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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명가의 창시자-40화 (40/181)

§40화 12. 매점매석 #2(1)

주말 아침.

성찬 전례를 진행하는 늙은 사제가 미사에 참여한 신도들에게 빵을 나눠주며 말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한 요한 님의 몸이다.”

이후 붉은 포도주잔을 든 늙은 사제가 말을 이었다.

“이것 또한 요한 님의 피로 맺어진 새로운 계약의 잔이다. 요한 님께선 너희를 위해 이 피를 흘리셨도다.”

성찬기도가 끝나자 미사에 참여한 신도들이 늙은 사제가 나눠준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침 예식을 치른 뒤 예배당을 빠져나갔다.

미사가 끝난 예배당.

제국 변방에 자리한 작은 곳인지라 예배당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평화로운 분위기만은 다른 예배당과 견주어 봤을 때 썩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모든 신도가 떠나가고 한적해진 그곳에서 로스메디치 집안의 넷째 레오는 막둥이 루시아와 함께 형제들을 위한 기도를 드렸다.

‘요한님, 제 형들이 지옥에 가지 않게 부디 도와주세요.’

주말을 포함하여 넷째 레오가 매일같이 예배당에 찾아오는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자신의 형들이 지옥에 떨어질까 그게 걱정됐던 것이다.

“레오 왔구나.”

레오를 알아본 어린 사제가 자연스레 레오의 옆자리로 다가와 앉았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 레오는 잠시 기도를 멈추고 찾아온 사제를 알아보았다.

“파더 루시안 님, 안녕하세요.”

레오 옆에는 어린 소녀가 앉아 있었는데, 사제는 루시아도 알아보았다.

“안녕 루시아?”

부끄럼이 많은 루시아는 말없이 고개만 숙였다.

이를 본 사제는 옅게 웃어 보였고, 곧바로 레오를 향해 말을 붙였다.

“오늘도 왔구나?”

“네, 오늘도 형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려고 왔어요.”

“그래?”

어린 사제도 레오가 왜 매일같이 찾아와 신께 기도를 드리는지 그 사정에 대해 모르지 않았다.

방코에 취직한 맏형과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두 형들을 위해 어린 동생이 고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기 파더 루시안 님.”

평사제의 경우 파더(Father)라는 호칭이 붙었는데, 레오 같은 경우 루시안이 알려준 이후로 줄곧 그 호칭으로 그를 부르고 있었다.

“응?”

“저번에 잘 모르셔서 한번 알아보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다시 물어보는 건데 고리대금업을 한 번이라도 해봤던 사람들은 전부 지옥에 가야 하나요?”

그 물음에 루시안은 시선을 앞쪽으로 옮겼다.

어려운 질문이었다.

“무조건 지옥에 간다라…….”

루시안도 아직 어린 사제라 많은 것을 알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레오가 물어본 게 있어 경험 많은 사제를 찾아가 고리대금업에 대해 물어보긴 했었다.

그리고 그 대답을 듣고서 제 안에서 정리한 것을 레오에게 알려주곤 하였다.

“사실 고리대금업을 하면 지옥에 간다는 말이 있긴 해. 제7지옥에는 고리대금업자를 위한 지옥이 따로 있다고 하니까.”

“정말요?”

걱정 어린 기색으로 묻는 레오에게 루시안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 지옥에 떨어진 고리대금업자는 목에 무거운 지갑을 차고 영원히 고통받는다고 하지. 그래서 우리도 신도들에게 절대로 남에게 이자를 받지 말라고 해. 죽어서 그런 벌 받기 싫으면 당연히 말려야 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니까.”

“그럼 저희 큰형은 어떻게 해요? 죽어서 무조건 지옥 가는 거예요?”

“글쎄.”

모두에게 잘 알려진 것처럼 남에게 이자를 받는 고리대금업자는 모두 지옥으로 가는 게 맞긴 했다.

그게 맞는 건데…….

‘왜 주교님과 대사제께선 그런 고리대금업자와 친하게 지내려는지 잘 모르겠어. 결국 지옥에 떨어질 사람이라면 다른 신도들을 의식해서라도 멀리하는 게 맞을 텐데.’

