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31화 (31/181)

§31화 09. 형제는 용감했다(3)

두 형제의 이름을 듣고 난 세트는 두 아이가 평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로스메디치라…… 평민인가 보군.’

“그런데 너희들…….”

말꼬리를 흐리는 세트는 우연히 방코에서 만났던 조수 소년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앤드류와 조슈아의 얼굴이 록펠러와 어느 정도 겹쳤기 때문이다.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

“아니다. 아무튼 앞으로 잘해보자. 그럼 저쪽으로 가 봐라. 저기서 르반이 기다리고 있을 거다.”

“네!”

우렁차게 대답한 두 형제는 세트가 가리키는 곳으로 향했고, 간이취사장으로 꾸며진 그곳에서 한쪽 다리에 나무 의족을 찬 요리사 아저씨와 마주하게 됐다.

르반.

과거엔 그 역시 전장을 누비던 용병이었으나, 오우거와의 전투에서 한쪽 다리를 잃은 뒤 동료들의 식사를 담당하는 요리사로 전향한 자였다.

한쪽 다리가 없는 사람치고는 덩치가 매우 커서 두 아이에겐 굉장한 위압감을 주고 있었다.

“너희들이냐? 오늘부터 시장에서 식재료를 가져오겠다는 애들이.”

“네!”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형제의 목소리는 꽤 우렁찼으나 르반은 눈을 게슴츠레 뜨며 두 형제를 의심부터 하고 봤다.

심부름을 시키기엔 어리기도 하고, 이번이 처음이라 믿음이 안 갔던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바쁜 용병들을 대신하여 식재료를 가져올 사람은 꼭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표정만 보면 사기 칠 것 같지는 않고.’

좋은 식재료를 사 오라고 하면 엉뚱하게도 나쁜 식재료를 구해다 주고 남은 돈으로 제 배를 채우는 이들이 간혹 있긴 했었다.

그런 이유로 동료들을 시켜 식재료를 수급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찾아온 아이들을 보니 르반은 차라리 잘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라 순진할 거라 생각한 것이다.

“너희들. 심부름하겠다고 하고 나중에 몰래 도망쳐 버리면 그땐 이 아저씨들이 단체로 잡으러 가는 거 알고 있지?”

르반이 무서운 얼굴로 으름장부터 내놨으나 이미 돈 벌 생각에 신이 난 두 형제에겐 들리지도 않는 소리였다.

“사기 같은 거 안 쳐요! 저희가 어디 사는지 알려드릴까요? 그럼 믿고 맡겨주실 거죠?”

“믿어주세요! 정말 잘할 자신 있어요!”

오히려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자 르반이 좀 전과는 다른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근데 말이다. 뭐가 그리 신난 거냐?”

“그야 돈 벌 수 있잖아요!”

“당연히 신나죠! 일만 잘해주면 하루에 1실링씩 버는 건데!”

1실링이 그리 대단한 돈이었던가?

물론 시골 노동자의 하루 품삯 정도니 너무 적은 돈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랜 용병 생활을 하던 그에게 있어 1실링은 그다지 큰돈이 아니었다.

한 다리를 잃고 동료의 식사를 책임지는 그였지만 그래도 보수는 동료들과 비슷하게 받고 있었고, 용병들의 일이 어렵고 매우 위험한 만큼 보수는 꽤나 짭짤한 수준이었으니까.

“너희들에겐 1실링도 크긴 하겠구나. 알았다. 우선 오늘 사 올 재료부터 알려주마.”

르반이 말하자 셋째 조슈아가 집에서 가져온 작은 메모지와 휴대용 깃펜을 꺼내 들었다.

전부 그의 아버지가 쓰던 유품이었다.

“어떤 거 사 오면 돼요?”

그 모습을 본 르반이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희들…… 글을 아는 거니?”

“네! 글이야 당연히 알죠.”

제국 변방 지역에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아이가 있다는 건 꽤나 놀라운 일이었다.

다 큰 어른들도 잘 모르는 게 바로 글이라는 것이었으니까.

특히나 글을 몰라야 용맹해진다는 이상한 속설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그의 입장에선 더욱 그러했다.

“따로 외울 필요는 없으니 잘됐구나. 그럼 사 올 재료에 대해 말해주마.”

르반이 당장 오늘 저녁부터 쓸 식재료를 말해주었고, 조슈아는 그것을 잘 받아 적었다.

“식재료는 비싸도 좋으니 무조건 좋고 싱싱한 거로 가져와야 돼. 엊그제부터 귀한 손님이 오셔서 굉장히 신경 써야 하든.”

앤드류가 의문을 드러냈다.

“여기에 누구 있는 거예요?”

“이번 토벌에 마법사가 합류했거든. 그놈의 오크 주술사가 뭔지.”

