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01. 어느 평민 집안의 장남이 되었다(3)
‘금맥이 전부 다 끊긴 줄로만 알았던 이곳에 또 다른 대형 금맥이 발견되지 않았나? 분명 그렇게 기억하고 있는데.’
과거 드워프 왕국의 영토였던 이곳은 더 이상 금맥을 찾지 못한 드워프들의 철수로 인해 자연스레 제국의 영토로 편입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갑자기 또 다른 금맥이 발견된 것이다.
그것도 대륙에서 가장 큰 금맥이 말이다.
‘이걸 알고 있는 것도 오직 나뿐이야. 나 외엔 진짜 아무도 모르고 있을 거야. 알 수가 없지. 아직 그 금맥이 발견되기 전인데.’
그 생각이 들자 록펠러는 뜻하지 않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래, 여기에 아직도 금맥이 살아 있다면 아마 그것도 가능할 거야. 그게 가능하다면 그걸로 돈을 벌면 돼.’
록펠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제까지 조용히 있던 동생들 중 셋째가 울먹이며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형, 우리 이제 어떻게 해? 영주님 말처럼 진짜 밭 갈면서 사는 거야?”
평민들은 대개 밭을 갈지 않았다.
밭을 가는 건 평민보다 아래인 농노가 할 일이었으니까.
“멍청아! 밭은 왜 갈아. 우린 평민인데. 그딴 건 농노들이나 하는 거야.”
셋째가 우는 소리를 내자 옆에 있던 둘째 앤드류 로스메디치가 버럭 성을 냈다.
앤드류에게 있어 평민에서 농노가 된다는 건 정말 끔찍한 이야기였으니까.
“난 절대로 밭은 안 갈 거야. 우리가 무슨 농노야? 평민이 밭은 왜 갈아!”
“그럼 어떻게 해. 아까 영주님께서 하는 말 들었잖아. 밭을 안 갈면 우린 뭐 해 먹고살아. 안 그럼 굶어 죽을 텐데…….”
셋째 동생인 조슈아는 왠지 현실과 잘 타협하는 성격으로 보였다.
당장 먹고사는 게 급하다 보니 체면을 굽히고 밭을 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체면이 더 중요했던 둘째는 그것을 절대 용납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앤드류는 셋째를 다그치다 자신의 형인 록펠러를 급히 찾았다.
“록펠러 형, 우리 밭 안 갈 거지? 그렇지?”
또래 중에선 골목대장도 하던 아이였으나 그래도 집안의 대장인 록펠러의 결정을 무시할 순 없었다.
아무리 싫다고 해도 맏형이자 가장인 록펠러가 하자고 하면 어쩔 수 없이 따라야만 하는 상황.
둘째의 간절한 시선이 더욱 짙어졌을 때 결심을 굳힌 록펠러가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조슈아 말대로 당장 영주님 밑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우리도 먹고사는 게 힘들 거야. 하지만 당장 굶어 죽는 걸 걱정해서 영주님 밑으로 들어가게 되면 당장이야 행복하겠지만 그 뒤가 문제야.”
록펠러는 어린 동생들을 보며 물었다.
“너희들도 꿈이 있지?”
그 물음에 막둥이 여동생을 제외한 나머지 동생들은 조용히 고개를 주억이기 시작했다.
“지금 영주님 밑으로 들어가면 그 꿈은 절대 이루지 못할 거야. 영주님께서 아마 허락해 주지 않을 테니까.”
자기가 원하는 걸 할 수 있는 자유.
그 자유가 있는 게 평민이었고, 그 자유가 없는 게 바로 농노였다.
“그리고 너희들도 한평생 밭을 갈면서 살고 싶지는 않잖아?”
그 말에 화색이 돈 둘째가 기다렸다는 듯이 맞장구치기 시작했다.
“너희들도 들었지! 록펠러 형 말이 맞아! 농노 같은 거 되면 평생 영주님 뒤치다꺼리나 하면서 살게 될 거야. 그런 건 사는 게 아니야. 그냥 이름도 없는 노예랑 비슷할 뿐이지.”
셋째 조슈아 역시 공감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당장 주린 배가 문제였다.
“그럼 어떻게 해? 우린 어떻게 먹고사는데…….”
영지에서 무엇을 하든 전부 다 세금이었고, 영주의 관할 아래에 있었다.
그런 마당에 가진 재주도, 기술도 없는 어린아이들이 갑작스레 돈을 번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거야…….”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한 둘째가 뒷말을 흐리고 있을 때 그 둘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록펠러가 나섰다.
“돈 벌 방법이야 어떻게든 찾아보면 있겠지. 그러니까 쉽게 포기하지 말자.”
그때 주린 배를 참지 못했던 막둥이 여동생이 또다시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런 여동생을 겨우 보채고 있던 넷째 레오 로스메디치가 힘겹게 말했다.
