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06. 방코의 조수가 되었다 #3(1)
‘환전 수수료로 3실링이나 줬다고? 무슨 바보들도 아니고 제대로 바가지를 당했군.’
하운드 용병대장 카를은 이번 임무에서 미리 지급받은 선금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몬테펠트로 영지에 있는 방코 앞에 도착해 있었다.
그는 극악무도한 괴수병기 앞에서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던 자신의 부하들이 고작 변방 방코에 자리한 소년에게 말도 안 되는 바가지를 당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얼마나 띨빵하게 보였으면 새파란 애한테 바가지를 당한 거야. 하긴 전장의 피 냄새나 쫓는 놈들이 흥정에 대해 뭘 알겠어.’
카를은 크게 헛기침을 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그러면서 생각하기를.
‘자고로 흥정이란 건 말이지. 바로 나처럼 해야 되는 거야.’
내심 자신은 다를 거라 장담하며 방코 안으로 들어선 그도 곧 황당무계한 소리를 듣게 됐다.
“뭐? 지금 금화 보관료로 얼마나 달라고?”
전날 찾아왔던 용병들보다 덩치가 더 크고 험악하게 생긴 자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자 록펠러가 무미건조한 투로 방금 전 했던 말을 다시 해주었다.
“150달란트를 맡기신다고 하셨죠? 보관료는 총 금액의 10퍼센트인 15달란트네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반복되는 말에 카를은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그는 홍당무처럼 빨개진 얼굴이 됐다.
“15달란트?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보관료로 맡긴 금액의 10퍼센트라니. 이거 미쳤군. 미쳐도 아주 단단히 미쳤어.”
그는 여느 다른 손님들과 마찬가지로 이 말도 안 되는 대화는 그만두고 가게 주인장과 직접 대면하려 했다.
가게 주인도 아닌 소년과 말씨름을 하는 것보단 가게 주인과 직접 만나 담판을 짓는 게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됐고, 여기 주인장은 어딨는 거냐? 가게 주인이 너는 아닐 거 아니냐?”
“여기 주인은 왜 찾으시는데요?”
“그야 너 말고 가게 주인하고 직접 흥정하려고 그러지. 무슨 보관료가 그래!”
“그럴 필요 없으세요. 여기서 대출과 금화 보관에 대한 거래는 제가 전적으로 담당하고 있으니까요.”
“너 같이 어린놈이? 네가 무슨 여기 주인이라도 된다는 말이냐?”
“그렇진 않지만.”
록펠러가 어울리지도 않게 싱긋 웃어 보였다.
“주인아저씨를 만나신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거예요. 오히려 주인아저씨보다 제가 나을걸요?”
그 말에 가게 안쪽에서 금화를 만들고 있던 카터가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무슨 배짱이야? 금화 보관료로 맡긴 금액의 10퍼센트를 달라니.’
대부분 방코에서는 손님이 금화를 맡겼을 때 3퍼센트 정도의 금화 보관료를 받고 있었다.
3퍼센트라는 보관료가 작진 않았지만 안전하게 금화를 보관하고 싶은 이들이나 아무도 모르게 금화를 숨겨야 하는 이들에겐 때론 괜찮은 선택지가 되기도 했다.
또한 종이로 된 금화 보관증이란 게 있어서 휴대성이 아주 좋아 혼자서 많은 금화를 들고 다닐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선택지이기도 했다.
그런데 금화 보관료로 10퍼센트라니!
‘저러다 손님이 가버리면 어쩌려는 거지? 맡긴 금액도 적지 않던데. 무려 150달란트야. 엄청난 거금이라고.’
카터가 나설까 말까 망설이고 있던 사이, 록펠러와 용병대장 카를의 대화는 그 와중에도 계속되고 있었다.
“저희가 금화를 안전하게 보관해 주고 또 아무 때나 찾아갈 수 있도록 금화 보관증까지 써주잖아요? 그럼 그 수고비로 금화 보관료를 받는 건 당연한 일이죠.”
“보관료를 받는 일로 누가 뭐라 했느냐? 문제는 그게 아니라 보관료로 10퍼센트나 받아먹는 여기 배짱이지. 세상 어떤 방코가 금화 보관료로 10퍼센나 받아간단 말이냐? 보통 많아 봤자 3퍼센트고 황도나 리옹 같은 경우는 1퍼센트만 받는 곳도 있단다. 이건 아예 모르는 거냐?”
