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11. 매점매석(1)
“여기요, 아저씨. 장화 밑창이랑 폼멜 수리 맡기셨죠?”
앤드류가 건넨 가죽 장화와 칼자루 끝에 달린 폼멜을 꼼꼼하게 살피던 용병이 만족했는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수고 많았다. 이건 수고비니까 받아라.”
그가 던진 1실링을 냅다 챙긴 앤드류가 활짝 핀 얼굴로 말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또 불러주세요! 저희가 어떻게든 해결해 볼게요.”
“알았다. 필요하면 또 부르마.”
“네!”
“그런데 이건 대체 어디서 수리를 맡긴 거냐? 정말 감쪽같은데? 다 부러진 걸 이렇게 고치다니. 여기도 실력 좋은 대장장이가 있는 모양이야.”
용병이 깔끔하게 수리 된 폼멜을 보이며 묻자, 앤드류가 씩 웃었다.
“제가 잘 알고 있는 대장장이 아저씨가 있거든요. 그 아저씨 예전에 드워프 대장간에서 잠깐 일했었대요.”
“드워프 대장간에서? 정말?”
“네, 여기랑 드워프 왕국이랑 가깝잖아요. 저도 들은 얘긴데 그 아저씨도 어쩌다 기술을 배우게 됐대요. 원래 드워프들이 꼬장꼬장해서 그런 거 까탈스럽긴 한데, 서로 친구 먹으면 그런 것도 없대요. 특히나 술친구가 가장 좋대요.”
“오, 그래? 그러고 보니 드워프와 술친구 되면 좋다고 어디서 들어본 거 같기도 하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모양인지 용병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아무튼 나중에 다시 찾아와라. 당장은 아니고 또 맡길 게 있거든.”
“아, 물론이죠. 언제든 편하실 때 불러주세요. 제가 없으면 제 동생 부르셔도 돼요. 제 동생도 저만큼이나 잘 알고 있으니까요.”
“잠깐만. 너희 이름이 뭐라고 했지?”
“전 앤드류고 제 동생은 조슈아요!”
“앤드류? 너 평민이랬지?”
“네! 로스메디치요. 저희 집안 이름이에요.”
“로스메디치라…… 그래 잘 기억하고 있으마. 필요하면 또 부를게.”
“네!”
식재료 심부름으로 시작한 두 형제의 일은 용병캠프에 속한 여러 용병들의 자잘한 심부름까지 도맡는 것으로 서서히 확장되었다.
영지에 거주하는 영지민들과 접촉을 꺼려하던 용병들도 두 형제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두 형제의 벌이는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삐그덕 삐그덕.
심부름할 게 많아지니 자연스레 구입하게 된 당나귀 수레를 이끌고 마을로 향하는 도중.
싱글벙글 표정이 좋던 조슈아가 자기 대신 당나귀 수레를 끌고 있던 앤드류를 향해 목소리를 냈다.
“앤드류 형, 나 오늘 3실링이나 벌었다!”
앤드류 역시 기분이 좋기는 마찬가지.
“야! 나도 5실링이나 벌었어.”
“와! 형은 5실링이야? 진짜 많이 벌었네. 어떻게 나보다 2실링이나 더 벌 수 있어?”
“쨔사. 너처럼 보이는 아저씨들한테만 물어본 게 아니라 형은 여러 군데 다 찔러봤지. 막사 안에 박혀서 잘 안 나오는 아저씨들도 있거든. 그런 아저씨들을 공략해야 돼. 그 아저씨들은 만사가 다 귀찮아서 심부름도 잘 시키거든.”
“아 진짜? 그럼 나도 앤드류 형처럼 해야겠다.”
조슈아는 나날이 커져만 가는 벌이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앤드류 형, 우리 이러다 진짜 부자 되는 거 아냐?”
“부자는 무슨! 진짜 부자가 되려면 록펠러 형처럼 벌어야지. 록펠러 형에 비하면 우린 새 발의 피야.”
록펠러와 동생들은 저녁 식사 때마다 한자리에 모여 그날 하루 어떻게 보냈는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게 늘 일상이었다.
그런 이유로 두 형제는 록펠러가 최근에 어떤 식으로 큰돈을 벌게 되었는지 전부 이야기를 들은 상태였다.
“록펠러 형은 이번 달에 방코에서 500달란트나 벌었다고 했잖아. 나는 방코에서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는지 몰랐어. 앤드류 형은 알고 있었어?”
앤드류는 고개부터 저었다.
“아니, 나도 몰랐지.”
“그렇지? 앤드류 형도 잘 몰랐지?”
“응, 근데 록펠러 형이 진짜 대단하긴 하다. 어떻게 돈 빌려주는 걸로 그렇게 많이 벌 수 있는 거지?”
“록펠러 형이 그랬잖아. 진짜 돈은 앉아서 버는 거라구. 노동으로 해서 버는 게 아니라고 했어.”
