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026화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이지?’
가주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바리둠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칠흑의 숲으로 가서 이계에서 온 존재와 오크를 확인하고 오라니?’
이계에서 어떤 존재가 온 줄 모르겠지만 처리하라는 것도 아니고 확인 명령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니 뭐 그 어떤 대단한 인물이 왔더라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계가 어떤 곳인가?
마신이 만든 세상이 마계였다.
마신의 의지와 법칙대로 움직이는 그런 세상.
마계에서는 우주를 지탱하는 기운인 마나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한 마디로 그 어떤 존재도 마계에 와서는 제대로 힘을 낼 수 없었다.
신력.
마기를 정화시키는 그 힘이라면 상황이 좀 다를 수 있겠지만 그 정도의 신력을 쓸 수 있는 신적인 존재가 마계로 넘어올 리 없었다.
‘그런데 왜?’
바리둠은 그래서 의문이었다.
자신의 뒤를 따르는 열 명의 최상급 뱀파이어만 해도 칠흑의 숲으로 숨어든 오크의 씨를 말려 버리기에 차고 넘치는 전력.
거기다 혼혈 마족으로 혈마가 서열 7위인 자신까지 이런 수색에 나서야 한다는 게 의아할 뿐이었다.
다행히 오크의 흔적은 생각보다 크게 남아 있었다.
불만은 있었지만 가주 카닌의 명은 절대적이기에 바리둠은 흔적을 쫓아 숲의 중앙을 향해 열심히 움직였다.
그때였다.
피잉!
강한 힘이 실린 철시(鐵矢)가 가장 선두로 달리던 바리둠의 머리를 놀리고 날아왔다.
-조심해라!
바리둠은 옆에서 날아온 화살을 가볍게 고개 젖혀 피했지만.
퍼억!
뒤쫓던 뱀파이어는 그 정도로 감각이 뛰어나지 않았기에 어깨 깊숙이 철시가 박혔다.
핑! 핑!
그렇게 숲에서 철시가 날아오고.
퍽! 퍽!
그것을 피해 흩어지는 뱀파이어의 몸에 박혔다.
‘화살에 담긴 기운이 예상보다 훨씬 강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화살에 맞은 이들을 질책하지 않을 순 없었다.
-이 멍청한 놈들! 고작 화살 하나 피하지 못한단 말이냐!
-죄송합니다!
숲에서 날아오는 철시에 맞은 뱀파이어는 총 셋.
투드득.
근육에 박힌 화살을 뽑아 냈다.
바리둠의 질책에 분노에 찬 얼굴로 화살을 뽑아 든 그들이 고개를 숙인 채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높은 재생력 덕분에 목이 잘리거나 머리가 으깨지지 않으면 죽지 않기에 사실 화살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다.
화살에 맞은 뱀파이어들의 핏기없는 창백한 얼굴에 붉은 기가 돌았다.
열이 머리끝까지 찬 결과였다.
‘고작 오크가 날린 화살이 당했다고? 내가? 그런 벌레들이 쏜 화살에?’
오크의 무력 수준은 딱 ‘벌레’ 수준이다.
여기 온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문제는 그 벌레의 공격을 피하지도 못하고 당했다는 거였다.
화살에 실린 힘이 꽤 강해졌다 느껴졌지만 그래봐야 강해진 ‘벌레’였다.
그런 벌레의 공격에 피부를 뚫고 상처를 입었다.
맹수가 개미에게 물려 피를 흘리는 꼴.
그런 상황이 어찌 부끄럽지 않겠는가!
바리둠 역시 화살의 방해를 무시하고 오크의 흔적을 쫓기에는 부담이 있었다.
-너희 셋은 오크 궁수를 처리하고 오도록.
죽이지도 못할 이런 공격이 무슨 수작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귀찮은 상황은 정리하고 가는 게 맞았다.
-바리둠 님. 책임지고 오크 궁수 놈들을 처리하고 가겠습니다.
-곧장 달릴 테니 빨리 처리하고 합류하도록. 더 추태를 부린다면 돌아가 징계를 내리도록 하겠다.
바리둠의 말에 화살을 맞았던 뱀파이어 셋이 무리에서 이탈에 화살이 날아온 숲을 향해 달려들었다.
***
신궁 아론의 부대가 카혼이 붙여 준 바람의 정령과 함께 숲에 숨어 뱀파이어를 공격했다.
