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23화 (23/181)

§23화 06. 방코의 조수가 되었다 #3(5)

어찌 됐든 이 가게의 주인은 그였다.

그를 설득할 수 없다면 영주에게 더 많은 채무를 안겨줄 수 없기에 록펠러 입장에선 그를 설득하는 게 중요해졌다.

“카터 아저씨. 아직 그 정도로 걱정하기엔 좀 이르지 않을까요? 영주님께서 빌려 간 돈을 제때 갚는다고 하면 저희 입장에선 무조건 많이 빌려주는 게 이득이잖아요. 저희가 상대하는 고객들 중에서 영주님이 가장 신용 좋은 고객인데, 제 생각에선 더 많이 빌려줘도 괜찮을 거 같은데요?”

록펠러의 말을 카터가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그들 입장에선 신용 좋은 고객에게 최대한 많은 대출을 해주는 게 좋았으니까.

“영주님 신용이 좋다는 말은 동의하마. 어중간한 사람에게 빌려주는 것보단 훨씬 나으니까. 그래도 말이다. 이제까지 이런 경우는 없었단다.”

“무슨 경우요?”

“영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연달아 돈을 빌려 간 적이 없었단 말이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구나. 내 촉이 나쁜 편도 아니니 그게 걱정이구나.”

록펠러의 노력은 계속 이어졌다.

“전에 용병대 고용으로 영주님께서 150달란트를 빌려 가셨고, 이번에 마법사 고용으로 100달란트를 추가적으로 빌려 가셨죠. 그리고 용병대에 나중에 지급할 잔금 150달란트까지 합치면 영주님께서 최근에 진 채무는 400달란트가 되는 건데, 저희 같은 사람들에겐 정말 큰돈이긴 하죠. 하지만 한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님 입장에선 그렇게 큰돈이 아니에요. 절대 아니죠.”

“넌 자꾸 영주님께 돈을 빌려주라고 종용하는 것 같구나.”

“가능하다면 최대한 많이 빌려주는 게 저희한테도 좋으니까요. 그래야 가게 수익도 크게 늘어나지 않겠어요?”

록펠러가 오고 나서 가게 수입이 늘어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아무리 가게 주인이라 할지라도 록펠러의 의견을 마냥 무시할 순 없었다.

“그래, 나도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고 있단다. 빌려 간 돈이 아직 그렇게 크지 않으니 더 빌려줘도 괜찮다는 걸 말하려는 거겠지. 하지만 말이다. 내가 진짜로 걱정하는 건 영주님께서 습관을 잘못 들이실까 그게 걱정인 게다.”

카터가 말을 이었다.

“네 말대로 한 영지를 다스리는 주인이라면 400달란트 정도야 그리 큰돈은 아니겠지. 하지만 큰 빚이란 건 대부분 작은 빚에서 시작되는 거란다. 지금이야 채무가 400달란트에 불과하지만 저렇게 막무가내식으로 빌려 가다 보면 언젠간 그 채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있겠지. 나는 그걸 걱정한 게야.”

이후 생겨날 일은 카터 입장에선 상상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악몽과도 같았다.

“세상 모든 사람이 제때 돈을 갚을 거란 생각을 해선 절대 안 된단다. 차라리 쥐뿔도 없는 녀석이라면 다시 되돌려 받는 게 쉽겠지. 깡패들이라도 시켜서 그 돈을 받아오면 되니까. 하지만 상대는 이 땅의 주인인 사람이다. 너는 이런 사람을 상대로 돈을 되돌려 받는 게 과연 쉬운 줄 아느냐?”

카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절대 쉽지 않아. 특히나 힘을 가진 자라면 더더욱 그렇지. 그러니 처음부터 조심하는 거란다. 우량 채무자가 나쁜 습관을 들이지 않도록 이쪽에서 조절하는 거지.”

이쯤 말했으면 카터는 제 뜻을 록펠러가 충분히 이해했을 거라고 봤다.

하지만 그건 그만의 착각이었다.

