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30화 (30/181)

§30화 09. 형제는 용감했다(2)

갑작스러운 말에 둘째가 당황했다.

“무슨 소리야? 돈 벌 방법이라고?”

“저기 용병 아저씨들 있잖아. 저 아저씨들 꽤 먼 데서 오지 않았어? 마을 근처엔 없는 거로 아는데.”

“저 아저씨들? 아마 먼 데서 왔을걸? 마을 근처에 없어.”

전쟁놀이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있어 칼을 차고 다니는 용병대는 최고의 관심사였다.

특히나 소문난 용병대라면 두말 할 것도 없었고, 그런 이유로 호기심이 동한 아이들끼리 잔뜩 무리를 지어 용병대가 머물고 있는 캠프 근처까지 갔다 왔었기 때문에 그들 위치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 그런데 왜 그렇게 먼 곳에 자리를 잡은 거야? 혹시 앤드류 형은 알아?”

“여기 시어들하고 사이가 안 좋대. 영지 사람이 아니니까 시어 아저씨들이 굉장히 싫어하나 봐. 용병 아저씨들도 알아서 거리를 두는 것 같고.”

둘째 앤드류의 친구들 중에선 제법 붙임성이 좋은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 중 하나가 지나가는 하운드 용병들에게 물어보니, 그런 대답을 했었고 그것을 앤드류가 옆에서 주워들은 것이다.

“그래?”

“그런데 아까 무슨 소리야? 돈 벌 방법이 있다니. 너 헛소리하면 진짜 맞는다?”

둘째 앤드류가 으름장을 놓자 셋째 조슈아가 눈을 빛냈다.

“진짜야. 앤드류 형, 지금부터 내가 한 말을 잘 들어봐. 저기 용병 아저씨들 있잖아. 진짜 먼 곳에서 시장에 식재료 사려고 들른 거 맞지? 그렇지?”

“그렇기야 하지.”

“그럼 우리가 저 아저씨들 대신 심부름을 해주면 되잖아. 생각해 봐, 저 아저씨들도 매번 여기까지 나오는 게 귀찮을 거 아니야.”

“지금 심부름을 하자고?”

“응, 심부름을 해주면 대신 수고비를 줄 거 아냐.”

잠시 생각해 보던 둘째도 나름 수긍하는 눈치였다.

“괜찮은 것 같은데?”

“앤드류 형, 이거 딴 애들이 먼저 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하자.”

셋째 조슈아가 바람을 넣자 둘째 앤드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섰다.

“내가 가서 말해볼게.”

앤드류가 직접 나선다고 하자 조슈아는 군말 없이 그의 뒤를 졸졸 쫓아갔다.

그러면서 둘째 형을 치켜세웠다.

‘역시 이런 일은 둘째 형이 최고라니까.’

어느새 용병대의 뒤꽁무니까지 쫓아간 앤드류가 목소리를 냈다.

“저기 아저씨들.”

내기에서 져 마을 시장까지 나오게 된 하운드 소속 용병들은 짜증을 잔뜩 머금고 있는 상태였다.

안 그래도 야영지와 마을 시장과의 거리가 꽤 되는데, 오늘 식재료 당번으로 당첨된 것이다.

또한 고약한 용병들의 특성상 마을 시장까지 가는 것은 무조건 걸어서 이동해야만 했다.

그게 내기의 조건이었으니까.

“뭔데?”

웬 꼬마 하나가 당돌하게 찾아와 말을 붙이자 험악하게 생긴 용병들이 표정부터 구기고 봤다.

분명 날파리처럼 엉겨 붙어 돈 좀 달라고 떼를 쓰는 귀찮은 마을 아이들을 생각한 것이다.

“돈 달라고 찾아온 거면 일 없다. 털어서 먼지 하나 나오나.”

손까지 훠훠 내젓는 어느 용병에게 앤드류는 용기 있게 나섰다.

“그게 아니라 혹시 심부름할 사람 필요하지 않아요?”

그러자 뒤에서 잠자코 지켜보던 조슈아가 둘째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자신은 겁이 많아 둘째처럼 어른들을 상대로 당돌하게 말을 못 붙이기 때문이었다.

“심부름? 일 없으니까 그냥 가라.”

귀찮은 티를 팍팍 내며 찾아온 아이들을 쫓아버리려고 하는 용병 하나가 제 길로 떠나가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다른 용병이 앤드류가 한 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야, 방금 뭐라고 했냐? 심부름?”

용병들 중 하나가 관심을 보이자 이때다 싶었는지 둘째가 입가를 길게 휘었다.

“네, 심부름할 사람 필요하지 않냐고 물어봤었죠. 아저씨들, 캠프에서 거리가 좀 되실 텐데 매번 식재료 사러 여기까지 오는 거 힘들지 않아요? 매번 그렇게 하실 거면 차라리 저희한테 시키세요. 저희가 아저씨들이 있는 데까지 확실히 가져다드릴게요.”

