이 아닌가요?”

“잘 알고 있군. 맞네. 리옹에 계신 분이라네. 그분께서 여기까지 통괄하고 계시지. 우리보다 상위 교구야.”

“그렇군요. 어디서 들어본 기억이 납니다.”

“그쪽에선 아주 유명하신 분이지. 뵙기 힘든 분이기도 하고.”

대화 도중 록펠러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 자리에 있는 사제장이 리옹의 주교가 된다면 레오에게도 더 좋은 일이 되지 않을까?

‘충분히 가능하지. 저 사람은 생각보다 구슬리기가 쉬워. 여타 교인답지 않게 특히나 재물에 취약한 사람이니까.’

또한 교단에서 리옹의 입지는 아주 중요했다.

상업적으로 크게 발달한 도시라 이따금씩 주교가 아닌 대주교가 해당 교구를 맡기도 했을 정도니까.

생각을 마친 록펠러는 그를 한번 떠보기로 했다.

“피터 사제장님, 제가 잠시 외람된 질문을 해도 되겠습니까?”

“외람된 질문? 그게 뭔가.”

“사제장님께선 이후 더 높은 자리에 앉을 생각은 전혀 없으신 겁니까?”

“그게 무슨 소린가?”

“그냥…… 주교 각하가 되실 생각은 없으신가 해서요.”

“주교 각하라고?”

갑작스러운 질문에 피터 사제장이 잠시 당황했다.

아니, 주교 각하라니.

“지금 나보고 주교 각하가 될 생각이 없냐고 물어본 겐가?”

“네, 사제장님 정도면 충분히 가능하실 거 같은데,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 무례하게 여쭤봤습니다. 실례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그 생각을 왜 못 했겠나?

“흠…….”

잠시간 침음성을 흘리던 피터 사제장이 한숨 섞인 소리와 함께 목소리를 냈다.

“한평생 교인으로 살아왔지만 내가 감히 주교 각하가 되리라곤 생각도 못 해봤네. 그게 만약 생각처럼 쉬운 일이었다면 나 역시 마다하지 않았겠지.”

피터 사제장은 지난 아쉬움을 삼키며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볼 땐 자네가 아직 어려서 교회 사정을 잘 모르는 것 같군. 주교 각하라는 자리는 그렇게 쉽게 차지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네. 나는 교단에서 입지도 없고, 끌어줄 세력도 없다네. 그나마 교인으로 살아온 경험이 있어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거겠지.”

“그래도 혹시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허허…… 만약 자네 말대로 내가 주교 각하가 된다면 아마 이런 길 밖에는 없을 걸세.”

피터 사제장이 말을 이었다.

“여기가 크게 성장해 교단으로부터 전혀 새로운 상위 교구로 인정을 받거나, 아니면 내가 리옹에 찾아가 주교 각하가 되는 일이겠지.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쉬운 게 없다네. 이곳은 늘 소외받던 지역이라 상급 교구로 승격받을 일이 전혀 없고, 리옹은 예로부터 리옹 가문의 출신들이 주교 각하의 자리를 쭉 맡아왔다네. 그런 곳에 나 같이 출신도 불분명한 늙은 사제장이 주교 자리를 맡는다고? 그런 건 힘들지. 가능하지도 않고. 위에서도 허락해 주지 않을 걸세.”

하긴 아무나 될 수 있는 자리였다면 진즉 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록펠러의 생각은 달랐다.

‘내가 볼 땐 둘 다 가능할 거 같은데?’

피터 사제장 말처럼 그가 주교 각하가 될 수 있는 방법은 딱 두 가지였다.

그런데 피터 사제장의 생각과 달리 록펠러는 그 두 가지 모두에서 가능성을 보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사제장님. 제가 볼 땐 두 방법 모두 그렇게 불가능하진 않아 보입니다.”

“뭐? 불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고?”

피터 사제장이 표정을 잠시 구겼다.

이 소년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저렇게 하는 걸까?

“그게 무슨 소린가? 둘 다 실현 불가능한 일인데.”

“이곳 몬테펠트로 영지의 위상이 높아진다면 교단에서도 당연히 상급 교구로의 승격을 논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럼 이곳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맡아오신 피터 사제장님께서 당연히 그 수혜를 받으시겠죠.”

“그거야 자네 말대로 이 영지가 크게 돼야 가능하지 않겠는가?”

“지금이야 변방 지역이라 모두에게 소외당하고 있지만 나중에 또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말이라도 고마운지 피터 사제장이 옅게 웃어 보였다.

“그저 말이라도 고맙네.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그리고 사제장님이 리옹의 주교 각하가 되는 일도 그렇게 불가능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현재 리옹의 기득 세력은 사제장님이 말하셨던 것처럼 리옹 가문입니다. 하지만 그 리옹 가문이 갑작스레 몰락하거나 그 힘을 잃는다면 사제장님께서도 충분히 그쪽 주교 각하 자리에 앉을 수도 있는 겁니다.”

“그야말로 가능성이군. 하지만 그런 일이 있다고 해도 내가 그 자리에 앉을 가능성은 작아 보이네만?”

“세상일은 또 모르니까요.”

“그래 자네 말대로 세상일은 또 모르겠지. 그 누가 여기 일이 이처럼 잘될 줄 알았겠나? 정말 아무도 모를 일이야.”

피터 사제장은 록펠러가 무심코 던진 질문에 대해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반면 그 질문을 던진 록펠러는 그 일의 가능성에 대해 짚어보고 있었다.

‘절대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그리고 만약 자신의 생각대로 여기 있는 피터 사제장이 주교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면 록펠러가 얻을 수 있는 건 정말 여러 가지였다.

‘우선 레오에겐 가장 좋은 일이 되겠지. 아무 연고자도 없는 교단 안에서 누군가 자신을 끌어준다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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