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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용사의 골목식당-327화 (327/335)

#외전 027화

경호가 쥔 묵빛 단궁.

솔딘이 정령계를 떠나며 선물로 준 부족의 보물인 신궁 블랙호크였다.

‘이거 오랜만이네.’

경호는 손에 쥔 블랙호크에 마력을 잔뜩 불어넣어 활시위를 당겼다.

보통의 활시위라면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터져 나갔겠지만 괜히 신궁이라 불리는 물건이 아니었다.

“반갑다! 악마새끼야!”

경호가 활시위를 놓자 새까만 활대와 대비되는 새하얀 마력의 화살이 빛살처럼 바리둠을 향해 쏘아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바리둠이었지만 그는 혈마가주의 측근이자 상급 악마였다.

반사적으로 몸을 틀며 쏘아진 마력화살을 피해 냈다.

아슬아슬하게 비껴간 마력화살은 바리둠의 옆구리를 스치며 검기도 막아 내는 그의 갑옷을 가볍게 찢어 버리며 뒤로 날아갔다.

콰아아아아아앙!

뒤로 날아간 마력화살이 바닥을 때리며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보통 놈이 아니다!’

인간.

마계에 들어서는 것만으로 마기에 오염돼 죽어 자빠질 종자다.

하지만 저렇게 엄청난 위력을 담긴 마력화살까지 날리는 걸 보니 저놈이 바로 그 이계의 존재가 확실했다.

궁수라면 달라붙어 거리를 좁혀 목을 쳐내야겠지만 주변에 느껴지는 오크 궁수의 기척이 최소 수십이었다.

아무런 위협도 안 되는 귀찮은 벌레 수준의 공격이지만 멈칫거리게 할 정도는 됐다.

그리고 멈칫거리는 순간 저 인간의 화살이 날아오면 위험할 수 있었다.

방금 옆구리를 스친 저 인간의 공격은 상식을 초월하는 힘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그 한 방이 쉬운 건 아닌 모양이군.’

바리둠은 앞에 서 있는 인간을 살폈다.

애써 침착하려 애쓰고 있었지만 활을 잡은 손이 미미하게 떨렸다.

호흡도 불규칙하고 얕았다.

분명 위협적인 공격이었지만 쉽게 하지 못하는 무리한 공격인 것이다.

바리둠은 싸울지 말지를 고민했다.

싸워서 이겨 저 이계의 존재를 가주에게 끌고 간다면 모든 게 해결된다.

함께 온 뱀파이어를 모두 잃었지만 이계의 존재를 확보하는 것은 그 이상의 성과임이 분명하기에.

하지만 주변에 느껴지는 오크 궁수의 살기가 계속 그의 신경을 건드렸다.

보통의 악마라면 고민할 것도 없이 달려들어 싸우겠지만 혈마가는 다른 악마와 달리 냉철했다.

승리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함부로 덤벼들지 않았다.

‘분명 위험하다.’

바리둠의 감각이 계속 위험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눈앞에 존재의 떨리는 손과 애써 숨기고 있는 거친 호흡이 자꾸 자신을 유혹하고 있었다.

이대로 실패해 돌아가면 목숨을 내놔야 할지도 몰랐다.

-죽엇!

바리둠은 결국 모험을 택했다.

***

경호는 메쏘드 연기를 펼치고 있었다.

‘나는 아프다. 나는 힘들다. 나는 질 거 같다. 나는 저 반편이 악마새끼가 무서워 죽겠다.’

속으로 주문처럼 외며 손을 떨고 호흡을 애써 들썩였다.

그런 경호의 머릿속으로 멜리사가 이곳에 오기 전 당부하고 또 당부했던 말이 떠올랐다.

-용사님. 혈마가 놈들은 아주 약삭빠른 놈들입니다. 자기가 피해 볼 만한 상황에선 몸을 뺍니다. 그건 밑에 놈이나 위에 놈이나 마찬가지고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우리는 혈마가주의 혈석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용사님이 먹음직스러워 보여야 합니다. 그래야 계산적이고 엉덩이가 무거운 그 카닌 놈이 모습을 드러낼 테니까요.

“제가 약한 척을 하면 되는 겁니까?”

-그냥 약한 척이 아닙니다. 너무 약해도 의심받으니까요. 강하지만 해볼 만한 상대여야 하죠.

“되게 까다롭네요.”

-그런 편이지요.

“그럼. 좀 싸우다 지친 척하면 될까요?”

경호의 말에 멜리사가 고개를 끄덕이다 물었다.

-용사님. 혹시 활을 쓰실 줄 아십니까?

“활? 뭐. 사냥할 때 제법 쓰긴 해서 그럭저럭 쓰긴 합니다.”

3초 뿔돼지 삼겹살 덕에 하루가 멀다고 활을 쏴댔기에 사실 경호의 활 실력은 그럭저럭 쓰는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다.

-그럼. 활로 하시죠.

“네엣?”

