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용사의 골목식당-312화 (312/335)

#외전 012화

제롬이 오크에 대해 설명했다.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오크는 단순히 마계에 사는 몬스터가 아닌 인간입니다.

“오면서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사실 많이 놀랐고요.”

고정관념이란 게 그래서 참 무서운 거다.

오크.

RPG 게임에서 초보 때 경험치나 아이템을 퍼 주는 허접 몬스터의 대표주자. 일명 잡몹.

-마기에 의해 오크로 변한 인간들은 침략 전쟁의 선두에 서게 됩니다. 심한 경우 마족의 먹잇감으로 쓰이기도 하는 형편이지요.

끔찍했다.

단순한 노예 생활이 아닌 방패막이나 먹이로 쓰이는 삶.

경호는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그런 삶이었다.

“그런데 반군은 뭡니까?”

경호가 영리한 편은 아니지만.

반란을 일으킨 군대를 칭하는 단어를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다만 인간 사회와 다르게 지휘계통이 철저하게 돌아가는 마계에서 반군이 있다는 게 의아했기에 물어보는 것이었다.

-혹시 암흑마기와 마혼에 대해서 아십니까?

만물박사와 같은 미르에게 얼핏 들어 봤던 말이다.

“암흑마기는 마족의 근원과 같은 거고 마혼은 마신의 의지가 담긴 기운이라고 들었습니다만 더 자세히는 모릅니다.”

마계에 이렇게 넘어올 줄도 몰랐고 자세히 설명해 줄 필요도 없는 내용이었기에 경호도 이상의 내용은 몰랐다.

-마족, 아니 마계와 그 안의 생명체 모두가 마신이 자신의 힘을 나눠 만든 것입니다. 그렇기에 마신의 근원적 힘인 암흑마기를 모두 품고 있지요. 또 동족 간의 싸움을 막기 위해 마신은 마혼을 만들었는데. 마신의 의지가 담겨 있기에 서열에 따라 복종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 서열이라는 것은 암흑마기의 크기겠지요?”

-맞습니다. 더 서열이 높고 강할수록 암흑마기의 힘이 강하니까요.

대충 알고 있는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모인 겁니까? 마혼의 힘 때문에 반란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일 텐데.”

저 설명대로라면 애초부터 반란을 획책할 수 없어야 정상이다.

-마나연공법으로 마혼을 정화하고 암흑마기를 억누를 수 있었습니다. 물론 모두가 가능한 건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마기로 가득한 마계에서 연공을 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인간 시절 강한 힘을 가진 이들만 성공하여 이렇게 모인 것이다.

-그런데 용사님께서는 괜찮으십니까?

괜찮냐니? 무슨 소리지?

마계로 넘어온 걸 물어보는 건가?

“아예. 뭐. 이것도 다 운명이겠거니 하며 생각 중입니다.”

제롬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것이 아니라. 마나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이곳에서 그런 기운을 뿜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데 힘들어하는 것 같지 않기에 여쭤본 겁니다.

“딱히 안 힘든데요. 마기에 약한 정령이라면 모를까? 딱히 힘들 게 있나요?”

경호의 말에 제롬의 눈이 커졌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몸 안으로 침범해 오는 마기를 막아 내기도 힘든데. 딱히 힘들 게 없다니요?

응? 몸 안에 침범해 오는 마기를 막는다고?

“그걸 왜? 그냥 흡수해서 정화해 사용하면 되잖아요. 굳이 마기의 침범을 막을 필요가 있나요?”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에 경호는 어깨를 으쓱했다.

-마기를 흡수해서 정화한다고요? 오러를 사용하면 정화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

“아니 그냥 중단전을 이용하면 되는데 뭘 힘들게 오러까지 써서 정화해요. 그러니까 힘들지.”

-중단전? 중단전이요?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제롬이 고개를 갸웃하자.

“아. 중단전이라는 단어를 모르려나? 그러니까 하단전을 마나코어라고 하면 심장에 있는 거요. 마법 서클을 만들 때도 쓰고 하는 거. 아시죠? 그걸 중단전이라고 부르거든요.”

미르에게 몸에 직접 쑤셔 박혀 가며 익힌 것들이라 다른 건 몰라도 이 부분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경호의 말에 안 그래도 커진 제롬의 눈이 튀어나올 듯했다.

-아니 그 심장으로 마기를 정화해 흡수한다고요? 그게 가능합니까?

