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13. 매점매석 #3(1)
교회의 주도하에 시작된 맥주와 관련된 모든 것들의 매점매석은 장장 몇 개월간에 걸쳐 계속 진행되었다.
이로 인해 몬테펠트로 영지나 근처 영지를 포함한 모든 곳에서 맥주가 귀해지는 품귀현상이 생겨났고, 영지민들은 그들의 애환을 달래줄 맥주를 마실 수 없게 되자 맥주의 대용품이라 할 수 있는 포도주를 마시기도 했으나, 맥주에 대한 그들의 수요를 완전히 잠재우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 일은 교회가 주도하는 일이었기에 그 누구도 감히 교회를 향해 불평불만을 드러낼 수가 없었고, 이는 영지의 주인인 영주마저 마찬가지가 됐다.
‘아예 씨를 말려 버릴 정도로 맥주를 독점해 버렸어.’
영지와 인접한 곳에서 발발한 토템 전쟁이라는 불리는 두 세력 간의 전면전으로 인해.
거대한 와이번까지 사들였던 영주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와이번을 어루만지며 최근 들어 부쩍 말이 많아진 맥주의 매점매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매점매석을 해서 장사를 할 생각이었다면 정말 지독하게 들어왔군. 뭐라 할 사람도 없으니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고 있어.’
그의 표정이 어두웠다.
‘교회에서 주도하는 것만 아니었어도.’
맥주가 희귀해진 일로 인해 생겨난 불평불만은 엉뚱하게도 교회가 아닌 그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영주인 그가 맥주를 독점하려는 교회를 잘 설득하지 못해서 생겨난 일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감히 교회의 뜻에 반하지 못하는 분위기 때문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마땅히 비난할 곳이 없다 보니 괜히 그에게 불똥이 튄 것일 수도 있었다.
‘아니, 교회가 한 일을 왜 내가 비난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어. 영주라는 게 이리 귀찮아서야.’
그래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맥주를 독점한 교회에서 그 맥주를 다시 풀기 시작하면 모두의 불만이 금방 사그라질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건 그 시기였다.
‘그보다 독점한 맥주는 대체 언제부터 풀 생각이지? 이 정도면 슬슬 때가 된 거 같은데.’
한데 이놈의 교회에서 도무지 맥주를 풀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마치 특정한 때를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
‘어차피 나랑 관계도 없는 일인데. 팔 거면 빨리 팔아버리지.’
맥주의 매점매석으로 인해 폭리를 취하게 될 교회의 일이야 그에겐 완전 남의 일이었다.
‘거기다 세금을 매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한숨만 쉬던 영주는 노을이 진 하늘을 향해 와이번을 타고 날아올라 지난 몇 달간에 걸쳐 지어지고 있는 요새 쪽을 쭉 둘러보았다.
국경 근처에서 지어지고 있는 거대한 방어 시설은 적과의 공성전에서 나름 버텨줄 정도로 아주 견고하게 건설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대략 1천 병력에 이르는 용병 부대가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그들은 유사시 자신을 도와 영지를 지켜낼 이들로, 방코에서 빌린 돈이 아니었다면 감히 엄두도 못 낼 전력이었다.
‘요새 쪽은 거의 마무리되어가는 모양이야. 확실히 돈이 좋아. 저 정도 대규모 공사가 이렇게 빠른 시일 안에 끝날 줄이야.’
만약 영지 세금으로만 지으려 했다면 족히 수년은 걸렸을 공사였다.
‘다 좋은데.’
거의 완공되어가는 요새 위 하늘을 와이번을 타고 날아다니던 영주가 표정을 어둡게 했다.
‘이자가 생각보다 세.’
당장 영지에 문제가 없다면 방코에 낼 이자는 감당 못 할 수준은 아니었으나, 풍작이나 전쟁과 같은 여러 일로 인해 영지에서도 매년 걷히는 세금이 다르니, 영지 자체적으로 큰 문제가 생긴다면 방코에 낼 이자도 자연스레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별일이야 있겠어. 그리고 있더라도.’
무언가를 각오하는 표정의 영주가 와이번의 머리를 돌려 영주성 쪽으로 향했다.
