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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용사의 골목식당-321화 (321/335)

#외전 021화

-이게 뭐 하는 거지? 고작 이따위 것으로 날 묶어 둘 수 있다고 생각했나?

회관 기둥에 묶여 있는 리리스가 살기 어린 눈빛으로 멜리사를 노려봤다.

-아마도 묶어 둘 수 있을걸. 그 밧줄이 보기엔 별거 아닌 거 같아 보여도 엄청 튼튼하거든.

멜리사가 피식하며 말했다.

리리스가 말한 ‘고작 이따위 것’은 경호가 건네준 구속의 밧줄이었다.

-그래? 그러면…….

리리스의 몸에서 마기가 일자 동시에 바닥에서 마법진이 생기며 그녀의 몸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꺄아아아아아악!

마기를 감지하여 작동하는 마법진을 이미 깔아 놓은 상태였다.

-영체화? 한 번 더 해 보던가.

리리스가 이를 갈며 멜리사를 노려봤다.

-내 부하들은 어떻게 한 거냐?

열 명의 독화대 중에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리리스처럼 영체화를 해 도망치려 한 놈들도 있었고 스스로 자폭한 녀석도 있었다.

멜리사는 살아남은 이들을 이용해 리리스를 완전히 무력화할 마법진을 만들 수 있었다.

“너도 곧 따라갈 테니 걱정하지 마라. 물론 쉽게 보내 주지 않을 생각이지만.”

-이 찢어 죽일…….

따악!

멜리사가 손가락을 튕기자 다시 마법진이 생기며 리리스의 몸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끄으으으으으으.

아까처럼 비명을 지르진 않았지만 굳게 다문 입에서 핏물이 흘러나왔다.

-리리스. 그럼. 우리 즐거운 시간 좀 가져 볼까?

***

독마가의 가주인 케로스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이게 지금 도대체…….

리리스에게 자신의 암흑마기를 심어 놨던 케로스는 칠흑의 숲 깊은 곳에서 그 기운이 갑자기 사라졌음을 느꼈다.

‘심어놨던 암흑마기가 사라졌다.’

파시드야 방심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원래도 단순하고 우직한 녀석이라 힘만 믿고 덤볐다가 당했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리리스는 다르다.

절대오악 중 가장 약하다 할 수 있지만 생존력만 따지면 최고였다.

그런 리리스에게 문제가 생겼다.

그것도 독화대 모두가 함께 움직였음에도 그 누구도 복귀하지 않았다는 것은 놀람을 넘어 충격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그냥 손을 놓고 있을 순 없었다.

파시드와 리리스의 복수 따위의 감정이 아니었다.

문제는 이러다가 균형을 깨질 수 있다는 거였다.

독마가(毒魔家).

철마가(鐵魔家).

혈마가(血魔家).

마왕 바알을 따르는 수많은 가문 중 가장 강한 3개의 가문.

삼대마가의 자리가 흔들릴 수 있었다.

케로스는 한참을 생각하다 부관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가주님.

-지금 당장 철마가와 혈마가의 가주를 연결하도록.

차원을 넘어온 정체불명의 적.

공적을 쌓기 위해 혈안이 된 녀석들이니 미끼로 사용하기 좋을 재료였다.

물론 철마나 혈마에게 넘겨줄 마음은 전혀 없었다.

-적당한 핑곗거리나 만들어야겠군.

***

화르르르르르르.

케로스의 집무실 한가운데 커다란 불꽃이 피어올랐다.

-케로스. 네 녀석이 먼저 회의를 소집하다니 별일을 다 보겠군.

새카만 피부에 강철로 된 뿔이 양쪽으로 돋아 있는 철마가주 헤이드였다.

-상의할 일이 생겼다. 카닌도 연결되면 이야기하도록 하지.

그때 헤이드의 불꽃 옆으로 또 다른 불꽃이 피어올랐다.

혈마가주 카닌이었다.

순혈 마족이 아닌 뱀파이어 혼혈로 창백한 금발의 소년의 모습이었다.

가는 팔다리에 퇴폐미가 흐르는 외모는 유약해 보였지만 그가 가진 잔혹함은 유명했다.

-뭐지? 우리가 이렇게 얼굴 보고 화합할 사이는 아니지 않나? 특히나 순혈이랍시고 콧대가 높으신 분들이 말이야.

혼혈에 대한 차별은 능력 위주인 마계에서도 심한 편이었고 뱀파이어 혼혈인 카닌은 그 부분에 날카로울 수밖에 없었다.

케로스가 무시무시한 이빨을 드러내며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 지었다.

-순혈이랍시고 콧대가 높다니. 자네의 그 오해는 언제 그만둘 건가. 전에도 말했듯 나는 혼혈이라고 딱히 다르게 생각하지 않는다네. 다만 마족이라는 이름을 달기에 부끄러운 놈들이 있기에 그런 것뿐. 혼혈이니 순혈이니 가리지 않네. 당연히 카닌, 자네 같은 강자는 언제나 존중한다네.

