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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용사의 골목식당-314화 (314/335)

#외전 014화

마신은 자신이 만든 마계(魔界)를 지배할 일곱 마왕을 만들었다.

오만의 루시퍼, 탐욕의 마몬, 질투의 레비아탄, 분노의 사탄, 색욕의 아스모데우스, 폭식의 바알, 나태의 벨페고르가 바로 그들이었다.

이들은 각자의 영역을 차지한 채 서로 세력을 키우며 견제하고 있었다.

마왕 바알은 탐욕스러웠다.

인간계 침략을 통해 많은 오크를 거느리게 됐지만 그만큼 탈주하는 오크도 늘어났다.

마왕 바알을 보필하는 3대 마가 중 독마가의 가주 케로스는 그것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파시드야. 파시드야.

케로스의 이마엔 거대한 뿔이 가운데 삐죽 솟아 있었다.

차가워 보이는 보랏빛 피부.

피처럼 붉은 눈동자가 섬뜩했다.

케로스가 노기를 담아 앞에 엎드려 있는 악마 파시드를 노려보았다.

-가주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케로스의 성정을 아는 파시드가 쾅쾅 머리를 찧으며 말했다.

커다란 집무실에 쾅쾅거리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퍼지다 다시 조용해졌다.

-네놈 입에서 그딴 소리가 나오는구나. 한 번만 더? 입을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이 어디 감히! 네놈이 관리만 똑바로 했어도 이런 일이 났겠느냐!

케로스의 말에 파시드는 목을 움츠렸다.

자신이 관리하는 구역에서 가장 많은 수의 오크가 탈주하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에 변명거리도 없었다.

-가주님! 꼭 다시 녀석들을 잡아들이겠습니다.

파시드는 고개를 숙였다.

케로스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삭혔다.

말처럼 입을 찢어 죽여도 시원찮은 놈이지만 자신의 밑에서 수백 년을 함께해 온 수하였다.

수하 중 최고라 할 순 없지만 그 누구보다 자신을 잘 이해하는 놈이었기에 이번 일로 당장 쳐죽일 수는 없었다.

-네놈 말처럼 한 번 더 기회를 주겠다. 대신 빠져나간 놈들의 본거지를 찾도록. 알겠나?

-알겠습니다!

파시드는 다시 이마를 바닥에 쾅쾅 찧었다.

비록 벌레 취급 당하는 오크라도 필요한 존재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내부 소란이 전력 약화로 이어지기라도 하면 곤란했다.

3대 마가가 서로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루고 있기에 작은 문제조차 위기를 만들 수 있었다.

그렇기에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탈주한 녀석들을 찾아야 했다.

그때 저 멀리서 강력한 마기의 파동이 느껴졌다.

-가, 가주님!

파시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케로스를 쳐다봤다.

-보통의 기운이 아니다.

케로스와 파시드가 느낀 것은 바로 경호가 휘말린 차원이동의 기운이었다.

-가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파시드는 가주의 명에 마기의 파동이 느껴지는 곳으로 향했다.

상황을 파악한 그는 곧장 돌아왔다.

-가주님! 차원이동의 흔적입니다!

-차원이동? 지금 차원이동이라 했느냐? 그게 말이 되느냐?

-하지만 남아 있는 마기의 흔적을 보면 확실합니다.

차원이동은 마계에서도 흔했다.

아니 그 어떤 차원보다 차원이동이 많은 곳이 마계다.

다른 차원을 침략할 때 차원이동은 필수였으니까.

하지만 흔하다고 해서 마구잡이로 열리는 것은 아니었다.

거기다 파시드는 그곳에서 더 중요한 무언가를 발견했다.

-가주님. 그곳에서 오크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오크? 차원이동의 흔적에서?

-예. 분명 오크의 흔적이었습니다.

경호에게 잡혀 본진까지 안내한 오크의 흔적을 발견한 것이었다.

-파시드. 이번엔 날 실망시키지 말거라.

케로스의 말에 파시드는 납작 엎드려 외쳤다.

-분부 받들겠습니다.

차원이동의 흔적은 칠흑의 숲 근처에서 발견됐다.

‘분명 칠흑의 숲 내부에 은신처가 있을 터.’

그곳은 독충이 우글거리는 숲이라 마계에서도 금지로 지정된 곳.

마족도 출입을 꺼리는 곳이다.

파시드는 추적에 능한 늑대숭이를 데리고 오크의 흔적을 쫓아 칠흑의 숲으로 들어갔다.

마계 자체가 대낮에도 어두컴컴하지만 칠흑의 숲은 특히나 고목이 많아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곳이었다.

