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006화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죽음을 각오했던 솔딘은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경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뜸.
“드워프 맞죠?”
앞뒤 없는 질문을 던졌다.
아무리 생명의 은인이라고 해도 무례한 행동이었다.
“네엣?”
솔딘은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경호를 살폈다.
하지만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동자에 담긴 뜻을 알아차리긴 어려웠다.
“조리도구, 아니 드워프 맞죠?”
경호의 마음이 급하기에 막 튀어나온 이상한 질문이었다.
무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원시인처럼 먹고살던 경호다.
풀떼기만 먹다 마수고기를 처음 먹었을 적에는 눈물이 날 만큼 맛있었지만, 이제 물리다 못해 꼴도 보기 싫을 지경.
문제는 그 꼴도 보기 싫은 요리를 살기 위해서 먹어야 한다는 거였다.
‘드디어 해법이 나타났어! 해법이!’
판타지 소설 속 설정이긴 했지만 드워프는 대장 기술로 유명했다.
어쩌면 그토록 고대하던 조리도구를 구할 수 있을지 몰랐다.
“드워프 맞습니다. 정확히는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검은 망치 부족이라 불렸던 드워프입니다.”
“아. 차원 이동이요?”
새삼 놀라울 건 없었다.
자신 역시 지구에서 넘어온 것이었으니까.
“반갑네요. 저도 차원이동, 정확히는 다른 차원에서 이곳으로 소환된 거거든요.”
경호의 말에 오히려 솔딘 일행이 더 놀랐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소환이라니요? 차원을 넘어 소환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단 말씀입니까?”
차원 이동과 차원 소환은 결은 비슷하지만 격이 완전히 다른 마법이었다.
스스로 가는 것과 누군가 강제로 데리고 오는 것.
그 둘을 단순히 비교해도 차이가 컸다.
“그러니까 말이죠. 저는 지구라는 곳에 살던 평범한 청년……”
경호가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지난 5년간의 힘든 여정을 최대한 짧게 압축해 이야기했다.
특히나 마수 뼈를 사용한 요리의 맛이 얼마나 조잡한지 강조했다.
“그러니까 용사님. 정령계로 넘어와 지금까지 그런 고생을 하셨다고요?”
솔딘의 맞장구에 경호가 한숨을 푹 쉬었다.
“에휴. 말도 마세요. 신룡이니 수호신이니 하지만 겪어 보면 마계에서 넘어오는 마수보다 더 심할 때가 많다니까요! 아! 리온 이거 비밀이다!”
미르가 은근히 꽁한 부분이 있다.
“그리고 족장님. 그냥 편하게 부르세요.”
“아닙니다. 은인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요. 저희 드워프는 원수도 잊지 않지만 은혜는 더더욱 잊지 않습니다. 용사님이야말로 그냥 솔딘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족장님이라는 호칭은 부족원에게 듣는 것만 해도 충분합니다.”
“아니 그래도 어떻게 그럽니까. 그냥 족장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의 청년으로서 연장자, 그것도 할아버지뻘인 솔딘에게 반말은 어색했기에 사양했다.
“사실 드워프로 따지면 청년에서 중년으로 넘어가는 나이니 너무 존대하시는 것도 불편합니다.”
“아…….”
청년에서 중년으로 넘어가는 나이? 저 수염이? 거의 산타클로스급인데?
“알겠어요. 솔딘. 그냥 편하게 부를게요. 그나저나 대장장이라는 거죠?”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줄곧 어두웠던 솔딘의 얼굴이 처음으로 밝아졌다.
“맞습니다. 자랑 같아 제 입으로 말씀드리긴 좀 그렇지만 사실 저희 부족이 대장 기술로는 대륙 최고의 부족이었습니다. 뭐. 대장 기술뿐 아니라 세공이나 채광 같은 기술 역시 마찬가지고요. 국보급 보물도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솔딘의 얼굴에서 자신감이 뿜어져 나왔다.
업계 최고! 국보급 보물!
