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45화 (45/181)

§45화 13. 매점매석 #3(2)

맥주 이야기가 나오자 드워프 사절단은 곧장 영주의 안내를 받아 교회로 향했다.

맥주가 없는 축하 자리엔 미련조차 남기지 않고 떠나간 것이다.

몬테펠트로 영지에 위치한 교회는 단 한 곳.

한 명의 사제장이 여러 사제들을 이끌고 신의 가르침을 전하는 곳으로, 해당 교구는 몇 달 전부터 맥주를 대량생산하기 위한 모든 준비를 끝마쳐놓은 상태였다.

“규모가 엄청나군.”

“여기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교구 전역에 퍼져 있는 보리와 홉의 경작지.

도착한 교회 옆에는 적당한 규모의 양조장이 건설되어 한 달 전부터 사제들이 맥주를 생산하고 있었다.

교회에 도착하자 드워프 사절단은 마치 금은보화라도 찾은 것처럼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럴 수가! 여긴 숨어 있는 보물단지였잖아!”

“이런 걸 잘도 숨겨놓고 있었군!”

“이 정도 규모면 당분간 맥주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겠어.”

“아주 좋아!”

사절단을 이끄는 대표 오린이 나서며 목청을 높였다.

“당장 여기 있는 맥주를 사겠네! 우리의 소브린으로!”

아쉽게도 이곳에서 경작되고 있는 보리와 홉, 그리고 양조장에서 나오는 맥주까지 전부 영주와 전혀 관계가 없는 것들이었다.

‘여기 있는 게 전부 내 거였으면 좋겠군.’

“그게…… 아쉽지만 여긴 제 관할이 아닙니다.”

그 말에 드워프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들을 지어 보였다.

“아니, 영주인 당신이 여기 주인이 아니라면 대체 누가 주인이라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우리에게 맥주를 팔기 싫어서 그러는 건 아니겠지!”

“분명히 개수작이야! 당장 여기 있는 맥주를 내놔!”

당장에라도 폭동을 일으킬 것처럼 흥분한 드워프들을 향해 영주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제가 여기 영주이긴 하지만, 이 땅은 제가 아닌 교회의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서 나는 모든 것들도 당연히 교회의 것이겠죠.”

“뭐?”

“여기 있는 게 당신 것이 아니라고?”

“거참 기가 막히는군. 자기 것이 아니래.”

“인간들은 원래 그런 거야?”

“모르겠어. 인간들 이야기야 우리가 어떻게 알겠어?”

“흥, 우리에게 맥주를 내주기 싫어 개수작을 부리는 거라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우린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영주는 식은땀까지 흘리며 흥분한 드워프들을 달래기 바빴다.

“그건 오해입니다. 여기 일은 정말 저와는 무관한 곳입니다. 인간의 교회는 원래 그렇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여기 교회에서 드워프들에게 맥주를 팔지 않으면 과연 어떻게 될까?

‘그런 일이 생기면 천둥산맥 드워프들이 여기 있는 맥주 때문에 이 영지로 쳐들어올 수가 있어. 저 정도로 맥주에 환장한 땅딸보 모지리들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거야.’

“일단 교회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눠 보시죠. 제가 자리를 바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허겁지겁 교회 안으로 찾아간 영주가 자리를 주선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몇 분 뒤 성질 급한 드워프들은 영주의 안내를 받아 해당 교구의 책임자인 피터 사제장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피터 사제장과 드워프들이 함께 있는 자리엔 영주는 참석하지 못했는데, 이것은 사제장의 뜻이었다.

교회 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사제장의 뜻이었던 것.

그러니 교회 밖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영주의 표정이 영 좋지 못했다.

‘대체 안에서 뭔 얘기를 나누려고 나까지 쫓아낸 거야? 그냥 교회 일이니 영주인 나는 간섭하지 말라는 건가?’

영주는 드워프 사절단을 기다리며 교구에서 넓게 경작되고 있는 보리와 홉의 경작지를 흘겨보았다.

규모가 아주 대단했다.

마치 이날을 기다렸던 것처럼 말이다.

‘설마 오늘 일을 다 예상하고 저렇게 사업을 벌인 건 아니겠지? 아니야. 그건 아니겠지. 그냥 어쩌다 운이 좋아 아다리가 잘 맞은 거겠지.’