-셋이 무리에서 떨어져 이쪽으로 오고 있다. 지금부터 뒤로 빠진다.
아론의 말에 십여 명의 오크 궁수가 뒤로 물러나며 활을 쐈다.
제자리에서 정령의 힘을 빌려 저격하던 것과 달리 정확성과 파괴력은 형편없어졌지만, 공격의 목적이 섬멸이 아니었기에 상관없었다.
유인.
이들의 진짜 목표였다.
화살의 힘이 약해지자 지쳤다고 생각한 뱀파이어의 속도가 더 빨라졌다.
그렇다고 해도 마력을 싣고 바람의 정령의 힘으로 엄청난 거리를 격해서 화살을 쏘았기에 아직 거리에 여유가 있었다.
“셋이군요.”
그렇게 물러나던 아론의 무리 옆으로 용아검을 든 경호가 나타났다.
유인의 끝에는 경호가 있었다.
-바리둠이라는 혼혈 마족이 뱀파이어 열을 이끌고 들어왔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정리하고 갈 테니 이동하세요.”
-용사님. 조심하십시오.
자리를 뜨는 아론을 보며 경호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멀리서 달려오는 뱀파이어 셋.
마계에 막 넘어온 경호였다면 고전했을 수준이었다.
각각의 힘은 하급 마족보다 못한 수준이었지만 뱀파이어 특유의 재생력과 빠르고 날카로운 공격은 충분히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단전을 개방하고 신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경호에게 더는 위협적이지 않았다.
“드디어 실전이네.”
멜리사의 마법을 통한 가상 훈련에서 수백 번을 넘게 죽어 가며 개방한 상단전의 힘을 처음으로 쓰는 실전이었다.
굳이 시간을 끌 필요가 없기에 경호 역시 달려오는 뱀파이어를 향해 달렸다.
거리가 가까워지며 달려오는 뱀파이어도 경호를 발견했다.
-인간?
가장 앞서 달리던 키릴은 용아검을 쥐고 달려오는 인간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인간.
마계에 존재해선 안 되는 존재였다.
‘설마 이계의 존재가 고작 인간?’
그렇다면 위협조차 되지 않았다.
특히나 풍기는 기운조차 미약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그것은 경호가 상단전을 개방하며 기운을 완전히 갈무리할 수 있어 그런 거지만 키릴이 그 사정까지 알 순 없었다.
-죽이진 마라!
가장 앞서 달리던 키릴은 혹여 손속이 과해 인간이 죽을까 염려해 소리쳤다.
어쨌든 인간이 이곳에 나타난 자초지종을 알아내야 했다.
그렇게 말한 키릴이 손톱을 길게 뽑아냈다.
손톱이 길어진 것에 불과했지만 스치기만 해도 살과 뼈가 끊어지는 최고의 무기였다.
-팔이나 다리는 굳이 필요 없으니 잘라 주마!
경호에게 달려간 키릴이 날카로운 손톱으로 팔다리를 잘라 내려는 순간.
용아검이 번쩍이며 움직였다.
그리고 경호는 곧장 키릴을 타고 넘어 뒤를 쫓아오는 다른 둘에게 다가가 역시나 용아검을 휘둘렀다.
용아검의 움직임은커녕 경호의 움직임을 쫓은 이도 아무도 없었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경호는 번쩍이며 마치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보였다.
단순히 빨라서가 아니었다.
경호의 머릿속으로 이들의 시선이 그려지며 사각지대가 자연스럽게 보였다.
그곳을 통해 움직였기에 가능한 기예였다.
증폭된 마력이 어려 있는 용아검이 셋의 목을 스치며 지나갔고.
예리하게 잘린 목은 경호가 이들을 모두 지나치고 나서야 변화를 보였다.
-이게 도대…….
붙어 있던 목이 잘리며 말도 끊어졌다.
툭. 털썩.
키릴의 목이 땅으로 떨어지며 동시에 뻣뻣한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뒤에서 그것을 지켜보던 다른 둘도 눈을 크게 떴지만 마찬가지였다.
툭툭. 털썩털썩.
역시나 목이 떨어지고 몸이 쓰러졌다.
이번에는 증폭도 걸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개방된 상단전은 뇌에 신력을 흘려 감각이며 오성을 최대치로 유지시켰다.
