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03. 금세공업자와 만나다(2)
크흠!
작은 헛기침과 함께 인기척을 낸 록펠러가 가게의 문을 두들기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록펠러가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의자에 앉아 있던 카터 골드스미스가 고개를 들어 찾아온 손님을 확인했다.
‘뭐야? 애잖아.’
“무슨 일로.”
카터는 15살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 무슨 이유로 찾아왔는지 의문이 들었다.
행색을 보아하니 많이 초라한 게 막상 큰돈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귀족가의 자제도 아닌 것 같고, 영 모르겠군.’
“여기엔 뭐 하러 왔니?”
그가 손님일 거라 감히 생각도 못 한 카터가 자연스레 말을 놓았고, 그런 카터에게 록펠러는 정중히 인사부터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일이 있어 실례를 무릅쓰고 잠시 들르게 되었습니다.”
“일? 심부름은 아니고?”
“심부름은 아닙니다. 제 일입니다.”
옷이 낡긴 했으나, 그렇다고 농노나 노예가 입을 법한 옷은 아니었다.
자신처럼 평민일 게 분명하다고 생각한 카터는 록펠러를 문전박대하기보다는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이야기나 더 들어보기로 했다.
“그래, 여기까진 무슨 일로 왔니?”
“이걸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거래 제안을 할 게 있는데, 이걸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거래 제안?”
반문을 하는 카터는 자연스레 눈살을 찌푸렸다.
어린놈이 대체 뭘 안다고 자신에게 거래 제안을 한단 말인가?
‘나랑 장난하자는 것도 아니고, 어린놈이 무슨 거래 제안을 할 게 있다고.’
“무슨 제안? 설마 장난치러 온 건 아니지?”
이때 록펠러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한 상태였다.
“장난은 아닙니다. 제가 비록 이렇게 나이는 어리지만 한 집안의 어엿한 가장입니다.”
“뭐? 네가 가장이라고?”
가장이라는 말에 카터가 약간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
저 어린 것이 벌써부터 한 집안의 가장일 줄이야.
“부모님은?”
“최근에 아버지까지 전부 돌아가셨습니다.”
“어쩌시다가?”
“두 분 다 지병이 있으셔서…….”
“그래?”
제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던 카터는 최근에 죽은 평민이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누가 죽긴 했다고 들었었는데 그게 누구였더라? 이름이…….’
한참을 생각해 보던 카터는 뒤늦게 록펠러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최근에 죽은 평민이라면 딱 한 명 있었으니까.
“그래, 네가 그 징세관 아들이었구나. 가장이라고 했으니 분명 장남일 테고.”
카터는 그가 징세관의 아들이라는 것만 간신히 기억해 냈다.
“네, 록펠러 로스메디치입니다.”
“맞아. 네 집안 이름이 로스메디치였지. 이제야 기억나는구나.”
록펠러는 처음보다 더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그에게 예를 보였다.
“그래, 가엾은 것. 그런데 나한테 찾아와 대체 무슨 거래 제안을 하려고? 나야 금세공업자라 너와 거래할 게 전혀 없을 텐데?”
금세공업자가 비록 평민의 신분이었지만, 상대하는 고객들이 전부 다 귀족이거나 부유한 평민들이었다.
그런데 당돌하게 자신을 찾아온 이 어린 손님은 자신이 상대하는 고객 축에도 끼지 못할 것 같았다.
그만큼 초라하고 없어 보였으니까.
그래서 강한 의구심이 들려는 찰나 록펠러가 찾아온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게…… 집안 사정이 안 좋다 보니 어떻게든 살고자 하는 마음에 무슨 소일거리가 없나 여러 방면으로 찾아봤습니다.”
카터는 대꾸하지 않고 팔짱을 낀 채 그의 이야기를 잠자코 들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우연찮게 저희 조부님께 은혜를 입었던 어떤 분을 만나게 됐습니다.”
“조부님께 은혜를 입어?”
금세공업자였지만 남에게 돈을 빌려주는 고리대금업도 같이 하고 있었다.
그래서 영지 내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는 대강 알고 있는 편이었다.
여기서 로스메디치 집안도 예외는 아니었다.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카터가 이내 고개를 주억이기 시작했다.
“그래, 그 징세관 아버지가 원래 의사였다고 했어. 붉은 가운을 입어서 붉은 의사라 소문이 났었지. 그런데 그 조부님께 은혜를 입었다고? 그게 누구니?”