케로스는 분위기를 풀기 위해 평소라면 하지 않을 소리를 길게 늘어놓았다.

-오해라…….

카닌이 피식하고는 다시 말했다.

-어쨌건 오늘 이렇게 보자고 한 이유가 뭐지? 존중 어쩌고 하면서 담소나 나누자는 건 아닐 텐데.

케로스가 어울리지 않은 미소를 이내 지우며 말했다.

-얼마 전 차원 이동이 있었다.

-차원이동?

헤이드는 고개를 갸웃했고.

-악마군단이 정령계로 넘어가는 걸 말하는 건 아닐 테고. 마계로 누가 넘어왔다는 건가?

카닌은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물었다.

-맞다. 칠흑의 숲 근처에서 차원 이동의 파동이 느껴져 확인했지.

-그런데? 뭐가 문제가 있었나?

그래 봐야 천계의 군단이 넘어온 게 아니라면 문제없이 끝났어야 했다.

이곳은 마계.

보통의 존재가 버틸 수 있는 곳이 아니었고.

버틸 수 있는 특별한 존재라 할지라도 케로스가 확인했다면 처리했을 터.

그런데도 이렇게 모여서 입을 열었다는 건 뭔가 문제가 있다는 뜻이었다.

-차원 이동을 확인한 파시드가 탈주한 오크와 합류한 흔적을 찾았고 그 뒤를 쫓아 칠흑의 숲으로 들어갔다.

케로스의 몸에서 섬뜩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파시드가 죽었다.

-뭐?

-파시드가 죽어?

삼대 가주에 비하면 한수 처진다고 하지만 파시드는 분명한 강자이자 포식자였다.

-저돌적이고 단순한 면이 없지는 않지만……. 파시드가 죽었다고?

카닌은 믿기지 않는지 케로스에게 되물었다.

-파시드를 죽일 정도의 인물이 마계로 넘어왔고 탈주한 오크놈들과 함께 칠흑의 숲에 숨어있지. 자네들 같으면 어찌하겠나?

마계 최대의 금지인 칠흑의 숲은 대륙의 동남쪽 외각을 차지하는 거대한 숲이다.

파시드를 죽일 정도의 강자라면 자칫 각개격파를 당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뭉쳐서 다니며 쫓기엔 칠흑의 숲은 너무 넓었다.

-칠흑의 숲은 너무 넓지.

카닌은 그래도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우리를 부를 일은 아닌 듯한데. 칠흑의 숲이 넓다 해도 유체화가 가능한 독화대원을 쓰면 될 일. 아닌가?

카닌의 말대로 공을 독차지하려면 이렇게 알리지 않고 처리하는 게 제일 좋았다.

하지만 리리스를 포함한 독화대원 모두가 실패해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

그렇기에 케로스는 이렇게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놈들은 파시드와 리리스의 실패를 알게 되면 이계의 존재를 쫓을 게 아니라 날 칠 놈들이니.’

삼대 가문의 균형이 팽팽한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면 물어뜯을 놈들이었다.

물론 그것은 케로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이번 기회를 잘 살려 저들의 힘도 어느 정도 깎아 내야 했다.

-카닌. 자네의 말이 맞네. 독화대를 쓰면 충분히 알아내서 내가 처리할 수도 있지. 하지만 만에 하나 여기서 더 피해를 입으면 나도 곤란하거든. 솔직하게 말해 자네들이 날 가만히 두고 볼 거 같지 않거든. 삼대마가보다 이대마가가 더 낫고. 더 나아가 유일무이한 절대마가가 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 아닌가?

케로스의 말은 틀리지 않았기에 헤이드와 카닌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약육강식의 대원칙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마계에서는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존재하지 않았다.

물어뜯을 수 있으면 물어뜯고 그 와중에 필요하면 다시 손을 잡는 게 바로 마계의 생리였다.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큰 공을 혼자 먹기보다 안전하게 이 문제를 처리하고 싶을 뿐이네. 거기다 운이 좋으면 공을 좀 더 가져갈 수도 있겠지.

케로스가 자신의 피해마저 알리며 손을 뻗은 상황에서 헤이드와 카닌은 찜찜했지만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케로스. 굳이 칠흑의 숲을 수색할 필요가 있을까? 관리 중인 오크를 미끼로 끌고 나오는 건 어떤가? 칠흑의 숲에선 파시드를 죽인 이계의 존재에 오크놈들까지 상대하면 꽤나 성가실 텐데 말이야.

성가신 정도가 아니었다.

이미 죽은 파시드와 연락이 두절된 리리스가 그 사실을 증명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케로스는 저 둘을 칠흑의 숲으로 밀어 넣어야 했다.