“어차피 그 절반은 카터 아저씨 수익이지만, 그래도 250달란트만 해도 얼마야. 와…… 우리 같은 건 잽도 안 돼.”
“근데 좀 아깝긴 하다. 돈은 록펠러 형이 다 번 거 같은데 카터 아저씨는 한 것도 없이 250달란트나 벌어가고.”
“그렇긴 하지. 하지만 카터 아저씨 가게잖아. 그 정도는 생각해야지.”
그런 앤드류의 말에 조슈아는 다소 아쉬움이 생겼다.
“앤드류 형, 우리도 나중에 방코 같은 거나 하나 만들까? 그럼 다른 사람한테 우리가 번 돈을 떼 줄 필요가 없게 되잖아.”
“바보야! 방코는 무슨 아무나 할 수 있는 줄 알아?”
“나도 알아. 황실에서 발급해 준 특별허가증이 필요하다는 거.”
“알면서 왜 그래? 그거 없으면 방코 못 차려.”
“그러니까 우리가 나중에 그 허가증을 따자는 거지. 내가 어디서 들었는데, 방코 일 하는 게 돈은 많이 벌어도 나중에 지옥 간다고 해서 사람들이 많이 꺼려한대. 그리고 평민부터 할 수 있다고 하나 봐. 그런데 우린 이미 평민이잖아? 그럼 우린 쉽게 할 수 있는 거 아냐?”
“그렇긴 하지. 근데 그거 진짜 아무도 안 한 대?”
“그건 아닌데. 아무튼 좀 꺼려하긴 한데. 앤드류 형도 못 들었어? 사람들이 금세공업자 안 좋아하는 거.”
“나도 알지. 근데 돈은 진짜 많이 벌잖아.”
“하지만 돈 많이 벌어도 결국 지옥에 가잖아.”
대화를 나누던 두 형제는 잠시 금세공업자와 지옥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해 봤다.
“근데 앤드류 형, 금세공업자 하면 진짜 지옥에 가는 걸까? 교회에서 그렇게 말하잖아. 고리대금업 하는 사람들은 전부 지옥에 간다구.”
“바보야! 그건 록펠러 형이 말해줬잖아. 돈 많이 벌어서 교회에다 잘해주면 지옥 안 가도 된다고.”
“그럼 우리가 돈 많이 벌어서 교회에다 잘해주면 우린 지옥에 안 가는 거야?”
“당연하지! 사제들이 우릴 위해 기도해 준다잖아.”
“그건 맞아. 사제들이 우릴 향해 기도해 주면 신께서도 우릴 막 지옥에 보내진 않을 거 아냐?”
“나도 그 생각이야.”
조슈아는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근데 앤드류 형, 진짜 천국과 지옥 같은 게 있을까?”
“바보야! 당연히 있지.”
“있어? 그럼 형은 거기 가 봤어?”
“아니, 거길 가 본 적은 없지.”
“앤드류 형은 거기 가 본 적도 없으면서 왜 있다고 장담하는 거야? 그런 데가 없을 수도 있잖아.”
“그거야…… 아무튼 있어! 아니면 사람들이 전부 거짓말하는 거야? 그건 아니잖아.”
“그렇긴 한데…….”
“천국이랑 지옥은 무조건 있어. 우리가 나쁜 일 하면 당연히 지옥 가는 거구, 교회도 잘 나가고 착한 일 많이 하면 무조건 천국 간다고 했어. 이건 맞아.”
“그래?”
“그러니까 너두 착한 일 많이 해.”
“근데 우리 이미 나쁜 일 했잖아.”
“…….”
조슈아의 말에 반박하지 못한 앤드류가 잠시 시무룩해졌다.
“그건…… 그렇네.”
“앤드류 형, 우리 이미 나쁜 짓 많이 했어. 용병 아저씨들한테 거짓말치고 식재료 비싸게 사다가 심부름해 줬잖아. 그리고 남은 식재료는 시장에 있는 아줌마아저씨들하고 우리가 반반씩 나눠 갖고.”
“그렇긴 한데…….”
“그럼 우린 지옥에 가는 거야?”
바로 대답하지 못하던 앤드류가 이내 현실을 부정했다.
“아니야. 우린 절대 지옥 안 가.”
“하지만 앤드류 형이 그랬잖아? 나쁜 일 하면 지옥 간다고.”
“그렇게 따지면 시장에 있는 아줌마 아저씨들도 우리랑 함께 나쁜 짓 한 건데? 근데 그 아줌마아저씨들도 같이 지옥에 가는 건 아니잖아.”
“그럼 우린 어떻게 되는 거야?”
앤드류는 이 이야기가 너무 복잡해지는 게 싫었다.
이 순간 떠오르는 생각은 단 한 가지.