“형, 루시아가 배고픈가 봐. 엊그제부터 계속 울어…….”
배고픈 건 비단 막둥이 여동생만은 아니었다.
록펠러도 며칠째 굶은 상태였고, 밖을 돌아다니며 어떻게든 배를 채운 둘째를 제외하고서 셋째나 넷째 역시 며칠째 쫄쫄 굶은 상태였다.
‘미쳐 버리겠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이유야 알 수 없었지만 당장 이 굶주림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다음은 없었다.
배고픈 동생들을 보며 여러 심경이 복잡하게 얽혀 있던 록펠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 장례식에 쓰라고 영주님한테 받은 돈이 조금 있거든. 전부 안 쓰고 조금 남겨둔 게 있으니까 오늘은 그걸로 해결하자.”
“정말? 그거 정말이야?”
록펠러의 말에 울고 있는 막둥이를 제외한 나머지 동생들은 전부 화색이 돈 얼굴이었다.
“그럼 오늘 밥 먹는 거야?”
“록펠러 형 최고야!”
일순간 기분이 좋아진 어린 동생들이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했으나 록펠러는 아직도 근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당장 며칠이야 그 돈으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거야. 문제는 그다음인데…….’
만약 자신이 계획한 일이 실패하거나 전혀 가능성 없는 일이라면 록펠러는 최악의 경우 영주 밑으로 들어갈 생각도 하고 있었다.
‘실패하면 어쩔 수 없어. 싫더라도 밭을 갈면서라도 살 수밖에. 체면만 차리다 굶어 죽을 순 없잖아?’
장례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록펠러는 시장에 찾아가 수프를 끓일 야채 몇 개와 간단한 찬거리를 사 왔다.
이전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중이라 전혀 생소한 세상에서 어린 동생들을 위한 한 끼 식사를 준비하는 건 그다지 어렵진 않았다.
빙의되기 이전의 록펠러가 어린 동생들을 챙기던 것은 늘 있던 일이었으니까.
“진짜 맛있다!”
“적당히 먹어! 큰형도 먹어야지!”
“근데 록펠러 형은 안 먹어?”
오랜만에 식사라 어린 동생들은 록펠러가 맛없게 차린 한 끼 식사조차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이제까지 울기만 했던 막둥이 여동생도 두 손을 써가며 주린 배를 채우기 급급한 이때에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록펠러는 이상하게도 식욕을 느끼지 못했다.
‘그게 가능해야 할 텐데…….’
지금 록펠러에게 식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어린 것들을 데리고 살아야 하는 한 가장의 책임감이었다.
‘이 어린 것들을 그냥 나 몰라라 할 수도 없고.’
생판 남이라 해도 전혀 이상할 거 없는 상황.
하지만 자신을 형이라 부르며 따르는 저 어린 것들을 그냥 나 몰라라 하기에는 그는 그렇게 몰상식하고 잔인한 사람이 아니었다.
‘뭐 책임지는 게 싫어서 개도 안 키워봤는데.’
이제껏 그 어떤 애완동물도 키워본 적이 없던 그였지만 우연히 엮인 어린 동생들을 그냥 내버릴 수가 없어 이내 마음을 다잡기로 했다.
자신을 형이라 부르며 따르는 저 어린 것들을 어떻게든 책임지자고.
‘하지만 그냥은 안 돼. 나도 각오한 만큼 얘들도 나름 각오하는 게 있어야지.’
그 생각이 강렬하게 들자 록펠러는 겨우 배를 채우고 시시덕거리고 있던 동생들을 불렀다.
“형도 아버지처럼 할 말이 있어.”
맏형인 그가 할 말이 있다기에 어린 동생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록펠러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갑자기 무슨 말?”
“록펠러 형, 중요한 얘기야?”
할 말이 있다고 말한 록펠러는 잠시 밖으로 나가 무언가를 잔뜩 주워왔다.
집 밖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뭇가지였다.
가져온 나뭇가지들을 동생들에게 하나씩 나눠준 록펠러가 말했다.
“형이 나눠준 거 한번 부러뜨려봐.”
그 말에 막둥이 여동생을 제외한 세 동생들은 그리 어렵지 않게 나뭇가지들을 부러뜨릴 수 있었다.
록펠러는 이제 뭉텅이로 된 나뭇가지들을 동생들에게 건네며 다시 한번 부러뜨려보라고 했다.
그나마 힘이 좋던 둘째마저 록펠러가 건넨 나뭇가지 뭉치를 부러뜨리지 못하고 한동안 낑낑거리다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이후 록펠러가 동생들에게 물었다.
“거기서 얻는 교훈이 뭘까?”