“그분에 관해서는 제가 언급하기가 조금 그렇습니다. 제대로 보지도 못했지만, 제가 여기까지 온 이유 중 하나가 그분을 대신하여 거래를 하기 위함입니다.”
“뭐? 그 사람을 대신해 네가 거래하러 왔다고?”
“네.”
카터는 자연스레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설마…….’
카터가 어느 정도 눈치를 챈 것 같자 록펠러는 조심스레 말을 꺼내 들었다.
“그분께선 사금 거래만 대신해 준다면 거기서 발생한 수익 중 일부를 제게 주신다고 했습니다.”
“뭔가 했더니 밀거래였구나.”
영지 내에서 세금 없이 거래하는 건 전부 다 불법이었다.
하지만 돈에 미친 자라면 환장하는 게 바로 밀거래였다.
세금을 내지 않는 만큼 이득을 더 챙길 수 있었으니까.
“거래를 도와주면 그자가 수수료를 떼어 준다고 했니?”
“네,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저도 사정이 좋지 않아서…… 며칠째 굶기도 했구요.”
만약 다 큰 성인이 찾아와 저런 말을 했다면 카터는 우선 의심부터 했을지도 모른다.
밀거래를 주도하는 사람이 그인지 아니면 다른 이인지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록펠러가 너무 어려서 카터는 록펠러가 이 일을 주도했다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하긴 그놈 입장에선 딱 써먹기 좋았겠지. 조부님의 은혜는 무슨. 그냥 써먹기 좋으니까 대충 가져다 붙인 거고, 이 아이야 당장 먹고살기가 급하니 뭐든 한다고 했을 테니까.’
“딱하구나.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그런 일에 휘말릴 줄이야. 이건 밀거래야. 정상적인 거래가 아니니 아마 들통난다면 영주님께서 아주 노발대발하실 게다.”
그 말을 듣자마자 록펠러는 내심 안도할 수 있었다.
‘좋아. 완전 속았구나.’
연기 자체는 완벽했다.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된 불쌍한 역할을 충실히 연기한 것이다.
‘내가 이 일을 주도했다고 생각하기엔 무리겠지. 그만큼 내 나이가 어리니까.’
어리다는 건 때론 남의 방심을 이끌어내는 훌륭한 무기가 될 수도 있었다.
카터는 록펠러의 거래 제안을 듣고선 잠시 고심했다.
‘밀거래도 나름 위험한 일이긴 하지만 비밀만 잘 지킨다면 크게 문제 될 건 없겠지. 그리고 여기 일을 영주 그놈이 어떻게 알겠어? 가게 장부도 못 읽는 까막눈 새끼인데.’
그는 소심하여 판을 잘 벌이지 못하는 장사꾼이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그가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작았다.
‘리옹에서 벌이는 일보단 차라리 이게 더 안전한 일이지. 이건 별로 티가 안 나니까.’
“그런데 말이다. 이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는 너도 알고 있니?”
약간 두려운 기색을 내비치는 록펠러는 자신의 연기를 충실히 이행해 나갔다.
“네…… 밀거래니까 이게 좋은 일이 아니란 건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아마 영주님께 걸리면…… 안 좋은 일이 생기겠죠?”
“만약, 아주 만약에 말이다. 이번 일이 들통 나면 나는 영주님께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할 게다. 네가 뭐라고 하든 나야 모함이라고 하면 그만이니까.”
“네, 그 점에 대해선 잘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분께서도 제게 이 일을 맡기면서 돈을 주시겠죠.”
“그래, 그건 잘 알고 있구나.”
카터는 록펠러의 사정을 깊게 헤아리는 것처럼 연기하며 자신의 탐욕을 채우고자 했다.
‘차라리 이런 일이나 왕창 들어왔으면 좋겠군. 나는 왜 이렇게 돈복이 없는 거야.’
“나도 이런 일을 반기진 않는단다. 걸리면 골치 아프니까. 하지만 네 사정이 딱하니 이번 한 번만 눈감아주마.”
카터는 아까 자신이 욕했던 밀수업자와 마찬가지로 뻔뻔한 거짓말로 록펠러의 환심을 사고자 했다.
“나도 말이다. 사실 말은 안 했지 네 아버지께 도움을 받았던 적이 있단다.”
