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용사의 골목식당-325화 (325/335)

#외전 025화

계왕권.

소년만화의 시초라 불리는 ‘드래곤X’이라는 만화에 나오는 유명한 기술이다.

경호는 어릴 적 그걸 보면서 ‘에이, 이거 너무 사기 아니야? 이러면 벨붕인데?’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작가도 그걸 느꼈는지 여러 가지 제약을 뒀고 제왕권은 그 능력에 비해 큰 성과가 없는 기술이 되고 말았다.

그랬던 그 기술을 경호가 쓸 수 있게 됐다.

“그럼. 우선 가볍게 가 볼까.”

마력을 적당히 불어넣어 신력을 뽑아 내 증폭시켰다.

대충 느껴지는 증폭량은 1.5배쯤.

단순히 경호의 전투력이 1.5배 증가한 것이 아니었다.

감각과 힘, 순발력 거기다 뇌의 처리 속도까지 모든 게 증가했다.

자신감을 얻은 경호는 완전 무장 한 채 정령을 데리고 날아오는 오크 떼를 향해 달려들었다.

조금 전까지 돌멩이를 던지고 도망치며 은신까지 펼치며 싸우던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사방팔방에서 오크가 달려들었지만 경호는 여유가 있었다.

보였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도끼날과 마력, 불덩이, 바람칼날 같은 모든 공격이, 아니 아직 공격이 시작되지 않은 것까지 모두 생생하게 보일 듯 느껴졌다.

예측을 넘어 예지에 가까운 수준으로 모든 것을 살필 수 있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훈수와 비슷한 거였다.

바둑이나 장기를 둘 때 훈수를 둬본 적 있는가?

정작 대국을 치르는 당사자는 시야가 좁아져 몇 수 앞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겨야 한다는 심적 부담감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싸움 역시 마찬가지다.

당연히 긴장하기 마련이다.

그것도 사방팔방에서 도끼날이나 불덩이, 정령의 공격이 날아오는데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상황을 파악하여 앞으로 벌어질 것들을 예측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몸도, 머리도 굳어 버리고 그러다 공격을 허용하기라도 하면 거기서 끝이다.

‘보인다! 그리고 생각하는 순간 움직여져!’

증폭 1.5배.

더 많이, 더 빠르게 모든 것이 이해됐고 예측 가능해졌다.

긴장은 여전했다.

다만 활성화된 뇌 덕분에 충분히 감당 가능해졌을 뿐이다.

그전까지 날아오는 도끼날을 손을 쳐냈다면.

투웅! 투웅!

지금은 날아오는 도끼날을 손바닥으로 밀쳐 내며 방향을 틀 수 있었다.

그렇게 방향을 튼 도끼날은.

콰앙! 쾅!

-멍청아! 뭐 하는 거야!

-으악! 피해!

-거기! 비키라고!

더 강하고 날카롭게 다른 오크를 공격했다.

“이게 이렇게 쉬운 거였나?”

방어가 공격으로 바뀌었고.

그렇게 절반이 넘는 숫자가 서로의 도끼날에 목숨을 잃고 나서야 오크들은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공격이 끝난 게 아니었다.

도끼를 든 오크보다 더 무서운 공격이 남아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멜리사의 불덩이나 오크를 지원하는 정령의 공격이 경호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전까지 불덩이나 정령 공격은 눈앞에 날아오는 것들을 피하기 급급했었다.

거의 메테오 수준의 불덩이는 피해도 폭발 범위가 커 위험했고.

정령의 공격은 그 수가 많고 다양해 피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눈에 보이는 범위가 아닌 이 가상의 마법 공간 전체에서 이뤄지는 모든 것이 생생히 느껴지고 그 모든 것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선명하게 잡힐 듯이 보이는 공격을 받아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경호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덩이를 마력으로 모아 날아오는 정령의 공격을 향해 날려 버렸다.

뒤로 빠져 있던 오크들이 그 모습에 입을 쩌억 벌리다.

-이런 미친!

-저걸 저렇게 한다고?

-모두 숙여!

황급히 몸을 낮췄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멜리사의 불덩이와 정령의 공격이 맞부딪히며 폭발했고.

당연히 엄청난 열기와 불꽃이 터져 나왔다.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몸을 낮춘 상황에서 움직이는 존재가 있었다.

“자. 마무리해 볼까.”

