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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용사의 골목식당-315화 (315/335)

#외전 015화

우리는 숨 쉬며 사는 것에 따로 감사하진 않는다.

물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전까진 말이다.

경호 역시 정령계에서 미르나 라온과 함께 싸워 왔기에 딱히 신력을 쓰는 것에 제한이 없었고 차고 넘치는 각양각색의 정령과 함께하며 그 힘을 자연스레 빌려 썼다.

그래서 그게 그렇게 감사한지, 또 대단한 것인지 몰랐다.

경호가 악마와 싸워 보지 않은 게 아니다.

아니 악마와 싸워 여럿을 마신의 품으로 돌려보낸 경호였다.

독을 쓰는 악마는 불 정령의 힘을 끌어다 태워 내고 신력과 마력을 섞어 베어 냈다.

환술을 쓰는 악마는 신력으로 그것을 깨부수고 용아검으로 목을 쳤으며.

검기를 날려 방어하고 미르가 물어뜯어 버리거나 라온을 타고 달리면서 그대로 쳐 내면서 싸우기도 했다.

‘SHOW ME THE MONEY.’

한마디로 돈 걱정 없이 현질하는 반칙성 플레이였다.

그런 플레이만 하던 경호가 마계에 떨어졌다.

평범한 마나도 없는 상태.

마기를 억지로 중단전으로 정화해야 겨우 마나코어를 채울 수 있는 곳에서 싸움은 쉽지 않았다.

미르나 라온도 없었고 다른 신수와 정령도 없었다.

청염검기를 뽑아 내 용아검에 둘렀지만 이걸로 과연 저 악마를 잡을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섰다.

그래도 우선 허세가 필요했다.

“독이 주특기인 모양인데. 이걸 어쩌나?”

화르르르르륵.

유지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경호는 불꽃의 크기를 더 키워서는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주변에 떠돌던 독기가 메케한 냄새를 풍기며 청염검기에 휘말려 사라졌다.

이 정도면 긴장 좀 했을 터.

긴장하면 실수가 뒤따르고 그렇게 생긴 빈틈을 노려 승부를 내야 했다.

-큭큭큭. 불의 기운으로 독을 태운다고? 그래. 이것도 태워 보시지.

이게 아닌가?

제기랄. 괜히 경계심만 키운 모양이다.

파시드의 얼굴이 구겨지며 삐죽 솟아난 손톱에서 짙은 녹색 연기가 뿜어지더니 채찍의 형상을 갖춰 주욱 늘어났다.

촤악! 촤아악!

죽음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녹색 채찍이 살아 있는 뱀처럼 꿈틀거리며 빠르게 날아왔다.

하단을 감아 오는 채찍은 뛰어올라 피하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채찍은 청염을 내뿜는 용아검으로 후려쳤다.

용아검이 뒤로 밀렸다.

손목이 쩌릿쩌릿한 것이 손톱과 부딪혔을 때보다도 더 반발력이 강했다.

마기가 채찍처럼 유형화된 것에 강한 독기가 섞인 채찍은 청염검기로도 태워 낼 수 없었다.

‘이거 망한 건가.’

경호는 문득 지금까지 너무 편한 싸움을 했다는 생각을 했다.

마계가 인간이 살아가기 어려운 곳이라면 정령계는 악마가 살아가기 어려운 곳이다.

당연히 악마는 제힘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그런 곳에서 미르나 라온과 함께 싸우다 마계에서 악마를 만났으니 밀릴 수밖에 없었다.

경호는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미르도 라온도 없고 정령도 없어.’

마기를 정화해서 마나를 만들고 속성까지 바꿔서 싸워도 밀리는 상황.

빨리 방법을 찾지 않으면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밀려드는 채찍에 그러한 생각도 제대로 이어 갈 수 없었다.

파시드는 가주가 아끼는 수하답게 실력이 좋았기에 경호는 정신이 없었다.

두 개의 채찍을 막기 위해 결국 염력으로 용아검을 휘두르고 양손에는 청염을 휘감고 싸워야 했다.

물론 체력과 마력은 더 빠르게 떨어졌다.

‘저 채찍을 막아야 뭘 해도 할 수 있다.’

두 개의 채찍이 너무 빠르고 범위가 넓어 방어하기도 벅찼고.

독기까지 지독해 스치기만 해도 해독하느라 기운을 집중해야 했다.

이대로면 결국 채찍만 막아 내다 쓰러질 게 뻔한 상황.