“저는 되던데요. 익히는 게 좀 힘들긴 했지만요.”

거의 죽을 뻔했던 기억도 8년이 흐르니 좀 힘든 정도로 미화돼 버렸다.

제롬이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뭐야? 왜?

무섭게 생긴 오크가 갑자기 인상을 쓰며 벌떡 일어나니 경호도 움찔했다.

그리고.

털썩.

갑자기 무릎을 꿇은 제롬이 경호를 향해 납작 엎드렸다.

“아니 갑자기 무릎을…….”

당황한 경호가 제롬에게 다가가 일으켜 세우려 하자.

-염치없지만 부탁드립니다. 그 연공법을 저희에게 가르쳐 주실 수 있습니까? 연공법은 가문 사람에게도 가려서 전수한다는 것을 저 역시 너무나 잘 알고 있…….

“아이고. 뭘 그런 거로 무릎까지. 배울 마음만 있으시면 가르쳐 드릴게요. 당장 정령계로 넘어갈 수 있을 거 같지도 않고 서로 힘을 합쳐야 할 거 같은데 말이죠.”

-네엣? 지, 진심이십니까?

제롬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마나연공법은 목숨보다 소중하게 관리하는 것이 보통.

당연히 거절하리라 생각하고 부탁한 것이었는데 말도 끝나기 전에 허락하다니.

“대신 조금 아플 수도 있어요. 새로운 코어를 만드는 거라서. 아시죠?”

-그 정도 아픔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때는 몰랐다.

그 아픔이 아무것도 아님이 아님을.

그때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러 말이 들렸지만 우선 제압하고 뒤를 캐 봐야 한다는 말들이었다.

-저 멍청한 놈들이!

제롬이 하룬을 비롯한 이들의 언사에 어금니를 갈아댔다.

“제롬.”

-네. 용사님.

“저 문제부터 해결하고 나서 이야기를 해야 할 듯하네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당연한 거죠. 제가 해결해 보겠습니다. 다치지 않게 할 테니 걱정 마시고요.”

하룬을 중심으로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 시점.

힘으로 증명할 수밖에 없었다.

경호의 말에 제롬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경계심이 강하긴 하지만 악한 아이들은 아니니 배려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회관 밖으로 나온 경호는 일격에 하룬을 땅에 처박았다.

“거기! 다음 나오라고!”

경호가 소리쳤지만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실력도, 각오도 없이 날 제압하니 어쩌니 했던 거냐?”

-…….

모두가 경호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뭐. 그런 가짜 기운으로 까불 때부터 알아봤다만.”

경호의 말에 바닥에 처박혀 있던 하룬이 힘겹게 일어나며 으르렁거렸다.

-가짜 기운이라니! 그게 무슨 헛소리냐!

-하룬! 이놈아! 용사님에게 버릇없이!

경호의 뒤편에 서 있던 제롬이 나서 하룬을 꾸짖었다.

-제롬! 하지만…….

-그만! 그만! 더는 참지 않을 것이니 그 입 다물도록.

그렇게 하룬에게 일갈한 제롬이 경호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용사님.

“아닙니다.”

제롬이 사과할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가짜 기운이 뭡니까?

하룬의 도끼에 어린 부기(斧氣)를 말하는 듯했는데 그게 왜 가짜 기운인지 제롬도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다.

“마나도 아니고 마기도 아닌 잡스러운 기운이다 보니 서로 응집력이 약해요. 그러니 가짜 기운이죠.”

-아.

“그러니까 결국 답은 중단전입니다.”

***

경호는 마을 광장을 가득 메운 오크 앞에서 미르에게 배운 중단전 연공법에 대해 설명했다.

“자. 다 이해했죠?”

하룬이 손을 번쩍 들었다.

-심장에서 마나를 변화시키는 부분은 이해했는데 마기를 마나로 변화시키는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경호의 등장에 가장 크게 반대하던 하룬이었지만 강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에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음. 제가 살던 곳에 이런 말이 있거든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사실 경호도 몸에 직접 때려 박으며 배운 것이기에 이론적으로 해박하진 않았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게 낫다는 말이지요.”

경호의 말에 광장을 가득 메운 오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연공법의 흐름을 직전 전해 줄 테니 기억하고 익힌 다음 전달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누가 먼저 해 보시겠습니까?”

여기저기서 손을 드는 오크가 나왔다.

