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43화 (43/181)

§43화 12. 매점매석 #2(4)

록펠러가 옅은 미소를 보이자 사제장도 자연스레 따라 웃었고, 둘은 그렇게 좋은 표정으로 잠시간 마주 보았다.

사제장이 말했다.

“한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네. 그 일을 굳이 우리와 하려는 이유가 있나? 그냥 매점매석이라면 굳이 우리와 하지 않아도 같이 할 사람이야 많을 텐데? 이쪽 영주랑 해도 괜찮고, 아니면 다른 사람들하고 했어도 됐을 텐데.”

영지에서 부과되는 세금 문제를 합법적으로 피할 수 있었고, 동생 레오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었으나 이에 대한 답은 사실상 따로 정해져 있었다.

‘나도 좀 솔직해지고 싶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보단 이게 낫겠지.’

“요한 님과 교회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제 마음이자 배려입니다. 이 좋은 일을 아무나 같이 할 순 없죠. 혼자 하는 것보단 교회나 저희 집안이나 양쪽 다 좋은 일이 된다면 같이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괜찮은 답변이었는지 사제장은 아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훌륭하군. 자네도 커서 자네 조부님처럼 아주 훌륭한 사람이 되겠어.”

“말씀 감사합니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히 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

바로 일에 대한 수익 분배.

이 부분은 록펠러가 꺼낼 것도 없이 사제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건 그렇고. 그 일로 인한 수익은 어떻게 나눌 생각인가? 자네도 방코에서 일하던 조수니 마냥 우리만 좋으라고 교회에 전부 다 기부하진 않을 테고.”

록펠러는 기다렸다는 듯이 답변해 주었다.

“초기자금을 제외한 수익은 전부 반반씩 나눠 가졌으면 합니다.”

교회 입장에선 손해 볼 게 전혀 없는 장사였다.

초기에 들어가는 돈도 없었고, 그저 같이 하는 것만으로 이익금의 절반이나 가져가는 것이었으니까.

사제장은 만족스러운 미소로 화답해 주었다.

“요한 님께선 빵 한 조각도 칼같이 나눠 가지라고 하셨지. 잘 알겠네. 그 일에 대한 수익은 서로 반반씩 나눠 갖는 게 좋겠군. 그게 공평할 테니까.”

“더 챙겨드리고 싶은 게 제 마음이지만.”

록펠러의 미소가 짙어졌다.

“이곳과 저희 집안의 관계는 여기서 끝나지 않을 거라 믿습니다. 부디 이번 일을 계기로 더 좋은 관계가 되길 소원하겠습니다.”

사제장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주억이기 시작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네. 오늘 제안한 일보다 더 좋은 일이 있다면 언제든 와서 나와 만나주게나. 교회의 문은 항상 그대를 위해 열려 있다네.”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후 사제장과 사업적인 일로 여러 대화를 나눈 록펠러는 예배당에서 침울한 표정으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레오에게 돌아올 수 있었다.

“록펠러 형…….”

록펠러를 부르는 목소리에 힘아리가 없었다.

아마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던 모양.

록펠러를 다시 예배당으로 안내한 루시안 사제 역시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둘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듣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록펠러의 말을 듣고선 둘 다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얘기는 잘 끝났어. 레오는 앞으로 여기서 다른 사제들과 같이 생활하면 돼.”

그 말에 깜짝 놀란 레오가 록펠러를 뚫어지게 쳐다보았고, 루시안 사제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사제장님께서 갑자기 생각을 바꾸신 겁니까?”

“네, 서로 얘기는 잘 끝났습니다. 사제장님께선 레오를 새로운 사제로 받아들이는 데 문제없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루시안이 알고 있는 사제장은 그리 쉽게 제 뜻을 굽히고 바꿀 사람이 아니었다.

나름 고지식한 사람이었으니까.

“글쎄요. 제가 사업적으로 좋은 제안을 드렸더니 그에 대한 보답으로 제 동생을 좀 더 신경 써 주신 거겠죠. 전 그렇게 봤습니다.”

“어떤 제안이셨습니까?”

“자세한 이야기는 사제장님과 나눠보시면 될 듯싶습니다. 간단하게 장사 같은 겁니다.”

“장사요? 장사라……. 네, 이건 제가 따로 피터 사제장님께 물어보겠습니다.”

이어 사람 좋은 표정으로 루시안 사제와 마주 본 록펠러가 말을 이었다.

“파더 루시안 님. 레오에게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제 동생을 잘 부탁드립니다.”

루시안 사제에 대한 이야기는 저녁 식사 때마다 레오로부터 들어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록펠러의 말에 루시안 사제가 두 눈을 껌뻑이더니 이내 교인답게 고개를 살짝 수그렸다.