사실 세금을 걷는 징세관이라고 한다면 영지민에겐 증오의 대상이었다.
그러니 그가 한 말은 너무나도 뻔한 거짓말이었으나, 그 말을 하는 당사자는 상대가 어려서 쉽게 속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 일이 없었다면 아마 네 제안을 거절했거나 아니면 여기 일을 영주님께 보고했겠지. 그게 당연한 거니까.”
록펠러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의 뻔뻔한 거짓말이 너무 가증스러웠다.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을 해야지. 그걸 누가 속는다고.’
그런 록펠러의 속마음이야 알 리 없는 카터는 제 할 말만 계속 이어나갔다.
“이번 일은 절대,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영주님께서 알아서는 안 되는 거야. 밀거래잖니? 영주님께서 다른 건 다 관대하실지는 몰라도 정말 돈 문제만큼은 날카로울 수가 있어요.”
말을 마친 그가 이내 장사치의 미소를 입가에 내걸었다.
“그래, 우선 물건이나 보자꾸나. 대체 얼마나 가져온 거니?”
가져온 사금의 양은 적었다.
그래서 록펠러는 적당히 포장하기로 했다.
“그분께서 이번이 첫 거래라 처음부터 많은 양을 거래하는 건 무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많이 가져오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한번 보자꾸나.”
가져온 양이 적었어도 카터는 나름 만족한 얼굴이었다.
‘얼추 보니 사금 중에선 나름 최상급이야. 순도가 제법 될 거 같아. 양으로 보면 금화 한 개를 만들기엔 다소 모자란 양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어디야?’
저 혼자 고개를 주억이는 카터가 순간 의문을 품었다.
대륙에서 이 정도로 고품질의 사금이 나오는 곳이 있었던가?
“그런데 이게 어디서 가져온 사금이라고 했니? 뭐 들은 거라도 있니?”
록펠러는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답해주었다.
“그런 얘기는 전혀 못 들었습니다. 저와 대화하실 때도 조심하시는 게 보였거든요. 아마…… 모두의 눈속임을 위해 먼 곳에서 가져오지 않았을까요?”
“그래? 흠…… 그보다 물건은 썩…….”
“만약 물건이 마음에 안 드시면 다른 금세공업자와 거래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에 카터가 화들짝 놀랐다.
밀거래였기에 사금의 값을 후려치다가 자신이 갑이 아님을 나중에 눈치챈 것이다.
‘모처럼 온 기회를 이렇게 날릴 순 없지.’
“뭔가 오해한 거 같은데 물건은 아주 좋단다. 만약 거래만 계속할 수 있다면 내가 계속 좋은 값에 쳐주겠다고 말하거라.”
록펠러는 확인 차 다시 물어보았다.
“그렇게 좋은 사금인가요?”
“그래, 아주 좋단다. 이 정도라면 거의 최상급이구나. 순도가 아주 좋아 보여. 훌륭해.”
금맥전쟁이 왜 발발했겠는가?
어설픈 금맥이라면 드워프들이 굳이 자신들의 옛 땅을 되찾는다는 명분으로 제국과 그리 지독하게 싸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좋아 생각한 그대로야. 이 땅은 아직 살아 있어.’
제국에서도 변방에 위치해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그래, 다음 목표는 그게 좋겠네.’
금세공업자와의 밀거래를 통해 당장 먹고살 문제를 해결하게 된 록펠러는 이곳에서 자신의 새로운 목표를 세울 수 있었다.
‘모름지기 사람은 항상 큰 뜻을 품어야 하지. 그래야 못해도 중간은 가는 법이니까.’
비록 비루한 평민 집안의 장남으로 빙의하게 됐지만, 록펠러는 그 삶에 안주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나름 미래에 일어날 일도 다 알고 있는 마당에 평민으로 죽을 순 없지.’
비단 금세공업자만 돈을 최고로 치는 건 아니었다.
돈이 최고라 생각하는 건 록펠러 역시 마찬가지였다.
‘돈을 크게 벌 수만 있다면 이 땅도 살 수 있어.’
굶주림을 해결한 그의 새로운 목표.
그것은 바로 대륙에서 가장 저평가된 몬테펠트로 영지를 소유하는 것이었다.
‘여기다 로스메디치 가문을 세우는 거야.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을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