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명가의 창시자-6화 (6/181)

§6화 02. 금 사냥에 나서다(2)

록펠러의 말에 둘째가 가장 먼저 반응을 보였다.

“나 들어본 거 같아! 옛날 여기에 드워프들이 엄청 많았대! 전부 금을 캤다고 하던데?”

셋째 역시 주워들은 게 있는 모양인지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나도 들어봤어. 이 영지에 금광이 엄청 많았었대. 진짜 많았다고 했어. 지금이야 하나도 없지만…….”

동생들의 반응이야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우선 너희들도 일을 배워야 하니까 앤드류랑 조슈아가 냇가 밑에 있는 흙을 최대한 깊게 파서 형한테 줘. 그럼 형이 그 흙에서 어떻게 사금을 찾는지 시범을 보여줄 테니까 너흰 그걸 보고 잘 따라 하면 돼.”

사금을 채취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비중이 높은 금은 대개 냇가 깊은 바닥에 가라앉게 마련이었다.

그러니 냇가 깊숙이 흙을 파서 패닝이라는 큰 접시에 담고 흐르는 물 위에서 돌리게 되면 비중이 큰 금과 몇몇 금속들만 흐르는 물에 씻겨나가지 못하고 오목한 패닝 접시 아래에 남게 된다.

이후 반짝이는 금만 따로 추려낸다면 그게 사금을 채취하는 방법이었다.

‘그때 했을 땐 진짜 여러 번 해야 몇 조각 나오던데 여긴 어떻게 되려나.’

록펠러는 반신반의하며 동생들이 퍼다 준 흙을 패닝 접시에 담고 흐르는 물 위에서 천천히 돌리기 시작했다.

눈에 잘 보이는 자갈과 모래 같은 건 금방 씻겨 내려가고, 그 아래에 있던 흙들도 흐르는 물에 빠르게 씻겨 내려갔다.

마른 침을 삼키며 패닝 작업을 지켜보고 있던 조슈아가 조급하게 목소리를 냈다.

“거기에 금이 있는 거 맞아? 다 씻겨 내려가는데…….”

“바보야! 금이 얼마나 귀한데 그렇게 많이 있겠어? 기다려 봐, 록펠러 형이 찾고 있잖아.”

어지간하면 말이 없는 넷째도 초롱초롱한 눈으로 패닝 위에서 흘려 나가는 흙을 보며 입을 열었다.

“여기에 정말 금이 있는 거야?”

침묵하는 록펠러는 패닝 접시에 집중하여 사금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제발, 제발 좀 나와라. 나도 좀 살자.’

그렇게 패닝 작업이 끝나자 당장 눈에 들어오는 반짝이는 금가루들이 보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아주 많은 양이었다.

‘이렇게나 많이 나온다고?’

한국에서 사금을 채취했을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양이 패닝 접시 아래에 있었다.

사금 채취가 처음인 어린 동생들이야 지금 어떤 상황인지 몰라 어리둥절했지만, 록펠러만큼은 흥분된 마음을 감추기가 너무 어려웠다.

‘이 정도면…… 최소한 굶어 죽지는 않을 거 같은데?’

소설 속 세상에 떨어져 끝을 알 수 없는 긴 어둠 속을 전전하던 그가 처음으로 구원의 빛줄기를 본 순간이었다.

‘아니야. 이 정도면 인생이 바뀔 수도 있어. 이것 가지곤 인생 자체가 바뀌진 않겠지만 이걸 토대로 성장한다면?’

생각보다 많은 양에 록펠러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패닝 접시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셋째가 말했다.

“이게 다 금이야? 여기서 반짝이는 거 말이야.”

어린 동생들도 금이란 게 무엇인지 모르진 않았지만 그들이 생각한 것보다 적게 나온 양에 다들 실망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너무 적게 나온 거 아냐? 이거 가지고 어떻게 먹고 살아.”

사금을 한 번이라도 채취해 봤던 전문가들이 있었다면 분명 자지러졌을 정도의 양이었지만, 이를 알지 못하는 아이들이었기에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반응이었다.

셋째의 실망감이 짙어지고 있을 때 록펠러가 목소리를 냈다.

“아니야. 이건 진짜 많이 나온 거야.”

그 말에 가장 반색한 건 셋째와 마찬가지로 강한 의구심을 품었던 둘째였다.

“이게 정말 많이 나온 거야?”

“나도 이 정도까지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어. 너희들은 잘 모르겠지만 사금을 캔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많이 나오진 않아.”

셋째 역시 반색했다.

“아 정말? 그럼 이게 진짜 많이 나온 거야? 와!”

록펠러는 벌써부터 가난을 벗어나 부자가 되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만 계속 나와 준다면야 진짜 부자가 되는 건 꿈이 아닐 수도 있어. 실현 가능한 꿈이라고!’