거기다 마기 또한 안정되지 않고 마구 요동치는 곳이라 추적이 쉽지 않은 곳이다.

독초나 독충이 많기에 늑대숭이조차 길을 제대로 찾기 힘들어했다.

그렇게 이동하던 중 파시드는 하룬을 만날 수 있었다.

포기하고 돌아가야 하나 고민할 때 만난 상황이라 반가울 지경이었다.

-반갑다. 쥐새끼.

기세등등했던 하룬이었지만 파시드의 한마디에 얼어붙은 것처럼 굳었다.

하룬도 중단전을 개방하여 늑대숭이 무리를 쓸어버릴 정도로 강해졌지만.

늑대숭이와 마족은 그 결이 다른 존재.

‘이상하게 잘 풀린다 했다.’

하룬은 마음을 가라앉히며 도끼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독충이 많은 칠흑의 숲에 늑대숭이가 무리를 지어 다니는 것부터가 이상했다.

그때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이제와 도망칠 수도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반군 본진이 노출되지 않도록 유인해야 했다.

-죽어!

하룬은 도끼에 기운을 가득 담아 파시드에게 던졌다.

-고작 한다는 공……. 어딜 감히!

파시드가 날아오는 도끼를 보며 피식하다 뒤돌아 달려가는 하룬을 보며 도끼를 피해 달렸다.

호전적이고 무식한 오크가 도망이라니.

예상치 못한 반응에 파시드도 당황했다.

‘절대 놓치면 안 된다.’

가주가 준 마지막 기회였다.

마기를 쏟아 내며 달렸지만 낯선 장소인지라 하룬과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이 쥐새끼!

파시드는 다리에 더 많은 마기를 불어넣으며 속도를 높였다.

하룬은 점점 속도를 높이는 파시드를 보며 허리에 찬 단검을 꺼내 뒤로 던졌다.

하지만 단검은 위협조차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잠시라도 시간을 끌기 위해 단검을 계속 던지며 달릴 수밖에 없었다.

‘제길. 다리가 점점 무거워진다.’

하룬에게 있어 칠흑의 숲은 앞마당과 같았다.

독충을 피하는 요령도 알고 있고 평소 해독작용을 하는 약초를 섭취하기에 독에 대한 저항력도 높은 편이다.

그렇기에 하룬 역시 평소라면 독충으로부터 안전했을 것이다.

하지만 본진을 숨기기 위해서는 험준한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고 점차 몸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 파시드의 마력탄이 날아와 하룬의 등을 때렸다.

-커억!

하룬은 신음을 토하며 앞으로 굴러가 바닥에 처박혔다.

-크윽.

도끼와 단검을 모두 날려 버려 빈손인 하룬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파시드는 그런 하룬의 앞에 여유롭게 서 있었다.

-쥐새끼 주제에 제법 빠르군.

파시드는 당장이라도 버러지 같은 오크의 목을 잘라 버리고 싶었지만 반군의 은신처를 알아내야 했기에 그럴 수 없었다.

-쥐새끼. 궁금한 게 있는데 알려 주겠나?

파시드의 물음에 하룬이 큭큭거리며 웃었다.

-미친 악마 새끼.

하룬이 양손에 기운을 모았다.

마력을 크게 소진한 상태라 주먹에 어린 마력은 흐릿한 수준이었다.

-쥐새끼라 그런지 말귀를 못 알아듣는군.

파시드는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끝에서 검은 빛이 번쩍였다.

끄악!

하룬의 양 손목에 구멍이 뚫리며 피가 터져 나왔다.

주먹에 흐릿하게 어린 기운이 사라지고 하룬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애초부터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중단전을 제대로 익혀 마혼과 마기를 제대로 몰아냈다면 혹여 모를까.

이제 막 중단전을 개방한 지금의 하룬에겐 무리였다.

-대답만 잘하면 죽이진 않으마.

-악마 새끼가 배려심이 천사 같네.

하룬이 힘겹게 미소를 띠며 말했다.

‘다들 피해야 할 텐데.’

그러는 와중에도 반군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아무리 칠흑의 숨이 크고 험하다고 해도 악마가 움직이면 들킬 위험이 컸다.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때마다 양팔에 구멍을 한 쌍씩 뚫겠다.

-이왕이면 살살 부탁할게.

하룬은 그렇게 말하고 눈을 감았다.

답해 줄 생각 따위는 없었다.

설령 답해 준다 하여도 아마 살아나갈 방법은 없을 것이다.

-탈주한 오크가 모여 있는 곳이 어디냐?

