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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명가의 창시자-32화 (32/181)

§32화 09. 형제는 용감했다(4)

록펠러와 대화를 마친 둘은 다시 용병 캠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말없이 걷는 두 형제의 머릿속은 이전보다 복잡해진 상태였다.

너무 정직하게 살 필요는 없겠지만, 작은 실수로 어렵게 구한 일을 잃어버릴까 봐 걱정했었던 둘째 앤드류의 머릿속엔 온통 이 생각뿐이었다.

‘너무 정직하면 돈을 못 번다고 했어. 맞는 말 같아.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니까 우리가 너무 정직하게 행동하면 그 사람들이 가진 돈을 가져올 수 없으니까.’

반면 둘째의 뒤를 졸졸 쫓아오는 조슈아의 머릿속엔 이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떻게 하면 록펠러 형이 말했던 것처럼 할 수 있는 거지? 그 아저씨들에게 들키지 않으면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당장 떠오르는 기발한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조슈아는 앞서가던 둘째 앤드류를 불러냈다.

“저기 앤드류 형.”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둘째가 조용히 뒤를 돌아보았다.

“왜?”

“저기…… 우리가 뭘 잘못한 걸까?”

둘의 잘못에 대해선 록펠러가 분명히 지적해 줬었다.

그걸 되새김질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건 오로지 둘의 몫이었다.

“못 들었어? 록펠러 형이 말해줬잖아. 넌 너무 직접적으로 사기 치려고 했어. 그런 식으로 사기 치면 안 돼. 만약 그 용병 아저씨들이 시장에 와서 우리가 식재료를 몇 개나 사 갔는지 일일이 다 확인해 보면 그땐 어떻게 하려고?”

“그건 알아. 하지만 돈을 벌려면 여기서 뭔가를 더 해야 하는 건 맞는 거잖아?”

“그거야…… 그렇긴 하지. 그런데 나도 딱히 널 탓할 생각은 없어. 단지 여기 식재료에 손을 대서 어렵게 구한 일을 잃어버릴까 그게 더 걱정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아니야.”

둘째 앤드류가 눈을 빛냈다.

“너무 정직하게 하는 것도 바보 같아 보이니까.”

“그럼 앤드류 형도 우리가 약간 정직하지 않게 행동하는 건 찬성하는 거야?”

“나도 뭐…… 돈만 크게 벌 수 있다면 상관없긴 하지. 어찌 됐든 돈이 최고니까. 하지만 네 방식대로 하는 건 아니야. 그건 너무 직접적이니까.”

“그건 맞아. 내가 초반에 제안했던 건 너무 직접적이었어. 만약 앤드류 형이 말했던 것처럼 그 일을 들켰다면 우린 바로 잘렸을 거야. 신뢰를 저버렸으니까.”

“결국 우리 둘 다 잘못했네.”

조슈아가 다시 물었다.

“그럼 앤드류 형도 납득할 수 있는 방법 중에서 우리가 그 아저씨들을 속일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록펠러 형이 말했던 것처럼 너무 직접적인 건 안 돼.”

“그럼?”

두 형제는 하던 심부름도 잊은 채 자리에 서서 머리를 맞대었다.

“직접적으로 사기를 치는 거랑, 아무도 모르게 사기를 치는 거랑 대체 뭐가 다른 걸까? 그냥 합법이냐 아니냐의 차이일까?”

“그럴지도?”

“그럼 여기 식재료에 직접 손대는 건 나쁜 짓이고, 그거 말고 나름 합법적인 선에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이 순간 조슈아의 뇌리를 가로지르는 게 있었다.

자신이 처음 제안했던 게 문제가 됐던 건 그 일이 들통났을 때 벌어질 일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일이 들통나지 않는다면?

“앤드류 형, 방금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데 이건 어때?”

“뭔데? 무슨 좋은 수가 있는 거야?”

“응! 우리가 여기 식재료에 몰래 손을 댈 수 없는 건 용병 아저씨들이 여기 시장까지 와서 얼마에 얼마나 사 갔는지 물어볼 수도 있기 때문이잖아? 그걸 들키면 우린 큰일 나는 거구.”

“그렇긴 하지.”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 우리만 숨기는 게 아니라 시장에서 식재료를 파는 아줌마 아저씨들하고 한통속이 되는 거야. 같이 속이는 거지!”

“그 말은 시장 사람들하고 같이 사기를 치자는 거야? 식재료 값을 올려서?”

“맞아. 예를 들어 1실링에 감자 20개라 치면, 그걸 파는 아줌마 아저씨들하고 얘기해서 용병 캠프에 파는 양만 1실링에 18개 이런 식으로 낮춰 버리는 거지. 그럼 기존 거래보다 감자 2개가 남는 거잖아?”

“그럼 그 남은 2개를 우리랑 감자 판 사람이랑 나눠 갖고?”

“응! 어때? 괜찮지 않아?”

앤드류는 조슈아가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가능할 거 같긴 한데…….”

앤드류가 가능할 것 같다고 하자 조슈아의 얼굴이 한층 더 밝아졌다.