바닥에서 쓸 만한 도끼를 주워 든 경호가 그대로 달렸다.

퍼억! 퍽! 퍽!

바닥에 엎드려 있는 오크의 머리를 때리며 빠르게 한 바퀴 돌고는 양손을 번쩍 들었다.

“멜리사! 나 이제 진짜 좀 자자!”

마법진을 통해 상황을 지켜보던 멜리사와 카혼이 놀라 눈을 비비고 다시 볼 정도였다.

죽음을 통해 영혼의 강화를 통해 강해지길 바랐지만 이건 상식선을 아득히 넘어서는 성장이었다.

적어도 2배, 아니 3배는 더 강해진 듯했다.

-아니 도대체 이게 무슨. 카혼은 지금 저게 이해가 되나요?

멜리사의 물음에 카혼도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이 훈련이 성공했다는 거니 좋은 거지요. 자. 그럼. 마법진을 풀고 꺼내 줍시다. 이러다 진짜 죽을지도 모르니까요.

***

“멜리사. 저 겨우 두 시간 잤는데요?”

퀭한 얼굴의 경호가 쇳소리를 내며 말했다.

회복마법과 정령술로 체력은 넘쳐흘렀지만.

수십 번 죽음을 겪으며 쌓인 심적인 피로는 상단전이 뚫리지 않았다면 진작에 쓰러졌을 정도로 쌓여 있었다.

-용사님. 죄송합니다.

멜리사가 고개를 숙이고 정중히 사과했다.

경호는 그런 모습에 손을 저었다.

“에이. 죄송은요. 그냥 자게만 해 주시면 됩니다. 회의는 저 빼고 하시고요. 나중에 회의 결과만 들으면 됩니다. 아니 그냥 몰라도 됩니다. 저는 여러분을 믿습니다. 그러니 수고하시고 저는 꿈나라로 가보겠습니다.”

경호가 슬쩍 의자를 빼니.

-용사님. 당장이라도 악마군단이 몰려올 수 있습니다. 어쩌면 제대로 할 수 있는 마지막 회의일 수 있기에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벌써요? 뭐. 그렇긴 해도 제가 회의에 별 필요가 있을까요? 사실 무식하게 싸울 줄만 알지 제가 병법이나 작전을 짤 줄 아는 것도 아닌데요.”

-필요합니다. 앉으세요. 용사님.

멜리사의 말에 경호가 짧게 한숨을 쉬며 다시 의자를 당겨 앉았다.

-이제 곧 악마군단이 올 겁니다.

독마가의 절대오악 중 둘이 죽었다.

독마가주 케로스가 그냥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그래도 상급 악마 둘이나 죽었는데 좀 신중하게 지켜보다 오지 않을까요? 그동안 우리는 여기서 세를 더 불리면서 힘을 더 모으면 되고요. 저도 이제 겨우 상단전을 열고 신력을 쓰게 됐는데. 아닌가요?”

-용사님. 제롬에게 설명을 들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이곳은 마왕 바알의 영역입니다. 그리고 그 바알의 밑에는 삼대마가라 불리는 대귀족 가문이 있습니다. 이번에 싸운 독마가 외, 혈마가와 철마가가 있지요.

“정령계에서도 대충 들었고 제롬에게도 어느 정도 듣긴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왜요?”

-지금쯤이면 아마도 독마가의 가주인 케로스는 혈마가와 철마가를 끌어들였을 겁니다.

멜리사의 말에 경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네? 혈마가와 철마가를 끌어들였을 거라고요? 왜요? 공을 세우려면 혼자 꿀꺽하는 게 더 나을 텐데요? 설마 최상위 악마가 겁이라도 먹은 건 아닐 테고요.”

-물론입니다. 저희를 벌레 취급하는데 겁이라뇨. 죽은 파시드와 리리스가 절대오악이라 불리는 강자긴 해도 케로스에겐 눈에 차지도 않고요. 하지만 그런 그도 겁내는 게 있습니다.

“그게 뭐죠?”

-혈마가와 철마가입니다. 그들은 독마가가 약해졌다고 판단하면 이곳보다 그쪽을 먼저 칠 놈들이니까요.

멜리사의 말에 경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의리니 상식이니 그런 개념이 통하는 놈들이 아니기에 충분히 이해 가는 말이었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혈마가와 철마가가 우리를 향해 공격해 올 겁니다. 케로스는 그것을 지켜보다 공만 차지할 생각을 할 것이고요.

