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38화 (38/181)

§38화 11. 매점매석(2)

급하게 뛰어왔는지 거칠게 투레질을 하는 말.

그 위에 앉은 그녀는 검벨트를 차고 바람결에 머리칼을 나부끼는 아름다운 여기사와 같은 느낌이었다.

당나귀 수레에 앉은 두 형제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우아함과 기품을 지닌 귀족 영애.

누가 봐도 혹할 법한 그녀를 향해 조슈아는 당나귀 수레에서 내려 깍듯이 고개부터 숙였다.

“스텔라 아가씨 안녕하세요.”

예의 바른 조슈아와 다르게 앤드류는 스텔라가 주는 시선을 애써 피하기 바빴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는 정말 편하게 대했던 것 같은데, 이제 그녀가 누군지 알았으니 그럴 수가 없어진 것이다.

“그래, 반가워. 이름이 조슈아였지?”

“네! 그런데 어디서 좋은 향이 나요. 여기 들꽃 냄새는 아닌데 뭐지?”

“좋은 향? 아, 이번에 쓰던 향수를 바꿨거든. 아버지가 좋은 거로 사 주셨어.”

“향이 정말 좋아요!”

“그래, 고맙다.”

“앤드류 형, 뭐 하는 거야? 어서 아가씨께 인사드려야지!”

평소와 다르게 말수가 적어진 앤드류를 향해 스텔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예전에 만났을 때는 서로 편하게 대화를 나눴던 거 같은데, 그 만남이 무색해지게 너무나도 조용해진 그가 이상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앤드류였지? 앤드류 안녕?”

“어…… 응…….”

“왜 그래? 무슨 안 좋은 일 있어?”

“아니, 그게 아니라…….”

시선조차 못 마주치는 그를 보자 그녀는 그의 태도가 바뀐 이유를 빠르게 알 수 있었다.

제 주변에 앤드류 같은 사람이 은근히 많았던 것이다.

“그때처럼 편하게 대하면 안 돼? 그땐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잘 대해줬잖아.”

“그게…….”

“나는 있잖아. 사관학교 출신이라 여기 사람들과 다르게 귀족이든 평민이든 크게 신경 쓰지 않아. 거기서도 평민 친구를 사귀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

그 말에 조슈아가 의문을 품었다.

“아가씨가 왜요? 아가씨는 귀족이잖아요. 그럼 귀족하고만 어울려야하는 거 아니에요?”

“그건 잘못된 생각이야. 평민들도 노력 여하에 따라선 언제든 귀족으로 올라설 수 있는 세상이거든.”

“진짜요?”

“응, 너두 나중에 알게 될 거야.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어.”

말만 그렇게 하면 뭐하나.

애당초 평민이 귀족이 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였는데.

앤드류가 하고 싶은 말을 아끼자 그녀는 약간 불편한 기색으로 제 엉덩이를 자꾸만 들썩거렸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조슈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 불편하세요?”

“그게…… 아버지가 이번에 스콰이어가 된 기념으로 말을 사주긴 했는데, 말안장이 나랑 좀 안 맞는 것 같아서. 좀 불편하긴 해.”

“그럼 다른 걸로 바꾸면 되잖아요? 영주님 돈 많을 텐데.”

“그렇긴 한데…… 그렇다고 아무거나 막 바꾸긴 좀 그렇고. 나한테 맞는 맞춤 안장이 필요한 거 같은데 너희도 알다시피 요즘 사람들이 많이 바쁘잖아. 괜히 나 때문에 주변 사람들 귀찮게 하기가 좀 그래서. 나중에 사관학교로 돌아가면 거기서 맞추려고 참는 중이야. 그리고 안장은 거기가 잘해. 각자 스타일에 맞춰주거든.”

“아, 그런 거예요?”

“응.”

스텔라는 다시 한번 앤드류에게 시선을 주었다.

“계속 아무 말도 안 할 거야?”

“…….”

여전히 말이 없는 앤드류에게 실망한 그녀는 조슈아에게 눈짓하며 자리를 떠나갔다.

“다음에 보자, 조슈아.”

“네, 스텔라 아가씨도요!”

“앤드류 너도.”

영주 딸이 떠나갔음에도 말 하나 없는 앤드류를 보며 조슈아가 의문을 품었다.

‘앤드류 형이 좀 이상한 거 같은데?’

스텔라가 멀찌감치 떠나가자 그제야 앤드류가 고개를 들어 떠나가는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전에는 없었던 감정들이 자기도 모르게 스멀스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날 저녁.