그래 봐야 경호는 조리도구를 부탁하려는 거였지만.
솔딘이 경호의 손에 들린 용아검을 살폈다.
슬쩍 쳐다본 것에 불과하지만 노련한 장인의 눈길은 예리했다.
“혹시 검 때문에 그러십니까? 그 검은 드래곤본으로 만든 듯한데. 이곳에 미스릴 광산이 있다 해도 그 검보다 더 좋은 검은 만들기 어려울 거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무리 기술이 좋다 해도 드래곤의 뼈가 가진 대단함을 뛰어넘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검을 주시면 더 좋게 다듬어 드릴 순 있습니다.”
솔딘의 눈동자는 창작 욕구로 이글거리고 있었지만 정작 경호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뭐. 검은 이거면 됩니다. 그게 아니라 전 조리도구를 부탁했으면 해서요.”
“네엣?”
정령계를 구할 소환용사가 최고의 장인인 자신에게 부탁하고자 하는 것이 ‘조리도구’일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던 터였다.
“조리도구요. 조리도구.”
“용사님. 그러니까 냄비니 국자니 하는 거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정확합니다. 바로 그거죠.”
조리도구! 조리도구라니!
검기를 날려 마수의 목을 치는 장면을 보지 않았다면 눈앞에 있는 이가 정말 용사인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아니면 혹시.
“용사님. 농담이시죠?”
그래. 농담이 틀림없다.
별로 웃기지는 않지만 개그 코드가 좀 유별난 용사임이 분명했다.
조금 전까지 생사를 오갔던 자신과 부족원의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한 농담.
슬쩍 보니 조리도구라는 말에 다들 피식거리며 웃고 있었다.
“아니요. 솔딘. 저 정말 진지합니다. 그리고 급하고요.”
경호의 단호한 말투와 이글거리는 눈빛에서 진정성이 뿜어져 나왔다.
‘이상한 사람이다! 이상한 사람이야!’
강한 이들 중 특이한 이들이 더러 있다더니 이 용사가 그런 듯했다.
“그러시군요. 뭐. 조리도구야 철광석만 구한다면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솔딘이 주변을 쓱 훑어보다 저 멀리 솟아 있는 자그마한 언덕을 가리켰다.
“지세를 보아하니 저기에 광산이 있을 듯하네요.”
드워프는 단순히 손재주 좋은 난쟁이가 아니었다.
땅의 기운을 느끼고 불의 힘을 조율할 수 있는 종족이 바로 드워프였다.
그렇기에 가볍게 대지의 기운을 읽어내는 것만으로 철광석이 묻혀있을 법한 곳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럼. 뭘 도와드리면 될까요?”
조리도구를 만들 수 있다는 솔딘의 말에 경호의 목소리가 한껏 격양됐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듯 전신이 긴장한 상태여서 그것을 지켜보는 솔딘마저 몸에 힘이 들어갈 정도.
“용사님이 지금 도와주실 건 딱히 없습니다. 우선 ‘저곳’을 파서 철광석이 나는지 확인부터 해야 뭐든 진행이 되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경호가 솔딘이 말한 ‘저곳’을 향해 달렸다.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마수와 싸울 때보다 훨씬 더 빠르게 달려간 경호가 용아검에 기운을 실었다.
우우우우우우웅!
새하얗게 달아오른 용아검에서 우렁찬 검명이 울려 퍼지고.
“철광서어어어어억!”
경호의 우렁찬 목소리가 초식명처럼 울려 퍼졌다.
그리고 날아간 검기가 솔딘이 지목한 언덕에 꽂혔다.
콰아아앙! 콰앙! 콰아아아앙!
강철보다 단단한 마수의 가죽도 두부처럼 썰어 버리는 검기가 수차례나 꽂히며 폭발하자 언덕이 숭덩숭덩 파여 갔다.
“아, 아니! 용사님!”
멀리서 그 모습을 보던 솔딘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콰아앙! 콰앙!
“이제 그만하셔도.”
콰앙! 콰아아앙! 콰아아아앙!