그것만으로 경호는 이런 뱀파이어 셋 정도는 우습게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럼. 또 가 볼까.”
경호는 아론의 부대가 간 방향을 향해 달렸다.
***
바리둠은 이상함을 느꼈다.
아니 이상함은 아까 뱀파이어 셋이 오크 궁수를 쫓으러 갔다 복귀하지 않을 때부터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오크를 죽이다 흥에 못 이겨 다른 방향으로 토벌을 하러 간 것 아닌가 생각했다.
오크 궁수를 처리하러 갔다가 일이 틀어졌나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상식적인 생각이었다.
‘오크 궁수에게 당했다고? 혈마가의 뱀파이어가 고작 오크에게?’
하지만 다시 화살이 날아오고 오크 셋이 빠져나가 돌아오지 않자 그 상식적인 생각에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멈췄던 화살이 다시 날아오자 그 의심은 확신이 됐다.
이제 오크의 흔적을 추격하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숲에서 날아오는 화살은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오크 궁수 쫓겠다!
바리둠은 쫓아간 뱀파이어가 당했는지 아닌지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그 어떤 상황이라도 자신이 간다면 해결할 자신이 있었다.
‘최소한 지금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처음 목표는 이계의 존재와 오크의 본거지를 추격해 섬멸하는 거였다.
카닌에게 지시는 추격해 보고하는 것이었지만 바리둠은 내심 욕심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틀어졌다.
이렇게 뱀파이어를 잃으면 안 되는 거였다.
이래서는 목표를 이뤄도 질책을 당할 터였다.
바리둠은 멍청하지 않았다.
또한 혈마가주의 분노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잘 알았다.
욕심을 부릴 상황이 아니라 파악한 그는 서둘러 상황을 파악하고 보고를 하는 것으로 생각을 바꿨다.
그렇게 바리둠과 뱀파이어 넷이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그렇게 화살을 쫓아 달리던 중.
섬뜩한 느낌에 바리둠은 급히 고개를 꺾었다.
새하얀 마나를 품은 화살이 그런 바리둠의 얼굴을 스쳤다.
주륵.
살갗이 찢어져 피가 흘렀다.
피이이잉!
너무나 빠른 속도에 뒤이어 파공성이 화살을 쫓았다.
퍼어억!
섬뜩한 소리가 뒤에서 터져 나왔다.
바리둠의 뒤를 쫓아 달리던 뱀파이어 하나의 얼굴이 터져 나가며 쓰러졌다.
으드득.
자신도 놀랄 정도의 위력의 화살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지만 끓어오르는 분노는 어쩔 수가 없었다.
-감히 어떤 놈이냐!
그때였다.
핑! 피잉! 핑! 핑!
사방에서 수십 발의 화살이 쏟아져 날아왔다.
퍼벅! 퍽! 퍽! 퍽!
바리둠은 서둘러 몸을 날려 화살을 피했지만 남은 뱀파이어 셋은 말 그대로 고슴도치처럼 전신에 화살을 꽂은 채 쓰러졌다.
무시무시한 재생력을 가진 뱀파이어였지만 마나가 실린 화살을 빼곡하게 맞으면서까지 버틸 재간은 없었다.
이제 남은 이는 공중으로 몸을 날린 바리둠뿐이었다.
쏟아지던 화살이 방향을 틀어 바리둠을 향했다.
-감히!
바리둠의 양손에서 칠흑 같은 마기가 쏟아져 나와 전신을 휘감고 돌았다.
집채만 한 바위도 하늘로 날려 보내는 토네이도 같은 모습이었다.
마기의 폭풍이 점차 넓게 번지며 바리둠을 향해 날아가던 마나를 품은 화살이 휩쓸려 튕겨 나갔다.
-감히 벌레 같은 놈들이!
바리둠은 자신이 유인당하고 부하를 잃었다는 것에 분노했다.
어디까지나 자신이 포식자고 저들은 먹이에 불과한 벌레였다.
그러한 약육강식의 법칙은 변하지 않아야 하는 절대적인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서 그것이 무너졌다.
-모조리 죽여 주마!
그렇게 소리치는 바리둠 앞으로 경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이이이이이이이잉.
새하얀 빛이 맺힌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상태였다.
“반갑다! 악마새끼야!”
그렇게 소리친 경호는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를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