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06. 방코의 조수가 되었다 #3(6)
어린 가장이라는 말에 카터는 좋게 수긍하기로 했다.
동시에 록펠러가 제안한 일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나는 죽어도 할 수 없는 일이야. 그럴 배짱이 없으니.’
이번 일도 마찬가지였지만 누군가 나서서 대신 총대를 메주지 않는 이상 그에겐 그저 꿈같은 이야기였다.
잠시간 고심하던 카터가 이내 못 이기는 척 록펠러의 요구사항을 들어주기로 했다.
어차피 자기야 지금보다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했으니까.
“좋다. 네 요구대로 그 일이 성공한다면 수익금의 절반은 내주도록 하마. 대신 말이다. 나는 이번 일에도 전혀 무관한 거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너한테 그저 이용만 당한 거야. 나중에 가서도 절대 딴소리하지 말거라. 진심으로 나는 네 생각에 동조한 것밖에 없으니까.”
“고마워요, 아저씨.”
“고맙기는 뭘. 돈만 벌 수 있다면야 고마운 건 나지.”
자신이 세운 원대한 계획을 실행시키기 위해 록펠러는 말을 이었다.
“카터 아저씨. 그런 의미에서 제 첫 월급은 영주님께서 써주신 이 차용증서로 대신 가져갈게요.”
일당으로 가져가는 돈이라면 보통 은화나 고소득자의 경우 금화가 대부분이었다.
그것만이 진정한 ‘돈(Money)’이었으니까.
그런데 록펠러가 그런 돈 대신 영주의 차용증서를 대신 가져가겠다고 하자 카터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금화로 받아가는 게 아니라 그 차용증서를 대신 가져가겠다고?”
여기엔 다른 문제도 있었다.
“그러기엔 그 차용증서가 너무 크잖니? 네가 받아갈 급여치고는 말도 안 되는 액수야.”
“그렇긴 하죠. 그래서 이 영주님 차용증서를 담보로 발행한 이 가게의 차용증서를 대신 가져가려구요.”
“이 가게의 차용증서?”
“네.”
“뭘 어떻게 말이냐?”
록펠러는 그에게 다시 한번 영주가 써준 차용증서를 보였다.
“자, 보세요. 이게 영주님이 써주신 100달란트짜리 차용증서니까 이걸 담보로 해서 1달란트에 해당하는 ‘1 Gold’라는 차용증서를 이 가게 이름으로 100개 정도 발행하는 거죠. 그중에 몇 개를 제가 가져가는 거구요.”
“1 IOU가 아니라 1 Gold라고?”
“네, 보통 저희 가게에서 1달란트를 맡기면 저희가 ‘1 IOU’라는 종이 차용증서를 발행해 주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영주님의 차용증서를 담보로 1 IOU로 발행하게 되면 저희가 기존에 내주었던 차용증서와 헷갈리게 되니까 전혀 새로운 차용증서를 1 Gold라는 형태로 발행하게 되는 거죠. 대신 차이점은 기존의 것과 다르게 이 1 Gold라는 차용증서는 영주님이 발행해 준 차용증서가 보장해 주는 거지 저희 가게가 직접적으로 보장해 주진 않아요.”
카터는 대충 이해하겠다는 눈빛이었다.
“오호라. 그래서?”
“저희 또한 영주님의 차용증서를 보장해 주고 있으니 사람들이 이 1 Gold라는 차용증서를 가져오면 1달란트와 교환은 해줄 거예요. 말 그대로 저희가 영주님의 차용증서를 보장해 주는 한에서는요.”
“그럼 만약에 우리가 보장해 주지 않는다면?”
“그땐 저희가 보장해 줄 수 없죠. 즉 1 Gold를 저희에게 가져와도 이 가게에선 1달란트와 교환해 주지 않아요. 그렇게 되면 1 Gold란 차용증서를 가진 사람들은 영주님이 발행한 이 차용증서에 자신들의 금화를 요구해야겠죠?”
“그렇구나. 우리가 영주님이 써준 차용증서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면 그 차용증서로 발행된 새로운 차용증서는 우리가 아닌 영주님이 써준 차용증서에다가 그 책임을 물어야 하니까.”
“중요한 건 저희가 이것을 1 Gold라는 차용증서에 분명히 명시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야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시 책임을 피할 수 있으니까요.”
“한 가지 물어보자꾸나.”
“네, 뭐든 물어보세요.”
카터는 의문이 생겼다.
그러한 것들을 해서 실질적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당장 계산이 안 됐던 것이다.
“굳이 1 Gold라는 차용증서까지 발행해 가면서 대체 뭘 바라는 게냐?”
“제가 앞에서 말씀드렸죠? 영주님께서 생각 없이 발행하는 차용증서에 책임을 물으려면 그 차용증서를 여러 사람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구요.”
“그렇지.”
“영주님이 써주신 차용증서는 액수도 크고 일반 사람들이 거래하기엔 너무 불편한 게 많죠. 저희가 그걸 도와주는 거예요. 영지에 속한 모두에게 영주님이 써준 차용증서에 대한 권리를 나눠주는 거죠.”
록펠러가 검지를 세웠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저희가 영주님이 써준 차용증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자는 저희가 먹지만, 그 권리는 이미 다른 사람들에게 쪼개서 판 상태이기 때문에 나중에 문제가 될 시 저희는 그 일에서 조용히 빠져나올 수가 있다는 거예요. 왜냐면 사람들에게 내준 건 저희가 가진 금화가 아니라 1 Gold라 불리는 종이로 된 차용증서가 전부니까요.”
“호오…… 그렇구나. 그런데 괜찮겠니? 사람들은 대개 제 급여로 차용증서보단 금화나 은화를 더 선호한단다. 그게 진짜 돈이니까.”
“솔직히 말해서 좀 찝찝하긴 하죠. 하지만 아저씨. 이런 발상을 한 저부터 솔선수범 나서야 모두가 저처럼 따라 하지 않겠어요? 만약 제가 의도적으로 그 차용증서를 피한다면 과연 누가 저를 따라서 그걸 돈처럼 쓰려고 할까요?”
록펠러는 그에게 제법 의미심장한 미소를 날려주었다.
“그리고 이 일은 고작 시작에 불과해요.”
카터 입장에선 록펠러의 발상은 너무나 기발한 것이어서 한동안 자리에 서서 록펠러가 한 말을 계속 되짚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정말 기가 막힌 생각이야. 대체 어떻게 하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지? 영주님이 써준 차용증서를 직접적으로 거래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유통시키면서 그 책임까지 떠넘기는 게 말이야. 그러면서 이자는 또 우리가 먹고. 정말이지 천재적인 발상이야.’
카터에겐 록펠러가 이만큼이나 대단해 보인 적이 없었다.
애당초 그런 발상을 했다는 것 자체가 기발하다 못해 천재적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