-혈마가 놈들이 제일 만만하게 여기는 게 바로 원거리 무기, 특히 활입니다.

혈마가는 은신이 뛰어나고 회피 기술이 좋았다.

거기다 강인한 육체와 재생력까지 좋으니 활을 두려워 할 리가 없었다.

“아. 그러니까 강하지만 상성이 나쁜 활을 써서 만만하게 보이라는 거지요?”

-맞습니다. 아무래도 궁수는 근접전에 약하단 이미지가 있으니까요. 적당히 상대하다가 아론의 부대로 후퇴하게 만들면 될 겁니다.

이렇게 아론의 부대와 합작한 일명 ‘계륵’ 작전을 펼치게 됐다.

그냥 꿀꺽하기엔 강력한 마력화살이 겁나고 그렇다고 그냥 버리기엔 너무나 아까운.

계륵 같은 경호에게 결국 낚인 바리둠이 달려들었다.

폭발적으로 몸을 날린 바리둠은 양손에 마기를 휘어 감았다.

마기를 마치 바람처럼 다루는 바리둠은 폭풍처럼 휘도는 마기를 주먹에 감싸고 경호에게 휘둘렀다.

내심 경호도 기대하고 있었다.

상단전을 개방하고 처음 있는 실전.

현실과 거의 차이가 없는 마법으로 만든 세계라 하지만 그래도 차이는 있었다.

경호는 즉시 블랙호크를 들어 바리둠의 공격을 쳐내며 물러났다.

당황한 표정은 덤이었다.

경호의 표정이 제대로 먹혔다.

-크하하하하핫!

바리둠이 더욱 강하게 마기를 불어넣으며 뒤로 튕겨 나간 경호를 쫓았다.

경호는 그런 바리둠을 보며 아예 몸을 돌려 달렸다.

-멈춰라!

바리둠이 그런 경호를 향해 소리 지른 그때.

핑! 핑!

마나를 품은 철시가 숲속에서 그를 노리며 날아왔다.

위협적이진 않지만 무시할 수 없는, 피하거나 막아야 하는 수준의 화살이었다.

-제기랄!

바리둠은 날아오는 화살을 쳐내며 달렸다.

당연히 경호를 쫓는 속도가 줄 수밖에 없었다.

기이이이이이이이이잉.

그러자 다시 몸을 돌린 경호가 뒤로 몸을 피하면서 활시위를 당겨 바리둠을 겨눴다.

바리둠이 가장 우려했던 상황이 펼쳐졌다.

딱히 마땅한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인간을 두고 숲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처리하려 뛰어드는 것도 어렵고.

그렇다고 숲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무시하고 인간을 쫓아 처리하는 것도 어려웠다.

‘결국 먼저 지치는 쪽이 지는 싸움이다.’

바리둠의 머릿속으로 전신에 화살을 꽂은 채 죽어 가는 자신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대로라면 승산이 없었다.

‘멍청한 놈들! 그렇게 먼저 죽지만 않았어도!’

부하로 데려온 뱀파이어만 살아 있었어도 해결할 수 있을 문제였기에 바리둠은 더욱 짜증이 일었다.

기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경호의 활시위에서 번쩍이는 마력화살이 점점 더 짙어졌다.

그 모습에 이를 악문 바리둠의 몸에서도 칠흑처럼 검은 마기가 줄기줄기 뻗쳐 나왔다.

휘우우우우우우웅.

바람 없이 고요하던 숲에 때아닌 광풍이 불기 시작했다.

바로 바리둠이 일으킨 조화였다.

그렇게 숲 전체를 흔들어 놓은 바람이 점점 작게 응축하여 커다란 공처럼 뭉쳤다.

검은 마기가 실타래처럼 마구 휘감기며 회전하고 있는 커다란 공을 바리둠이 활을 겨누고 있는 경호를 향해 날렸다.

동시에 경호 역시 그런 바리둠을 노려보며 시위를 놓았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날아가는 마기덩어리와 빛살처럼 쏘아진 눈부신 마력화살이 그 중간에서 부딪혔다.

콰드드드드드득.

쏘아지는 마력화살과 회전하는 마기덩어리가 서로를 갉아 내며 소름 끼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렇게 서로의 힘을 겨루던 두 개의 기운이 결국 폭발을 일으켰다.

엄청난 후폭풍에 주변의 나무와 바위가 뽑혀 나가며 엉망으로 나부꼈다.

잠시 후 잠잠해진 숲에는 폭발로 인한 커다란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아쉽지만 작전 성공이네.”

경호가 폭발로 날아다니는 먼지를 손으로 쫓으며 중얼거렸다.

큰 전진을 위한 작은 후퇴였지만 그냥 놓아 주려니 저도 모르게 목소리에 아쉬움이 묻어나왔다.

숲에 숨어 저격을 하던 아론과 그의 부대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고하셨습니다. 용사님.

아론의 말에 경호가 고개를 저었다.