“그렇지? 앤드류 형도 가능할 거 같지?”

“근데 시장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생각대로 해줄까?”

“감자 1개가 공짜로 생기는 건데 싫어할 이유가 없잖아?”

“그래도 사기 치는 거니까 이걸 싫어하실 분도 계실 수 있잖아?”

“그거야 그렇긴 한데…… 그럼 이건 어때? 싫다고 하신 분들은 빼고 괜찮다고 하시는 분들하고만 같이 하는 거야. 이럼 문제 없지 않을까?”

조슈아가 말을 이었다.

“어차피 우리는 감자든 당근이든 뭐든 남겨 먹으면 되니까. 그리고 시장에 있는 아줌마 아저씨들하고 같이 속이는 거라 용병 아저씨들이 여기까지 온다 해도 우리 비밀을 알아낼 길이 없어. 어차피 식재료 가격이야 시장에 계시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정하는 거구, 우린 그 정한 가격대로 식재료를 사 간 것밖에 없는 거잖아?”

셋째의 말에 둘째는 저도 모르게 긍정하고 있었다.

‘어쩌면 록펠러 형이 원했던 게 이런 거였을까? 남을 속여도 좀 더 치밀하게 속이는 거. 조슈아 말대로만 해도 들킬 일은 아마 없을 거야.’

조슈아가 생각해 낸 방법이 록펠러가 원하던 답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적어도 처음 제안했던 것보단 나은 방법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해보자. 들킬 일도 없겠지만, 만약 들켜도 우리만 사기 친 건 아니잖아?”

* * *

르반은 생각보다 늦게 돌아온 두 아이를 보고 표정을 약간 찌푸렸다.

“난 너희들이 그대로 도망친 줄로만 알았다. 왜 이렇게 늦은 거냐? 대체 어디서 뭘 한 거야?”

중간에 록펠러도 만나고, 또 시장 상인들을 찾아가 재차 흥정했던 시간이 있어 두 형제가 늦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르반이 옅게 성을 내자 아직도 숨을 헐떡이고 있던 조슈아를 대신하여 앤드류가 나섰다.

“그게 있잖아요. 중간에 우연히 들개 무리를 만나서요. 정말 죄송해요.”

“뭐? 들개들을 만났다고?”

놀란 르반이 엄했던 표정을 풀고 걱정 어린 시선을 주었다.

“어디 다치진 않았니? 들개라 해도 무리를 지으면 위험할 텐데?”

“괜찮아요. 돌멩이 쥐고 여차하면 던질 생각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여기 들개들은 사람들을 무서워해서 잘 피해 다녀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조심했던 거구요.”

앤드류가 보란 듯이 식재료 보자기를 툭툭 건드려주었다.

“그리고 저희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더 신경 쓴 것도 있었죠. 여기 있는 건 전부 안전해요.”

들개들만 보면 나무 몽둥이를 쥐고 냅다 뛰어드는 게 마을에서 노는 아이들이었다.

그러니 우연히 만난 들개들은 단순 핑곗거리였을 뿐 아무 위협도 아닌 존재.

하지만 이를 잘 알지 못하는 르반은 여전히 걱정 어린 시선으로 두 아이를 보고 있었다.

“그래도 아무 일 없어 다행이구나. 하긴 들개들도 건들면 위험하긴 하지. 잘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그보다 너무 늦은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그건 내일 너희들이 더 수고하면 되는 일이야. 그런 건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잠시 후 르반은 두 아이가 낑낑거리며 가져온 식재료 포대를 열어보았다.

확인이 필요했던 것이다.

‘뭐지?’

그런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평소보다 식재료의 양이 묘하게 적게 보였던 것이다.

‘뭔가…… 평소보다 양이 적어 보이는데? 그냥 느낌인가?’

확인 차 식재료를 꺼내 일일이 세어보니 평소보다 양이 적은 게 확실히 눈에 보이고 있었다.

“얘들아, 왜 평소보다 양이 이렇게 적은 거냐? 너희들 설마 여기에 손을 댄 건 아니겠지?”

만약 조슈아가 처음 생각했던 대로 식재료 몇 개를 슬쩍 한 상태였다면 아직 어린 나인지라 이 자리에서 실수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르반의 의심과는 전혀 무관하게 다른 식으로 그를 속인 상태인지라 그와 마주보는 앤드류는 거리낌 없이 나설 수 있었다.

그것도 얼굴에 강철 철판을 깔고서.

“네? 왜요? 무슨 문제가 있는 거예요?”

“여기 식재료 양이 조금씩 모자란 것 같은데? 우리도 매일 같이 식재료를 시키는데 왜 어제보다 식재료 양이 줄어든 거냐? 묘하게 조금씩 모자란 것 같은데 혹시 너희들이 여기서 몇 개 슬쩍한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이를 지켜보고 있던 조슈아도 나섰다.

“저희, 거기에 절대 손 안 댔어요! 정말이에요.”

“그럼 왜 평소보다 식재료 양이 줄어든 거냐? 준 돈은 똑같은데 식재료 양만 조금씩 줄어들었어.”