“네, 레오가 훌륭한 교인이 될 수 있도록 제가 옆에서 잘 지도해 보겠습니다.”

“혹시나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카터 방코에 찾아오시면 됩니다. 그곳엔 항상 제가 있으니까요.”

“참고하겠습니다.”

* * *

시장에서 맥주의 원료인 보리와 홉을 거의 싹쓸이한 앤드류와 조슈아는 더 많은 보리와 홉을 구하기 위해 보리 소작농들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저기 아저씨, 혹시 여기에 보리나 홉 좀 있어요? 저희가 사려고 하거든요.”

“아침엔 교인들이 왔다 가더니 이젠 너희들이냐?”

“아, 교회 아저씨들이 벌써 왔다 갔어요?”

“그래, 이미 다 쓸어갔단다. 몽땅 사 갔어.”

“아 그래요? 야, 조슈아. 여기 이미 털렸대.”

“그래? 앤드류 형, 그럼 우리 다른 데 가 보자. 사제 아저씨들이 전부 털어가진 않았을 거야.”

“응, 그래.”

난데없이 찾아와 말을 붙인 두 아이가 저들끼리 쑥덕이며 떠나가자 소작농은 살짝 구긴 표정으로 떠나가는 두 형제를 쳐다보았다.

‘아니, 그놈의 보리는 왜 찾는 거야? 무슨 맥주라도 만들려고?’

이런 시국에 맥주라고?

고개가 절로 갸우뚱해졌다.

차라리 식재료를 사재기했다면 그나마 이해했을 것이다.

영지 근처에서 일어난 큰 전쟁으로 유사시 피난을 가게 된다면 미리 구입해 둔 식량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될 테니까.

‘보리도 뭐 먹을 순 있긴 한데.’

그런 의미에서 저렇게 보리를 사가는 걸까?

그렇다면 홉은 왜?

‘저렇게 사가는 걸 보니 분명 맥주 쪽이 맞을 텐데…… 이유를 모르겠단 말이지.’

당장 앞만 보고 살아가는 영지의 소작농이 두 형제와 교인들의 뜻을 알 리가 없었다.

그렇게 영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보리와 홉을 재배하는 소작농들을 찾아간 앤드류와 조슈아는 날이 저물 때까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물량을 전부 사들인 뒤 교회에서 따로 관리하고 있던 창고에 전부 쌓아두었다.

여기에 들어가는 자금은 전부 록펠러가 마련해 주었고, 맥주와 그 원료들은 교회의 사제들이나 록펠러의 두 동생이 전적으로 맡아 마구잡이로 사들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몬테펠트로 영지 안에서 맥주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씨가 마를 정도가 되었다.

있기만 하면 교인들이나 로스메디치 집안의 아이들이 찾아와 무조건 사 가니 씨를 마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며칠 후.

사정 이야기를 듣게 된 영주가 뒤늦게 나서서 부랴부랴 맥주를 매점매석하는 교회를 찾아가 그 이유에 대해 물어보았지만, 신의 뜻이라 일축하는 사제들에게 그 어떤 대답도 들을 수가 없었다.

“아니, 맥주는 왜?”

사제장과 만난 뒤 자신의 장원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영주 체스터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고, 그런 영주 옆에서 보좌하던 오버시어 시론 마크 역시 영주와 그 표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저리해서 뭐 남는 게 있나?”

“글쎄요. 이유야 잘 모르겠지만 요 며칠 사이 맥주가 귀해진 건 사실입니다. 일 끝나고 선술집에서 맥주 한잔 들이켜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는데, 그 재미가 아예 사라질 정도로 정말 씨가 말랐다고 하더군요. 저도 교회에서 맥주를 저렇게나 사들일 줄은 몰랐습니다. 오죽했으면 재료까지 싹 쓸어갈 줄이야.”

“설마 옆 영지까지 가서 또 저러진 않겠지?”

“작정한다면야 뭐. 하지만 그럴 이유가 있겠습니까?”

“만약 있다면 그렇게 하겠지. 우리야 이유를 짐작조차 못 하니 이렇게 방관만 하는 거고.”

누군가 특정 상품을 독점하는 건 영주 입장에서 좋은 일이 아니었다.

영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영지의 안정.

그 안정을 해치는 일이었기에 당연히 거부반응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데, 문제는 해당 일을 주도하고 있는 세력이 영주 본인도 손을 쓰기 어려운 교회라는 점이었다.

“계속 물어도 그 능구렁이 같은 사제장이 도통 얘길 안 해줘. 대체 무슨 꿍꿍이로.”

영주를 따라 걷던 오버시어도 같은 의문을 품었다.

“그런 거 보면 저희가 모르는 뭔가가 있긴 한가 봅니다. 그쪽 사제장이 잇속은 아주 밝은 사람이라 괜한 짓을 할 사람은 절대 아니거든요.”