“만약 그 채무를 전부 돌려받을 수 있다면요?”

“돌려받을 수 있다고?”

카터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카터를 향해 록펠러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도 안 빌려주실 건가요?”

“그럴 리가…… 없잖니? 네가 한 번 생각해 보거라. 나 같은 사람이 영주님께 찾아가 대뜸 돈을 갚으라고 한다면 그 말을 듣겠니? 당장이야 문제없겠지. 하지만 자기도 감당 못 할 빚을 졌을 땐? 그땐 죽어도 빚을 갚지 않을 거다.”

“좀 이상하네요.”

록펠러가 의도적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저희가 왜 그 돈을 받으러 가는 거죠? 아저씨 말대로 영주님께선 저희 말을 듣지도 않을 텐데요.”

카터가 의문을 자아냈다.

“아니, 우리가 받으러 안 가면 대체 누가 그 돈을 받으러 간단 말이냐?”

“이게 있잖아요.”

록펠러가 영주가 써준 차용증서를 꺼내 보였다.

“이걸 다른 사람들에게 파는 거죠. 그럼 그 사람이 영주님께 찾아가 저희 대신 돈을 받게 되겠죠.”

“그거야…….”

“그렇게 되면 저흰 영주님 채무에 대해선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빚을 받으러 가는 채권추심이야 저희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몫이 되니까요.”

그제야 카터는 록펠러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럼 네 말은 그 차용증서를 남에게 넘기자는 말이냐?”

“네, 영주님께서 써준 차용증서가 너무 많아지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겠죠. 저희가 이걸 다 갖고 있기엔 너무 리스크가 크잖아요. 그리고 카터 아저씨가 방금 전 걱정했던 것처럼 변제 능력을 상실한 영주님께서 안 좋은 생각을 할 수도 있구요. 이건 당연한 거예요.”

카터가 대꾸하지 못하자 록펠러가 이전 일을 물어보았다.

“카터 아저씨도 여기에 대한 내용을 영주님께 알려주시지 않았나요? 이 차용증서가 다른 곳에서 거래될 수 있다는 걸요.”

분명 그 말을 했었다.

문제는…….

“그거야…… 당연히 말뿐이었지. 나는 외지인도 아니고 여기서 세금을 내고 장사하는 사람이란다. 어디 네 말처럼 그렇게 하는 게 쉬운 줄 아느냐? 정말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고 해둔 말이었지, 그런 일로 영주님께 밉보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단다.”

“그럴 거면 이 차용증서는 대체 왜 받으신 거죠? 어차피 남하고 거래하지도 않을 거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거잖아요?”

카터가 찌푸린 표정으로 대꾸해 주었다.

“그래서 내가 그 종이 쪼가리를 싫어하는 거란다. 그건 금화도 돈도 아니고 그저 제 신용만 내세운 단순한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니까.”

카터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차용증서를 남이 잘 받아주지도 않아요. 누가 영주님께 찾아가 대뜸 금화를 달라고 말할 수 있겠니? 물론 그 차용증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 입장에선 당연한 권리겠지만, 상대는 영주야. 힘든 일이지. 그래서 일이 안 좋게 되면 그 화풀이 대상이 엉뚱하게도 우리가 될 수 있단다.”

“기가 막히네요. 저희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화풀이를 한다는 거죠?”

“내 말이 그 말이란다. 힘없는 놈들이야 영주님께 찍소리 하나 못 내지만 우린 아니거든. 안 그래도 이자놀이를 한다고 교단의 눈총까지 받고 있는데, 여기서 민심까지 흉흉해지면 그땐 정말 억울하게 마녀사냥을 당할 수가 있어요. 악마의 자식이라고 해서 광장에 끌려가 산채로 불태워질지 누가 알겠니? 그러니 조심할 수밖에.”

잠시간 생각해 보던 록펠러가 두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제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차라리 이렇게 하는 게 좋겠네요.”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있는 게냐?”

“잠시 귀 좀 빌려주세요.”