‘저 채찍을 멈춰야 하는데!’

아! 그래!

경호가 파시드를 향해 말했다.

“아놔. 정령계였으면 채찍 휘두르기도 전에 끝났을 건데.”

허세 가득한 경호의 말에 파시드가 반응했다.

-정령계?

상하좌우 폭풍처럼 휘두르던 채찍이 움직임을 멈췄다.

파시드에게 있어 ‘정령계’라는 단어가 주는 궁금함이 다 이긴 싸움보다 훨씬 중요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래. 정령계. 미르와 같이 싸웠으면 한 방 거리도 안 되는 건데.”

정령계에 출전하지 않은 파시드였지만 건너 건너 소식을 들어 ‘미르’도 알고 있었다.

-미르? 정령계 수호신을 네가 어떻게 아는 거지? 설마 정령계에서 넘어온 거냐?

파시드의 격한 반응에 미르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그래! 좋았어!’

경호는 이렇게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정령계의 수호자 미르가 소환한 용사가 바로 나다.”

파시드가 경호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네가? 네가 소환용사라고?

소문의 소환용사는 악마를 무차별적으로 참수하는 무시무시한 놈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소환용사라 호소하는 인물은 소문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정령계와 환경이 너무 달라 힘을 제대로 못 써서 그런 거다.”

대답하고 있는 와중에도 경호는 ‘저놈의 채찍을 어떻게 막아야 하나.’만 생각하는 중이었다.

검기로도 안 잘리고.

청염에도 그을리는 게 전부.

‘저걸 처리해…….’

“아!”

경호가 저도 모르게 ‘아!’를 외쳤다.

-미쳤나?

“너 같으면 안 미치겠냐? 갑자기 영문도 모르고 정령계로 소환돼 지금까지 용사 노릇 한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일이 이상하게 꼬여 갑자기 마계로 떨어져 너 같은 악마 놈에게 죽게 생겼으니 억울하지 않겠냐고!”

대충 변명하려고 아무렇게나 뱉어 낸 말이었는데 하다 보니 정말 억울하긴 억울했다.

-여하튼 정령계의 용사라니 쓸모가 있는 녀석이구나. 사지를 찢어 죽이려 했는데. 살려서 데려가도록 하지. 물론 결국 사지가 찢어져 죽는 건 마찬가지겠지만 말이야.

“누가 잡혀간데? 이제 대충 감 잡았으니까 다시 덤비라고. 그 같잖은 채찍. 이번엔 제대로 태워 버릴 거니까.”

경호가 그렇게 말하며 양손에 청염을 더 크게 일으켰다.

염력으로 띄워 놓은 용아검까지 청염검기를 씌웠다.

-감히 그깟 것을 믿고 까불다니!

원래도 시뻘건 얼굴이라 잘 구분이 가진 않았지만 분명 좀 더 시뻘게진 느낌이었다.

채찍이 더욱 빠르게 날아왔다.

경호는 작은 한숨과 함께 날아오는 채찍을 쳐 냈다.

물론 태워 버리겠다고 한 것과 다르게 채찍은 멀쩡했다.

용아검으로 쳐내고 양손을 겹쳐 막아 가며 최대한 대미지를 피했지만.

쳐 낼 때마다 바닥에 흔적을 세기며 뒤로 밀려나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터억.

그렇게 뒤로 밀려 나가던 경호가 집채만큼 거대한 바위에 닿았다.

“어? 어어!”

경호가 당황한 얼굴로 멈칫했다.

그 모습에 파시드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큭큭거렸다.

-더는 밀려날 곳도 없구나. 팔은 필요 없으니 찢어 버리고 데려가마.

채찍이 엄청난 속도로 경호의 양쪽 어깨를 노리며 날아왔다.

채찍이 어깨에 닿기 직전.

경호가 순간 몸을 낮췄다.

퍽! 퍽!

그러자 채찍이 바위를 뚫고 들어가 깊숙이 박혔다.

몸을 낮춰 피했던 경호가 바위에 박혀 있는 채찍을 움켜잡았다.

쩌저저저정!

양손에서 강한 냉기가 뿜어져 나와 바위에 박힌 채찍을 그대로 얼렸다.

-이익!

경호의 대처에 당황한 파시드가 머뭇거리는 사이.

푸욱!

경호 머리 위에 떠 있던 용아검이 파시드의 심장을 꿰뚫었다.

커억!