“모르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모르겠단 말이야.”

이어 길게 한숨 쉬는 영주가 예전에 찾아와 도움을 청하던 사제장을 떠올렸다.

신을 모시는 교인 주제에 돈은 왜 그렇게 밝히는지.

교인이면 교인답게 가난하게 살 것이지, 성금은 무슨!

안 그래도 영지 근처에서 일어난 전쟁 때문에 여기저기 들어갈 돈도 많은데 왜 그리 성가시게 하는지.

‘틈만 나면 그놈의 성금 좀 내라고 닦달하던 인간이라 더 이상 찾아가서 상종하기는 싫고.’

“따로 사업을 벌이는 건 없었지? 나 몰래 말이야.”

오버시어가 부하들에게 보고 받은 내용들을 떠올리며 답해주었다.

“듣기론 이제부터 교회에서 보리와 홉 재배를 시작한다고 들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쓸어가다시피 사 갔으면서 또 재배까지 한다고? 그쪽 신께선 무슨 맥주에 환장이라도 하신 거야 뭐야? 보통은 포도주 쪽이잖아.”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포도밭을 하면서 와이너리라도 한다면 모를까. 왜 굳이 맥주를…….”

“설마 양조장까지 지으려는 건 아니겠지?”

“그러고 보니 양조장 이야기도 듣긴 했습니다. 규모가 엄청 크진 않은데, 나름 돈 좀 들여서 양조장도 같이 하려는 모양인 것 같습니다.”

“뭐어? 아니, 보리와 홉을 재배하는 것도 모자라 이젠 양조장까지? 대체 무슨 꿍꿍이야? 맥주라도 잔뜩 만들어서 팔 생각인가?”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양조장까지 지으려면 돈이 꽤 필요할 텐데, 대체 무슨 돈으로 짓는다는 거야? 그런 코딱지만 한 교회에 비상금 같은 게 있을 리도 없고.”

“글쎄요. 보통은 없는 돈이야 방코에서 빌리게 마련인데…….”

대출과 관련된 행위는 교단에서 가장 싫어하는 일이었다.

왜냐면 신성모독인 이자와 관련이 깊었으니까.

“이자 같은 걸 생각해 본다면 방코에서 따로 돈을 빌렸을 것 같지는 않고.”

“그럼 하늘에서 없는 돈이 떨어졌다는 거야 뭐야? 아니면 양조장을 공짜로 지었을 리가 없잖아.”

“그건 아니지만.”

오버시어 시론 마크는 영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저 고개만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뭐, 조사야 계속해 보겠지만 일단 교회에서 맥주를 독점하려는 건 확실해 보입니다.”

“세상에 할 게 없어서 맥주를 독점해?”

영주는 잠시 옆 영지에 있는 수도원에 대해 생각해 봤다.

교인들의 성금과 기부금이 작아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제국 변방의 교구에선 자구책으로 작은 사업 같은 걸 하고 있기도 했다.

그래서 사정이 어려워진 교회에서 자체적으로 사업을 한다고 하면 크게 어색할 건 없었지만, 그 사업이 와이너리 사업도 아니고 맥주와 관련된 사업이라는 것은 당장 납득하기 힘들었다.

“차라리 포도주를 만든다면 그러려니 했을 거야. 포도주야 이미 여러 곳에서 하고 있으니까.”

그 순간.

오버시어의 뇌리를 가로지르는 생각이 있었다.

“혹시…… 포도주로는 승부가 안 나서 맥주로 바꾼 건 아닐까요?”

“무슨 소리야?”

“포도주야 어차피 다른 곳에서 나오지 않습니까? 옆 영지에 있는 수도원에선 대규모로 포도밭을 하고 있고요. 그리고 거기에 딸린 와이너리 공장도 꽤 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포도주야 옆 영지에서 구하면 그만이니 종목을 바꿔 맥주로 간 거 아니겠습니까? 괜히 포도주를 생산해봤자 옆 수도원에 비하면 새 발의 피가 될 테고, 차라리 그럴 바엔 맥주 쪽으로 승부를 보자고 생각을 한 거겠죠.”

“흐음…….”

썩 마음에 드는 답변은 아니었으나.

오버시어의 말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매일 같이 찾아와 성금을 부르짖는 교회에서 나름 살길을 찾기 위해 작은 사업을 벌였다면, 그 사업이 어느 정도 경쟁력이 있어야 하는 건 기본 상식선에서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으니까.

“교회 일이라 가서 말릴 수도 없고.”

하늘 같은 영주라도 감히 신의 영역에서 행패를 부릴 순 없었다.

그들이 무엇을 하든 쉽게 막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던 영주가 표정을 구겼다.

‘눈 뜨고 코 베이게 생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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