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47화 (47/181)

§47화 13. 매점매석 #3(4)

수수료 이야기가 나오자 사절단으로 찾아온 드워프들의 표정이 일제히 굳었다.

“여기서 환전을 하라고?”

같은 세력이 아닌, 타 세력 간의 거래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금화는 단연 두카트였다.

예전에 카터가 설명했던 것처럼 제국 달란트는 순수한 금 함량이 문제였고, 드워프의 경우 정치적인 문제, 그나마 그런 부분이 덜했던 고블린의 두카트가 가장 많이 쓰이고 있었으나 그런 두카트도 아닌 제국 달란트를 고집하는 록펠러의 말에 드워프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네, 환전을 하셔야 여기 맥주를 살 수 있습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금 함량도 의심스러운 제국 금화로 여기 맥주를 사라니.”

오린은 록펠러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상식이 박힌 사람이라면 제국 달란트보단 자신들의 소브린이 더 좋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니까.

“우리 소브린이 더 좋다는 걸 알기나 하고 하는 소리냐?”

“같은 설명을 또 하게 되네요. 소브린의 품질이 우수하다는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여긴 제국입니다. 제국에서 드워프 금화가 굴러다니진 않죠.”

제국이라서 제국 금화인 달란트만 통용된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사실 소브린이나 두카트도 제국 내에서 똑같이 환대받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제국민들도 구리가 섞인 자국 금화보단 순수한 금 함량이 더 높은 타 세력의 금화를 더 선호했기 때문이었다.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알고 있기론 제국에서도 우리 소브린을 더 선호하고 있지.”

오린이 말을 이었다.

“물론 여기서 쓰이는 화폐는 아니니 달란트로 재가공하는 비용이야 당연히 발생하겠지. 하지만 그런 부분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소브린의 금 함량이 월등히 높기 때문에 결국 너희들 입장에선 이득이라는 소리다. 이런데도 우리 소브린을 거부한다는 것이냐?”

록펠러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소브린의 금 함량이 높아서 무조건 좋다? 인정합니다. 제가 언제 인정을 안 했나요?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여기 맥주는 무조건 달란트로만 거래할 수 있습니다. 소브린의 가치가 더 좋아서 달란트로 교환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여기서 받지 않겠습니다.”

“뭔 소리를 자꾸 하나 했더니 배짱을 부리고 있었구나.”

그 말에 록펠러가 설핏 웃어 보였다.

“저한테 무슨 말을 하셔도 결국 달란트가 필요하실 겁니다. 어차피 저흰 달란트밖에 안 받으니까요.”

오린이 미간을 찌푸렸고, 같이 온 드워프들도 그 표정이 영 좋지가 않았다.

잠시 후 드워프들이 폭발했다.

“무슨 거래할 데가 여기밖에 없는 줄 알아! 세상천지에 널린 게 맥주야!”

“그래! 그냥 가자고! 이런 데서 쓸데없이 말싸움하지 말고!”

“어디서 배짱을 부려! 어린 인간 놈이 잘못 배워먹었군!”

“어서 일어나자고! 가서 딴 데나 알아보자고!”

하지만 그 누구 하나 자리에서 온전하게 일어나는 드워프가 없었다.

그들 손엔 마시다 만 맥주잔이 들려 있었고, 시선은 주변 동료들을 훑었으며 엉덩이는 의자에서 불과 몇십 센티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

“왜 아무도 안 일어나는 거야?”

“가자니까…….”

“그래, 가자구.”

“알아. 근데 왜…….”

그들에겐 맥주가 필요했고, 그 맥주는 이곳에 아주 많이 있었다.

굳이 이곳에서 맥주를 고집할 게 아니라 다른 곳에 가서 맥주를 수급해도 됐지만, 그러기엔 이곳의 위치가 너무 좋았다.

그들의 진영과 그리 멀지 않아 빠르게 맥주를 공급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왜들 그러시죠? 맘에 안 들면 그냥 가시면 되지.”

록펠러는 잘 알고 있었다.

드워프에게 맥주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필수재란 사실을.

‘왜 그래? 너희들도 돈 쓰러 왔잖아. 그럼 돈을 쓰셔야지.’

