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18화 (18/181)

§18화 05. 방코의 조수가 되었다 #2(3)

“네가 왜 여기 있는 게냐?”

“오랜만에 뵙네요. 영주님.”

록펠러가 가게에 찾아온 영주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자 영주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록펠러에게 농노가 될 것을 제안했던 게 불과 한 달 전이었다.

그런데 그런 록펠러가 금세공업자 밑에 들어가 가게 일을 보고 있으니 어이가 없는 것이다.

“여기 조수로 취직하게 됐습니다.”

“조수? 여기 조수로 취직하게 됐다고?”

“네.”

“카터, 이 가게에 조수를 둘 정도로 여기 일이 그렇게 바빴나?”

영주가 근처에 자리한 카터에게 물음을 던지자 카터가 어색한 미소를 띠우며 답해주었다.

“네, 최근 들어서 일이 바빠지긴 했습니다.”

“굳이 조수를 둘 정도로?”

“네, 그렇습니다.”

제국의 황도도 아니고, 그렇다고 상업적으로 특별한 곳도 아닌, 제국 변방에 위치한 조그마한 방코였다.

일이 바쁠 리가 분명 없을 텐데 조수까지 둘 정도로 바빠지다니.

영주는 문득 의문이 들었으나 카터가 그리 대답했기에 딱히 대꾸할 말이 없어졌다.

“…….”

한참 동안 둘을 곱씹던 영주가 마지못해 쓴웃음을 지었다.

한 달 전, 부모의 죽음으로 생계가 막막하던 록펠러에게 예의와 분수를 운운하던 자신만 우습게 된 것이다.

‘운이…… 좋군. 운이 아주 좋은 녀석이야. 다른 데도 아니고 방코에서 일하게 되다니.’

못내 아쉬움을 삼키는 영주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꺼내 들었다.

“여기에 취직하게 됐다니…… 나름 잘됐구나. 그래, 평민은 평민답게 사는 게 예의긴 하지. 농노가 여기 일을 할 순 없으니까.”

왜 이 소년이 방코에 취직하게 됐을까 나름대로 끼워 맞춰봤더니 그림 또한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징세관 아들이었으면 이런 일이 어울리기도 하겠군. 글도 알겠다. 셈법도 아비한테 배웠느냐?”

“네.”

“그래, 복잡한 셈법도 알고 있으니 여기 일이 제법 어울리긴 하겠구나. 내가 일전에 말했잖느냐? 사람은 모름지기 예의와 분수를 알아야한다고.”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 텐데?

“네, 제게 그러셨죠.”

“그래, 내가 했던 말 그대로 분수대로 네 자리를 잘 찾아간 모양이구나. 축하하마. 방코에 취직했으니 당장 어린 동생들을 위해 내 밑으로 들어올 일은 아마 없을 것 같구나. 돈도 제법 벌 거야. 여긴 다른 데보다 품삯이 센 편이니까.”

영주가 카터에게 시선을 흘리자 그 시선을 오해한 카터가 엉뚱한 말을 해주었다.

“네, 섭섭하지 않게 잘 챙겨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따로 인센티브도 주고 있구요.”

“……그런가? 앞으로도 잘 챙겨주시게.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딱한 친구네.”

“암요. 그렇지 않아도 잘 챙겨주고 있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던 영주에게 록펠러 역시 영혼 없는 대꾸를 해주었다.

“항상 영주님의 은혜를 헤아려 열심히 살겠습니다.”

계속 쓴웃음을 짓는 영주를 향해 록펠러는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었지만, 속으론 아주 고소해하고 있었다.

‘내가 여기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야. 하긴. 본래는 제 밑으로 들어가 밭을 갈길 원했을 테니까. 하지만 이걸 어쩌나? 당신 바람에 못 맞춰줘서.’

“그런데 영주님께선 무슨 일로 오셨나요?”

카터를 대신하여 그에게 찾아온 이유에 대해 물으니, 크흠! 두어 번 헛기침을 연달아 내뱉던 영주가 그 이유에 대해 말해주기 시작했다.

“찾아온 이유랄 게 있느냐? 돈을 빌려 갔으면 응당 그 이자값을 치러야지. 한 달 전에 빌려간 이자값을 치르려고 왔네. 시간이 됐잖는가?”

말을 마친 영주가 뒤따라온 시어들에게 턱짓을 하자 시어 하나가 은화가 가득 든 주머니 하나를 꺼내 록펠러 앞에 내려놓았다.

“맞을 테니 잘 세어 보거라. 아마 맞을 게야. 그 일은 새로운 징세관 녀석에게 시켰으니까.”

록펠러가 은화 주머니를 열고 영주가 가져온 실링을 일일이 세기 시작했다.