앤드류에게 관심을 보이던 용병 하나가 긴 휘파람을 불며 앞서 떠나간 두 용병들을 불러냈다.

“야! 여기 애가 우리 대신 심부름해 주겠다는데?”

“무슨 심부름?”

“일단 이쪽으로 와봐.”

용병들 중 누군가는 매번 식재료를 사러 가기 위해 마을 시장까지 오는 희생을 감수해야만 했다.

한 번에 많은 식재료를 사 가는 방법도 있긴 했으나 너무 오래된 식재료로 음식을 준비하다 보면 음식 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날 쓰일 식재료는 내기에서 진 누군가가 매번 마을 시장까지 와서 사 갔던 것이다.

“안 그래도 곧 바빠질 것 같은데 매번 이렇게 할 순 없잖아? 다들 쉬기도 바쁜 마당에 여기까지 올 짬이 어딨어? 그냥 여기 애들 시켜서 식재료 문제를 해결하자고.”

그 말을 듣고 같이 왔던 두 용병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오크 주술사 문제로 기약 없이 늘어지던 토벌 작전이 마법사 영입으로 인해 슬슬 시작될 조짐을 보이고 있었고, 그렇게 토벌 작전이 시작된다면 눈곱 뗄 새도 없이 바빠질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나는 괜찮은 거 같은데?”

“나도.”

그렇게 뜻이 모이자 용병 하나가 약간 의심쩍은 표정으로 앤드류와 마주 보았다.

“야, 꼬맹아.”

“네.”

“너 구라치면 이 아저씨한테 죽는다? 이 아저씨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있지?”

“구라는 무슨 구라에요! 저 절대 구라 안 쳐요! 진짜 며칠만 믿고 맡겨보세요.”

“진짜지? 그럼 내일부터 아저씨들이 말한 거 우리 캠프까지 사다 줄 수 있니? 보수는…….”

상대는 적은 돈으로도 부려먹을 수 있는 아이였으나, 캠프와 마을 사이의 거리가 꽤 됐기에 너무 적은 돈으로 부려먹기엔 무리인 점이 있었다.

“야, 그 정도면 1실링이면 돼. 쟤들한테 그것도 진짜 큰돈이니까.”

“그래, 하루마다 1실링씩 주마. 대신 식재료는 확실히 사다 주는 거다? 알았지?”

“네! 물론이죠! 믿고 맡겨주세요.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게요.”

그렇게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용병들은 내일 아침 일찍 캠프 근처로 찾아오라는 말과 함께 시장에서 산 식재료를 들고 떠나갔다.

용병들이 떠나가자 흥분감을 감추지 못하는 둘째 앤드류가 셋째 조슈아를 향해 환호성을 내질렀다.

“야! 돈 벌었어! 내일부터 1실링씩 버는 거야!”

“잘했어, 형! 역시 둘째 형이 최고야!”

“내가 무슨 최고야! 그 생각을 한 네가 최고지!”

그렇게 둘은 한동안 서로 부둥켜안고 좋아했다.

“록펠러 형도 분명 좋아할 거야! 위험한 일도 아니잖아!”

“당연히 좋아하겠지! 1실링이면 우리 가족 매일 배 터지게 먹고도 남는데!”

그날 저녁.

동생들과 저녁 식사를 하던 록펠러는 뜻밖의 소식을 접하게 됐다.

“뭐? 심부름을 하게 됐다고?”

무엇이 그리 좋은지 셋째 조슈아는 계속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응! 앞으로 용병 캠프에 식재료는 우리가 가져다주기로 했어. 용병 아저씨가 낼 아침 캠프에 오래.”

“그래?”

록펠러는 잠시 용병 캠프가 있는 곳을 생각해 봤다.

마을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었으나, 두 동생이 못 찾아갈 거리는 아니었다.

도보로는 왕복 두어 시간 걸리는 길이었으니까.

그리고 생각보다 안전한 길이었다.

사냥꾼 캠프와 나무꾼 캠프가 자리 잡은 곳인지라 유사시 그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잘됐네. 매일 심부름 해주고 1실링씩 받으면 나쁘지 않겠다.”

“그렇지? 록펠러 형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당연하지. 잘했어. 대신 숲 근처니까 위험한 일이 생기면 곧바로 사냥꾼 캠프나 나무꾼 캠프로 가는 거 알고 있지? 형은 다 좋은데 위험한 건 딱 질색이야.”

“당연하지!”

셋째가 우렁차게 대답하자 같이 있던 둘째 앤드류도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록펠러 형! 나 친구들하고 맨날 거기서 노는 거 몰라? 거긴 톰슨 아저씨랑 빌 아저씨도 있어서 안전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진짜 아무 일도 없는 곳이야.”

“그래,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안전은 항상 생각해.”

“걱정하지 말래두!”

작은 일거리를 찾아온 두 동생과 대화를 마친 록펠러는 그 관심을 말없이 저녁 식사에 임하고 있던 나머지 두 동생에게 옮겼다.