“록펠러 형이 말했던 것처럼 무조건 교회에다가 잘해주면 돼. 그럼 우리가 잘못해도 교회에 있는 사제 아저씨들이 우릴 위해 매일같이 기도해 줄 거야.”
“그럼 우린 천국에 갈 수 있는 거야?”
“물론이지! 우린 무조건 돈 많이 벌어서 천국에 가는 거야. 대신 교회에 있는 사제 아저씨들한테 진짜 잘해줘야 돼. 우릴 위한 기도는 거기에 있는 사제 아저씨들이 무조건 해줄 테니까.”
그 말에 조슈아 역시 반색했다.
“그렇지? 결국 돈만 있으면 우리도 천국에 갈 수 있는 거지?”
“록펠러 형이 말했잖아! 진짜 돈만 많이 벌면 된다고.”
“나도 그 생각이야! 그러니까 우리도 돈 많이 벌자. 많이 벌어서 성금도 많이 하자!”
“그래! 그렇게 하자.”
결국 두 형제의 결론은 지옥에 안 갈 정도로 많은 돈을 벌자는 것이었다.
그럼 여기서 드는 생각 하나.
지옥에 안 갈 정도로 많은 돈은 대체 어떻게 하면 벌 수 있을까?
“앤드류 형, 그런데 우리 하루에 몇 실링씩 벌어서 부자 될 수 있을까? 이걸론 좀 부족하지 않을까?”
“당연히…….”
또래에 비해선 쉽게 만질 수 없는 돈을 매일 같이 벌고 있었으나, 맏형이 벌어오는 돈에 비하면 정말 새 발의 피 같은 돈이었다.
“부족하겠지. 그러니까 일거리를 좀 더 찾아봐야지.”
“근데 일해서 돈 버는 건 록펠러 형이 크게 못 번다고 했잖아.”
“야, 이건 그래도 사업이야. 돈 버는 것도 다 종류가 있지만 록펠러 형이 우리처럼 돈 버는 건 작게 사업 하는 거라고 했어. 우리가 누구 밑에 들어가서 돈 버는 건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
“큰돈은 사업 아니면 앉아서 버는 거라고 했어.”
“나도 알지! 그 말 항상 머릿속에 새기고 사는데.”
어느덧 두 형제는 당나귀 수레까지 사놓고 용병캠프의 심부름 일을 크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벌써 당나귀 수레까지 있잖아! 이 정도면 나름 괜찮은 거지.”
“그래도 돈 버는 게 좀 아쉽긴 하다. 이것도 록펠러 형이 많이 도와줘서 하나 장만한 거잖아.”
“그렇긴 한데…….”
“앤드류 형, 우리 하는 일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지금보다 더 많이 버는 거?”
“응!”
“글쎄…… 그래도 찾아보면 있지 않을까?”
마을로 돌아가는 길.
둘째 앤드류와 대화하던 조슈아는 우연히 백마를 타고 들판을 달리던 그들 또래의 영주 딸을 보게 됐다.
“어, 앤드류 형! 저기 스텔라 아가씨다!”
흥분하여 소리치는 조슈아와는 다르게 영주 딸을 본 앤드류가 평소보다 조용해졌다.
마을이 작아 앤드류와 동갑내기 여자애들은 별로 없었는데, 영주 딸은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스텔라 아가씨가 말에 타고 있어. 하얀 말이면 엄청 비싼 거 아냐? 말도 하얀 건 엄청 비싸다고 하던데.”
그 말에 표정을 살며시 구긴 앤드류가 혼자서 구시렁거렸다.
“저번에 록펠러 형이 영주님한테 돈 왕창 빌려줬다고 했잖아. 그 돈으로 하나 사줬나 보지 뭐.”
“앤드류 형, 저기 가서 스텔라 아가씨한테 말이라도 걸어볼까? 영주님과 다르게 스텔라 아가씨는 우리 인사도 잘 받아주잖아.”
그러자 앤드류가 약간 붉어진 얼굴로 조슈아를 냅다 다그쳤다.
“하지 마! 그냥 냅둬. 왜 굳이 가서 말을 걸어.”
“왜? 평소 잘 못 보니까 이번에 가서 인사드려야지. 그래도 영주님 따님이잖아. 우리가 잘 보여서 나쁠 거 없잖아?”
“하지 말라니까. 그냥 가. 쪽팔리니까.”
“쪽팔려? 뭐가?”
“아, 그냥 묻지 말고.”
“앤드류 형, 왜 그래?”
그렇게 두 형제가 티격태격하고 있던 사이.
이번에 선물 받은 백마를 타고 달리던 스텔라가 우연히 용병캠프 쪽에서 돌아오던 당나귀 수레를 보게 됐다.
다른 수레였다면 무시하고 지나쳤겠지만, 수레에 타고 있는 두 인물이 낯설지 않아 그녀는 말머리를 돌려 당나귀 수레 쪽으로 달려와 섰다.
“안녕? 둘 다 오랜만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