앤드류는 시치미를 뚝 떼고 물어보았다.

“전부 다 그런 거예요? 저희는 싱싱한 재료만 찾아서 여러 상인들한테 사 왔는데.”

식재료 양이 알게 모르게 줄어들긴 했으나, 모든 식재료가 그러한 건 아니었다.

식재료 중 몇 개는 이전과 양이 같았고, 또 어떤 건 눈에 보일 정도로 적게 준 것도 있었다.

“그런 건 아닌데, 그래도 몇 개는 많이 모자라 보이는데. 너희들, 아저씨가 분명 경고했었지? 절대 사기 치면 안 된다고.”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손사래까지 치던 앤드류가 직접 나서서 가져온 식재료를 살펴보는 척 연기를 시작했다.

“어라, 이거 왜 이래? 정말 좀 적게 주긴 했네요? 저희도 가끔 시장에 가서 장을 봐오거든요. 정말 아저씨 말대로 조금씩 적게 담아주긴 했네요.”

“너희들, 감히 어디서 시치미를 떼는 거냐? 아저씨한테 정말 크게 혼나볼래?”

“아니에요! 저흰 정말 시장 상인들이 준 그대로 가져왔어요. 이건 하늘에 대고 맹세할 수 있어요.”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는 거냐?”

“네! 정말이라니까요?”

르반이 팔짱까지 끼며 콧바람을 강하게 내뿜자 앤드류가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나섰다.

“저흰 정말 결백해요. 정말 시장 상인들이 준 그대로 가져왔다니까요?”

“당연히 증명은 안 되겠지?”

“증명이야 당연히 되죠!”

뜻밖의 말에 르반이 살짝 당황했다.

“뭐? 증명이 된다고?”

“네! 당연히 되죠! 저희야 결백하니까요.”

앤드류가 말을 이었다.

“제가 보니까 저희가 시장에서 이 식재료를 살 때 용병 캠프에 가져다줘야 한다면서 제일 싱싱하고 좋은 재료로 달라고 했거든요? 제가 볼 때도 그 정도 돈이면 이렇게까지 적게 주진 않아요. 오히려 시골 인심이 후해서 더 챙겨주면 챙겨줬겠죠. 이거 일부로 상인 아저씨들이 적게 준 거 같은데? 용병들이 돈 많다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지켜보던 조슈아도 나서서 도와주었다.

“설마 용병 아저씨들 돈 많다고 시장 아줌마 아저씨들이 일부러 적게 준 거야? 우린 싱싱한 거 달라고 한 것밖에 없는데?”

“그런 것 같은데?”

“하…… 록펠러 형이 용병 아저씨들 돈 많다고 하던데 설마 그런 것 때문에 그런 거야?”

가만히 지켜보던 르반이 게슴츠레 뜬 눈으로 아이들을 노려보았다.

‘모르겠어. 거짓말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럼 이렇게 하자꾸나. 내일만 수고스럽게 이 아저씨가 여기 동료 하나를 붙여줄 테니까 같은 돈으로 이것과 아주 똑같이 사 오거라. 만약 너희 말이 맞다면 그놈의 시장 상인들이 우리에게 눈탱이를 맞힌 거겠지.”

그 말에 앤드류와 조슈아는 속으로 크게 안도할 수 있었다.

어차피 결과는 똑같을 테니까.

다음 날.

르반은 제 앞에 있는 결과물을 보고선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거의 똑같다고? 그럼 그 시장에 있는 놈들이 우리에게 눈탱이를 맞혔다는 거야? 그런 거야?’

“이봐, 제대로 따라가서 본 거 맞아?”

르반이 아이들을 따라갔던 동료 용병에게 묻자 그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여주었다.

정말 아이들 말대로 시장 상인들이 대놓고 자신들에게 눈탱이를 맞힌 모양이었다.

“저희 말 맞죠? 저흰 사기 안 쳤어요!”

“저희는 시장에서 그대로 사 온 죄밖에 없어요! 정말 결백해요!”

앤드류와 조슈아가 기세등등하게 쏘아붙이자 르반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다.

“하…… 이놈의 상인 놈들이 감히 우리한테 눈탱이를 맞혀? 우리가 돈 좀 번다 이거지?”

아무래도 용병들이 돈깨나 만진다는 소문이 시장에 돈 모양이었다.

거기다 다 큰 어른도 아니고 애들에게 심부름을 시켰으니 그 약삭빠른 시장 상인들이 눈탱이 맞힌 게 어느 정도 납득이 되기 시작했다.

“……내가 다 미안하구나. 너흴 오해하고 말았으니.”

르반에 말에 앤드류와 조슈아는 동시에 안도할 수 있었다.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는 거죠, 뭘.”

“네! 저흰 괜찮아요! 그럼 앞으로 계속 이렇게 가져다드리면 되는 거죠?”

서로 간의 신뢰는 거래의 생명.

그 신뢰가 지켜졌기에 르반도 두 아이와 거래를 끊을 이유가 사라졌다.

“물론이지. 앞으로도 잘 부탁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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