“당연히 알고 있죠. 황도나 리옹에 있는 방코에서는 그런다고 듣긴 했어요. 하지만 거긴 거기고 여긴 여기죠.”
“뭐라고?”
“이 영지에서 방코는 저희 가게밖에 없고, 또 주인아저씨가 영주님과 친하셔서 가게가 망할 일이 없어 아주 안전하거든요. 그러니까 보관료 역시 당연히 비싸지는 거죠. 자체 프리미엄이 붙는 거니까요.”
“이런 변방의 코딱지만 한 방코에서 무슨 프리미엄이 붙는다는 말이냐?”
“프리미엄이야 당연히 붙죠. 저희 가게는 방코 연합 중에서 가장 큰 리옹 길드에 가입되어 있는걸요. 말인즉 나름 신뢰할 수 있는 가게란 소리죠.”
“웃기고 있구나.”
“리옹 길드에 속해 있으니 저희에게 맡기신 금화는 리옹 길드에 속한 그 어떤 방코에서도 찾아가실 수 있으세요. 그러니 여러 면을 따져 봐도 기존 보관료에 당연히 프리미엄을 붙여도 되는 거죠.”
록펠러는 카를이 대꾸하지 못하는 사이 한마디 더 던져주었다.
“그리고 여긴 변방이잖아요. 물가가 비싸요.”
록펠러를 곱씹어보던 카를이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그래도 보관료로 10퍼센트나 가져가는 건 아니지.’
“됐다. 보관료로 10퍼센트나 줄 바에야 내가 어떻게든 처리하고 말지. 무슨 10퍼센트야.”
슬슬 때가 됐다고 생각했는지 실랑이를 멈춘 록펠러가 그에게 은밀한 제안을 하기 시작했다.
“저기 아저씨.”
은근슬쩍 목소리를 낮추는 록펠러가 가게 안쪽을 힐끔하더니 이내 작은 목소리로 말을 잇기 시작했다.
물론 전부 계획된 연기였다.
“이건 여기 주인아저씨가 알면 안 되는 건데. 사실 금화 보관료로 10퍼센트나 받는 건 여기 아저씨 생각이거든요.”
록펠러는 그의 표정 변화를 살피며 나머지 뒷말도 이어주었다.
“제가 봐도 좀 너무하긴 하죠. 단순히 금화 보관료로 10퍼센트라니. 이건 순 날강도잖아요. 황도나 리옹에서도 많아봤자 3퍼센트 받아먹는다는데.”
무언가 느낌상 금화 보관료를 깎아주려는 느낌이 들자 카를도 자연스레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그래서 뭔 말이 하고 싶은 게냐?”
“여기 주인아저씨 모르게 딱 6퍼센트만 받을게요. 6퍼센트요. 어때요? 나쁘진 않죠?”
10퍼센트에서 나름 줄어든 금액.
“6퍼센트라고?”
6퍼센트 역시 말이 안 되는 보관료였지만 앞서 말한 10퍼센트보단 나았다.
‘아니 뭔 6퍼센트야. 6퍼센트도 말도 안 되는 거라고.’
“거기서 더 깎아줄 순 없는 거냐? 나야 뭐 아쉬울 거 없으니 굳이 여기다 금화를 안 맡겨도 된단다.”
턱도 없는 배짱을 부리자 록펠러가 대놓고 고개를 저어주었다.
“그건 아니죠. 굳이 여기까지 찾아와 금화를 맡기실 정도면 아저씨 사정도 여의치 않다는 소리잖아요? 보통 사람이라면 금화 보관료가 아까워 방코에 맡길 생각 자체를 안 하거든요. 그래서 보통은 아무도 모르게 금화를 어딘가에 숨긴다든가 그렇게 하잖아요. 하지만 그렇게 하기엔 여러모로 리스크가 많이 따르죠.”
“…….”
“예를 들어 어떤 엉뚱한 녀석이 아저씨가 숨긴 금화를 찾아내서 몰래 가져가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차라리 여기다 안전하게 보관하면 일정의 보관료야 지불하겠지만 맡긴 금화야 리옹 길드가 보장하니 여기 가게가 망해도 다른 가게에서 금화를 찾아갈 수 있는 거구요.”