“마법사가요? 그게 정말이에요?”

시골 아이들에게 있어 칼 쓰는 용병만큼이나 관심을 갖는 대상이 바로 평생 동안 한 번 보기가 힘들다는 마법사란 존재였다.

“그럼 마법사는 어딨는 거예요?”

앤드류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물어보자 르반은 손부터 내저었다.

자기들에게도 귀한 손님인데 괜히 아이들에게 알려주어 그들을 귀찮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안 돼. 높으신 분들인데 너희들이 찾아가서 귀찮게 하면 되겠니? 그냥 있다고만 알고 있거라.”

그 말을 듣고 같이 있던 조슈아도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고 있었다.

“와 대박! 앤드류 형, 여기에 마법사가 있는 거 알고 있었어?”

“아니, 몰랐지! 그걸 어떻게 알아? 소문도 안 났었는데.”

무언가 대단한 걸 발견한 마냥 신이 나서 떠드는 두 아이를 두고 르반은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빨리 움직이거라. 그 작은 몸뚱이로 그 많은 식재료를 다 가져오려면 못해도 하루에 두세 번은 왔다 갔다 해야 하니까.”

“네!”

돈을 받고 용병 캠프를 떠난 두 형제는 곧장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까지 가는 길이 멀긴 했으나 돈 벌 생각에 잔뜩 흥분해 있던 두 형제에게 용병 캠프와 시장과의 거리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흥분된 마음으로 마을 시장에 도착한 두 형제는 르반이 말했던 식재료들을 사기 시작했고,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식재료를 산 뒤 곧바로 용병 캠프로 향했다.

하지만 시장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셋째 조슈아가 자신보다 앞서가던 둘째를 불러 세웠다.

“앤드류 형!”

“왜?”

“잠깐만. 나 할 말 있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식재료를 잠시 바닥에 내려놓은 조슈아가 말을 이었다.

“방금 생각한 건데. 우리 있잖아. 여기서 조금만 빼돌릴까?”

“빼돌리자고? 그게 무슨 소리야?”

“그게…… 다 옮기려고 하니까 조금 힘들기도 하구. 그냥 내가 생각할 땐 여기서 몇 개 빼도 티도 안 날 거 같아서.”

그러자 둘째 앤드류가 날 선 목소리로 조슈아를 다그쳤다.

“안 돼! 그럼 사기 치는 거잖아!”

“그렇긴 한데…….”

말꼬리를 흐렸던 조슈아가 다시 한번 앤드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몇 개만 빼돌려도 절대 티도 안 날 거야.”

“안 된다니까! 너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야. 우린 그 아저씨들하고 약속했어. 절대 사기 치지 않겠다고.”

“그렇다고 이걸 다 가져다줄 거야? 그럼 수고비라도 좀 더 받아야지. 이거 힘들단 말이야.”

“수고비는 이미 받았잖아.”

“더 받을 수도 있는 거지.”

“너 진짜 그럴 거야?”

“앤드류 형,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 봐. 우리가 바보같이 다 가져다줄 필요는 없다니까?”

둘째 앤드류는 셋째 조슈아의 부도덕한 면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반대로 조슈아는 너무 정직하게만 하려고 하는 둘째 형이 답답하게 보였다.

“어차피 여기서 조금만 빼돌려도 그 사람들은 잘 모를 거야. 그리고 여기서 몇 개만 빼돌리면 저녁에 우리 식구들 좀 더 배부르게 먹을 수 있어. 앤드류 형도 알고 있잖아? 우리 입이 많아서 맨날 저녁 식사마다 배고파하는 거.”

“그래도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 * *

“그래서 찾아왔다고?”

록펠러는 자신을 찾아온 두 동생을 보았다.

심부름 도중 누가 옳은지 말씨름을 하던 두 동생이 빠른 해답을 찾고자 맏형이 있는 카터 방코에 들른 것이다.

방코에 오기 직전 둘은 이런 대화를 나눴었다.

“어차피 시장 근처니까 방코에 가서 록펠러 형에게 물어보자. 누구 말이 옳은지 록펠러 형이 알려줄 거야.”

“그래 좋아. 만약 록펠러 형이 내가 잘못했다고 하면 나도 더 이상 강요하지 않을게. 대신 록펠러 형이 내 편을 들어주면 앤드류 형도 아무 말 안 하는 거다?”

“그래, 그렇게 해. 대신 록펠러 형이 네가 잘못했다고 하면 여기 식재료엔 절대 손 안 대는 거다?”

“물론이지!”

금화를 세공하다 잠시 가게 안쪽으로 나온 카터가 방코에 찾아온 두 아이를 보며 물었다.

“네 동생들은 무슨 일로 찾아온 게냐? 혹시 큰일이라도 생긴 건 아니겠지?”