록펠러는 조슈아의 이야기를 듣다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오늘 그런 일이 있었다고?”

“응! 앤드류 형이 평소답지 않게 너무 조용했다니까. 아무리 스텔라 아가씨가 착해도 그렇지 이건 앤드류 형이 잘못했어.”

그러자 앤드류가 조슈아를 향해 낮게 으르렁거렸다.

아마 록펠러가 자리에 없었다면 꿀밤부터 먹였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니깐! 그냥 영주님 따님이라 불편했던 거야. 전에 만났을 때랑 완전히 다르잖아. 그땐 누군지 전혀 몰랐고, 이젠 알았으니까.”

오늘 두 동생이 우연히 만난 영주 딸이야 록펠러가 크게 신경 쓸 대상은 아니었다.

‘영주 딸이라…….’

영주에겐 자식이 딱 하나 있었는데, 펜보다 칼을 더 좋아하는 영주의 성격상 하나밖에 없는 딸을 일찌감치 황도로 보내 기사생도로서 키워오고 있었다.

최근엔 기사의 전 단계인 스콰이어가 된 기념으로 영지로 잠시 내려와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하는데 크게 신경 쓸 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건 록펠러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

‘그 나이에 스콰이어면…… 너무 빠른 편은 아니고. 그렇다고 늦은 편도 아니긴 한데.’

스텔라 드 몬테펠트로.

전쟁, 칼과 싸움을 좋아하는 영주의 영향을 받아 기사로서의 재능이야 분명 있겠지만 그렇다고 소설 속 주인공이나 그의 히로인들만큼 강한 파급력은 없어 보였다.

그저 소설 속에서 잠시 스쳐 가듯 나오는 여기사 정도일까?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다소 까칠한 영주와 다르게 성격도 좋다고 하니까.’

록펠러가 잠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스텔라와 만난 이후로 줄곧 다른 생각을 해왔던 앤드류가 맏형인 록펠러를 불렀다.

“저기, 록펠러 형.”

록펠러가 자연스레 시선을 주자 앤드류가 제 말을 잇기 시작했다.

“저기 있잖아…… 그냥 하는 소린데. 나 사관학교 같은데 가면 좀 그럴까?”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별건 아니고. 예전부터 기사가 되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쭉 해와서.”

그러자 록펠러보단 조슈아가 먼저 반응을 보였다.

“앤드류 형, 그게 무슨 소리야? 기사라니. 앤드류 형은 기사 되고 싶었어?

“그냥 이전부터 줄곧 생각만 해봤어. 기사가 되면 좋을 거 같기도 하고…….”

왜 갑자기 저런 이야기를 꺼내는 걸까?

동생들을 자신처럼 돈의 길로 이끌려고 했던 록펠러는 약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교회에 관심이 많은 레오야 그렇다 치더라도 앤드류까지 저럴 줄 몰랐는데.’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을 순 없었다.

결국 돈이 최고라 해도 그 생각을 동생들에게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

잠시 말을 아끼던 록펠러가 이내 생각을 마쳤는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좋아. 대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면 그쪽 길은 빠르게 포기하는 게 좋아.”

검술명가 테페즈로 예를 들자면, 그들은 앤드류와 같은 나이에 혈혈단신으로 괴수형 몬스터도 거뜬히 잡아내는 괴물 같은 자들이었다.

그것은 노력만으로는 감히 따라잡을 수 없는 재능이란 영역이었고, 그런 이유로 록펠러는 앤드류를 말리고 싶었던 것이다.

어차피 앤드류가 어떤 식으로 나아가든 그 끝에서 마주할 끝없는 좌절감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사람이 가진 재능이란 건 절대 무시할 수 없으니까. 특히나 이런 세상에선 더더욱. 하지만 네가 원한다면 말리진 않을 게. 필요하다면 사관학교에 낼 학비 정도는 형이 대줄 수 있을 거야.”

기대도 안 했던 록펠러의 허락이 떨어지자 앤드류의 얼굴이 한층 더 밝아졌다.

“정말? 난 그냥 해본 소린데…… 근데 정말 사관학교에 가도 돼?”

조슈아도 록펠러와 같은 생각이었다.

둘째 형이 친구들과 전쟁놀이와 칼싸움을 좋아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마법사가 되고자 했던 아버지가 결국 좌절했던 것처럼 같은 꼴이 날까 걱정부터 들었다.