비록 검술이나 마법적인 재능이 없어 소드마스터, 아니면 대마법사 같은 것은 될 수 없었지만 적어도 돈이 썩어나는 부자는 될 수 있을 거 같았다.

여기 있는 사금을 다 캔다면 말이다.

‘대박이다. 진짜 대박이야.’

록펠러가 앞으로의 일을 그리며 적잖이 흥분하고 있을 때 어린 동생들은 저들끼리 신나서 떠들어댔다.

“그럼 이제 더 이상 굶지 않아도 되는 거야?”

“굶기는 무슨! 이젠 우린 부자가 되는 거야! 록펠러 형, 그렇지? 우리 부자 될 수 있는 거 맞지?”

여간해선 말을 꺼내지 않는 넷째마저도 흥분된 형제들 사이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정말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여기서 넷째의 손을 꼭 붙잡고 있던 어린 여동생은 오빠들이 무엇 때문에 흥분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제 손가락만 조용히 빨면서 배고픔을 달래고 있었다.

“돈 벌자!”

신이 난 둘째 앤드류가 소리치자 곧바로 셋째 조슈아가 따라붙었다.

둘은 가장 열정적으로 움직였고, 넷째도 막둥이 루시아를 챙겨가며 두 형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역시. 아직 이 땅은 죽지 않았어.’

남들이 다 끝났다고 생각한 땅에서 록펠러는 자신과 어린 동생들의 비루한 처지를 한순간에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찾게 되었다.

‘이거 좀 흥분되는데?’

남들이 보기엔 단순히 사금 조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록펠러는 그 너머 실현 가능한 꿈을 보았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난 소드마스터나 대마법사 같은 건 못 돼. 그런 핏줄도 아니고 애당초 재능 자체가 없는데.’

가능성이 없는 길을 굳이 고집할 필요는 없었다.

그건 시간 낭비, 돈 낭비였으므로.

하지만 금융과 역사를 공부한 경제학도로서 나름 미개한 금융시스템을 가진 이 세상에서 해볼 만한 도전은 있었다.

‘그래, 소드마스터나 대마법사가 되는 게 뭐가 중요하겠어? 어차피 그런 건 굉장히 위험한 건데.’

한국에서 살 때도 그러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번째도 돈이었고, 두 번째도 돈이었다.

‘결국 돈이 최고야. 진짜 다 필요 없고 돈이 최고라고.’

권력과 명예, 그 어떤 것이라도 돈만 있다면 전부 살 수 있었다.

‘심지어 안전까지도 살 수 있는 거지. 그걸 가능케 하는 만능 치트키가 바로 돈이니까.’

그렇게 시작한 사금 채취는 늦은 오후가 돼서야 끝날 수 있었다.

“다들 모여 봐.”

집으로 돌아온 록펠러는 낡은 식탁을 두고 어린 동생들과 모여 앉아 오늘 채취한 사금을 같이 확인해 봤다.

“이게 오늘 우리가 노력해서 얻은 양이야. 우리가 정당하게 노력해서 번 가치라고.”

한 차례 패닝을 통해 얻었던 사금의 양은 작았지만, 그 결과물들을 하나로 합쳐보니 눈이 휘둥그레 떠질 정도로 많은 양이 되어 있었다.

얼추 작은 금화 하나 정도는 만들 수 있는 양.

“와, 우리가 이렇게 많이 모았어? 진짜 많다.”

“금이 이렇게 많은 건 처음 봐. 우리 이러다 진짜 부자 되는 거 아냐?”

록펠러를 포함한 어린 동생들까지 하루 종일 냇가에서 씨름한 이유로 몰골은 말이 아니었지만, 일개 평민이 가지기엔 다소 과분한 사금가루 앞에선 전부 흥분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전부 고생 많았어. 우리가 매번 이렇게 노력한다면 더 이상 굶을 일은 없겠다. 아니, 이 정도면 남보다 부유하게 살고도 남지.”

그 말을 듣고 가장 흥분한 것은 둘째와 셋째였다.

“진짜?”

“정말 그렇게 된다고? 와, 신난다!”

동생들이야 당장 사금가루를 팔아 부자 될 생각에 정신이 없었지만,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생각해야 하는 록펠러의 마음은 그렇게 편하지가 않았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처리하느냐인데…….’

원칙적으로 영지 내에서 생산되는 모든 것은 영지의 주인인 영주의 것이었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그들이 채취한 사금은 엄연히 그들 게 아닌 것이다.

‘이걸 시장에 대놓고 팔 수는 없어. 분명 문제가 생길 거야.’

그렇다고 이 일을 영주에게 보고하는 것도 웃겼다.

‘잘했다고 말하면 다행이겠지. 절대 가만히 안 넘어갈 거야.’