“수고는 뭘요. 그럼. 돌아가죠. 곧 혈마가 놈들이 떼로 몰려올 테니까요.”

경호가 바리둠이 도망친 방향을 쏘아보고는 몸을 돌렸다.

***

허억! 허억! 허어억!

바리둠은 거친 숨을 토하며 달렸다.

혹시 모를 저격에 대한 걱정으로 거친 호흡을 채 돌리지도 못하고 달린 바리둠은 칠흑의 숲을 벗어나 혈마가의 성으로 돌아왔다.

서열 7위이자 가주의 명을 받고 작전을 수행 중임을 모두 알고 있기에 바리둠은 바로 가주의 집무실로 향할 수 있었다.

검붉은, 마치 피처럼 온통이 붉게 장식된 가주 카닌의 집무실.

은은한 혈향이 집무실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저 그 안에 있는 것만으로 절로 섬뜩한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금발의 미소년이 커다란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미소년이 노려보고 있는 곳.

그곳에 바리둠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바닥에 조아리고 있었다.

-꼴이 말이 아니구나.

혈마가주 카닌이 여기저기 찢겨 피를 흘리고 있는 바리둠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저 보기에는 유약한 어린 소년 같은 모습이었지만 풍기는 살기는 예리한 칼날보다 더 위험하고 날카로웠다.

-가주님! 죽여 주십시오!

바리둠의 말에 카닌은 비릿한 실소를 머금었다.

-제법 영리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어찌 그리 멍청한 소리를 하는 것이지?

-…….

-네 놈이 죽을 짓을 했다면 살려 달라 해도 죽일 것이고 아니라면 죽여 달라 해도 살릴 것이다. 네놈의 목숨은 너의 것이 아니라 바로 내 것이니. 그런 멍청한 소리는 접어 두고 보고부터 하도록.

카닌의 말에 바리둠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칠흑의 숲에서 이계의 존재와 오크놈들을 확인했습니다. 강했습니다. 이계의 존재가 활을 쓰지 않았다면 낭패를 볼 정도로 강했습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핫.

바리둠의 말에 카닌이 고개를 젖히며 크게 웃었다.

그렇게 한참을 웃던 카닌이 정색하며 말했다.

-지금은 낭패를 보지 않았다는 건가? 내어 준 뱀파이어를 모두 잃고 매 맞은 개처럼 도망쳐 온 주제에 말이야. 내가 내린 명은 기억하고 있는 게냐? 분명 그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동태를 살피고 오라 했을 텐데. 괜히 욕심을 부려 부하를 모두 죽이고 혼자 살아 돌아왔느냐?

목소리에 딱히 고저 없이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핏빛으로 붉어진 카닌의 눈동자가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부들부들.

조아리고 있는 바리둠의 몸이 마구 떨렸다.

-그래. 그러니까 활을 쏘는 이계의 존재가 너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거냐? 가장 상극이라고 할 수 있는 놈들에게 말이냐.

-마력화살에서 위험한 기운이 흘렀습니다. 인간이지만 인간을 초월한 듯한 힘을 가진 존재였습니다. 거기다 오크 궁수 또한 그전과 다르게 매우 강했습니다.

-그래. 보고는 그것으로 됐다. 너의 복수는 내가 해 주도록 하마.

카닌의 감정 없는 말에 조아리고 있던 바리둠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가주님! 살려 주십시오!

감췄던 진심이 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조금 전 죽여 달라 한 것은 거짓이었느냐?

비릿한 미소를 띤 카닌이 일어나 천천히 바리둠을 향해 걸어왔다.

또각. 또각.

집무실을 가득 메운 끔찍한 적막함을 카닌의 발걸음 소리가 찢어냈다.

바리둠은 매서운 카닌의 눈빛을 받아 내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조아렸다.

터억.

그런 바리둠의 머리에 카닌이 손을 올렸다.

흙으로 엉망이 된 바리둠의 머리에 소년 같은 카닌의 손은 너무 작고 고왔다.

-제발 사, 살려 주십시오!

-바리둠아. 죽음이 아니다. 너는 내 안에서 살아 숨 쉴 것이니 말이다.

카닌의 말과 동시에 전신에서 뽑혀 나온 피처럼 검붉은 실 같은 마기가 바리둠의 전신을 휘감았다.

-가, 가주님! 가주님!

하지만 곧 실타래처럼 붉은 마기에 집어삼켜진 바리둠의 외침은 들리지 않게 되었다.

두두둑. 우두둑.

바리둠을 집어삼킨 붉은 혈마기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점점 그 크기를 줄여나갔다.

뼈가 으스러지고 살이 찢어지는 소리가 적막한 집무실을 깨웠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카닌의 눈은 무섭도록 차가웠다.

결국 바리둠을 감싼 혈마기는 작은 사탕처럼 작게 변했다.

카닌이 손을 들어 그것을 집어 입안에 넣었다.

아작. 아작.

마치 사탕을 깨물어 먹는 어린아이같이 카닌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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