어울리지도 않는 미소를 입가에 건 카터는 기다리느라 심심해할 영주를 위해 말을 붙여주었다.

“그보다 요즘 일은 어떻게 돼가고 계십니까? 전에 오크 토벌 일로 제게 금화를 빌려 가지 않으셨습니까?”

“그 일은 아주 잘 되고 있네. 용병대 중에서 가장 평판이 좋은 하운드 녀석들을 불러냈거든.”

“아, 그러시군요. 그러고 보니 어제 하운드 용병대로 보이는 자들이 저희 가게에 들렀다 갔습니다.”

“그렇겠지. 녀석들도 여기서 쓸 실링이 필요했을 테니까. 여기서 달란트를 쓰기엔 불편하지 않겠나?”

“맞습니다.”

“찾아와 말썽을 부리진 않았나? 소문대로 거친 녀석들이라.”

“딱히 소란은 피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험악하게 생겨 말썽을 피웠다면 분명 부랑자 무리로 오해했을 겁니다.”

“부랑자 무리라…….”

영주는 씩 웃더니 그들에 대해 짤막하게 언급해 주었다.

“그들이 생긴 것과 다르게 얼마나 대단한지 자네는 잘 모르고 있겠군. 돈만 쥐어주면 정말 뭐든 해내는 녀석들이라네. 특히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녀석들이지. 눈만 잘못 마주쳐도 바지에 오줌을 지린다는 소문이 아주 파다해.”

가져온 이자를 전부 센 록펠러가 불쑥 목소리를 냈다.

“네, 전부 맞습니다.”

록펠러가 고개를 들어 영주와 시선을 마주친 직후 다시 고개를 수그리자 이를 지켜보던 카터가 그에게 다른 걸 물어보았다.

그도 여기저기서 들은 게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영주님.”

영주가 그에게 시선을 주자 카터는 제 안에 있던 의문을 꺼내 들었다.

그에게 있어 이번 하운드 용병대 고용은 나름 의문이었던 것이다.

고작 토끼를 잡는 일에 호랑이를 부른 격이었으니까.

“계속 의문이었습니다만, 왜 굳이 하운드 용병대를 부르신 겁니까? 하운드 용병대야 변방의 금세공업자인 저도 알고 있을 만큼 아주 대단한 녀석들이 아닙니까? 단순히 오크 토벌이라면 지역 용병들이나 적당히 값만 치러도 되는 녀석들을 쓰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카터가 경제적인 부분을 언급하자 영주는 옅게 웃더니 이내 고개를 젓기 시작했다.

“사정이 그렇지는 않다네.”

영주가 곧바로 다음 말을 이었다.

“그래, 자네 말대로 고작 오크 무리를 토벌하는 일에 그들을 불러들이는 건 단가가 안 맞긴 하지. 굳이 그들을 쓰지 않더라도 더 저렴한 금액에 해결할 방법이야 아주 많이 있으니까.”

“그런데 하운드 용병대까지 왜 부르신 겁니까? 혹여 제가 모르는 깊은 뜻이 있는 겁니까?”

“깊은 뜻은 무슨.”

영주가 자신감에 찬 미소를 머금는 걸 보니 록펠러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확신할 수 있었다.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모양인데?’

영주가 말을 이었다.

“사실, 토벌하려는 오크 무리에 주술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네.”

카터가 아주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다.

“네에? 주술사요? 그럼 이번에 토벌하는 오크 무리에 주술사가 있는 겁니까?”

오크 주술사.

인간으로 치자면 마법사 같은 존재였다.

대개 사람들이 마법사라 하면 벌벌 떨 정도였으니, 주술사 이야기가 나오자 카터가 아주 놀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록펠러라고 해서 다르진 않았다.

‘오크 주술사가 있다고?’

놀란 카터가 재빠르게 물어보았다.

“그게 사실입니까?”

“확실한 건 아니네만. 정찰을 나갔던 시어 하나가 우연히 오크 주술사를 본 모양이야. 진짜 주술사라면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닐 것 같아 내 나름대로 고민 좀 해봤지.”

그제야 록펠러는 영주가 굳이 하운드 용병대까지 부른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단순히 토끼를 잡는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려진 결론이 어설프게 어중이떠중이들을 고용하는 게 아니라 차라리 한 번일지라도 확실히 끝내자는 거였지. 그래서 굳이 거금까지 들여가며 하운드 용병대를 부른 것이라네.”

그 말에 카터가 다소 과할 정도의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영주님의 판단력은 아주 독보적이십니다. 생각하셨던 그대로 괜히 어설프게 어중이떠중이들을 고용했다가 일이 실패하면 엉뚱하게 돈만 더 들어가는 꼴이 아닙니까? 보통 용병대라 하면 일이 실패해도 대금의 절반은 가져가니까요.”