“그거 나도 알고 있는데.”

하룬이 숲 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눈을 떴다.

-겨, 경호?

분명 경호의 목소리였다.

어떻게? 왜?

하룬과 파시드가 고개를 돌렸다.

수풀을 헤치고 나온 경호가 투덜거렸다.

“아. 정말 독충 더럽게 많네. 하룬. 제롬이 찾더라고. 빨리 가 봐. 나는 저 빨갱이 새끼 처리하고 갈 테니까.”

피처럼 붉은 피부의 파시드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경호를 쳐다봤다.

-인간?

분명 인간이었다.

이곳에 있을 수 없는. 있어서 안 되는 존재.

“빨갱아 잠시만. 어이! 하룬! 빨리 가라고!”

경호의 외침에 엉거주춤하고 있던 하룬이 서서히 뒤로 물러났다.

-감히 이것들이!

파시드의 손가락이 마기를 품고 하룬의 이마로 향하는 순간.

경호가 달려 나가며 용아검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검기가 쏟아져 나오자 파시드도 하룬을 향한 손가락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검기와 마력탄이 가운데서 만나 폭발하고.

-다시 올게! 좀만 버텨!

그렇게 외친 하룬이 달려나갔다.

그것을 지켜본 파시드의 얼굴이 구겨졌다.

경호는 그런 파시드를 향해 검기 짙게 두른 용아검을 비스듬히 휘둘렀다.

-감히!

파시드가 손날을 세우자 손톱이 칼날처럼 길게 변했고 그것으로 용아검을 쳐냈다.

캉!

검은 마기가 어린 손톱은 바위도 가볍게 잘라 내는 용아검을 가볍게 튕겨 냈다.

크윽.

경호는 신음을 삼키며 뒤로 물러났다.

‘평소와 다르다.’

욱신거리는 손목에 경호는 놀랐다.

오크를 상대할 때만 해도 잘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정령계에 있을 때보다 많이 약해졌어.’

단순히 미르나 신수, 정령과 같이 싸우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었다.

정령계는 마나가 풍부하고 신력이나 정령력까지 쉽게 끌어다 쓸 수 있는 곳이지만 마계는 달랐다.

질적, 양적으로 모두 문제가 있었다.

-입만 살아 있어도 되니 우선 양팔을 잘라 주마.

파시드는 양손으로 손톱을 세워 공격을 시작했다.

거기다 독마가 출신답게 손톱에는 강력한 독기가 어려 있었다.

전설급 무기인 용아검은 악마의 독에도 손상되지 않았다.

하지만 경호는 독기의 영향으로 점점 몸이 무거워졌다.

뒤로 훌쩍 물러난 경호가 손을 저었다.

“어이. 빨갱이. 독기 때문에 어지러워 죽겠어. 아까 살려 준다며. 알아내야 할 게 많다며. 아니야? 이대로 죽여도 되겠어?”

시간을 끌기 위해 경호는 엄살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래? 시간을 주도록 하지. 대신 대답해라. 인간이 어떻게 이곳에 있는 거지?

오크도 오크지만 마계에 인간이 있다는 게 더 큰 문제였기에 파시드가 경호에게 물었다.

“차원이동? 아마도 그런 거 같은데 정확히는 모르겠네. 마법사와 싸우다가 이상한 마법진에 휩싸여 정신을 차려보니 딴 세상이더군. 이렇게 말이 통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어쨌든 오크들을 만났고 같이 지냈지. 사실 처음에는 녹색 돼지 같은 모습에 싸우기도 했는데 어쨌든 지금은 나름 꽤 친해졌거든. 설명이 됐나?”

-차원이동. 그랬군.

경호가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면서 입만 놀린 것은 아니었다.

마기와 독기 정화에 가장 좋은 기운은 불의 기운이다.

정령계에서는 널려 있는 기운이라 그저 가져다 쓰면 되는 거였지만 마계엔 마기만 있을 뿐이다.

없으면 만들면 된다.

중단전의 진정한 역할이 바로 마나의 성질을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마기도 정화할 수 있는 거였고.

정제와 압축을 거치면 원소력으로도 변화시킬 수 있었다.

‘오랜만이라 잘될지 모르겠네.’

정령계에서는 딱히 만들 필요가 없었기에 미르에게 배울 때 빼고는 해 본 적이 없는 방법이었다.

경호는 마나코어에서 마력을 심장으로 끌어와 회전시키며 정제와 압축을 거쳐 불의 기운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용아검에 불어넣었다.

화르르르르르륵.

새파란 청염검기가 용아검에 넘실거렸다.

“오. 이거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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