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34화 (34/181)

§34화 10. 믿음은 부를 창출한다(2)

상황이 꽤 급박해 보였다.

카터가 당장 대출이 가능한 금화에 대해 생각해 보다 록펠러가 자신에게 몰래 눈짓하는 걸 보게 됐다.

‘이런 데서?’

당장 영지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판국인데 여기서 돈 벌 궁리를 한다고?

정말 지독하리만큼 돈에 환장한 녀석이었다.

평생 금세공업자로 살아온 자신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못하진 않았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돈을 밝힌다는 고블린보다 더 독한 녀석일지도.

‘정말 무서운 녀석이야. 나중에 커서 대체 뭐가 되려고.’

록펠러의 눈짓을 보지 못한 영주는 카터만 뚫어지게 쳐다보며 그의 대답만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가능한 최대로 빌리고 싶네. 하운드 용병대 외에 추가적으로 다른 용병대를 불러야 하고, 토벌에 참가한 마법사를 좀 더 붙잡아 두려면 그것도 돈이 필요하네. 갑자기 이렇게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될지는 나도 몰랐네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자네 도움이 절실하긴 하네.”

“국경과 인접한 마을 주민들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우선 장원 내로 최대한 대피시켰네. 마을 안에서 수비를 할 수 없으니 뒤쪽에 작은 요새라도 지어 상황을 지켜볼 작정이야. 폐하께서 지원군을 보낼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봐야지.”

“상황이 급박하긴 하군요. 그럼 저로서도 최선을 다해 영주님을 도와드려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자네도 영지가 망해 원치 않게 장사를 접을 생각이 없다면 나를 전심전력으로 도와줘야 할 게야.”

“아무렴요.”

고개를 끄덕이던 카터가 가게 장부를 꺼내 뒤적이며 잠시간 시간을 끌었다.

“어디 보자…….”

말꼬리까지 흐리던 카터는 록펠러가 준 눈짓에 대해 계속 생각해 봤다.

‘어쩌면 이건 기회일지도 모르겠어. 이런 경우가 흔치는 않으니까.’

금세공업자의 주요 수입은 금화를 만드는 것보단 대부분 금화 대출로 인한 이자수익이었다.

즉, 많이 빌려줄수록 많이 벌 수 있다는 말.

‘빌려 간 금화만 잘 갚아준다면 이번에 빌려준 돈으로 크게 해먹을 수가 있겠군.’

영주는 영지 내에서 가장 신용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가 갚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많이 빌려준다면 카터 입장에선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작년에 영지에서 거둬들였던 세금을 생각해 본다면…….’

당장 영주에게 최대한으로 내줄 수 있는 금화의 양은 대략 2,500달란트 정도였다.

그가 보유하고 있는 금화 1,000달란트와 방코에 찾아온 고객들이 맡겨놓은 금화 1,500달란트를 합친 금액으로 사실상 대출 가능한 총금액이라 할 수 있었다.

‘최대한으로 내주면 2,500까지 내줄 수 있지만 그렇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지.’

예전에 록펠러에게도 말했던 것처럼 카터는 영주가 지배자의 힘을 이용해 빌린 돈을 안 갚는 경우를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다.

영주는 이 땅의 주인인 자였다.

그를 믿고 장사를 하고 있다지만 나중에 그가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그래서 카터는 최대한으로 빌려줄 수 있는 2,500달란트가 아닌 1,500달란트 정도를 빌려주기로 했다.

본래는 그 정도도 빌려주지 않겠지만 영지 상황이 워낙 급박하게 돌아가다 보니 자기 딴에선 최대한 리스크를 감내한 결과였다.

“여기 장부를 보니까 영주님께 최대로 빌려드릴 수 있는 금화의 양이 대략…….”

카터가 제 말을 다 잇기도 전에 록펠러가 그의 말을 끊고 불쑥 끼어들었다.

“5,000달란트까지 가능합니다.”

갑작스레 5,000달란트라는 말도 안 되는 액수가 튀어나오자 카터는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수중에 가지고 있는 금화만 해도 2,500달란트가 전부인데, 거기서 두 배나 되는 금액을 빌려줄 수 있다니!

이 녀석 지금 제정신으로 한 소린가?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카터를 향해 록펠러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설명은 이미 끝냈었다.

