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17화 (17/181)

§17화 05. 방코의 조수가 되었다 #2(2)

“으이그, 너 진짜 운 좋은 줄 알아라. 우리가 원래 이렇게 호락호락한 사람들이 아니에요. 우리 같은 하운드 용병들이 얼마나 거친 사람들인데.”

은근슬쩍 어금니를 보이는 그들에게 록펠러는 여전히 능글맞았다.

“다음에도 또 이용해 주세요. 그때도 잘해드릴게요.”

또 볼 일은 아마 없을 거라 장담하는 용병 셋이 밖으로 나가자 가게 안쪽에서 조용히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카터가 나와 록펠러에게 말을 걸었다.

“잘했구나. 나 같으면 1달란트당 1실링씩 받고 전부 환전해 줬을 거다. 하운드 용병대면 몇 년 전에도 그렇게 환전해 줬었고.”

그러자 록펠러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시면 안 되죠. 저희가 아쉬울 게 없는 입장인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줄 필요는 없죠.”

배짱장사도 때론 필요한 법이었다.

“저 사람들 어차피 여기 말고 환전할 데도 없었을 텐데요 뭘. 그리고 달란트는 커서 다른 가게에서 받아주지도 않구요.”

1달란트면 시골 노동자의 한 달 치 급여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러니 그런 큰돈으로 시장에 가 물건을 사기엔 다소 부담이 됐을 것이다.

상인들도 큰 거스름돈을 내줄 수 있는 형편이 안 됐을 테니까.

“그러니 이 정도 배짱은 충분히 부릴 수 있는 거죠.”

“그러다 저들이 나가면 어쩌려고?”

“살살 깎으면 돼요. 그 사람들도 아쉬워서 바로 안 나가는 거 보셨잖아요?”

“그럼 저들이 횡포라도 부렸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니? 딱 봐도 험한 데서 굴러먹다 온 사람들 같던데.”

“가게 바로 옆에 시어 막사가 있는데 과연 저들이 그랬을까요? 아까 보니까 서로 소란을 피우면 안 된다고 눈치 주는 모양이던데.”

“하긴 외지인이 남의 구역에서 횡포를 부려봤자 좋을 건 없겠지. 네 말대로 시어 막사가 바로 옆에 있는데. 듣고 보니 네 말이 맞구나. 잘했어.”

카터가 보기엔 록펠러는 확실히 일을 잘했다.

자기보다도 말이다.

“일은 확실히 네가 나보다 잘하는 것 같구나. 나는 그 정도 배포가 없어. 태생이 겁쟁이라.”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하네요.”

“으이구, 이 일도 나름 배포가 있어야 돈을 버는 모양이야. 널 두고 나니 확실히 느끼는구나.”

“감사해요.”

카터는 문득 요즘 들어 뜸해진 사금 밀거래에 대한 일이 떠올랐다.

“그런데 요즘 사금 가져오는 일이 엄청 뜸해진 것 같구나.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 생긴 거니?”

없는 사금을 가져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 와서 사금 밀거래가 중요한 것도 아니기에 록펠러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최근 들어 갑자기 연락이 끊긴 것 같기도 하구…….”

“그 사람한테 아무런 소식도 없는 게냐?”

“네, 별다른 소식이 없네요.”

자기가 할 수 있는 거라고 해봤자 밀거래한 사금으로 이익을 보는 게 전부였던 카터는 내심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흠…… 작지만 제법 쏠쏠했는데 말이야. 갑자기 그 밀거래업자가 잠수를 탔다니…… 그거 참 아쉽구나. 뭐 그래도 네가 일을 잘하니 그렇게 아쉬운 건 아니지만.”

“어차피 작은 거래였잖아요? 아마 연락이 뜸해진 걸 보니 저 말고 다른 루트를 찾으신 거 같기도 하네요. 밀거래할 곳이 여기밖에 없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긴 하지. 쳇, 좀 더 잘 쳐줄 걸 그랬나. 대체 뭐가 아쉬워서 거래를 그만둔 거지.”

“잊어버리세요. 대신 제가 열심히 일하고 있잖아요.”

“그래, 너라도 있어 다행이구나. 네게 그런 재주가 있는 줄 알았다면 진작 조수로 쓸 걸 그랬다.”

그래도 돈이 아쉬운 건 그의 천성이었다.

한숨을 깊게 내쉬던 카터가 불현듯 창고 안에서 조용히 잠자고 있는 금화를 두고 아쉬움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네가 말한 대로 해서 빌려줄 돈이야 이제 충분해졌는데…….”

예전 같았으면 자기 금화만 빌려줬을 것을, 이젠 고객들이 맡겨놓은 금화까지 몰래 대출해 주고 있었으나, 여기에도 나름 걱정거리가 있었다.

