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13. 매점매석 #3(5)
대놓고 맥줏값을 비싸게 받겠다는 말에 드워프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사절단 대표로 온 오린도 마찬가지.
‘어처구니가 없군. 저런 식으로 준비를 해놨다니.’
굳이 이곳이 아니더라도 다른 곳을 찾아보면 또 모른다.
아직 다 확인해 본 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상대가 너무 자신 있게 나왔다.
그 말인즉, 상대가 한 말처럼 될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뭘 믿고 그리 확신하는 거지? 맥주야 어딜 가든 쉽게 구할 수 있어.”
“그럼 그쪽에 가셔서 쉽게 구하시면 됩니다. 굳이 저희에게 따질 필요는 없죠.”
배짱이 너무 좋았다.
사절단으로 온 드워프들이 일제히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목소리를 낮춰 잠시간 대화를 나눴다.
의견이 모아지자 대표 오린이 목소리를 냈다.
“우선 확인이 필요하다. 정말 그대의 말처럼 이 근방에서 맥주를 구할 수 있는 데가 당장 여기 하나뿐인지 알아봐야겠어. 만약 여기 말고 다른 곳이 있다면 손해 보는 건 당연히 이곳이겠지. 그런 식으론 절대 거래하지 않을 테니까.”
록펠러가 여유를 잃을 이유는 없었다.
그들이 무엇을 해도 결과는 똑같을 테니까.
“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편히 알아보시면 됩니다. 어차피 시간이야 저희 편이니까요.”
그 모습을 보고선 드워프 사절단은 왠지 자신들에게 선택지가 없을 거란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래도 만에 하나 다른 곳에서 맥주를 구할 수 있다면 굳이 기분 나쁜 이곳과 거래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드워프 사절단이 떠나가자 지금까지 대화에 끼지 않고 그저 지켜보기만 했던 피터 사제장이 록펠러에게 말을 붙였다.
“계속 지켜봤네만.”
피터 사제장은 나름 확신에 찬 얼굴이었다.
“자네 말대로 될 것 같군. 저들에게 선택지가 없어.”
그 말에 록펠러가 설핏 웃어 보였다.
“저들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을 겁니다. 다른 선택지를 주지 않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요.”
“그렇지.”
“길어 봐야 며칠입니다.”
록펠러 역시 확신에 찬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 며칠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그렇게 떠나간 드워프 사절단이 몬테펠트로 영지를 포함한 여러 영지를 둘러보고 다시 돌아오기까지는 채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된 드워프들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결국 바가지를 써야만 맥주를 구할 수 있었으니까.
교회에 다시 찾아온 록펠러는 자리에 똥 씹은 표정으로 앉아 있던 드워프 사절단을 향해 말을 던졌다.
“어떻게, 결정은 하신 겁니까?”
썩은 표정의 오린 알 수 없는 소리를 흘렸다.
속에서 화딱지가 나 저도 모르게 흘리는 소리였다.
“크흐…… 당장 맥주가 모자라진 않아. 천둥산맥에서 가져온 물량이 아직 남아 있으니까.”
오린의 눈빛이 마치 록펠러를 잡아먹을 듯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물량이 다 소진되면 레드스킨과의 전쟁은 지속될 수 없겠지. 누구 말대로 우린 맥주에 살고, 맥주에 죽는 그런 자들이니까.”
이어지는 말은 한탄과도 같았다.
“나도 드워프지만 이놈의 성깔이 너무 더러워. 진짜 맥주로 달래지 않고는 통제가 안 되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어. 그놈의 맥주가 뭔지 참.”
오죽했으면 ‘맥주의 저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드워프에게 맥주란 마치 생명수와도 같았다.
누구는 포도주나 사탕수수를 원료로 하는 럼과 같은 다른 술로 맥주를 대체할 수 있지 않겠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돼지고기만 먹던 민족이 갑자기 소고기에 환장할 수 없는 것처럼.
드워프들에게 있어 맥주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필수불가결 것이었다.
“한 가지만 물어보겠다.”
“네, 뭐든.”
“우리가 생각을 바꿔 여기를 칠 수도 있는데, 그건 어떻게 생각하나?”