지옥에나 떨어질 것들하고 가장 가깝게 지내는 게 바로 그가 모시고 있는 주교와 대사제였다.

변방에 위치한 작은 교구였지만 여기서도 높은 직책의 사제들이 있었고, 그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성금을 가장 많이 내는 금세공업자를 좋아하고 있었다.

금세공업자=고리대금업자이니 원칙적으론 교단의 사제들은 그들을 멀리해야만 했다.

하지만 교구의 높은 사제들은 오히려 그들을 더 좋아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말하길.

성금만 많이 낸다면 지옥에 안 갈 수도 있단다.

자비로운 신께선 많은 기도에 응해 지옥에 떨어질 그 어떤 악질의 범죄자도 천국으로 이끌 수 있다고 하면서 말이다.

“듣기론 신께 기도를 많이 드리면 지옥에 갈 사람도 충분히 천국에 보낼 수 있다고 하더라.”

그 이야기를 듣고서 레오가 반색했다.

“정말요? 그럼 신께 기도를 많이 드리면 큰형은 지옥에 안 가도 되는 거예요?”

어려운 질문이었다.

기도에도 질이란 게 있다고 하면 웃기겠지만, 실제로 그런 게 있단다.

예를 들어 평사제인 그가 기도하는 것보다 신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교황이 기도하는 게 신께서 잘 반응해 주신단다.

“레오야. 넌 교단에서 가장 높으신 분이 누군지 알고 있니?”

신과 가장 가까운 존재.

레오는 고개부터 저었다.

“아니요. 잘 모르겠어요.”

“교황 성하야. 여기, 그리고 황도를 포함해 교단에 속해 있는 그 누구보다도 신께 자신의 목소리를 잘 전달해 줄 수 있는 분이지.”

루시안이 고개를 돌려 레오를 똑바로 마주보았다.

“너와 내가 하는 기도는 정말 작고 보잘것없지만, 그분께서 하는 기도라면 조금 다를지도 몰라. 어쩌면 지옥에 떨어질 고리대금업자들도 그분의 기도 여하에 따라선 천국에 갈지도 모르지. 신께선 그만큼 자비로우시니까.”

레오의 눈망울은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교황 성하요? 그분은 누구신데요?”

“교단에서 가장 높으신 분이야. 그리고 요한 님과 가장 가까운 분이기도 하지.”

“요한 님과 가장 가까운 분이라고요?”

“그래, 요한 님과 그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이 계신 분이야. 그러니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목소리를 신께 잘 전달해 줄 수 있는 분이지.”

이 순간 레오는 방코에서 일하고 있는 록펠러 형을 위해, 그리고 록펠러 형을 따라가고자 하는 다른 형들을 위해 자신이 교황이란 사람이 되면 어떨까 하는 그런 상상을 해봤다.

“파더 루시안 님. 교황이란 분은 아무나 될 수 있는 거예요?”

그 물음에 루시안은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교황의 자리는 예로부터 신이 내린 자리라 하였다.

“당연히 아무나 될 수 있는 건 아니야. 하지만 네가 사제가 되고 차츰차츰 교단의 높은 자리로 올라간다면 언젠간 한 번쯤 뵐 수 있을지도 모르지.”

“교황 성하가 되는 건 아니고요?”

루시안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들에겐 그분을 뵙는 것만 해도 무한한 영광이야. 교황 성하가 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야. 그분의 자리는 예로부터 신께서 정해주시는 자리니까.”

“정말요?”

“그런데 너도 사제가 되고 싶은 거니?”

그 물음에 레오는 한 치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네! 전 여기서 신께 기도드리는 게 너무 좋아요.”

“그래?”

사제는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다면 아무나 될 수 있었다.

다만 제 안의 욕망을 억눌러야만 했고, 이로 인해 지극히 제한된 삶을 살아야 했으며, 또한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엄청 바쁜 직업이었다.

교구 내의 크고, 자잘한 일들은 전부 그들의 몫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일이 쉬운 건 아니야. 너무 힘들어서 중도에 포기할 수도 있어. 그런데도 하고 싶니?”