“레오는 오늘 무슨 일 없었어?”

록펠러의 물음에 넷째 레오가 약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해주었다.

“있었어.”

“있었다고?”

평소 조용하게 지내던 레오가 할 대답은 아니었다.

록펠러가 관심을 보이며 재차 물어보았다.

“무슨 일 있었는데?”

“그게…… 루시아랑 교회에 갔었어. 예전에 1실링 준 사제 아저씨랑 만났는데 그 아저씨가 교회에 오라고 했거든.”

“교회에 갔다고?”

“응, 가니까 빵을 줬어. 어린 성자를 위한 일용할 양식이래. 아저씨가 말했는데, 앞으로 빵이 먹고 싶으면 주말마다 교회에 오래.”

레오가 루시아를 데리고 교회에 갔다고 하자 둘째가 툴툴거렸다.

“교회를 왜 가. 그런 귀찮은 데를.”

셋째 조슈아 역시 둘째와 같은 생각이었다.

“맞아. 그런 귀찮은 데를 왜 간 거야? 그냥 우리 따라오지. 오늘 진짜 좋았는데.”

“그냥…….”

넷째 레오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하자 록펠러가 그런 레오를 다독여주었다.

“잘했어. 교회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 심심하면 앞으로 자주 가도 돼.”

“정말?”

화색이 돈 레오가 록펠러를 빤히 쳐다보자 록펠러는 약간 부담스러움을 느꼈다.

레오의 모습이 평소답지 않았던 것이다.

‘교회에 간 게 좋았나 보네. 저렇게 좋아하는 걸 보면.’

넷째는 다른 형제들보다 말수도 적고 조용조용한 성격인지라 어느 것에 크게 관심을 보인 적이 없었다.

있다면 오늘 교회 이야기가 나왔을 때가 유일했다.

“레오야, 그냥 편하게 다녀. 여기서 네가 교회 간다고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그러자 셋째 조슈아가 조그맣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교회로 빠질 넷째의 일손이 못내 아쉬웠던 것이다.

“레오가 교회에 가면 나랑 앤드류 형이 식재료 옮기는 게 힘들어지는데…….”

“사제 아저씨가 주말에만 오랬어. 평일엔 형들 도와줄게.”

지켜보던 록펠러가 나섰다.

레오에겐 따로 할 일이 있었던 것이다.

“아니야. 레오는 맨날 루시아 돌봐야 하니까 굳이 일 안 하고 집에만 있어도 돼.”

그 말에 둘째와 셋째는 감히 토를 달지 못했다.

록펠러의 말처럼 막둥이 루시아를 매일같이 돌보는 건 항상 넷째의 몫이었으니까.

“그래, 레오는 루시아 돌봐야 하니까.”

나름 수긍했는지 둘째 앤드류가 목소리를 냈고, 레오의 일손이 아쉬웠던 셋째 조슈아 역시 마지못해 수긍해주었다.

“알았어. 레오는 루시아만 잘 돌봐줘. 루시아 돌보는 것도 일이니까.”

날이 밝자 두 형제는 곧장 용병대 캠프가 있는 마을과 좀 떨어져 있는 숲으로 향했다.

도착한 용병 캠프.

그곳엔 여러 용병들이 아침 일찍부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늘부터 토벌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용병들은 캠프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는 두 아이를 보고선 곧장 용병대장 바로 아래에 있는 세트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었다.

아이들 심부름과 관련된 것은 어제 전부 이야기가 됐었다.

곧 시작될 토벌 작전으로 일손이 많이 귀해질 테니 식재료 수급과 같은 자질구레한 일은 마을 아이들에게 떠넘기기로 말이다.

“너희들 왔구나. 얘기는 들었다.”

“어제 그 아저씨는 어딨어요? 그 아저씨랑 만나야 하는데.”

용병 캠프 안쪽을 힐끔거리는 앤드류가 어제 대화를 나눴던 용병을 찾자 세트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꾸해 주었다.

“그냥 아저씨랑 말해도 돼. 너희들이 식재료 심부름을 하겠다고?”

“네!”

“저희한테 맡겨주세요! 정말 잘할게요!”

두 아이가 힘차게 답하자 세트는 캠프 안쪽에 위치한 간이취사장 쪽을 가르쳐 주었다.

“그럼 저기 국자 들고 있는 아저씨한테 가 봐라. 저 아저씨가 오늘 뭐가 필요한지 너희에게 알려줄 거야. 그걸 너희가 시장에 가서 사 오면 되는 거고.”

말을 마치매 두 아이가 간이취사장 쪽으로 향하려 하자 세트는 두 아이를 불러 세웠다.

“야! 잠깐만. 그런데 너희 이름이 뭐냐? 자주 볼 텐데 이름 정도는 외워둬야지.”

“저희요?”

“그래, 둘 다 이름이 뭐냐?”

그 물음에 두 형제는 힘차게 답해주었다.

“전 앤드류 로스메디치예요!”

“전 조슈아 로스메디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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