그들이 악랄한 세력이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약탈 또한 부족한 물자를 확보하기 위한 여러 수단 중 하나였으니까.
“애당초 그럴 거였다면 이렇게 사절단을 보내지도 않았겠죠.”
“그리 확신할 수 있겠나?”
그 물음에 록펠러는 한 치도 망설이지 않았다.
“네, 물론입니다.”
“어떻게 그리 확신할 수 있는 거지? 우리가 너희 인간들이 무서워 전쟁도 못 할 거 같나?”
드워프는 인간과 나름 우호적인 관계였다.
그런 우호적인 관계를 깨고, 그들의 성향과 맞지도 않은 약탈을 한다?
만약 그들이 오크였다면 또 모를 일.
하지만 드워프는 아니었다.
그들은 모든 종족 중에서 엘프 다음으로 고상함을 다투고 있었으니까.
물론 그 성격은 치졸하고 더러워도 확실한 명분 없이는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그건 아니지만 당신들이 그렇게까지 해서 득을 보진 않겠죠. 지난 세월 동안 드워프들은 인간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굳이 여길 건드려서 제국과의 관계를 망가뜨릴 이유가 있을까요? 이 땅이 금싸라기 땅도 아닌데.”
“맥주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우린 맥주에 아주 환장하거든.”
“돈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돈이 있는데 당신들이 굳이 그렇게까지 하겠습니까? 어차피 만사가 귀찮아서 필요한 물자도 근방에서 황금으로 사들이는 게 바로 당신들인데.”
“흥!”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저희가 쉽게 털릴 것 같지도 않네요.”
이어 록펠러가 진한 미소를 보였다.
“여기 영주님께선 돈이 아주 많으시거든요. 그래서 이쪽 방비가 아주 튼튼합니다. 추가적인 용병 부대 고용에 이번에 와이번까지 사들이셨죠. 거기다 마법명가 출신의 마법사까지. 괜히 여길 건드려 봤자 손해만 보는 건 그쪽일 겁니다. 오히려 당신들과 대치하고 있는 레드스킨들이 더 좋아하겠네요.”
그 말을 듣고 사절단 대표 오린은 또 다른 의문이 생겼다.
대체 여기 영주는 뭘 해서 그리 돈이 많을까?
제국에서도 소외받는 변방일 텐데.
“그러고 보니 여기 영주 놈은 와이번까지 데리고 있던데…….”
대체 그 돈은 어디서 났을까?
혹시?
“그리고 국경 근처에 요새도 크게 짓고 말이야. 대체 그런 돈들이 어디서 난 거지?”
이에 대한 록펠러의 대답은 아주 간단명료했다.
“전부 대출이죠.”
“대출? 그게 다 대출이었다고?”
“네, 이런 변방에 계신 영주님께서 무슨 재주가 있어 그런 돈을 가졌을까요?”
록펠러는 이 자리에 있는 드워프들이 혹시나 다른 의심을 품지 않도록 빠르게 말을 이었다.
“전부 다 저희 카터 방코에서 빌려준 돈입니다. 언젠간 갚아야 빚이죠.”
“허허…….”
그게 다 빚이었다니.
“여기 영주놈. 아주 미련한 놈이었군. 우리가 쳐들어가는 것도 아닐 텐데 굳이 그렇게까지 했어야했나?”
“당신들과 오크들이 영지 밖에서 너무 시끌벅적 싸우는 바람에 영주님께선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설사 드워프들이 말썽을 일으키지 않는다 할지라도 오크들은 또 모르죠. 애당초 약탈이 일상인 종족이니 경우에 따라선 여기까지 넘어와 문제를 일으켰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에 대한 대비책이었으니 저희 영주님 선택이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는 겁니다.”
“그거야…… 뭐.”
대화 도중 오린이 생각을 달리하게 됐다.
그들이 말하는 영주는 이 땅의 주인인 자였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일개 방코에서 돈을 빌려간 영주에게 문제가 생길 수 없었다.
“아니지. 내가 생각을 잘못했군. 미련한 건 영주가 아니라 바로 네놈이었어.”
오린이 짓궂게 웃어보였다.