록펠러는 방금 전 자신이 생각했던 바를 카터에게 귓속말로 전달해 주었다.

한참 동안 록펠러의 설명을 듣게 된 카터가 이내 고개를 주억이기 시작했다.

“그래, 그것참 기발하구나. 어떻게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된 거니?”

록펠러는 옅게 웃어 보였다.

‘화폐라는 게 보통 그렇게 생겨난 거거든.’

“어쩌다가요.”

돈(Money)과 화폐(Currency).

일반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둘의 차이점을 록펠러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화폐라는 건 보통 기만이야. 그리고 내가 궁극적으로 그리는 세상 역시 그런 기만에서 출발하게 되지.’

“그런 식이 된다면 영주님도 어쩔 수 없을 거예요.”

기발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카터는 소심한 성격 탓에 갑자기 솟구치는 걱정을 그대로 내비쳐주었다.

“그런데 말이다. 그러다 문제가 생기진 않겠느냐? 나는 전혀 감을 잡을 수 없구나.”

록펠러는 확신을 가지고 말해주었다.

“문제라면 당연히 저희가 아닌 영주님께 생기겠죠. 저희가 무슨 죄가 있겠어요? 저흰 단지 영주님이 써준 차용증서를 이용한 것밖에 없는데요.”

“그렇기야 한데…….”

“어차피 이 차용증서를 써준 사람은 저희가 아니라 바로 영주님이에요.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영주님께 가서 따져야죠.”

듣고 보니 맞는 말.

하지만 그는 소심하여 그것을 실행할 배짱이 부족했다.

“나는…… 잘 모르겠구나. 그렇게 하는 게 맞는지 확신이 안 서.”

록펠러도 그의 소심한 성격을 모르진 않았다.

“하지만 제 말대로 하시면 큰돈을 벌 수 있어요. 신용 좋은 건실한 채무자가 돈을 많이 빌려 가면 빌려 갈수록 저희야 이자 수익으로 떼돈을 벌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갈팡질팡 머뭇거리는 그에게 록펠러가 자신의 일생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말을 해주었다.

“카터 아저씨. 이건 저희 집안의 가훈인데요.”

물론 급조된 말로 로스메디치 집안에 그런 가훈은 없었다.

“무언가를 얻으려면 결국 무언가를 걸어야 한대요. 그러니까 아무것도 안 걸고 큰돈을 벌 수 없다는 말이죠.”

나름 뼈가 있는 말이었다.

잠시간 고민하던 카터는 마지못해 록펠러 생각에 동의해 주었다.

다만 자신이 총대를 메긴 싫었다.

“좋다. 대신 이것도 네가 다 책임지는 것으로 하자꾸나. 이번 일도 나는 전혀 모르는 거란다.”

어차피 다 예상하던 일이었기에 록펠러는 크게 언짢아하진 않았다.

대신 일방적으로 자신이 모든 위험을 감수할 생각은 없었다.

“좋아요. 그렇게 해요. 대신 이것만 약속해 주신다면요.”

“무엇을 말이냐?”

록펠러는 생각했다.

이 상황에서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일지.

‘너무 많은 걸 바랄 순 없을 거야. 가능한 현실은 아마도 이게 최선이겠지.’

“이 일로 나온 수익금의 절반은 저한테 주세요. 지금까진 인센티브만 먹었지만 이제부턴 수익금의 절반을 받고 싶다는 말이에요.”

이런 당돌한 조수를 봤나?

일을 아무리 잘해도 그렇지. 일을 한 지 대체 얼마나 됐다고 수익금의 절반을 달라니!

“그 정도면 꽤 많은 돈일 텐데. 너 같이 어린 녀석이 대체 뭘 하려고 그렇게나 많은 돈을 달라는 게냐?”

어설픈 반발에 록펠러는 자신의 마스코트와 같은 옅은 미소를 입가에 걸어주었다.

“잊으셨어요? 전 어리지만 한 집안의 가장이에요. 그 정도 돈이면 저한테 그리 과분하진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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