록펠러의 물음에도 세 동생들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나뭇가지 하나는 약해. 각자 부러뜨릴 정도로 쉽지. 하지만 그것도 뭉치면 강해질 수밖에 없는 거야.”
그제야 세 동생들이 록펠러의 뜻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이기 시작했다.
록펠러의 말은 계속됐다.
“너희들도 잘 알겠지만 우리 집안은 아무런 재능이 없어. 좀 심각할 정도야.”
그 말에 둘째가 강하게 반박하려 했으나 이내 입을 다물며 고개를 수그렸다.
맏형의 말에 감히 토를 달 수 없는 것도 있었지만, 그걸 떠나서도 자신도 은연중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반면 셋째는 처음부터 강하게 공감하고 있었고, 넷째는 별로 말을 꺼내기 싫어하는 눈치였다.
“슬프지만 그게 우리의 현실이야.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그냥 재능도 없이 살아야 할까?”
그 물음에 셋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까 나뭇가지처럼 하나로 뭉쳐야 돼.”
“그래, 맞아. 조슈아 말대로 우리 형제들은 하나하나는 정말 보잘것없겠지만, 뭉친 나뭇가지처럼 하나가 돼서 강해져야 돼.”
록펠러는 세 동생들 앞에서 보란 듯이 나뭇가지 하나를 부러뜨렸다.
“이렇게 나뭇가지 하나면 정말 쉽게 부러뜨릴 수 있지만.”
록펠러는 이어 나뭇가지 뭉치를 부러뜨리려 안간힘을 써봤다.
하지만 뭉친 나뭇가지는 다소 휘어지긴 했어도 절대 부러지진 않았다.
부러지지 않는 나뭇가지 뭉치를 확인한 록펠러가 말했다.
“보잘것없는 이 나뭇가지도 이렇게 뭉치게 되면 아무리 이 형이라 해도 쉽게 부러뜨릴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지는 거야. 그러니까 너희들도 오늘부로 명심해. 오늘 이 순간부터 우리 형제들은 하나가 되는 거야. 형제의 일이 내 일이고, 내 일이 형제의 일이 되는 거지. 그게 남들보다 부족하게 태어난 우리의 숙명이기도 하고, 또 우리가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힘이기도 해.”
록펠러는 어린 동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다른 예도 들어주었다.
“어떤 형제들은 말이야. 자기 밥그릇을 챙기느라 서로 엄청 싸우기도 해. 심지어 서로 죽이기까지 하지. 어떻게 보면 걔들은 개인으로 봤을 때 우리들보다 더 잘날 수는 있어. 하지만 우리처럼 뭉치지는 못하지. 왜냐면 걔들은 형제들끼리 서로 뭉치는 것보다 자기 밥그릇을 챙기는 게 더 중요하거든?”
그 말을 듣고 있던 셋째가 의문을 드러냈다.
“록펠러 형, 그럼 우리들보다 강하고 형제 우애도 더 돈독한 사람들은?”
둘째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조용히 고개를 수그렸다.
그러자 록펠러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셋째의 의문에 차분히 반박해 주었다.
“조슈아, 형이 장담하는데 절대 그럴 일은 없어. 아무리 형제라 해도 결국 서로가 남남이거든. 걔들은 말이야 어쩌다 힘을 합칠 순 있어도 평생을 가지 못해. 다 자기 밥그릇이 있고, 그걸 더 챙기고 싶어 하는 게 바로 사람이 가진 본성이니까.”
그 말에 둘째가 고개를 들어 록펠러를 쳐다봤고, 의문을 가졌던 셋째 역시 눈이 초롱초롱해져 있었다.
록펠러는 잠시 숨을 고르고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우리들은 무조건 달라야 돼. 서로가 부족한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무조건적으로 뭉쳐서 끝까지 갈 수밖에 없는 거야. 모자람이 없는 걔들에게 형제들끼리 뭉치는 건 필수가 아닌 선택이겠지만, 우리 형제들에겐 그건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가 될 수밖에 없거든. 지금까지 형이 한 말, 너희들도 잘 알아들었어?”
록펠러가 묻자 세 동생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그래, 록펠러 형 말이 맞아. 설령 누구를 배신해도 적어도 우리끼리는 배신하면 안 돼. 우린 형제니까.”
둘째가 가장 먼저 반응을 보였고 그다음으로 셋째가 반응을 보였다.
“남들에게 없는…… 록펠러 형 말이 맞는 거 같아. 남들은 형제를 배신할 수도 있는데 우린 그런 게 없다면, 그건 우리 나름대로 큰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넷째는 이렇다 할 말은 없었지만 어느 정도 공감했는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고, 이를 확인한 록펠러가 다시 말을 이었다.
“오늘 이후로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우리 형제들은 서로를 믿고 끝까지 가는 거야. 그게 남들이 가지지 못한 우리 로스메디치 가(家)의 힘이자 무기가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