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10화 (10/181)

§10화 03. 금세공업자와 만나다(4)

“자네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오크들 때문에 온통 난리야. 이유야 모르겠지만 놈들의 출현 빈도가 최근 들어 은근히 많아지고 있어. 예전 같았으면 그냥 그러려니 넘겼겠지만 이젠 그럴 수준도 아닌 거 같아. 며칠 전 영지민 하나가 당하더니 이번에 또 당했어. 그것도 건장한 청년이 둘이나 당했다고.”

“그렇습니까?”

“하여 조만간 자네에게 부탁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어. 이 오크 놈들을 정리하기 위해 실력 좋기로 소문난 용병 부대를 고용할 생각이거든.”

“용병 부대, 그거 좋은 생각이군요. 영주님께서 괜히 나설 필요는 없죠.”

“그런 일에 내 사람들을 쓰기엔 아깝지 않겠나? 돈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다면 나야 돈으로 해결하면 그만이지.”

자신을 찾아온 영주가 이야기를 꺼내자 금세공업자 카터는 은연중 미소를 머금었다.

영주가 금세공업자인 자신을 찾아올 이유는 딱 하나였다.

바로 급전이 필요한 것이다.

“만약 그 일에 돈이 필요하신 것이라면 제가 얼마든지 빌려드리겠습니다. 전부 영주님과 영지를 위한 일인데 그까짓 돈이 문제겠습니까?”

영주의 경우 카터가 상대하는 고객들 중에서 가장 신용이 우수한 자였다.

귀족이라 자존심이 있어 돈을 떼일 염려가 거의 없었고, 또한 영지 내에서 거둬들인 세금으로 안정적인 세수확보가 가능하니 금화를 빌려주는 금세공업자 입장에선 최고의 고객이었던 것이다.

“그래 뭐, 돈이야 자네에게 빌려 가면 그만이네만.”

슬슬 운을 떼는 영주가 금세공업자의 눈치를 봤다.

세상에서 이자 놀이를 하는 놈들은 지옥에나 떨어지는 버러지들이라고 했다.

해서 마음 같아서는 상종조차 하기 싫었지만, 그래도 돈은 필요했기에 어쩔 수 없이 그와 대면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이자지. 자네가 그냥 빌려줄 일은 없잖는가?”

영주가 제 턱수염을 매만지자 금세공업자도 은근슬쩍 그의 눈치를 보며 말을 잇기 시작했다.

“영주님, 저도 돈놀이로 먹고사는 마당에 영주님께 그냥 빌려드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제 사정도 고려해 주시지요.”

“남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떼먹고 살면 지옥에나 떨어진다고 하던데…… 자넨 그런 쪽으론 걱정이 없나 보지?”

그 말이 나오자 금세공업자는 속으로 그를 비웃어주었다.

‘내가 그딴 소리만 수천, 수만 번을 들었지.’

“하여 교단에 성금도 많이 내고 있습니다. 제가 비록 돈놀이로 신에게 미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성금이라도 많이 내면 사제들이 절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이 기도해 주지 않겠습니까? 하여 저희 같은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신의 미움을 덜 받고 있습니다.”

영주는 대놓고 고개를 저었다.

“성금이 전부는 아니네만.”

“그렇다고 교단에 대한 믿음도 전부는 아니겠죠.”

“자네는…… 다소 건방지게 내 말꼬리를 계속 잡는군.”

“어이쿠! 제 말이 다소 불쾌하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교단에 대한 이야기였기에 별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단지 성금을 많이 내면 신께서 저를 더 어여삐 여기지 않을까 그런 의미로 말한 것뿐입니다.”

돈은 곧 권력이었다.

제아무리 평민 나부랭이라고 해도 돈 앞에서는 영주도 한 수 접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래서 돈놀이하는 것들은 상종해서는 안 된다니까. 맘 같아서는 뭔가 꼬투리라도 잡아서 어떻게든 해보고 싶은데…….’

이 영지의 무소불위의 권력자인 그가 금세공업자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하면서도 쉽게 어쩌지 못하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내가 참아야지. 어차피 이런 놈들이야 신에게 버림받은 놈들이니까.’

아무리 돈놀이하는 놈들이 싫어도 결국 영지 일을 운영하다 보면 때때론 급전이 필요할 때가 있었다.

그런 때에 쉽고 빠르게 돈을 빌릴 수 있는 곳이 영지 내에 위치한 금세공업자의 방코밖에 없었고, 그런 방코에서 일하는 금세공업자들이 죄다 이런 놈들뿐이니 아무리 미워도 내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급전이야 이따금씩 필요하니.’

거기다 금세공업자들은 제국 황실과 깊은 연관이 있었고, 또한 모두에게 미움을 받는 직업인지라 자기들끼리 강한 연대를 만들어 그들과 관련된 불미스러운 일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금세공업자인 그가 아무리 밉다고 해도 영주가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고, 만약 영주가 제 기분대로 한다면 나중에 돈을 빌릴 때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그놈의 돈이 뭔지.’

영주가 자신의 영지를 운영하는 데 있어 돈이란 것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다.

그러니 영주도 제 영지 운영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금세공업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네를 미워해도 돈을 미워해서는 안 되겠지.”

금세공업자는 곧바로 장사치의 미소를 입가에 내걸었다.

“그리 봐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자네가 미워서 하는 말이네만. 이번에 빌려 가는 돈은 이자 좀 깎아서 주지 그러나?”

“저희는 항상 같습니다. 제게 얼마를 빌려 가시든 간에 저는 달에 6퍼센트의 이자를 받습니다. 이것은 영주님이라 해도 마찬가지고, 아니면 다른 고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예외는 없죠.”