악마라는 족속은 기본적으로 심장이 두 개에다가 이상한 녀석들이 많기에 경호는 바로 달려들어 손날에 청염을 일으켜 파시드의 목을 쳤다.

흠집 내기도 어렵던 채찍과 다르게 파시드의 머리가 그대로 잘려 나가 바닥에 떨어졌고.

털썩.

경호 역시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후아. 후아. 후아.

참았던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심장은 터질 듯 두근거렸고.

뇌가 녹아내릴 것처럼 머리는 지끈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한계 이상으로 화기를 끌어올려 청염을 만들어 냈다가 순간적으로 완전 반대의 기운인 빙기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었다.

정말 심장이 터지지 않은 것이 천운이었다.

“하아. 예상처럼 안 됐으면 정말 죽을 뻔했네.”

풀려 버린 다리에 힘을 줘서 겨우 일어난 경호가 목이 잘린 파시드를 노려보며 투덜거렸다.

***

하룬은 정말 있는 힘껏 달렸다.

1분 1초라도 더 빨리 도움을 청해야 했다.

정령계 용사라 했다.

의심이 들기도 했고 강해 보이는 모습에 괜한 질투도 났다.

중단전을 개방하는 과정에서 이를 갈게 만든 인물이기도 했다.

오래 본 사이도 아니기에 딱히 정이 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쨌든 은인이었다.

중단전을 개방을 도와주는 일이 쉽지 않음을 하룬도 알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중단전을 개방하는 방법을 이렇게 알려 주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런 일을 가볍게 행하고 악마와 싸우러 달려와 준 이였다.

하룬은 독충에 쏘이고 독초에 베이고 바위에 걸려 넘어졌지만 온 힘을 다해 달리고 또 달렸다.

-단장님! 단장님!

하룬이 제롬을 부르며 마을 안으로 달려가자 모두 우르르 달려 나왔다.

가장 앞장선 제롬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하룬을 살피다 눈동자가 커졌다.

-하룬아!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냐!

제롬이 하룬의 양쪽 손목에 뚫려 있는 구멍을 확인하며 놀라 물었다.

-그것이…….

잠시 머릿속으로 할 말을 정리한 하룬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단장님. 숲에 순혈 악마가 나타났습니다.

악마라는 말에 웅성거리던 분위기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하게 가라앉았다.

-순혈 악마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마계는 한 명의 마신과 일곱의 마왕과 극소수의 악마 귀족이 엄청나게 많은 마계 주민과 마수를 다스리는 구조였다.

기형적이고 불합리한 구조였지만 절대적인 힘의 격차가 그러한 구조를 지탱하게 만들었다.

-혼혈도 아니라 순혈이라고?

마수의 피가 섞인 혼종 마족도 귀한 상황에서 벌레 취급하는 자신들을 처리하려 순혈의 마족이 움직였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하룬의 입에 쏠렸다.

-단장님. 정말이라니까요. 설마 제가 순혈이랑 혼혈도 구별 못 하겠습니까? 저번에 대량으로 오크가 탈출한 일 때문에 수색에 나선 거 같습니다.

하룬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사실은 오크의 은신처를 찾기 위해 파시드가 직접 나설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차원이동의 흔적이 나타났고 그것을 오크의 움직임이 겹치며 사건이 커졌기에 파시드가 직접 나서게 된 것이었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마족의 순혈 유무나 이유 따위가 아니었다.

-단장님!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지금 경호가 그 순혈 악마와 싸우고 있습니다. 그 덕에 저는 피할 수 있었고요.

-뭐야? 용사님이!

안 그래도 제롬은 하룬이 순혈 악마를 만나고 멀쩡하게 돌아올 수 있었는지 의문이었다.

아니 양쪽 손목에 구멍이 뚫렸으니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사실 순혈의 악마라면 절대 살아 돌아올 수 없어야 하는 게 당연했다.

-모두 갑시다! 어서요!

하룬의 말에 모두가 멈칫했다.

악마라면 절로 이가 갈리는 이들이었지만 순혈 악마가 주는 공포는 꽤 위협적이었다.

-저를 만나지 않았다면 모를까. 경호가 죽고 나면 다음은 우리 차례입니다. 조금이라도 살 확률을 높이려면 서둘러 쫓아 그놈을 죽여야 합니다.

하룬의 말이 맞았다.

쳐들어오지 않았다면 모를까 지금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서둘러야 했다.

-모두 도끼를 들어라!

제롬이 모두를 돌아보며 크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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