교회의 넓은 경작지를 쭉 훑어보고 있던 영주의 시선에 낯익은 평민 하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 멀리 당나귀를 타고 나타난 소년은 영주가 이따금 만나며 얼굴을 붉히는 자였다.

‘로스메디치.’

록펠러의 이름보다 집안의 이름부터 떠올린 영주가 당나귀를 탄 록펠러를 보고선 표정을 더욱 구겼다.

‘저놈이 여기까진 무슨 일이지? 설마 나한테 이자를 받으려고 여기까지 찾아온 건 아니겠지?’

카터 방코엔 이미 큰 빚을 지고 있었고, 매달 갚아가는 이자는 알게 모르게 거슬릴 정도였다.

‘아니지. 이번 달 이자는 갚았잖아?’

이내 꿇릴 게 없다고 생각한 영주가 자리를 피하기보단 오히려 자리를 지켜 록펠러가 무슨 이유로 여기까지 왔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잠시 후, 당나귀를 탄 록펠러가 교회 앞에 있던 영주를 보고선 곧장 당나귀에서 내려 멀리 있던 영주에게 깍듯이 예를 보였다.

이를 본 영주가 손짓으로 부르자 록펠러는 당나귀를 이끌고 영주 앞에 가 섰다.

“록펠러 로스메디치, 지나던 길에 영주님을 뵙습니다.”

록펠러가 고개를 수그리고 예를 보이자 영주는 대뜸 찾아온 이유에 대해 물어보았다.

“자네가 여기까진 무슨 일이지? 교회에 무슨 볼일이라도 있나?”

사실 교회와 함께 벌이는 사업은 록펠러가 사제장에게 부탁하여 영주에겐 지금까지 비밀로 하고 있었다.

교회도 나름 힘이 있으니 록펠러의 부탁을 못 들어줄 이유가 없었고, 그런 이유로 영주는 아직까지도 교회와 로스메디치 집안의 관계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말해보게. 나한테 볼일이 있어 찾아온 건 아닐 테고.”

“네, 영주님께 볼일이 있어 찾아온 건 아니었습니다.”

록펠러가 말을 이었다.

“교회와 할 얘기가 있어 찾아오게 됐습니다.”

“교회에?”

방코는 교회에서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존재였다.

그러니 영주 입장에선 당연히 의문일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일개 방코 조수가 교회에 무슨 볼일이 있다는 겐가?”

그 물음에 록펠러는 다시 정중하게 고개를 수그렸다.

“본디 신에게 밉보인 자들이 교회에 더 충성하고 성의를 보여야 하는 법이죠. 카터 아저씨라면 몰라도 저는 교회를 멀리하지 않습니다.”

그 말에 영주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런다고 이자놀이를 하는 자네 같은 자들이 지옥을 피해갈 수 있다고 보는가?”

그 물음에 록펠러는 표정 변화도 없이 조용히 받아쳐 주었다.

“그래서 더 노력하는 것도 있습니다. 자비로운 신이 아니겠습니까?”

“흥.”

영주 입장에선 록펠러의 대답은 너무 가소로울 지경이었다.

성금을 낸다고 해서 과연 교회에서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저들을 위해 기도라도 해줄까?

‘물론 성금을 아주 많이 낸다면 또 모르겠지. 하지만 진짜 많이 내야 할 거야. 진짜 엄청나게.’

“그럼 성금과 관련된 일로 찾아온 겐가? 그럼 시기가 안 좋군. 다시 돌아가야겠어.”

영주는 근처에 자리한 시어들을 훑어보고 말을 이었다.

“안에서 지금 중요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어서 말이야. 성금 때문에 찾아왔어도 지금은 시기가 아니니 다음에 다시 찾아오는 게 좋겠군.”

그 말에 록펠러는 다시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

“사실 안에 있는 일 때문에 급히 찾아왔습니다.”

“안에 있는 일 때문에 찾아왔다고?”

영주가 자연스레 미간을 찌푸렸다.

여기엔 강한 의문과 의심이 담겨 있었다.

“뭐 때문인데?”

“몇 달 전, 피터 사제장님께서 교회에서 벌이는 사업 때문에 급히 자금이 필요해져 저한테 많은 돈을 빌려 가셨는데, 오늘 그 일의 성과가 나오려는 것 같아 절 급히 부르셨습니다.”

“뭐? 자네가 여기다 돈을 빌려줬다고?”

“네.”

“자네가 무슨 돈이 있어서?”