틀린 말은 없었으나 카를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그렇다고 보관료를 그따위로 줄 순 없지. 10퍼센트면 15달란트고, 6퍼센트면…… 뭐 아무튼 그것도 얼마나 큰 돈인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
정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방코 조수가 자신한테 개소리를 나불거렸다며 카를은 뒤도 안 돌아보고 가게를 박차고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를 보며 록펠러도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었다.
그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무조건 금화를 맡기려고 찾아왔어. 아니면 말도 안 되는 보관료에 그냥 나가 버렸을 테니까.’
그리고 방코는 이 지역에서 단 하나.
‘그럼 이쪽에서도 배짱을 부려볼 만하지.’
“아저씨. 저희가 땅 파서 장사하는 것도 아니고 어느 정도 수고비는 받아야죠. 그리고 제가 10퍼센트에서 많이 깎아드렸잖아요? 이 정도면 정말 많이 봐드리는 거예요.”
카를은 여전히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됐고, 3퍼센트로 하자꾸나. 보통은 3퍼센트라고. 6퍼센트는 말도 안 돼.”
정확히는 그 3퍼센트 보관료도 아까워서 방코의 금세공업자와 흥정하여 금화 보관료를 깎는 게 대다수였다.
그런데 이런 변방 촌구석에서 6퍼센트라는 말도 안 되는 보관료라니!
하지만 가게에서 일을 보고 있던 소년은 절대 호락호락하지가 않았다.
“3퍼센트요? 그건 절대 안 되죠. 그럴 거면 다른 가게에 가서 알아보세요. 아마 이 영지 안에는 없을 테니 시간을 들여 다른 영지로 가셔야 할걸요? 그런데 이 지역 근방은 죄다 변방이라 거기서 금화 보관료를 얼마나 받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또 저희처럼 리옹 길드에 가입되어 있는지도 모르겠고요.”
새파랗게 어린놈이 감히 하늘 같은 하운드 용병대장을 상대로 배짱이라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말은 또 어디서 배워 가지고.’
그제야 대장 카를은 자신이 방코에 찾아간다고 하자 혀를 내둘렀던 제 부하들을 상기시킬 수 있었다.
“대장, 그건 아니라니까. 거기 꼬마 존나 독종이야. 우리한테 괜히 환전 수수료를 그렇게 받아 처먹었겠어?”
“세트 말이 맞아. 꼬마 놈이 꽤나 당돌하더라고. 배짱도 부릴 줄 알고.”
“보통 같았으면 우릴 보고 바지에 오줌을 지려야 하는데 걘 그것도 없더라. 대장, 그냥 며칠 고생하다 다른 곳에 맡기지 그래? 고작 며칠인데 받은 선금을 여기 놔둔다고 무슨 일이야 생기겠어?”
부하들이 재차 강조하며 말하길, 가게에서 일을 보고 있는 소년을 조심하라고 했었다.
고블린처럼 독한 놈이라고.
‘금화를 따로 보관해 둘 수 있는 아공간 주머니만 있었어도!’
그런 게 있었다면 애당초 이 방코에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굳이 보관료를 낼 필요도 없이 그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두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구하기도 어렵고 부르는 게 값이니…….’
흔하지 않으니 당연히 귀한 것이고, 귀한 것은 또 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가격 역시 비쌌다.
아공간 주머니 이야기였다.
“좋다. 5퍼센트로 하자꾸나. 5퍼센트다. 이것도 많이 봐주는 거야.”
그에게 있어 금화 보관료로 5퍼센트나 내주는 것도 그다지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5퍼센트요?”
이게 만약 정상적인 거래였다면 록펠러는 처음부터 그에게 3퍼센트 보관료를 제안했을 것이고, 그 제안을 받은 카를은 그 3퍼센트 보관료도 아까워 2퍼센트나 1퍼센트 정도로 흥정했을 것이다.
‘사실 5퍼센트도 남는 장사지. 하지만 배짱이란 건 부릴 수 있을 때 확실히 부리는 거야.’
“그건 안 돼요. 제가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원래 10퍼센트인데 많이 깎아서 6퍼센트로 해드리겠다고. 더 이상은 저도 아저씨 눈치가 보여서 힘들어요.”
그 말에 가게 안쪽에서 금화를 다듬고 있던 카터가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저런 건 대체 어디서 배워온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