“문제는 저 많은 금화를 빌려줄 사람이 없구나. 개나 소나 다 빌려주기엔 이놈들이 배 째라 할 것 같아 안 될 것 같고. 나름 영주님처럼 신용 빵빵한 사람들이 찾아와서 금화 좀 빌려 갔으면 좋겠는데…….”

아쉬움을 삼키는 그를 두고 록펠러 역시 생각에 잠겼다.

‘오크 토벌은 이제 시작에 불과한 일이야.’

몬테펠트로 영지 근처에서 오크가 자주 출몰하는 건 정말 시작에 불과한 일이었다.

고블린의 농간으로 시작된 드워프와 오크 간의 전면전은 아직이었으니까.

만약 두 세력의 마찰로 이 영지가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는다면 돈놀이를 하는 록펠러 입장에서도 나름 기대해 볼 만한 일은 많았다.

‘장담하는데 지금보다 더 소란스러워진다면 재미 좀 볼 수 있을 거야. 전쟁은 항상 돈이란 친구를 불러오니까.’

* * *

달란트 환전을 마치고 가게 밖으로 나온 용병 세트는 불현듯 불편한 시선을 느꼈다.

무슨 시선인가 싶어 주변을 살피니 어느 무장한 무리가 자신들을 경계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여기 시어들인가?’

그들의 복장을 보니 낯이 많이 익은 게 이 영지에서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시어 무리로 보였다.

세트는 알게 모르게 표정을 구겼다.

‘쳇, 딱히 소란을 피우지도 않았는데 귀신같이 찾아왔네.’

가게 안에서 난동을 부리거나 소란을 피웠던 기억은 전혀 없었다.

물론 상대했던 소년이 마음에 들진 않았으나 그래 봤자 작게 으르렁거리고 나온 게 전부였다.

그럼에도 저들의 감시가 붙었다는 것은 방코에 찾아간 자신들을 경계했다는 소리가 된다.

‘괜히 방코가 아닌 모양이군. 하긴, 여기서 가장 많은 금화가 보관되어 있는 곳인데 시어들이 신경 쓰는 건 당연하겠지.’

영지민 중 가장 많은 세금을 내는 사람은 바로 방코를 운영하고 있는 금세공업자였다.

그러니 영주 입장에선 방코의 안전을 가장 신경 쓸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가 바로 방코를 감시하는 시어들의 매와 같은 눈이었다.

‘그렇다고 밖에서 굴러먹다 온 우리가 고작 환전하는 일에 말끔히 차려입고 갈 순 없잖아? 가서 말썽은 안 피웠으니 이쪽 사정 좀 헤아려달라고.’

남의 구역에서 괜히 소란을 일으켜 봤자 좋을 건 없기에 세트와 그의 동료들은 서둘러 자리를 떴고, 곧장 시장으로 찾아가 그들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사기 시작했다.

“방코는 방코인 모양이야. 밖에 시어들 깔려 있는 거 봤지?”

“신경 꺼. 원래 그런 곳이잖아.”

“그렇긴 하지.”

“어서 돌아가자고. 우리가 이런 데 있어 봤자 좋은 시선은 못 받잖아.”

시장에서 볼일을 마친 그들은 그들의 야영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들의 야영지는 마을과 다소 떨어진 어느 숲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야영지로 향하는 도중 세트의 동료인 키스가 갑작스레 말을 꺼냈다.

아까 들렀던 방코에 관한 이야기였다.

“야, 아까 방코에서 깎는 김에 개당 2실링까지 더 깎아보지 그랬어? 3실링은 너무 비싸잖아.”

“맞아. 원래 1달란트당 1실링이었잖아? 무슨 3실링이야.”

같이 왔던 크리스까지 나무라자 세트가 언짢게 목소리를 냈다.

“방코가 거기밖에 없는데 어떻게 해. 보니까 대놓고 배짱장사하고 있던데. 그리고 너희들이라고 뭐 달랐을 거 같아? 너희들도 똑같애.”

그 말에 크리스가 우연히 예전 기억을 상기시킬 수 있었다.

분명한 것은 예전은 지금과 달랐다는 것이다.

“옛날에 왔을 땐 그렇게 안 비쌌던 거 같은데.”

“안 비쌌다고? 뭔 소리야?”

“내가 3년 전에 여기 온 적이 있었거든? 그 뭐냐 폐광 탐사로 잠깐 들른 적이 있었단 말이야. 그때 저 가게에서 환전했을 때 1달란트당 1실링이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맞아, 분명 그랬어. 그래서 변방인데도 환전 수수료가 생각보다 싸네? 이렇게 생각했었단 말이야.”

“뭐?”

그 말을 듣고 나머지 둘은 나름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근데 왜 아까 말 안 했어?”

“그야…… 그새 바뀐 줄 알았지. 벌써 3년 전 일인데.”

“뭐라고?”