누굴 골라야 하나 상의하려고 옆에 있는 제롬을 보니.

“어. 제롬?”

제롬 역시 손을 들고 있었다.

-용사님.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하룬이 질세라 손을 들며.

-아니 혹여나 잘 못 되면 여긴 누가 돌보라고요! 단장님. 제가 먼저 할게요.

둘이 한참 옥신각신했지만 하룬의 고집을 막을 순 없었다.

-그래. 알았다. 알았어. 용사님. 그럼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고통이 꽤 따르는 작업이라 비명을 지를 수도 있지만 집중해야 하는 작업이라 방해하지 않아 주셨으면 합니다.”

‘구속의 밧줄’에 묶여 죽을 뻔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경호였다.

-용사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염려 마십시오.

-단장님. 내가 그깟 걸로 비명 지를 놈이요? 웃으면서 할 생각이니 걱정마쇼.

하룬이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웃으면서 할 생각이라고?

경호는 그냥 웃고 말았다.

그렇게 회관에 들어간 경호는 아공간에서 구속의 밧줄을 꺼냈다.

-뭐 하는 겁니까?

“연공법을 익히는 중에 몸을 움직이면 자칫 위험할 수도 있거든.”

경호는 담담히 말하며 회관 기둥에 구속의 밧줄을 단단히 묶었다.

-날 그걸로 묶겠다고요?

“잘 참으면 풀어 줄게. 우선 묶자.”

-싫…….

경호가 구속의 밧줄을 쥐고 하룬을 향해 움직였다.

잔상이 생길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었다.

-……어어억!

하룬이 움찔하는 사이 이미 밧줄에 감겨 기둥에 몸이 묶였다.

“나도 받아만 봤지 해 보는 건 처음이라 잘 될지 모르겠네.”

-뭐! 야! 야…….

경호가 구속의 밧줄을 둘둘 말아 하룬의 입에 물려서는 같이 묶어 버렸다.

-읍! 으으읍!(야! 입은 왜!)

“이제야 조용하네. 안 그래도 처음이라 집중해야 하니. 조용히 하고 있어.”

8년을 연공해 온 터라 너무나 익숙하기에 헷갈릴 일은 없겠지만 누군가에게 전수하는 건 처음이었다.

“후우. 자아. 잘 들어. 내가 짚어 주는 대로 기운을 이끌어야 한다. 위치와 시간까지 정확하게. 제대로 될 때까지 계속할 거야. 알았지?”

-으읍읍읍!(입은 풀라고!)

하룬은 하고픈 말이 많았지만 입이 막히고 온몸이 묶여 있는 터라 별다른 저항은 할 수 없었다.

“그래. 그럼. 시작할게.”

경호는 하룬의 마나코어가 있는 부근을 손가락으로 짚고는 마나를 불어넣었다.

-끄읍!

원래도 초록색 얼굴이라 표시가 잘 나지 않았지만 안색이 창백해진 느낌이었다.

“어?”

경호는 손끝에서 느껴지는 반발력을 느꼈다.

‘이거 뭐지?’

기운을 흘려보내면 내부를 느낄 수 있는데 생각과 달랐다.

‘분명 고속도로라 생각했는데 막상 와 보니 비포장인 느낌인데?’

마나 회로가 어긋난 느낌이었다.

-끄업! 끄어어업!

하룬이 고개를 마구 저으며 끅끅 거리고 있었다.

“아! 나와 다르구나!”

인간과 오크.

물론 오크도 인간이 변화된 존재라 마나코어와 회로의 구조가 같지만 육체적인 변화로 달라진 상황.

미르라면 바로 연공법을 수정하여 알려 주겠지만 경호는 알려준 연공법도 몸으로 겨우 익힌 재능의 소유자였다.

“뭐. 원래 길이라는 건 가다 보면 다 통하는 법이지.”

오크로 변했다 할지라도 인간이었기에 마나회로의 큰 틀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기운을 주입한다는 것 자체가 말 그대로 기운을 담에서 신체 내부를 때리는 것과 같기에.

고문에 가까웠다.

당연히 제대로 된 회로가 아닌 곳에 기운을 주입하면 그 고통은 몇 배로 증가하기 마련.

“뭐. 그것까지는 어쩔 수 없지. 원래 고통 없이 얻을 수 있는 건 없으니까.”

-읍? 으읍! 으읍읍!(뭐? 그만! 그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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