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15화 (15/181)

§15화 04. 방코의 조수가 되었다(3)

록펠러가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카터는 회중시계를 힐끔 쳐다보며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손님이 찾아오기엔 이른 시간이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확인한 것이다.

“금화 설명은 대충 다 한 거 같은데, 궁금증은 다 풀린 거냐?”

“네.”

“그래, 그럼 앞으로 네가 할 일에 대해 설명해 주마.”

금세공업자가 하는 세 가지 일 중에 첫 번째는 이미 설명했고, 카터는 나머지 일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우선 네가 중점적으로 해야 할 일은 하나다. 달란트를 만드느라 바쁜 나를 대신해서 여길 찾아오는 손님들을 상대하는 일이지. 앞에서 세 가지 일이 있다고 했었지?”

“네, 그렇게 말하셨죠.”

“그럼 나머지 일에 대해 말해보거라. 너도 여기저기서 들은 게 있을 거 아니냐?”

“금화를 보관하는 일과 남에게 금화를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일이죠.”

“그래, 정확히 알고 있구나.”

카터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네가 할 일은 그거다. 내 대신 금화를 보관하러 온 손님들을 상대하고, 또 금화가 필요해서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금화를 내주고 이자를 받는 일이지.”

카터는 미리 준비해 놓은 장부를 꺼내 록펠러에게 보여주었다.

“이 가게 장부란다. 확인해 보거라.”

록펠러는 카터가 건넨 장부를 펼쳐 그 내용들을 쭉 살펴보았다.

장부엔 이제까지 그의 가게에서 진행되었던 모든 거래 내역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처음 본 내용이라 단숨에 이해되진 않았지만, 계속 살피다 보니 대충 무슨 내용인지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장부 내용이야 뭐 거기서 거기지.’

잠시간 집중해서 장부를 살피던 록펠러였기에 카터는 확인 차 물어보았다.

“그 장부에 뭐가 적혔는지 대충 알겠느냐?”

“네, 대충 알 것 같아요. 여기 최근에 금화를 빌려 가신 영주님 이름도 적혀 있네요.”

카터가 그것 외에도 몇 가지를 더 물어보았고, 그 물음에 록펠러는 최대한 성실히 답하며 장부 내용을 이해하고 있음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확인을 마친 카터가 입가를 살짝 휘며 록펠러를 칭찬해 주었다.

“역시 아비에게 배운 놈인지라 이해하는 것도 빠르구나. 잘했다. 그래, 대충 그런 내용이란다. 그건 내가 이중으로 매일 같이 확인하는 장부니 어설프게 장난칠 생각은 절대 하지 말거라.”

그 말에 록펠러는 손사래를 쳤다.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절 믿어주세요.”

“이 일은 말이다. 서로 간에 신뢰가 있어야 하는 일이란다. 네가 뭐 그 장부에 감히 장난을 칠 거라 생각은 안 한다만, 혹시라도 그런 일이 생긴다면 네게 좋은 일은 없을 거라 분명하게 장담하마. 이건 새겨두는 게 좋을 거다.”

“걱정 마세요. 이런 일을 하면서 신뢰와 믿음은 생명이죠.”

“그래, 항상 명심하거라.”

그래도 혹시 모르는 게 사람이란 동물이었다.

하지만 믿음 없이 가게 일도 맡길 수 없기에 카터는 록펠러를 믿어보기로 하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우선 찾아온 손님이 금화를 맡기는 일에 대해 설명해 주마. 사람들은 말이다. 이따금씩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금화를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일정의 보관료를 내고 방코를 이용하기도 한단다.”

“보관료가 아깝지 않을까요?”

“그거야 그들 마음이지. 하지만 이 가게 옆엔 바로 시어들 막사가 자리 잡고 있고, 또 맡긴 금화에 대해선 내가 보증해 주잖니. 그러니 자기와 주변 사람을 못 믿으면 여기다 보관료까지 내면서 맡기는 거지.”

“그렇긴 하네요.”

“여기서 너는 손님들에게 금화를 받고 그 내용을 이 장부에 적으면 된단다. 그리고 이게 가장 중요한데.”

준비한 것도 많아라.

카터는 록펠러에게 종이로 된 금화 보관증을 보여주었다.

“이건 금화 보관증이라고 해서 손님이 금화를 맡기고 갔을 때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이 가게에서 발급하는 일종의 차용증서란다”

차용증서(I owe you).

간단하게 ‘내가 당신에게 무언가를 빚졌소’라는 것을 증명하는 문서였다.

‘역시 IOU가 있을 줄 알았지.’

록펠러는 그가 건넨 금화 보관증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거기엔 ‘5 IOU’라 적혀 있었고, 그 아래엔 ‘리옹 길드’가 이 IOU를 보증한다는 문구가 추가로 적혀 있었다.

‘종이 화폐의 시작점이랄까? 엉뚱한 세계에서 이런 걸 보니 신기하긴 하네.’

록펠러가 나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카터는 자기가 건넨 금화 보관증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거기에 5 IOU라 적혀 있지? 그 의미는 그 금화 보관증이 있다면 우리 가게에서 5달란트를 당연히 내주겠다는 소리란다.”

카터는 강조하듯 검지까지 세웠다.