‘내가 여기 주인인데. 그까짓 방코 업자가 뭘 어쩌겠어. 내가 힘들다고 하면 알아서 기어야지.’
그런 생각과 함께.
그렇게 또 시간이 흐르고, 몬테펠트로 영지를 포함한 주변 지역에서 맥주란 것이 거의 씨가 말랐을 무렵.
록펠러가 예견했던 것처럼 드워프들로 이뤄진 사절단이 몬테펠트로 영지로 찾아오게 됐다.
그들이 찾아온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레드스킨과의 전쟁이 생각보다 길어지자 부족해진 물자를 충당하기 위해 자신들의 금화인 소브린을 들고 인접한 제국 땅으로 찾아온 것이다.
찾아온 드워프 사절단.
그들은 천둥산맥의 드워프들로, 천둥을 뿜는 자라는 무지막지한 이명을 가진 ‘그롬 스타크’의 부하들이었다.
드워프 사절단은 총 10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소문대로 그들은 난쟁이 같은 체구에 턱수염을 기른, 남들이 다 아는 그런 드워프였다.
다만 특징이라면 천둥산맥 출신답게 머리카락과 수염이 산발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몬테펠트로 영지에 위치한 영주의 장원으로 찾아온 드워프들은 곧장 영주와의 접견을 요청했고, 드워프와 레드스킨과의 전쟁으로 혹여 불똥이 튈까 노심초사하던 영주는 드워프들의 접견 요청을 감히 거절할 수가 없어 그들이 환대해 주었다.
영주성에서 가장 큰 공간인 접견실에서 영주는 찾아온 드워프 사절단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 유명한 천둥산맥의 주인들이군요! 어서 오십쇼. 영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는 제국 황제가 아니었기에 권좌에 앉아 건방지게 드워프 사절단을 맞이하지 않았고, 그럴 배짱도 없었다.
제국 황제가 몬테펠트로의 사정을 외면한 지금.
그들에게 밉보였다간 살아날 수 없다는 걸 알았기에 더욱더 자기 자신을 수그린 것도 있었다.
찾아온 드워프 사절단도 이곳 영지와 좋은 관계를 원했기에 영주에게 예를 보였고, 그렇게 그들은 영주가 마련한 축하 자리까지 앉게 되었다.
“부족한 건 없으니 맘껏 드십시오.”
영지 사정이 아주 좋은 모양이었다.
가득 차려진 음식들로 인해 식탁이 부러질 지경이었으니까.
사절단의 대표로 온 오린이 영주가 차려준 음식들을 보고 생각했다.
‘변방에 있는 인간의 영지치곤 사정이 나쁘지 않은 것 같군. 보통 이런 지역은 소외받기 십상인데.’
당장 적의를 가지고 다투는 세력은 아니었으나, 국경 근처에서 지어지고 있는 거대한 요새만 보더라도 이쪽 재정 상태가 나쁘지 않다는 건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어디서 돈이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거야 우리가 알 필요는 없고. 그건 그렇고…….’
축하 자리가 시작되고 차려진 음식들로 배를 채우던 드워프들의 표정이 서서히 굳기 시작했다.
이를 이상히 여긴 영주 체스터가 의문스레 입을 열었다.
“어째, 입맛에 안 맞는 겁니까? 다들 표정이…….”
그 물음에 내키지도 않는 포도주로 목을 적시던 임리라는 드워프가 보란 듯이 잔에 있던 포도주를 바닥에 뿌려 버렸다.
영주와 함께하던 이들이 보기엔 아주 무례한 행동이었으나, 오히려 이 자리가 무례하다고 생각한 것은 드워프 사절단 쪽이었다.
“우리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사절단의 대표로 온 오린이 말을 이었다.
“우린 포도주를 좋아하지 않네. 정확히는 친숙하지 않다고 해야 하나?”
그 눈빛엔 노골적으로 무언가를 원하는 시선이 담겨 있었다.
“그럼 우리에게 친숙한 게 나와야 할 텐데. 인간들이 그걸 안 마실 리도 없고. 아니면 알면서도 우릴 엿 먹이려고 이런 건지도 모르겠군.”
