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07. 화폐의 탄생(2)
“거짓말하지 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정말이라니까?”
담비를 잡기 위해 울타리 근처에서 모인 아이들은 앤드류가 한 말을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방코에서 일을 했으면 당연히 돈을 받아와야지 무슨 종이 같은 걸 받아왔다는 거야? 이해할 수 없는데.”
“그거 진짜 종이였어? 달란트가 아니라?”
“응, 나보고 무슨 차용증서라고 하던데? 앞으론 그게 돈이 될 수 있다고 했어.”
“차용증서? 그게 뭐야?”
“나도 처음 들어봐.”
“앤드류, 너희 형 혹시 방코에서 사기당한 거 아니야?”
그들이 가진 상식으로는 오직 금화와 은화만이 진짜 돈이었고, 앤드류의 형인 록펠러가 방코에서 첫 월급으로 가져온 정체불명의 차용증서는 돈이 아니었다.
“진짜 사기당한 거 같은데.”
“나도.”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응.”
그러자 앤드류가 자신감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사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그거 가지고 방코에 가면 곧바로 금화로 바꿔준대.”
“진짜?”
“그거 진짜야?”
“응.”
“와, 대박.”
“그거 거짓말 아니지?”
앤드류는 피식 웃으며 대꾸해 주었다.
“우리 형이 방코에서 일하는데 당연히 진짜지. 아니면 우리 형이 왜 방코에서 그런 종이돈을 가져왔겠어?”
“와~ 신기하다. 그럼 그거 가지고 방코에 가면 바로 달란트로 바꿔준다고? 그럼 돈이나 마찬가지잖아?”
“맞아. 방코에서 달란트로 바꿔주면 돈이잖아?”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앤드류가 맞장구를 쳐주었다.
“당연히 돈이지! 아니면 내가 돈이라고 했겠어? 두고 봐. 우리 형이 앞으로 그 종이를 사람들이 돈처럼 쓴다고 했거든?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지켜보면 알게 되겠지.”
앤드류가 제 또래 친구들에게 새로운 돈을 설명하는 것처럼.
필요한 물건이 있어 시장에 들른 록펠러 역시 앤드류와 같은 수고를 하고 있었다.
다만 앤드류와 다른 점은 직접적으로 사람들과 부딪히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Gold란 차용증서를 마치 돈처럼 쓰려고 한다는 점이었다.
“……그게 뭐니?”
재단사의 가게에서 옷을 맞춘 록펠러가 지불한 것은 종이로 된 무언가였다.
“아, 이거요?”
그의 반응이야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기에 록펠러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자신이 건넨 새로운 차용증서에 대해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제가 방코에서 급여 대신 가져온 거예요. 아까 달란트 대신 방코의 차용증서도 받아주신다고 하셨잖아요?”
재단사가 운영하는 가게의 경우 다른 가게들보다 제법 큰 돈이 오가는 곳인지라 달란트 거래 외에 방코의 차용증서도 돈처럼 받아주는 곳이었다.
“그렇기야 한데…….”
그의 표정이 좋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록펠러가 내민 것은 평소에 보던 차용증서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차용증서였기 때문이었다.
“우리 가게에서 차용증서를 받아주고 있기는 한데…… 이건 난생처음 보는 차용증서구나.”
그 말을 듣고 록펠러가 기다렸다는 듯이 1 Gold라는 차용증서에 대해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그 설명을 듣고 난 재단사가 짐짓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걸 영주님께서 보장해 준다고?”
기존의 1 IOU라는 차용증서는 방코에서 직접 보증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록펠러가 건넨 1 Gold라는 차용증서는 방코가 아닌 영주가 직접 보장해 준단다.
“네, 정확히는 영주님이 저희 가게에 주신 차용증서를 담보로 발행된 거죠. 그러니까 영주님께서 보장해 준다는 건 어느 정도 맞는 거죠.”
“그 말이 그 말이지.”
새로운 차용증서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재단사의 표정에 진한 호기심이 어렸다.
‘영주님께서 보장해 준다고? 방코 업자도 아니고 영주님이?’
세상에 일개 방코 업자가 아닌 영주가 직접 보장해 주는 차용증서라니!