어차피 빌린 돈이야 나중에 영지민들에게 거둬들인 세금으로 다시 돌려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도 그리 무식한 영주는 아니었다.

제 아비에게 나름 들었던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다.

‘여기 일을 운영하면서 너무 많은 돈은 빌리지 말라고 하셨어. 당장 빌릴 때야 좋다지만, 나중에 갚을 돈이 너무 커버리면 감당이 안 된다고 하셨으니까.’

“그것 좀 어떻게 안 되겠나? 이건 자네를 위한 일이기도 해. 만약 이번 일이 잘못돼서 이 영지에 오크들이 난입한다고 생각해 보게. 자네에게도 그리 좋은 일은 아닐 게야.”

영주를 따라온 시어들은 조용히 있었지만, 금세공업자를 알게 모르게 째려보는 눈빛으로 압박하고 있었다.

그들 역시 금세공업자를 안 좋게 보는 것도 있었지만, 영주의 말이 맞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자 제 뺨을 긁적이던 금세공업자가 한 발자국 물러서기로 했다.

어차피 영주의 땅에서 영업하는 그 역시 영주의 눈치를 봐야 했으니까.

“크흠! 그럼 이번만 특별히 싸게 해드리죠. 달에 4퍼센트 이자로 낮춰드리겠습니다. 다른 일도 아니고 이곳 영지를 위한 일이니 그 정도야 저도 양보를 해야겠죠. 그게 사람 사는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영주도 제 체면이 있어 더 이상 이자를 깎지는 못했다.

더 깎았다간 너무 없어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좋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

거래가 성사되자 금세공업자는 영주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럼 저번처럼 제게 차용증서를 써주시는 겁니까?”

“그래야겠지. 그렇지 않으면 자네가 내게 돈을 빌려주겠나?”

“역시 영주님은 최고십니다.”

금세공업자가 환히 웃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주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급전이 필요해서 돈을 빌리는 것뿐이지, 그것 외엔 크게 기뻐할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여간 돈놀이하는 것들은.’

금세공업자는 영주가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이것만큼은 확실히 전해주었다.

차용증서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건 노파심에 미리 말씀드리는 거지만, 영주님께서 제게 써주신 차용증서는 다른 곳에서 따로 거래될 수 있음을 미리 알고 계셔야 합니다. 이건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이 나중에 영주님께서 돈을 갚아야 할 대상이 제가 아닐 수 있음을 미리 말씀드리는 겁니다. 제가 그 권리를 남에게 파는 것이니까요.”

“그런다고 이자가 달라질 건 아니잖나?”

“이자는 그대로입니다.”

“이자가 달라질 것도 아니니 그건 자네 맘대로 하게. 내가 무슨 돈을 떼먹는 사람도 아니고 그런 걸 신경이나 쓰겠나? 어차피 돈 갚아야 할 사람이 자네에서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것뿐인데.”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우선 제게 차용증서를 써주시면 곧바로 필요하신 양만큼 금화를 내어드리겠습니다.”

영주는 금세공업자에게 차용증서를 써주고 대출을 받아 가게 밖으로 나왔다.

시장 근처에 위치한 방코는 지나가는 영지민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여길 나올 때마다 기분이 영 별로야.’

그러던 중 영주는 낯익은 자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며칠 전에 보았던 어느 평민의 자식이었다.

‘저 아이는…….’

영주가 록펠러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사이.

우연찮게 방코 앞에서 영주와 마주친 록펠러는 그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영주님을 뵙습니다. 록펠러 로스메디치입니다.”

“그래, 자네가 한스의 아들이었지? 그때 장례식은 잘 마무리 지었나?”

그 말에 록펠러는 방금 전보다 더 예를 차리며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네, 영주님 덕분에 아버님 장례식은 잘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래, 그럼 내가 한 말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 보았나? 분명 자네에게 예의와 분수에 대해 말했을 텐데?”

“거기에 대해선 아직도 생각하는 중입니다.”

행색을 보면 예전에 봤을 때와 그다지 차이 나는 게 없어 보였다.

우연히 만난 평민의 자식과 오래 대화를 섞을 정도로 그리 한가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영주는 제 갈 길을 가고자 했다.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어. 그러니 너무 고민하지 마.”

제 말을 마친 영주는 록펠러에 대한 관심을 접고는 그대로 떠나가 버렸다.

그런 영주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던 록펠러는 그가 나왔던 방코 쪽으로 자연스레 시선을 옮겼다.

‘여기서 돈을 빌려 갔나?’

록펠러가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영주에게 돈을 빌려준 일로 기뻐하고 있던 카터가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가게 밖을 살피더니 이내 안도하는 모습으로 록펠러에게 말을 건넸다.

“그래, 저번에 거래한 일로 찾아온 게냐?”

“네.”

“그럼 물건 좀 보자꾸나.”

가게 안으로 자신을 이끄는 카터에게 록펠러는 궁금하던 것을 물어보았다.

“방금 영주님께서 찾아오신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별일 아니야. 너는 무시해도 된단다.”

“그런 일이라면 그냥 알려주시면 안 되는 겁니까?

“궁금한 것도 많구나. 영지 근처에 나타나는 오크들 때문에 영주님이 용병들을 불러내기 위해 돈을 빌리러 왔어.”

“오크들이요?”

“근래에 한 명이 당했다가 최근에 두 명이 또 당했다더라.”

오크 이야기.

록펠러에겐 남 일처럼 들을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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