그 물음에도 레오의 대답은 변함이 없었다.

“그래도 전 사제가 되고 싶어요. 형들을 위해 기도할 수만 있다면 다 좋거든요.”

고개를 끄덕이던 루시안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내일 다시 찾아올 수 있겠니? 내가 윗분들에게 물어보고 자리가 있으면 네가 사제가 될 수 있게 도와줄 테니까.”

“정말요?”

“하지만 이건 명심해야 돼. 사제가 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야. 항상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싸워야 하니까.”

“전 괜찮아요! 할 수 있어요.”

“그래, 그럼 내일 다시 보자.”

그렇게 어린 사제와 대화를 마친 레오는 그날 저녁 식사 때 록펠러에게 낮에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갑자기 사제가 되고 싶다고?”

“응, 나 사제가 돼서 형들을 위해 기도하고 싶어.”

교회에 보낸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사제가 되고 싶단다.

‘넷째 동생이 사제가 되고 싶다라…….’

록펠러가 잠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사이 록펠러만큼이나 당황한 앤드류와 조슈아가 레오에게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사제가 되려는 거야? 그거 재미없잖아.”

“레오도 우리처럼 돈이나 벌지.”

“그래, 돈이 최고야. 레오야 네가 어려서 그런데, 사제 같은 거 진짜 재미없어. 결혼도 못 하고 평생 혼자 살아야 하는데.”

두 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레오의 뜻은 변함이 없었다.

“사제가 돼서 우리 가족을 위해 기도하려고. 나 사제가 되면 안 돼?”

자신들을 위해 사제가 되겠다고 하는 넷째의 뜻을 과연 막을 수 있을까?

한참을 생각해 보던 록펠러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레오야. 굳이 사제가 되려는 이유가 있는 거야?”

“응! 나중에 교황 성하가 돼서 기도하면 형들이 지옥에 안 가도 된대.”

그 말에 록펠러는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교황이라 함은 교단의 지배자였다.

어쩌면 제국 황제보다도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자.

그런 자리를 어느 명가 출신의 귀족 자제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성력이 탁월한 자도 아닌, 어느 평민 집안 출신의 별 볼 일 없는 자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아니지.’

그러다 록펠러는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는 걸 알게 됐다.

평민이라고 해서 교황이 되지 말라는 법이 있었던가?

‘어쩌면 레오나 우리 모두를 위해서 좋은 일일지도.’

“정말 사제가 되려고?”

넷째 레오는 변함이 없었다.

“응! 나중에 교황 성하가 되고 싶어. 그럼 요한 님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형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으니까. 그럼 지옥 같은 데 안 가도 될 거야. 내가 계속 기도할 테니까.”

실현 가능성이라고는 정말 눈곱만큼도 없어 보였지만, 록펠러는 넷째 레오의 말을 그저 농담으로만 듣지 않았다.

레오가 제힘으로 할 수 없다면 자신이 그렇게 만들면 됐으니까.

‘교단 쪽도 언젠간 친해지려고 했었어. 어차피 교단의 힘이야 무조건 필요했으니까.’

“좋아. 정 뜻이 그렇다면 형은 네가 사제가 되는 걸 말리지 않을게. 대신 한 가지만 약속하자.”

그 약속이란 게 뭘까?

“무슨 약속?”

“어떤 일이 있어도 여기 있는 우리 형제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거. 나중에 레오가 어떤 위치에 있든, 어떤 상황에 처하든, 모든 건 우리 집안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는 거야. 그럼 형도 네가 교황이 될 수 있도록 어떻게든 노력해 볼게.”

레오에겐 어려운 말이었지만, 딱히 나쁜 말로 들리진 않았다.

어차피 자신이 사제가 되려는 건 이 자리에 있는 형제들을 위한 것이었으므로.

“응, 나도 형들을 위해 항상 기도할게.”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던 록펠러가 어제 하다만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이왕지사 이렇게 됐으니 맥주를 매점매석하는 일은 교회 쪽 하고 같이 하는 게 좋겠다.”

록펠러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던 넷째 레오를 향해 환히 웃어 보였다.

“그게 우리 레오에게도 좋은 일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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