“그렇게 많은 돈을 빌려주고 정상적으로 돌려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너희가 무슨 고블린방크도 아니고, 대체 무슨 재주로 영주에게 돈을 돌려받을 생각이냐?”
록펠러는 한쪽 검지로 제 뺨을 긁었다.
‘심심하면 듣는 소리군. 영주에게 빌려준 돈을 대체 어떻게 받아낼 거냐고.’
“다 생각이 있죠.”
록펠러가 이어 말했다.
“여러분들이 저희에게 어쩔 수 없이 바가지를 당했던 것처럼. 저희에게도 다 계획이 있는 겁니다.”
오린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그에게 무슨 계획이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자신들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걸 보면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으니까.
“흥, 운이 좋은 줄 알아라.”
오린은 제 품에서 소브린을 한 움큼 꺼내 그들 사이에 있던 탁자 위로 거칠게 내려놓았다.
“우리에게 이만한 황금이 없었다면 이번 거래는 아마 불가능했을 테니까!”
성깔 더러운 드워프들도 귀한 맥주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록펠러와 근처에 있던 피터 사제장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거래 감사합니다. 이 거래는 앞으로도, 이후 어떤 일이 있더라도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네요.”
금맥전쟁까지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으나, 그 숨은 의미를 오린이 알 리 없었다.
오린은 경멸의 시선으로 록펠러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더럽고 추잡스러운 인간 놈. 돈이 그리 좋더냐?”
모욕적인 언사에도 록펠러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아무쪼록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흥.”
오린은 갑작스레 그의 이름이 궁금해졌다.
상대는 아직 나이 어린 인간 소년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알아둬야 할 것 같았기에 그러했다.
“그래, 네놈의 이름이나 들어보자꾸나. 난 천둥산맥의 발 빠른 오린이다. 천둥을 뿜는 자를 따르고 있지.”
드워프에서 천둥을 뿜는 자라고 하면 골드킹, 그롬 스타크였다.
이명 그대로 번개를 뿜어내는 드워프 군주로, 모두에게 꽤나 위협적인 군주로 묘사되고 있었다.
“제 이름이요?”
제국 사회에서 나름 인정받는 가문을 세우려면 여타 다른 귀족 집안처럼 그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게 좋았다.
그게 설령 악명이라도.
“록펠러 로스메디치입니다.”
“로스메디치? 나도 여기저기를 돌아다녀봤지만 처음 들어보는 가문이군.”
드워프라 할지라도 제국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몇 가문에 대해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이 자리서 들은 로스메디치란 집안의 이름은 난생 처음 듣는 곳이었다.
“아직 가문은 아닙니다. 전 평민이니까요.”
“평민? 그게 뭔 상관이야?”
“저희에겐 나름 계급이란 게 있습니다. 평민은 귀족 아래죠. 그러니 가문을 가질 수 없습니다. 대신 집안의 이름은 가질 수 있습니다.”
“아, 그런 거였군. 어쩐지 하는 짓이 추잡스럽다고 했어.”
제국의 계급 제도야 드워프인 그에게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었다.
중요한 건 오늘 이 자리서 자신들에게 엿을 먹인 그의 이름이었다.
“그 이름, 네 집안의 이름까지 해서 분명히 기억해 두마.”
좋은 의미에서의 기억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집안의 이름이 알려진다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일이었다.
이 순간 록펠러는 그간 잊고 지내왔던 집안의 가훈을 다시 되새김질 할 수 있었다.
‘모두에게 존경받을 필요는 없다고 했지. 차라리 악마가 돼서 모두에게 두려운 존재가 되라 했어.’
“굳이 기억 안 하셔도 됩니다.”
이어지는 록펠러의 말은 나름 의미심장했다.
“언젠간 또 들으실 테니까.”
“그 재수 없는 이름을 또 듣는다고? 흥, 자다가 벌떡 일어나겠군.”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제 이름이나 저희 집안 이름을 들으실 일은 거의 없을 겁니다. 저희야 겁쟁이라 그런 곳은 혐오하거든요. 하지만 이런 쪽에선 저희 집안 이름을 꽤 많이 들으실 겁니다.”
왜냐면 그 길이 록펠러가 가고자 하는 길이었기에.
“저희는 이쪽으로 전문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