다 떠나서 사금을 채취한 자신들을 영주가 가만히 놔둘지도 의문이었다.

벌을 내리든, 상을 내리든, 모든 건 영주의 마음이었으니까.

‘지 마음에 안 들면 우리에게 벌을 내릴 수도 있겠지. 그거야 녀석 마음이니까.’

록펠러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들떠 있던 셋째의 표정이 갑작스레 안 좋아졌다.

록펠러와 비슷한 걱정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근데 이거 어떻게 팔아? 이거 시장에 팔면 아침에 록펠러 형이 말한 것처럼 문제 되지 않을까?”

둘째도 공감했는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맞아. 우리가 냇가에 가서 사금을 캤다고 하면 분명 말이 나올 거야. 단순히 숲에 가서 사냥하는 것도 영주님 허락이 있어야 하잖아. 들판에 있는 토끼랑 족제비 같은 건 봐주긴 하지만…….”

숲에서 사냥을 하는 것조차 영주의 허락이 필요했다.

정말 영지 내의 모든 것이 영주의 것이니 숲에 사는 짐승들을 사냥하는 것조차 그 주인인 영주의 허락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이거 영주님께 알리는 게 좋지 않을까?”

셋째가 말하자 둘째가 버럭 성을 냈다.

“그건 아니야! 그러다 영주님이 우리한테 벌을 내리면 어쩌려구!”

“그건 그런데…… 그래도 우리가 먼저 잘못했다고 빌면 영주님께서 봐주실 수도 있잖아.”

“그걸 어떻게 알아! 그러다 벌 받으면 네가 책임질 거야?”

두 동생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록펠러 역시 고민 좀 해봤다.

‘길은 두 가지야. 영주에게 알리거나 아니면 우리끼리 해 먹는 거.’

만약 이 일을 알린 뒤 영주가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남들의 눈치를 볼 것도 없이 합법적으로 사금 채취가 가능해진다.

‘그렇게 되면 심적으론 편해지겠지. 하지만 장담할 수 없는 일이고, 또 우리가 수확한 양의 일정 부분을 녀석에게 세금 형태로 줘야 할 거야. 보통 그런 식이니까.’

하지만 좋게 풀렸을 때의 이야기였다.

만약 안 좋게 풀린다면 록펠러와 어린 동생들은 벌을 받을 것이고, 영주는 자신이 거느린 농노들에게 사금 채취를 독점시키며 저 혼자 호의호식할 가능성도 있었다.

‘충분히 가능하지. 제 땅에서 난 건데 욕심 많은 녀석이라면 자신의 것을 굳이 누군가와 나누려 하진 않을 거야. 오히려 제 밑에 있는 농노들이나 노예들을 시켜 저 혼자 다 해 먹을 수도 있겠지.’

그래서 내려진 결론.

‘영주에게 이 일을 알리는 건 너무 불확실한 요소가 많아. 이건 아니야.’

거기다 일이 아무리 잘 되어도 자기 몫의 일부가 영주에게 고스란히 넘어간다는 게 너무나 배 아픈 일이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번다고. 내가 미련하게 곰이 될 순 없지.’

“우리 일을 영주님께 알리는 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다.”

록펠러가 운을 떼자 동생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먼저 의문을 드러낸 건 셋째 조슈아였다.

“그럼 어떻게 해? 우리가 맨날 걸리지 않으리란 법도 없고, 만약 걸리면 그땐 정말 큰일 날지도 몰라. 그냥 안전하게 영주님께 말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 말에 반박한 건 같이 있던 둘째 앤드류였다.

“바보야! 그러니까 우리끼리 가서 조용히 캐야지. 어차피 거긴 위험해서 사람도 별로 없는 곳인데.”

“계속 안 들킬 수 있을까?”

“가끔 물고기도 잡고 그러면 적어도 눈속임은 할 수 있어. 그리고 망보는 사람이 있으면 더 좋고. 우린 하나가 아니잖아.”

“그야 그렇긴 한데…….”

록펠러가 나서서 자신이 생각하던 바를 동생들에게 알려주었다.

왜 영주에게 알리면 안 되는 것인지.

그러자 셋째의 태도가 바뀌었다.

어느 정도 수긍한 것이다.

“록펠러 형 말이 맞아. 나도 너무 좋게 생각했어. 영주님께 알리는 것도 그다지 좋은 생각은 아닌 거 같아.”

둘째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답을 찾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록펠러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살길을 이대로 포기할 수 없잖아? 그러니까 이렇게 하자.”

록펠러가 운을 떼자 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모여들었다.

“무슨 좋은 수가 있는 거야?”

“록펠러 형, 어떻게 할 생각인데?”

다시금 흥분하는 동생들에게 록펠러는 자신이 생각했던 바를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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