“근데 하루아침에 환전 수수료가 그렇게 비싸질 수가 있나?”

“그럴 리가 있냐?”

그 순간 셋 모두 아까 록펠러가 했었던 말을 상기시킬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 꼬마가 그랬잖아? 자기가 오고 나서 장사가 잘된다고.”

“빌어먹을…….”

“이거 제대로 당한 것 같은데? 분명 2실링에 했어도 충분했을 거야.”

“하…… 그 돈이면 술집 가서 요고 두 번 할 수 있는데! 요고 말이야.”

“두 번은 무슨! 그 돈이면 세 번은 하겠다!”

그렇다고 다시 발걸음을 돌리기엔 야영지에 거의 도착한 상태였고, 아까 그들에게 눈치를 주던 시어들도 문제였다.

“다시 찾아가도 안 돌려줄 거 같은데?”

“너 같으면 돌려주겠냐? 오랜만에 호구 물었다고 좋아하고 있을 텐데.”

“딱 고블린 같은 놈이었어. 고블린들이 그렇게 장사한다면서?”

“하…… 천하의 하운드 용병 셋이 이렇게 가버리네.”

“솔직히 배짱장사한 게 컸지.”

결국 발걸음을 돌리지 못한 셋은 야영지 안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돌아온 셋은 곧장 대장 막사가 자리한 곳까지 찾아갔다.

마을에 갔다 온 일을 그들의 우두머리에게 보고하기 위함이었다.

찾아간 대장 막사.

그들이 대장 막사에 찾아갔을 땐 하운드 용병대의 대장인 카를은 영주가 보낸 관리인과 이미 접촉한 뒤 관리인을 영주성으로 돌려보낸 뒤였다.

막사 바닥에 놓인 금화 주머니를 보니 오크 토벌에 대한 선수금을 미리 받아낸 것으로 보였다.

용병 세트가 바닥에 놓인 금화 주머니를 보며 대장 카를에게 마을에 갔다 온 일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전부 듣고 난 대장 카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영지 사정이 생각보다 심각할 정도는 아닌 모양이군. 하긴 찾아온 관리인 태도를 보니 영지 사정이 엄청 급해서 우릴 부른 눈치는 아니었어. 얼굴에 나름 여유가 있었거든.”

“우리들도 그렇게 느끼긴 했어. 우릴 부른 것치곤 영지 사정이 꽤나 평화롭던데?”

그러자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키스와 크리스가 옅게 표정을 구겼다.

그들이 놀 바닥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가 무슨 동네 똥개 새끼들도 아니고, 이런 같잖은 일에 대체 왜 부른 거야? 여기 영주는 부를 용병대가 그렇게 없었나? 이거 수준이 안 맞잖아. 수준이.”

“천하의 하운드가 이런 데서 놀 짬밥은 아니긴 하지? 우리 같은 짐승들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피비린내 나는 전장이 딱 적성이라고, 안 그래?”

천하의 하운드 용병대라 해도 매번 힘든 일만 하라는 법은 없었다.

투정을 부리는 부하들과 다르게 나름 만족해하는 대장 카를이 말을 잇기 시작했다.

“선수금도 미리 받았겠다. 급할 게 없으니 천천히 움직이면 되겠군.”

대충 사정을 파악한 대장 카를은 뜻밖의 물음을 그들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그보다 방코까지 들렀다고?”

“어, 들르긴 했지.”

“거긴 어땠나?”

갑자기 방코 일은 왜 묻는 걸까?

세트가 의아해하는 사이 같이 있던 키스가 답해주었다.

“어땠냐고 물을 것까지 있나? 거긴, 그냥 그랬는데.”

“그랬다고? 규모는?”

“규모? 규모까진 왜?”

키스가 반문하는 사이 이번엔 크리스가 그 물음에 답해주었다.

“변방에 있는 것치곤 적당했던 것 같은데.”

이번엔 용병 세트가 대장 카를에게 의문을 드러냈다.

갑자기 방코 일에 대해 물어본 그의 의중이 궁금했던 것이다.

“대장, 갑자기 방코 일은 왜 물어본 거야?”

그 물음에 대장 카를은 근처 바닥에 있던 금화주머니를 말없이 들어올렸다.

“늑대 소굴에 선수금으로 받은 이 금화주머니를 놔둘 배짱이 없거든. 저번처럼 손버릇 고약한 녀석이 있을지 어떻게 알겠어? 차라리 어느 정도 보관료를 주더라도 방코에다 맡겨놓는 게 안전하지 않겠나?”

씩 웃어 보이는 대장 카를을 향해 세 부하는 서로 간 시선을 주고받더니 이내 고개를 젓기 시작했다.

그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한 대장 카를이 의문을 표했다.

“반응들이 왜 그래?”

그 물음에 세트가 나머지 둘까지 대표하여 대꾸해 주었다.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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