“그리고 여기서 네가 분명하게 기억할 것은, 어떤 고객이 이 가게에 금화를 맡기고 떠난 다음에 곧바로 찾아와서 금화 보관증을 잃어버렸다고 해도 절대 그 사람에게 금화를 내줘선 안 된다는 거다. 설령 가게 문밖을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고 해도 절대 안 돼. 이건 가게 안에서 금화 보관증을 잃어버렸다고 해도 마찬가지란다.”

록펠러는 바로 이해한 눈치였다.

“당연하죠.”

“그놈이 무슨 개소리를 지껄여도 절대 안 돼. 무조건 이 금화 보관증이 있어야만 금화를 내줄 수 있다고 손님들에게 꼭 말하거라. 잃어버리면 끝이라는 말도 꼭 해주고.”

“네, 명심할게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금화 보관증이 없다면 절대 금화를 내주지 않겠어요.”

카터가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놈이 수작질을 벌일 수 있겠지만, 그걸 떠나서도 이 가게에서 내준 금화 보관증은 밖에서 따로 거래될 수도 있단다.”

“그렇군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여기서 누가 금화 보관증을 가져갔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단다. 중요한 건 말이다. 여기서 내준 금화 보관증이란다. 이게 있다면 설령 거렁뱅이 거지가 찾아와도 금화를 내줘야 돼. 이건 모든 방코가 마찬가지란다. 하나의 약속인 게지.”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록펠러는 제 나이에 맞게 모르는 척 슬쩍 연기해 주었다.

방코 일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어도 문제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적당히 모르는 척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여기다 금화를 맡긴 사람들이 밖에서 보관증을 가지고 따로 거래도 하는 모양이네요?”

카터는 바로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렇지. 이 보관증을 가지고 밖에서 놈들이 무얼 하든 우린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우린 그저 여기로 오는 금화 보관증대로 금화만 내어주면 되니까.”

“그런데, 이건 갑자기 든 생각인데요. 어떤 사람이 안 좋은 생각으로 여기 금화 보관증을 위조하면 그땐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건 좀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현대 사회와 다르게 이곳엔 마음먹은 대로 모든 걸 이룰 수 있는 마법이란 힘이 있었다.

그렇기에 록펠러가 의문을 표하자 카터가 피식 웃어 보였다.

“그래서 이게 필요한 거란다.”

카터는 제 품에서 돋보기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금화 보관증의 위조 여부를 살피는 마법 도구, 즉 아티팩트였다.

“이건 말이다. 리옹 길드에서 제작한 특수감별용 아티팩트란다. 위조된 금화 보관증을 찾아내기 위해 만든 거지.”

그의 입가에 드리워진 미소엔 강한 자신감이 깃들어 있었다.

“혹시 싱클레어라고 들어봤느냐? 시골 촌뜨기 녀석이 알기에는 다소 벅찬 이름이긴 한데.”

“네, 당연히 알고 있죠. 설마 싱클레어 가문을 모를까요?”

마법명가 싱클레어.

가문의 힘이 한 나라에 맞먹을 정도로 거대한 그곳을 록펠러가 모를 리 없었다.

‘내가 싱클레어 가문 사람으로 빙의됐다면 지금쯤 세상 걱정 없이 살고 있겠지.’

카터가 말을 이었다.

“그래, 너무 유명한 곳이라 너 같은 시골 촌뜨기도 그 이름 정도는 알고 있는 모양이구나. 아무튼 그곳에 속한 대마법사가 우리 리옹 길드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준 아티팩트란다. 그러니 잡스러운 마법사가 아무리 장난질을 해도 절대 이 아티팩트의 감별력을 따돌릴 순 없는 게지.”

록펠러는 다시 의문을 드러냈다.

“그럼 거기 싱클레어 마법사가 장난친다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그거야…….”

카터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일은 없단다. 애당초 싱클레어 가문 자체가 부유한데 그런 짓을 과연 할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잖아요.”

“그래, 네 말대로 만에 하나라는 게 있지만 전혀 아쉬울 게 없는 사람들이 이런 변방까지 찾아와 그런 장난을 칠까? 그리고 가문 명성이 있지. 그런 짓을 하다가 들통나면 가문 이름에 먹칠을 하는 꼴인데, 누가 그런 짓을 하겠니?”

확신하듯 말하는 그를 두고 록펠러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법이지.’

세간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으로 손꼽히는 싱클레어 가문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을 다 사들일 정도로 부자는 아니었다.

‘그들의 금화가 바짝 말랐던 순간이 아마 검술명가 테페즈와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였나?’

제아무리 부유한 가문이라 할지라도 그들과 비슷한 재력을 가진 가문과 싸우게 된다면 돈은 당연히 모자라게 마련이었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는 거지.’

금화 보관에 대해 설명을 마친 카터는 마지막 남은 금화 대출에 대해 말해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일은 여기서 빌려 가는 금화에 대해 이자를 받는 거란다. 한 달 이자는 빌려 간 금화의 6퍼센트란다. 1달란트가 32실링이니 매달 2실링씩 이자가 생기는 셈이지. 그러니 어떤 사람이 이번 달에 1달란트를 빌려 갔다면 한 달 이자로 2실링을 가져가면 된단다.”

“정확히 2실링이 안 되지 않나요?”

“그렇긴 하지만 어림잡아 2실링으로 계산하거라. 어차피 셈법도 모르는 바보들 천지라 이런 거 가지고 딴죽 거는 사람을 못 본 것 같구나.”

한 달 이자가 6퍼센트라는 것은 꽤 고금리라는 것을 뜻했다.

‘이자가 세긴 하네. 한 달에 6퍼센트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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