단지 카터에겐 그럴 배짱이 없었고, 자신에겐 있었을 뿐.

록펠러는 이 순간 자신을 쳐다보고 있던 영주에게 장사치의 미소를 날려주었다.

“물론 영주님께서 최대로 빌려 가신다면요.”

“지금 5,000달란트라고 했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큰 액수가 나오자 영주 역시 적잖이 당황한 표정이었다.

방코를 운영하는 금세공업자가 아무리 돈을 잘 번다지만, 카터에게 그만한 금화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영주가 이내 불쾌해진 표정으로 카터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자네…… 생각보다 많이 부자였군.”

영주가 가늠하던 카터의 재산은 대략 1,000달란트 정도였다.

그래서 급하게 1,000달란트 정도 빌려 갈 생각이었는데, 그보다 무려 5배나 많은 5,000달란트를 수중에 가지고 있을 줄이야.

자신의 영지 안에서 자신이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을 때, 그곳의 지배자라 할 수 있는 자가 과연 달가워할 수 있을까?

적어도 그는 그렇지 않아 했다.

“나 모르게 벌어둔 돈이 꽤나 있었던 모양이야? 나는 자네가 대충 1,000달란트 정도 가지고 있을 줄 알았네만. 그런데 설마 5,000달란트까지 손에 쥐고 있을 줄이야.”

영주만큼이나 당황했던 카터가 반사적으로 손사래를 치다가 이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기로 했다.

“영, 영주님. 잠시 제가 여기 조수와 대화를 나눌 시간을 좀 주시겠습니까?”

“왜? 자네 조수가 너무 솔직하게 말해서 가서 훈계라도 할 생각인가?”

“아, 아니요.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혹시나 영주님께 도움 드릴 일이 더 있나 해서 여기 있는 조수 녀석과 잠시 할 얘기가 있어서요.”

고까운 시선을 유지하던 영주가 마지못해 허락해 주었다.

둘이 더 대화를 나눠 봤자 뭘 어떻게 하겠는가?

이미 5,000달란트 이야기를 들었으니 죽어도 5,000달란트는 빌려 갈 생각이었다.

“알겠네. 대신 짧게 끝내게나. 난 그리 인내심이 좋은 사람이 아니니.”

“감사합니다.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그렇게 록펠러와 따로 자리한 카터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영주를 의식하여 작지만 날카로운 목소리로 록펠러를 다그쳤다.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말한 거냐! 세상에 5,000달란트라고? 우리 수중에 그런 돈은 있지도 않아.”

“왜 그러세요? 없는 돈까지 대출해 주자는 얘기는 전에 다 말씀드렸잖아요?”

록펠러가 이어 말했다.

“그리고 지금 그 없는 돈을 대출해 줄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고요. 전에 아저씨가 그러셨죠? 없는 돈까지 대출하기엔 그 많은 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지금 없다고. 하지만 이젠 생겼잖아요? 그럼 당연히 빌려줘야죠.”

록펠러는 이어지는 말을 재차 강조했다.

“이건 기회라니까요?”

“그래도 우리 수중에 없는 돈을 대체 어떻게 빌려준단 말이냐?”

한심한 소리였다.

록펠러는 김빠지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제가 전에 충분히 설명해 드린 거 같은데, 벌써 잊으신 거예요?”

록펠러의 설명이야 물론 잘 들었었다.

그에 대해 고민도 물론 했었고.

하지만.

“듣기야 했었지.”

“아저씨, 솔직히 말해서 제가 했던 말 진지하게 생각해 보신 적 있어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금화와 고객들이 맡긴 금화까지 빌려주는 건 카터 상식에선 그나마 허용할 수 있는 범위였다.

하지만 록펠러가 말했던 없는 금화까지 만들어서 대출해 주는 건 사실상 그의 상식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으로, 카터는 그것을 이론적으로만 이해했을 뿐 그것을 실행할 배짱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왜냐?

그런 건 자신의 상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돈벌이였으니까.

“사실 더 생각해 볼 것도 없었지. 그냥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생각했으니까. 그냥 방구석 이론이 아니니? 리옹에서도 그렇게 대출은 안 해. 세상에 없는 돈까지 만들어 대출해 준다고? 기가 차는구나.”

“아저씨는 정말로 그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신 거예요?”