“가세요. 절대 안 말립니다.”

오히려 보채기까지 하는 록펠러의 말에 드워프 사절단은 잠시 벙어리가 됐다.

눈치가 보여 말은 못 했지만 이 자리를 쉽게 포기하기가 싫었던 것이다.

밖을 보라.

그 넓은 보리와 홉의 경작지.

그리고 적당한 규모의 양조장과 그것을 운영할 일꾼들.

이만한 시설이 주변에 또 있을까?

“크흠!”

“큼!”

연달아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 앉는 드워프들이 저들끼리 수군거렸다.

“주변에 이만한 시설이 없긴 해.”

“그렇지? 나도 딱 그 생각이었어.”

“다른 데서 구하기 쉽지 않을 거야. 여기 영주도 없었잖아? 그런데 다른 데라고 뭐 다르겠어?”

“그냥 몇 푼 더 주고 말자고. 까짓거.”

“정말 말도 안 되는 거 아니면 몇 푼 더 주고 말지 귀찮게 왜 옮겨. 그냥 여기서 해결해.”

애당초 그들의 목적은 자신들이 가져온 황금으로 목을 축이는 것이었다.

경우에 따라선 상대가 자신들에게 배짱을 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 오린이 고심 끝에 입을 열었다.

“그닥 내키진 않지만. 그렇게 달란트를 고집해야 한다면 환전이야 해주지. 그런데 수수료는 얼마나 받을 생각이냐?”

록펠러가 기다렸다는 듯이 화답해 주었다.

“교환 비율은 10 대 7입니다. 여기서 소브린이 10이고, 달란트가 7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소브린 10개가 있어야 달란트 7개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죠.”

더 들을 것도 없었다.

분개하는 오린이 주먹 쥔 손으로 제 앞의 탁자를 거칠게 내려쳤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우리 소브린이 더 좋은데 그 말도 안 되는 비율을 납득하라는 소리냐!”

오린만이 아니었다.

오린을 따라 제국 땅으로 찾아온 드워프 사절단들도 일제히 들고일어나며 그 고약한 성미를 고스란히 드러내주었다.

“소브린의 금 함량이 더 높다는 건 개나 소나 다 알고 있어! 그런데 환전을 그따위로 한다고? 어림도 없는 소리지!”

“저건 진짜 말도 안 되는 거야! 무슨 10 대 7이야!”

“차라리 우리 소브린이 7이 된다면 모를까! 10은 어림도 없지!”

“맞아! 저 거짓 나부랭이 인간들에겐 1 대 1도 아쉽다고!”

심기 불편해진 드워프들이 일제히 반발하자 같이 있던 피터 사제장이 살짝 긴장했다.

‘10 대 7은 너무 나간 거 같은데.’

그의 상식선에선 달란트와 소브린의 교환 비율은 1 대 1이 가장 현실적이었다.

제국 금화는 애당초 구리가 섞여 있어 통상적인 세공비까지 감안하더라도 1 대 1 정도가 가장 적당했으니까.

그런데 10 대 7이라고?

‘제국민도 소브린을 더 선호하는 마당에 1 대1 정도가 딱 괜찮을 것 같은데…….’

물론 자신만의 생각이었고, 굳이 꺼내어 말하진 않았다.

하지만 록펠러는 계속 배짱을 부릴 생각이었다.

애당초 그 생각으로 집요하게 매점매석을 했었고, 드워프들에게 다른 선택지 자체를 주지 않았으니까.

‘고로 바가지는 무조건 써야 한다 이 말이지.’

드워프들과의 관계?

‘어차피 오크와의 전쟁이 끝나게 되면 그다음 전쟁 상대는 바로 우리야. 그러니 굳이 잘 보일 필요도 없는 거지.’

결국 드워프와는 틀어질 관계였던 것이다.

그러니 잘 보일 필요도 없으니 아주 막 나가기로 했다.

‘물론 그때도 맥주는 팔 거야. 전쟁과는 별개로.’

“무조건 10 대 7입니다.”

오린이 분개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주 작정을 했구나.”