오린의 표정만큼이나 똥 씹은 표정을 짓는 드워프들이 식탁 위를 둘러보며 손에 든 수저와 포크로 식탁 위를 거칠게 두들기기 시작했다.
“목이 타는군!”
“갈증에 미쳐 버릴 지경이야!”
이를 본 영주가 이마의 땀을 훔치며 입을 열었다.
“혹시 맥주를 찾으시는 거라면…….”
“그래 맥주!”
“맥주를 가져와!”
“우린 맥주가 있어야 돼!”
다소 거칠게 말하는 드워프들에게 영주가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게…….”
사절단 대표 오린이 다소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대 이름이 체스터라고 했나? 우리 드워프 사절단이 여기까지 온 것은 우리가 가진 황금으로 그대들의 물건을 사고자 함이네. 그대들의 입과 우리들의 입이 크게 다르지 않아 여러 물건을 사 가겠지만, 특히나 맥주가 중요하네. 맥주로 이 목을 축일 수 없다면.”
오린의 표정이 정말 사늘하게 굳었다.
“우리 드워프들은 금세 폭동을 일으킬 거야. 밥은 굶고 살아도 맥주 없이는 단 하루도 못 사니까!”
그 말에 같이 온 드워프들이 일제히 괴성을 부르짖으며 식탁 위를 마구잡이로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식탁 위에 있던 몇몇 음식들이 바닥에 떨어졌으나, 드워프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목청만 높였다.
“목이 타들어 간다고!”
“벌써 일주일째 못 마셨어! 이러다 미쳐 버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
“맥주는 인간들도 마신다면서? 그게 다 거짓말이었어?”
“여기에 맥주가 없을 리 없잖아. 전부 그 기대를 하고 왔는데 말이야.”
시끄러운 드워프들을 뒤로 하고 대표로 온 오린이 곤란해하던 영주를 향해 다시 말했다.
“맥주가 없다면 우리와 나눌 얘기도 없네. 차라리 다른 곳에 가서.”
오린은 제품에 있던 금화들을 한 움큼 쥐어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이 소브린을 두고 흥정을 해야겠군. 거긴 우리가 바라는 맥주가 있을 테니까.”
최근 들어 돈의 중요성에 대해 알게 된 영주가 드워프들이 가져온 금화를 보고 두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저 소브린만 있으면…….’
돈은 곧 힘이자 권력이었으며.
영지를 끌어가는 모든 것 그 자체였다.
‘폐하도 상관없어. 저들이 가져온 금화만 있다면 말이지.’
“크흠!”
우선 헛기침부터 한 영주가 흥분한 드워프들을 향해 말을 잇기 시작했다.
“지금 저희에게 맥주는 없지만, 그 맥주가 있는 곳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 맥주가 어딨는데!”
“맥주가 있다고?”
“있다고 하나 봐.”
“역시 인간들이야. 우리랑 취향이 거의 비슷하다니까?”
말을 꺼내던 영주가 문득 교회에서 독점하게 된 맥주에 대해 떠올리게 됐다.
‘설마…….’
여기까지 내다보고 맥주를 독점하게 됐을까?
영주는 아니라고 봤다.
근처 영지에 위치한 수도원에서 와이너리 사업을 독점하고 있으니 자구책으로 맥주를 독점하게 된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드워프들이 찾아와 맥주만 부르짖는 것은 순전히 우연.
‘그냥 우연이겠지.’
물론 일말의 가능성까지 부정하진 못 했으나.
어찌 됐건 맥주는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게…… 맥주는 교회에서 독점하고 있습니다. 만약 원하신다면 제가 교회 책임자와 따로 자리를 마련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
“교회에서 맥주를 독점하고 있다는데?”
“교회가 뭐야?”
“인간의 종교지.”
“그래? 거기서 맥주를 독점하고 있다고?”
맥주 이야기로 흥분한 드워프 사절단은 놀랍게도 식탁에 차려진 음식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전부 다 자리에서 일어나 섰다.
그만큼 맥주라는 것에 목이 말라 있던 것이다.
“당장 그 교회로 안내해 주게!”
사절단 대표 오린은 보란 듯이 품에서 또 다른 금화들을 꺼내 쥐었다.
“우리의 황금으로 거기 있는 맥주를 모조리 사 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