“너야말로 한 번도 해보지 않았으면서 그게 될 줄 아느냐?”

그 말에 록펠러는 전에 없이 진중한 표정으로 그를 불렀다.

“카터 아저씨. 제가 여기에 취직해서 단 한 번이라도 잘못된 적이 있나요?”

“그런 적은…… 없었지.”

“없었죠? 대신 수입은 크게 늘어나셨죠?”

“그거야…….”

“그게 왜 그렇게 된 줄 아세요?”

“나야 모르지. 그냥 운이 좋았을 수도 있고.”

“운이요? 뭐, 운이 좋았을 수도 있죠. 하지만 이건 재능이에요.”

“재능이라고?”

“네, 재능이죠. 세상엔 칼 잘 쓰는 사람, 마법을 부릴 줄 아는 사람. 손재주가 아주 좋은 사람, 아니면 달리기만 잘하는 사람까지. 전부 저마다 좋은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어요. 물론 전 돈벌이에 그 재능을 타고났고요.”

록펠러가 말을 이었다.

“아저씨, 그런 재능을 타고난 제가 보건대 이건 무조건 없는 돈까지 만들어서 빌려줘야 해요. 그래야 진짜 큰돈을 벌 수 있으니까.”

“…….”

“제가 진짜 장담할 수 있는데, 이번에 제 생각대로 하시면 진짜 큰돈을 버실 거예요. 만약 그렇게 안 되면 저 여기 일 그만둘게요. 재능도 없는 녀석이 아저씨 같은 사람 옆에서 훈수 둬 봤자 뭐 하겠어요? 의미 없지.”

없는 돈까지 만들어서 빌려주는 건 동의할 수 없었으나, 일 잘하는 조수 하나를 이렇게 잃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카터가 일을 그만두겠다고 하는 록펠러를 회유하기 위해 나섰다.

“아니, 그만두지는 말고. 그냥 이번 한 번만 평범하게 가면 안 되는 거니?”

“그 평범이 뭔데요?”

“뭐겠니? 그냥 이제껏 해왔던 것처럼 수중에 있는 금화만 빌려주자는 소리다. 없는 금화까지 만들어내지 말고.”

그 말에 록펠러는 차분히 고개를 저었다.

지금 당장 난색을 표하는 그도 막상 어마무시한 돈을 벌게 되면 그땐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록펠러는 무작정 밀어붙이기로 했다.

어차피 결과가 그의 생각을 바꿀 것이기에.

“아니요. 절대 안 돼요. 만약 저를 옆에 두고 싶다면 아저씨도 결정을 내리셔야 해요. 이번에도 절 믿고 가시든가. 아니면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시면서 절 잃으시든가.”

록펠러가 눈에 힘을 주어 그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결정은 아저씨 몫이에요.

“허어…… 이놈이.”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록펠러의 말에 카터가 꽤나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무슨 이런 조수가 다 있을까?

‘이놈은 진짜 뭐 하는 놈이지? 세상에 없는 돈까지 빌려주자고?’

만약 저 소년이 도라이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일까?

대체 뭐가 되려고 저런 생각을 한단 말인가?

‘모르겠어. 내가 대체 뭐 하고 같이 일하고 있는지.’

한숨만 푹푹 내쉬며 시간만 축내던 카터가 마지못해 수긍해 주었다.

미친 척 록펠러의 말을 한번 믿어보기로 한 것이다.

지금까지 잘 굴러왔고, 또 문제없이 잘 굴러간다면 록펠러 말대로 정말 큰돈을 만질 수 있을 테니까.

“솔직하게 말해서 잘 모르겠구나. 아마 네가 일을 잘하지 않았다면 난 절대 허락하지 않았을 게다. 내 상식에선 도무지 이해될 수 없는 일이거든.”

그 말에 록펠러는 씩 웃어 보였다.

“카터 아저씨,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결과만 보세요. 모르긴 해도 아마 흡족해하실 겁니다.”

“그래, 그렇긴 하겠지. 진짜 문제만 안 생긴다면 말이다.”

그가 약간 걱정 어린 기색을 내비치자 록펠러가 확신에 가득 찬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제가 장담하는데 이걸로 절대 문제 같은 거 안 생겨요. 이렇게 해 먹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테니까. 만약 이 세상에 없다면 다른 세상에라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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