그러다 생각을 달리했는지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 좋다. 네 말대로 달란트가 필요하다면 여기 달란트로 거래를 해주마.”

누구에게나 그럴싸한 계획은 있는 법.

“달란트를 구할 수 있는 데가 여기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다 같은 달란트라면 다른 곳에서 가져와도 되는 거겠지?”

오호라, 그렇게 잔머리를 굴리시겠다?

하지만 록펠러에겐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물론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제국에서 맥주를 사시려면 당연히 제국 화폐인 달란트가 있어야 하니까요. 그게 저희 가게에서 환전해 준 달란트가 아니라도 굳이 상관은 없습니다. 달란트야 제국 어디든 다 널려 있지 않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드워프들의 얼굴에 일제히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럼 그렇지.

네놈이 잔머리를 굴려봤자지.

하지만 록펠러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람 말이란 건 본디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법.

“하지만 여기 맥주를 사시려면 좀 특별합니다. 여기선 제국 다른 선술집과는 다르게 무조건, 그 어떤 경우에서라도 저희 가게에서 발행한 이 차용증서가 필요하거든요.”

록펠러가 카터 방코의 이름으로 발행된 새로운 차용증서를 꺼내 보였다.

“이게 1 Drum입니다. 저희 가게에서 나온 차용증서만 해도 무려 세 가지나 되죠. 1 IOU, 1 Gold, 그리고 이곳의 맥주를 위한 새로운 차용증서, 1 Drum. 이 1 Drum을 구하시려면 우선 저희 가게에 소브린을 들고 오셔서 제국 달란트로 환전한 다음 그다음에 구하실 수 있습니다. 환전 비율은 앞서 고지했던 대로 10 대 7.”

차용증서란 말에 드워프들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뭐, 뭐라고?

여기 맥주를 사려면 달란트가 아니라 저 차용증서가 필요하다고?

그것도 특정 방코에서 발행한 전혀 새로운 차용증서가?

“이 1 Drum이란 차용증서, 아니, 이 종이화폐가 없다면 여기 맥주는 절대 사실 수 없습니다.”

“그럼 달란트는?”

“달란트를 가지고 다른 곳에 가셔서 맥주를 사시면 됩니다. 하지만 여기 맥주는 절대 못 삽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요.”

그제야 바가지를 당하지 않고선 이곳 맥주를 살 길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드워프 사절단이 일제히 허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주…… 작정을 했구나.”

맥이 빠진 오린의 말에 록펠러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에게 운을 뗐다.

“그거 아세요?”

모두의 이목이 록펠러에게 집중되었다.

“몇 달 전, 영지 근처에서 오크와 드워프 간에 전쟁이 일어났다고 했을 때 저는 직감했습니다. 이곳과 근처 영지에 있는 모든 맥주를 독점하면 아마 떼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왜냐? 드워프라 하면 맥주, 맥주가 없는 드워프는 드워프가 아니죠.”

갑자기 저런 말은 왜 꺼내는 걸까?

자리에 앉은 드워프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어리둥절했을 때 록펠러가 남은 말을 이어주었다.

“제가 생각하던 때가 찾아왔으니 저와 교회는 떼돈을 벌어야 하고, 여기 계신 당신들은 무조건 바가지를 써야겠죠.”

록펠러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이게 싫으시면 자리에서 일어나 그냥 가시면 됩니다. 저희야 말리지 않으니까요.”

대단한 배짱이었다.

저리 말할 정도로 판을 다 깔아놨다니.

“맥주야 다른 데서 구하면 되지!”

“제가 장담하건대 그렇게 쉽게 맥주를 구할 순 없을 겁니다. 맥주를 만드는 재료들까지 깡그리 저희가 매점매석 해놨으니까요. 결국 당신들에게 또 다른 선택지는 없다는 소리죠.”

록펠러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 제가 한 말이 정 의심스럽다면 다른 곳에 가셔서 맥주를 찾아보시면 됩니다.”

“허…….”

“다른 곳에서 구하실 수 있다면 거기서 맥주를 사시면 되고, 다른 선택지가 없다면 저희 맥주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물론 가격은 싸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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