영주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주억였다.

“그렇지. 그래서 확실히 하고자 그들을 불러낸 걸세. 하운드 용병대라면 확실할 테니까.”

자신이 끼어들 자리가 아님을 알았음에도 록펠러는 용기 내어 영주에게 무언가를 물어보았다.

그것은 하운드 용병대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럼 하운드 용병대에게 주술사 얘기는 해주셨나요?”

영주가 록펠러에게 불편한 시선을 흘렸다.

새파랗게 어린놈이 어디서 어른들 대화에 끼어드냐는 그런 시선이었다.

“록펠러, 예의가 없구나. 감히 영주님께 질문이라니!”

카터가 오히려 성을 내자 지켜보던 영주가 반대로 관대해졌다.

가볍게 손을 든 것으로 카터를 제지한 영주가 록펠러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어린놈이 궁금한 것도 참 많구나. 그게 그렇게 궁금했던 것이냐?”

“불쾌하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남의 일이 아닌지라 걱정돼서요.”

“애석하게도…… 아직 말해주진 않았단다.”

“네? 말해주지 않으셨다구요?”

“그래.”

토벌하려는 오크 무리에 주술사가 끼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정보였다.

그런데 그런 정보를 아직까지 말하지 않았다니.

이번엔 카터가 의문을 자아냈다.

“아니, 그런 중요한 것을 왜 지금까지 말해주지 않으셨던 겁니까? 그러다 토벌에 나선 그들이 오크 주술사라도 마주친다면 도리어 당하는 건 하운드 용병대가 아닙니까?”

영주는 확신에 찬 얼굴로 고개를 저어주었다.

“소문의 그들이 바보 천치도 아니고 그렇게 무식하게 움직이진 않네. 어중이떠중이들도 아니고 평판 좋은 하운드 용병대라면 더욱 그렇지. 그러니 내가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더라도 그들은 오크 정보를 수집하면서 자연스레 알게 될 걸세.”

“그럼…… 오히려 노리신 겁니까?”

그 말에 영주가 씩 웃어 보였다.

“자네가 한 번 말해보게. 내가 만약 그들에게 오크 주술사가 끼어 있는 오크 무리의 토벌을 요청했다면, 그들이 과연 응했을 것 같은가?”

오크 주술사가 포함된 오크 토벌은 좀 더 전문화된 인력을 요구했다.

토벌에 나서는 병사들은 주술 방어용 마법 장비를 착용하는 게 좋았고, 오크 주술에 대응할 수 있는 실력 좋은 마법사 역시 필요했으니까.

“내가 볼 땐 아니야.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아마 꺼려했겠지. 하지만 이렇게 일을 떠맡기게 되면 그땐 그들도 지금까지 쌓아온 평판이 있어 쉽게 이 일을 포기할 수 없게 되지. 천하의 하운드 용병대가 고작 오크 주술사가 두려워 일을 포기했다는 소문이 돌면 안 되니까.”

“노리셨던 거군요.”

영주는 부정하지 않았다.

“다 영지를 위한 일이었네. 물론 잡음이야 있겠지. 왜 오크 주술사 이야기는 하지 않았냐고. 하지만 우린 모른다고 잡아떼면 그만일세. 어차피 일처리는 그들의 문제니까.”

영지를 위한 일이었다는 말에 카터는 순순히 납득하는 눈치였고, 영주 역시 딱히 죄의식을 가지지 않았다.

그런 것보단 단순히 대금의 문제라 생각했던 것이다.

“뭐, 주술사 때문에 일의 단가가 더 높아진다면 그들에게 조금 더 지불할 의향은 있네. 주술사가 낀 오크 무리를 토벌하는 일에 그 정도 희생이야 당연히 필요할 테니까.”

반면 그들과 다르게 록펠러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주술사의 존재를 모른다고? 그럼 하운드 용병대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찾아왔을 텐데?’

제아무리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날고 기는 하운드 용병들이라 해도 주술을 부리는 오크 주술사를 무시할 순 없었다.

‘분명 토벌에 참가할 마법사가 필요할 거야. 마법사 없이는 토벌 자체가 무리일 테니까.’

하운드 용병대가 이번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무조건 오크 주술사에 대응할 수 있는 실력 좋은 마법사를 고용해야만 했다.

그 생각이 닿자 록펠러는 조용히 자신의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이거 잘만하면 생각지도 못한 대출을 끌어낼 수 있겠는데?’

일개 용병과 다르게 하늘 같은 마법사의 단가는 꽤나 비싼 편이었다.

말인즉, 그들에게 충분한 여유 자금이 없다면 대출이 필요할 터.

‘자고로 단기 대출은 이자가 센 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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