“멜리사. 그럼.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앞으로 계획에 앞서 우선 이번 싸움의 목적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군요.

싸움의 목적?

악마를 최대한 많이 때려잡는 게 목적 아니던가?

-이번 싸움의 가장 큰 목적은 용사님을 정령계로 돌려보내는 겁니다.

“네엣?”

여기 눌러앉아서 마신까지 처리할 형편은 아니기에 정령계로 돌아가야 하긴 했다.

하지만 그게 이번 싸움의 가장 큰 목적이라니?

“멜리사. 그게 무슨 소리죠?”

-용사님. 제가 마계에서 가장 깊게 탐구한 분야가 뭔지 아십니까?

“음. 공격 마법이요?”

-차원이동 마법입니다.

마계를 탈출하는 것이 모든 오크의 꿈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소리였다.

-차원이동에 대해서는 드래곤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자부할 정도입니다.

어? 갑자기 자랑하려는 것은 아닐 테고.

-용사님을 만난 후 계속 정령계로 이동할 마법진을 연구했습니다.

“성과는 있었습니까?”

-물론입니다. 수십, 수백 번 검토했습니다. 정령계로 확실히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저, 정말요?”

사실 정령계로 돌아가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미르가 아니면 지구로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럼. 우선 저 삼대마간가 뭔가 하는 놈들부터 처리하고 필요한 것은 그 후에 구하기로 하죠. 제가 마신을 때려잡는 것까지는 못 도와드려도 삼대마가 놈들은 완전히 끝장내고 가겠습니다.”

상단전도 열었겠다.

마왕까지는 무리여도 삼대마가의 가주까지는 비벼 볼 만할 거 같았다.

-사실 방법만 있다면 당장에 용사님을 정령계로 보내드리고 싶었습니다. 저희야 어차피 삼대마가를 피해 음지에 숨어 약탈이나 오크를 구해내는 정도의 액션만 취하며 지내면 될 일이니까요.

중단전을 쓸 수 있게 되면서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게 된 그들이었다.

-하지만 마법을 작동시키기 위해 최상급 마족의 혈석 3개가 필요합니다.

“혈석 3개요? 이거 누가 일부러 짜 맞춘 것처럼 딱이네요. 어차피 처리할 놈들이니 오히려 잘됐네요.”

-그래서 이제 작전이 필요할 듯합니다. 어떻게든 가주 셋의 혈석을 모아야 하니까요.

그렇게 말한 멜리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벽면에 붙은 지도 앞에 섰다.

-그럼.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예상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우선 혈마가의 뱀파이어 부대가 먼저 올 확률이 가장 높습니다. 아니 무조건 올 겁니다.

“멜리사. 확신하는 이유가 있나요?”

잘못된 확신은 화을 불러올 수 있기에 경호가 나서 질문을 던졌다.

-두 명의 상급 마족을 잃은 독마가는 무조건 빠질 겁니다. 그러면 철마가와 혈마가가 남지요.

“연합할 일은 확실히 없겠죠?”

-같은 마왕 소속이라도 마족은 서로 동료가 아닙니다. 마신 아래에 있는 모든 마족은 모두가 경쟁 상대일 뿐입니다. 그것도 서로에게 끔찍한 악의를 품고 있는 경쟁 상대. 당연히 연합은 있을 수 없고요.

멜리사의 말에 카혼이 고개를 끄덕였다.

-멜리사의 말처럼 절대로 연합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독마가가 뒤로 물러나면 결국 선봉을 누가 서냐로 철마가와 혈마가가 다툴 텐데 아무래도 수색에 유리한 혈마가가 먼저 나설 겁니다.

“그렇군요.”

-그런 것도 있지만 혈마가주는 득실을 따지기 좋아하는 이기에 무조건 가장 먼저 밀어 넣으려고 할 겁니다. 괜히 철마가가 먼저 나섰다고 당하는 모습에 발을 빼면 곤란하니까 말이죠.

“이거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네요.”

단순무식하게 살육만 즐기는 미친놈들이라 생각했던 경호는 내심 놀랐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작전이 아주 중요하고요. 가주를 끌어내지 못하면 혈석을 구하기 어렵게 되니까요. 무조건 꼭 성공해야 합니다.

정령계로 돌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기에 경호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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