-오크를 미끼로 삼아 볼까 하는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처리해야 할 존재는 이계의 존재이지 오크가 아니야. 오크를 미끼로 삼는다고 그 존재가 나타날지 아닐지 모른다는 말이지. 괜히 시간만 더 준다면 지금보다 상황이 더 복잡해질 수 있다. 탈주한 오크가 그 존재를 중심으로 뭉칠 수도 있다는 말이야.

그럴 수도 있다 정도의 이야기였지만 그럴 듯했기에 카닌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칠흑의 숲을 셋으로 나눠서 수색하자는 건가?

카닌의 물음에 케로스가 다시 미소를 지었다.

-서로 섞이면 이계의 존재보다 서로에게 더 날을 세울 텐데 그게 좋겠지. 안 그런가?

특히나 순혈과 혼혈에 뱀파이어까지 있기에 문제가 생기리라는 건 불 보듯 뻔했다.

아니 문제가 안 생기는 게 더 이상했다.

-좋다. 그럼. 파시드가 발견한 장소가 어디지?

-칠흑의 숲 중앙. 흑목지대 초입 부근이다.

가만히 듣고 있던 헤이드가 나섰다.

-우리가 그곳을 맡도록 하지.

카닌이 고개를 저었다.

-철마가의 전사들이 강하다는 건 인정한다만 추적은 좀 부족한 게 사실이지. 우리가 중앙을 맡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아니면 독화대를 쓰던가? 철마 쪽은 추적보다는 섬멸이 어울리잖아.

카닌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에 헤이드도 더 따지기 어려웠다.

-그건 그렇지만……. 알았다. 중앙은 양보하지.

거기다 파시드도 당한 상황에서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이계의 존재를 잡는 이가 이기는 게임이다.

-케로스. 자네는? 독화대를 쓴다면 양보하도록 하지.

카닌의 말에 케로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우리는 아래쪽을 맡지.

-그럼. 철마가는 위쪽을 맡겠다. 대신 꼬리를 잡으면 바로 연락하도록.

헤이드의 말에 케로스가 덧붙였다.

-그건 카닌뿐 아니라 우리 모두 그렇게 하자고. 그럼. 만나서 반가웠네.

-그러도록 하지.

-알겠다.

불꽃이 사라지자 케로스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대충 판은 짰고 이제 이계의 존재가 힘 좀 내 주길 바라야겠군.

***

퍼억! 퍽! 퍽!

경호가 나무 패는 소리에 마을 밖으로 나왔다.

곳곳에 나무가 쓰러져 있어 넓은 공터가 만들어져 있었다.

“멜리사?”

멜리사가 바닥에 거대한 마법진을 새기고 있었다.

게다가 카혼을 비롯한 마법과 정령을 다루는 이들 모두가 바쁘게 뭔가를 하고 있었다.

-용사님. 오셨군요.

“네. 근데 이게 뭡니까?”

경호의 물음에 멜리사가 공터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리리스와 독화대를 연구한 결과입니다.

멜리사가 밤새 그들을 가지고 현혹 마법에 대한 것을 연구했음을 알고 있었다.

잠든 중간 중간에 날카로운 비명에 몇 번 깨기도 했었기에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의식의 세계에서 훈련할 수 있는 현혹 마법을 연구한다고 하더니 성과가 있었던 모양이네요?”

경호의 물음에 멜리사의 표정에서 감출 수 없는 흥분이 엿보였다.

-어쩌면 꽤 괜찮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신중한 성격의 멜리사가 저리 말하는 것을 보면 꽤나 성과가 좋은 모양이다.

-멜리사! 여긴 끝났어!

-여기도 다 마무리했어!

경호가 주변을 둘러보니 공터 중앙에 커다란 마법진이 있었고 그 주변으로 작은 마법진이 돌기처럼 연결돼 있었다.

“다 된 겁니까?”

-한번 해 보시겠습니까?

“위험하진 않은 거죠?”

-네. 용사님. 현혹마법과 달리 의식의 세계에서 치명상을 받으면 바로 연결이 끊어지게 설계했기 때문에 문제없습니다.

“그럼. 해 보죠.”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만요.

그렇게 말한 멜리사가 마을 안에서 나오는 오크를 보며 말했다.

-다들 저기 작은 마법진에 서세요.

“멜리사. 설마 의식의 세계에 여럿이 들어갈 수 있는 겁니까?”

미르의 도움으로 의식의 세계에서 훈련했었지만 지금까지 미르와 함께 훈련하는 게 다였다.

그런데 지금 모습은 그게 아닌 듯싶었다.

-네. 백 명이 한 번에 접속할 수 있게 설계했거든요.

“그게 가능해요?”

-생각보다 리리스의 현혹 마법의 수준이 높더라고요. 정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이거 완전 배틀로얄 게임이잖아.”

-네엣? 배틀로얄이요?

백 명의 가상현실 서바이벌 게임을 개발해 버린 멜리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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