“아니요. 큰일은 아니고 그냥 가족 얘기예요.”

“그래?”

카터에게 잠시 양해를 구한 록펠러는 두 동생을 데리고 가게 밖으로 나갔다.

그러곤 둘이 다툰 내용에 대해 자기 생각을 밝히기 시작했다.

“너희 둘이 다툰 걸 가지고 형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여기서 말해줄게.”

마치 재판관 앞에 선 것처럼, 앤드류와 조슈아는 목울대로 침까지 삼켜가며 맏형인 록펠러의 말을 기다렸다.

“너희 둘 다 맞았고, 너희 둘 다 틀렸어.”

어느 한쪽 편을 들어줄 줄 알았던 록펠러가 의외의 대답을 내놓자 두 동생은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록펠러 형, 그게 무슨 말이야?”

“둘 다 맞았고, 둘 다 틀렸으면 우리 둘 중에 맞았던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거야?”

“어쩌면 그렇게 되는 거지.”

당황한 두 동생에게 록펠러는 제 생각을 전해주었다.

“앤드류처럼 어떤 거래에 있어서 신뢰를 내세우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야. 이건 나중에 큰돈을 만지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일이지.”

그 말을 듣자 앤드류가 기뻐했고, 반대로 조슈아는 시무룩해졌다.

“그럼…… 앤드류 형이 말한 것처럼 무조건 정직하게 해서 그 사람들한테 신뢰를 줘야 하는 거야?”

“아니, 그렇다고 너무 정직할 필요는 없어. 신뢰를 주되, 굳이 정직할 필요는 없다는 거지.”

그 말을 듣고 둘의 표정이 또다시 바뀌었다.

의문을 품는 두 동생을 상대로 록펠러는 말을 이어나갔다.

“무조건 정직해서는 큰돈을 만질 수가 없어. 그렇다고 신뢰를 잃는 것 또한 큰돈을 만질 수 없지. 그러니까 신뢰를 주되, 굳이 정직해질 필요는 없다는 거야. 이해하겠어?”

이상한 말에 두 동생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록펠러 형, 어려워서 이해가 잘 안 돼. 그게 무슨 말이야?”

“나도 마찬가지야. 신뢰를 주면서 정직할 필요는 없다는 게 이해가 안 돼.”

록펠러가 말했다.

“결국 돈을 번다는 건 남의 돈을 가져오는 결과야.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남의 돈을 가져와야 할까? 정직하게? 너무 정직하면 사람들은 절대 자기 돈을 내주지 않아. 그들은 바보가 아니니까. 그래서 앤드류 말처럼 하면 절대 돈을 벌 수 없어. 그렇게 하려면 바보들을 상대로 돈을 벌어야 하니까.”

그 말에 앤드류가 의기소침해졌고, 반대로 조슈아가 의기양양해졌다.

“그래!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야! 너무 정직하게 행동하면 록펠러 형 말처럼 돈을 벌 수가 없어.”

“하지만 정직할 필요가 없다고 해서 조슈아처럼 무조건 사기를 쳐도 된다는 말은 아니야.”

그러자 이번엔 조슈아 역시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아까 둘이 말한 걸 들어보니까 조슈아 너는 너무 직접적으로 사기를 치려고 했어. 그런 식으로 남을 기만하는 건 절대 좋은 행동이 아니야. 사실상 도둑질이나 마찬가지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

조슈아의 물음에 록펠러는 옅은 미소를 보였다.

“어떻게 해야 하긴. 나름 합법적인 선에서, 그들과의 신뢰를 깨버리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모르게 사기를 치는 거지.”

이렇게 하는 이유.

간단했다.

“그래야 큰돈을 벌 수 있으니까.”

선과 악.

그 경계가 모호한 말에 두 동생은 이해하려 애쓰는 모습을 보였고, 반대로 록펠러는 그런 동생들에게 빠른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잘 모르겠어.”

“나도…….”

“지금 형이 한 말이 너무 어려울 수도 있어. 하지만 앞으로 주어진 시간은 많아. 지금부터라도 형이 한 말을 가슴에 새기고 그 일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봐. 그럼 다른 길이 보일 수도 있어. 주어진 길보다 더 많이 벌 수 있는 다른 길이 말이야.”

대화를 마치려는 록펠러가 강조하듯 이 말을 두 동생에게 전해주었다.

“설령 그 사람들을 기만할 수 있는 좋은 수가 없더라도 절대, 절대로 그들과의 신뢰를 저버리진 마. 설사 돈을 적게 벌더라도 그 신뢰가 깨진다는 건 결국 모든 걸 잃게 된다는 걸 뜻하게 되니까. 그러니까 이걸 염두에 두고 그 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봐. 분명 좋은 수가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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