장례식을 치를 돈이 없어 그에게 돈을 빌려준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이젠 교회에 돈을 빌려줄 정도가 됐단다.

그러니 영주 입장에선 당연히 의문일 수밖에 없었다.

“방코에서 일하면서 그렇게 많이 벌었다고?”

“네, 방코에서 하는 일이 다 그렇죠.”

“신기하군. 아무리 방코에서 조수로 일했다지만 벌써 그 정도 능력이 될 줄은 몰랐네.”

“매달 영주님께 받는 이자만 해도 저희 방코 사정은 정말 좋아졌습니다.”

그 말에 영주가 표정을 구겼다.

“흥, 하긴 나한테 뜯어가는 돈이 얼만데. 그래도 좀 의외로군.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어린 소년 가장이었는데, 운이 트였어. 방코에 취직하고 나서 운수가 아주 대통했군.”

“감사합니다. 하지만 항상 검소하게 생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당나귀를 타고 다니는 것도 그런 의미고요.”

뭔가 탐탁지 않아 하던 영주가 아까 물어보려던 것을 다시 물어보았다.

“그럼 이 교회에 자네가 돈을 빌려줬다는 소린가?”

“네, 그렇습니다. 가진 돈, 없는 돈, 그리고 제가 방코 자체적으로 빌린 돈까지 합해서 전부 이 교회에 빌려주었습니다.”

영주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참 이상하군. 교회에서 방코 업자에게 돈을 빌렸다고? 다른 곳도 아닌 교회에서?”

“네, 물론 이자 없이 빌려드렸습니다.”

“이자 없이?”

“네, 감히 교회를 상대로 이자를 부칠 수 없어, 성금 형식으로 잠시 빌려드렸습니다.”

그 말에 영주는 매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니, 교회엔 이자를 안 부치고, 왜 나한테는 이자를 받아가는 겐가?”

그런 영주의 불만에 록펠러는 정중히 답해주었다.

“신을 상대로 이자놀이를 하는 것은 정말 큰 죄악입니다. 하지만 황제 폐하도 갚는 것이 바로 이자입니다. 그런 의미이니 영주님께선 너무 섭섭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영주의 표정이야 당연히 좋을 리가 없었다.

교회를 상대로는 무일푼으로 빌려주고, 자신을 상대로는 그렇게 지독하게 이자를 뜯어가다니.

‘저런 상것들은 애당초 상종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지만 어쩌겠는가?

방코에서 돈을 빌리지 않았다면 영지 자체가 무방비 상태가 되어 드워프나 오크들의 침략을 허락해 줬을지도 모를 일.

‘그놈의 돈만 아니었어도.’

방코가 있었기에 어쩌면 이 영지가 안전하게 지켜질 수 있었고, 영주 또한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어찌 됐건 불편한 감정을 숨기는 영주가 록펠러에게 길을 터주었다.

“가 보게. 하지만 안의 일을 방해해서는 안 돼. 만약 저기서 일이 잘못된다면 자네에게도 불똥이 튈 걸세.”

물론 영주인 그도 마찬가지였다.

어찌 됐건 영주가 길을 터주자 록펠러는 당나귀의 고삐를 잡고 영주에게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예를 보였다.

그러곤 곧장 교회 안으로 향했다.

떠나간 록펠러를 쳐다보던 영주가 여전히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그의 옆으로 오버시어인 시론 마크가 다가서며 말을 붙였다.

“그러고 보니 저 집안 아이들이 교회 일을 도와주는 걸 봤었습니다.”

“로스메디치 집안에서 교회 일을 도와주는 걸 봤었다고?”

“네.”

“그런데 왜 나한테 보고를 하지 않았나?”

그 물음에 오버시어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저도 저런 관계인 줄은 몰랐습니다. 그냥 로스메디치 집안의 두 어린 형제가 당나귀 수레를 끌고 다니며 교회 일을 도와주고 있기에 왜 도와주냐고 물어봤더니. 그냥 교회 일을 도와주는 거라고 해서 별 의심 없이 넘어갔습니다.”

오버시어가 다시 말을 잇기 시작했다.

“제 발로 나서서 교회의 일을 도와주는 게 이상한 건 아니잖습니까? 교회에서 이따금 원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오버시어의 변명을 듣고 보니 영주도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영주인 자신 또한 아무런 대가 없이 교회의 일을 여러 번 도와줬던 것이다.

교회에 잘 보이거나 죽어서 천국에 가려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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