재단사는 아직도 반신반의한 마음이었다.
“설마 거짓말은 아니겠지?”
“거짓말은요. 제가 방코에서 일하는 거 모르세요?”
재단사 역시 카터 방코를 찾는 우수한 고객 중 하나였고, 록펠러가 거기서 일한다는 걸 모르지 않고 있었다.
“아니, 네가 거기서 일한다는 건 나도 봐서 알고 있는데. 이런 건 처음 봐서 그렇지.”
“이게 나온 지 얼마 안 됐거든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차용증서.
잠시간 고민하던 재단사는 우선 확인부터 해보기로 했다.
이전의 차용증서와 마찬가지로 방코에서 별문제 없이 달란트로 교환이 가능하다면 못 받아줄 이유는 전혀 없었으니까.
“우선 너희 가게에 가서 직접 확인부터 해보고 그걸 받아야겠구나. 당장 네 말만 믿고 받기엔 좀 그래서.”
“그거야 편한 대로 하세요. 그럼 절 따라 가게에 가시겠어요?”
재단사는 록펠러와 함께 카터 방코에 찾아가 록펠러가 건넨 1 Gold라는 차용증서를 달란트로 교환해 보았다.
물론 여기서 문제 따윈 없었다.
재단사는 제 앞에 놓인 달란트를 보고선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거 진짜였잖아? 그럼 이 아이 말대로 이번에 새로 나온 차용증서인 건가?’
그러자 방코 주인인 카터가 재단사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자네, 이걸 직접 확인하러 왔나?”
“네, 여기서 일하는 아이가 이상한 걸 내밀기에 직접 확인하려고 왔습니다.”
“이번에 새로 나온 거야. 별문제 없으니 그냥 돌아가게.”
“거참 신기하군요. 영주님께서 직접 보장해 주는 차용증서라니.”
“아니지, 이 사람아. 정확히는 영주님이 써주신 차용증서를 담보로 나온 거지. 거기 차용증서에 제대로 쓰여 있으니 시간이 나면 한번 살펴보게나.”
“뭘 이런 걸 확인까지 합니까? 여기서 달란트로 교환해 주면 다 끝난 거지.”
그의 반응을 보고선 카터가 넌지시 물어보았다.
“이왕지사 이렇게 왔으니 그걸 달란트로 바꿔가겠나?”
재단사는 제 앞에 놓인 1 Gold라는 차용증서와 달란트 1개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사실 휴대하기 편한 건 금화보단 종이로 된 차용증서였다.
“아니요. 전 이걸로 가져가겠습니다. 어차피 금화를 가져가도 나중에 또 맡기러 올 거 아닙니까? 그럼 보관료가 아깝죠. 그리고 이게 휴대하기도 편하고.”
재단사는 제 앞에 놓인 두 가지 형태의 화폐 중 종이로 된 차용증서를 챙겨 제 가게로 돌아가 버렸다.
이를 지켜보던 록펠러가 옅게 웃었고, 이는 카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카터가 록펠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일은 생각보다 잘되고 있는 것 같구나.”
“생각보다 사람들이 영주님의 차용증서를 더 좋아하는 것 같네요. 그런 느낌이에요.”
“그렇기야 하겠지. 여기서 발행한 차용증서라고 해봐야 내가 보증해 주는 건데, 이번에 새로 나온 차용증서는 이 땅의 주인이 보증해 주는 거니까.”
“그럼 전 또 움직여볼게요.”
“또 나가려는 게냐?”
“제가 많이 움직여야 여기 사람들이 1 Gold라는 차용증서에 더 친숙해질 거 아니에요?”
그걸 대체 몇 번이나 반복하는지.
“그럼 앞에서 산 옷은 어떻게 하려고?”
“똑같죠, 뭐. 가서 환불해야죠.”
그래, 가서 또 환불하겠지.
어차피 록펠러의 목적은 사람들이 1 Gold라는 새로운 차용증서에 친숙해지는 것이었지 막무가내식의 쇼핑이 아니었다.
‘그럴 돈도 없고 말이야.’
“그럼 또 나갔다 올게요. 그동안 가게 좀 부탁드릴게요.”