“근데 앤드류 형, 그러다 아버지처럼 마법사도 못 되고 돈만 쓰다가 다시 돌아오는 거 아냐?”

“무슨 소리야! 마법사는 재능이 있어야 하지만 기사는 그 정도는 아니라고!”

마법기사라고 해서 마법을 쓸 수 있는 기사들이 좀 더 대우받는 세상은 맞다.

하지만 화학 역시 발달한 제국에선 용 모양의 개머리판이 있는 총을 쓰는 용기병이란 특수병과 역시 존재하고 있어서 마법을 쓸 수 없다고 해서 마냥 길이 없는 건 아니었다.

“용기병이란 게 있대. 드래곤이라는 총을 쏘는 기사야.”

“드래곤?”

“아니, 총 이름이 드래곤이야. 진짜 드래곤 말고.”

“아 그래?”

“그러니까 정 재능이 없으면 드래곤 쏘는 용기병이 되면 돼.”

“그래도 마법 쓰는 기사가 짱 아니야?”

“그거야…… 그렇긴 하지. 하지만 용기병도 나쁘지 않아.”

듣고 있던 록펠러가 나섰다.

“생각해 보니까 앤드류가 사관학교에 다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거기서 좋은 인맥을 쌓을 수도 있는 거니까. 물론 네가 원한다면 거기서 용기병이 돼도 형은 말리지 않을 거야. 그게 네가 원하는 길이고, 네가 이루고 싶은 꿈이라면 당연히 밀어줘야지.”

“록펠러 형 고마워! 진짜 최고야!”

“우리 집안은 이제 예전과 달라. 여기서 각자 꿈이 있다면 그 꿈을 향해 나아가도 좋아. 하지만 그 꿈이 없다면 크게 고민할 필요도 없이 이 형을 따라오면 돼. 형이 가는 길도 나쁘진 않을 테니까.”

듣고 있던 조슈아가 끼어들었다.

“난 록펠러 형처럼 돈만 벌 거야! 기사나 사제 같은 건 관심도 없어.”

“그래, 조슈아. 너라도 형을 따라와 준다니 다행이다.”

“대신 난 금세공업자가 될 거야! 록펠러 형이 카터 아저씨 밑에서 계속 일하지 않게끔 금세공업자가 되기로 했어!”

“금세공업자가 되고 싶은 건 형도 마찬가지야. 그래야 우리 집안 이름으로 된 방코 가게를 열 수 있으니까.”

“와, 그럼 록펠러 형이랑 나랑 같이 금세공업자가 되는 거야?”

“조슈아도 형과 같이 카터 아저씨 밑에서 금화세공에 대해 배우면 되겠다. 이것도 배우려면 꽤 시간이 걸리는 일이거든.”

“와, 신난다!”

뭔가 소외받는 느낌이 들자 앤드류가 둘 사이에 조용히 끼어들었다.

“그런데 나 있잖아. 사관학교 들어가서 진짜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면 다시 여기로 돌아와서 록펠러 형 밑에서 돈 벌 거야. 진짜 가능성이 없다고 하면 그게 맞잖아.”

“앤드류 형, 그럴 거면 처음부터 가지 말지 그래? 나는 형이 사관학교에 가는 거 싫어. 심심하단 말이야.”

“그래도 사관학교는 가고 싶어. 그냥…… 꿈같은 거니까.”

다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록펠러가 마무리를 지어주었다.

“각자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뭐든지 해도 좋아. 대신 그 일이 안 될 거 같으면 언제든 형 밑으로 돌아오고. 형이야 이미 갈 길을 정해놨으니까.”

“응!”

“알았어.”

그렇게 앤드류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 록펠러는 이제 다른 곳으로 화제를 바꾸었다.

“그건 그렇고, 다른 돈벌이를 찾고 있다고?”

여기서 가장 목소리가 큰 것은 다름 아닌 조슈아였다.

“응! 록펠러 형, 무슨 좋은 일 없을까? 우리도 록펠러 형처럼 큰돈을 벌고 싶어. 지금 하고 있는 일 말고.”

좋은 사업 아이템.

물론 있었다.

전쟁이라 함은 항상 부를 불러왔으니까.

“사실 형도 하나 생각해 둔 게 있긴 해.”

“정말? 그게 뭔데?”

“근데 이게 너희 둘이 하기엔 나이가 너무 어려서 안 되고, 아마 형하고 같이 움직여야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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