그렇게 떠나간 록펠러를 두고 카터는 옅게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막지 못했다.
‘녀석 행동력 한번 좋구나. 나는 저런 체력도 없어서 늙어 가는데.’
모르긴 해도 록펠러를 이 가게에 들인 것은 천운이 따른 것으로 보였다.
‘없는 돈복이라도 생긴 모양이야.’
그렇게 시작한 1 Gold 차용증서 알리기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자 시장 상인들 중 일부는 기존에 쓰던 1 IOU 대신 1 Gold를 쓰기 시작했다.
“이게 말이야. 영주님이 직접 보증해 주는 차용증서라니까.”
“아, 나도 봤어. 이번에 새로 나왔다면서?”
“영주님이 급전이 필요할 때마다 방코에 가서 차용증서를 써주는 건 알고 있지?”
“암, 알고말고.”
“그걸 담보로 이걸 발행해 주는 모양이야. 방코에서도 영주님은 철석같이 믿으니까 자기들이 발행한 차용증서와 마찬가지로 이것도 달란트로 바꿔주더군.”
우연히 만난 시장 상인 둘은 하던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내가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 카터 방코에서 발행한 IOU보단 영주님하고 관련된 Gold 차용증서가 더 좋은 거 같아. 카터 방코에서 발행한 건 방코가 망하면 달란트를 돌려받을 길이 없지만, 이번에 새로 나온 차용증서는 그게 아니잖아?”
“나도 그 생각이야. 그래서 내가 아는 몇몇은 이미 방코에 찾아가 기존에 있던 IOU를 Gold 차용증서로 바꾼 모양이야.”
“뭐라고? 벌써 그렇게 했다고?”
“그렇다니까. 생각해 봐. 방코가 망하면 그 차용증서는 다 휴짓조각이 되는 건데 누가 카터 방코에서 발행해 준 차용증서를 좋아하겠어? 차라리 영주님하고 관련된 차용증서가 더 안전하겠지.”
“허…… 그럼 자네도 그렇게 할 생각이야?”
“나야 당연히 그럴 생각이지. 이건 상식이라고.”
시장 바닥에서 수런대는 두 시장 상인의 대화를 근처를 지나가던 록펠러가 우연히 듣게 되었다.
생각보다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새로운 차용증서가 시장 바닥에 깔리려면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좀 의외긴 하네.’
이처럼 새롭게 나온 차용증서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기존의 차용증서를 대체하게 된 것은 그만큼 영주의 신용이 좋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하긴 이해는 가. 일개 방코에서 발행해 준 차용증서보단 영주님하고 관련된 차용증서가 더 안전하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겠지. 실상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야.’
1 Gold 차용증서에 써진 글귀를 자세히 읽어본다면 해당 차용증서가 영주하고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그것을 보장하는 것은 ‘영주가 써준 차용증서’였지, ‘영주 본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 상인들이 해당 글귀를 깊게 헤아리지 않고 대충 넘어가는 것은 해당 차용증서를 들고 방코에 찾아갔을 때 별문제 없이 금화를 받아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정확하게 노리던 바였지. 만약 우리 쪽에서 그 차용증서를 받음에 있어 난색을 표하거나 다소 꺼려했다면 사람들은 지금과는 전혀 다르게 생각했을 거야. 새로 나온 차용증서에 분명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금융이란 것으로 민중을 기만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번째도, 두 번째도 그들의 무지함이었다.
‘만약 이 생각을 모두가 알고 있다면 사람들은 내가 짜놓은 판 위에서 잘 움직여줄까?’
록펠러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아니, 사람들은 이용당하는 걸 싫어하니까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무지한 상태였다.
앞으로도 계속.
‘고로 이 시장 바닥에 있는 모두는 내가 짜둔 판 위에서 잘 움직여주겠지.’
영주를 빚으로 굴복시키고, 그가 버린 땅을 냅다 차지하려는 어느 평민의 꿈.
그 꿈의 첫 번째 단계는 꽤 순항 중이었다.
‘이대로만 가준다면 굳이 귀족이 되지 못한 게 억울하진 않겠지. 내 스스로 귀족이 되면 그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