폭발은 그 뒤로도 한참이나 더 이어졌고.
끝없는 검기 세례에 솔딘이 달려갔다.
“용사님! 용사님!”
***
‘깊이 파면 깊이 팔수록 좋은 거겠지?’
과유불급.
하지만 냄비와 국자에 정신이 나간 경호에게 그런 사자성어 따위는 머릿속에 지워진 지 오래였다.
콰아아앙! 콰아앙! 콰아아아앙!
광산에 대한 지식 따위가 있을 리 없는 경호는 그냥 깊이 파면 장땡이라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검기를 쏟아 냈다.
“용사니이이이이이임!”
콰아앙! 콰아아앙! 콰앙!
솔딘이 목청이 터져라 경호를 불렀지만 검기가 터져 나가며 울려대는 폭발음은 그런 그의 목소리를 가볍게 묻어 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앞으로 나서 말리고 싶었지만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검을 휘두르며 검기를 날리는 상황이라 그럴 엄두는 나지 않았다.
콰아앙! 콰앙! 콰아아앙!
그렇게 한참을 더 터뜨리고 나서야.
“응? 솔딘. 왜요?”
솔딘의 표정에서 심각함을 읽은 경호가 검기 날리는 것을 멈추고 묻자.
“용사님. 땅굴을 너무 깊게 팠습니다.”
솔딘의 말에 경호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예로부터 ‘다다익선’이라 하지 않았던가!
깊고 크게 파 놨으니 지금 당장 들어가 작업해도 부족하지 않아 보였다.
“그럼. 바로 작업하시죠. 다른 건 뭘 도와드릴까요?”
경호는 냄비가 생긴다는 생각에 열의가 활활 타오르는 중이었다.
하지만 솔딘의 이어지는 말은 경호의 기대를 완전히 벗어났다.
“폭발로 지반도 약해졌고 보강 작업 없이 깊이가 너무 깊어 작업하기 어려울…….”
쿠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마치 기다렸다는 듯.
경호가 동굴처럼 깊게 파 놓은 땅굴이 굉음과 함께 지진이 난 듯 마구 흔들리다 무너졌다.
짙은 먼지가 일다 가라앉자 낮은 언덕이 폭발 흔적만 남은 허허벌판으로 변해 있었다.
“용사님. 그냥 저희가 하겠습니다.”
괜히 더 일이 커질 거라는 생각에 솔딘이 서둘러 말렸다.
“아니 이번엔 성공…….”
“용사님. 부탁드립니다. 채광 작업은 서두르면 사고가 나기 쉽습니다.”
사고라는 말에 경호도 조리도구에 대한 흥분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그러자 머리가 좀 제대로 돌아갔다.
‘그래! 우선 미르부터 만나야지!’
냄비에 정신이 팔려 순서 자체가 틀렸다.
광산을 찾고 냄비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이곳의 수호신인 미르에게 이들을 알리고 정착할 곳을 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솔딘. 가죠.”
“아! 네엣? 어딜요?”
“저를 이곳으로 부른 존재이자 이곳의 수호신이요.”
***
용족은 신의 대리자 역할을 하는 종족으로 강인한 육체와 엄청난 마법 능력, 놀라운 지혜를 품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도 특이한 습성이 있었는데.
반짝이는 ‘보물’을 모으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정령계의 수호신이자 유일한 용족인 미르 역시 당연히 그런 습성이 있었다.
하지만 미르의 레어엔 수정이나 진주 같은 보석만 조금 있을 뿐 그냥 자연 동굴과 큰 차이가 없었다.
보통 용들의 레어에 산처럼 황금과 보석이 쌓여 있는 것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될 모습이었다.
사실 미르의 레어에도 반짝이는 정령석이나 마나석이 많이 쌓여 있었었다.
“보물에 집착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그래도 허전하긴 허전하구나.”
하지만 정령계를 구할 용사를 소환하기 위해 미르는 자신의 생명력과 여의주, 세계수의 힘만 끌어다 쓴 것이 아니었다.
레어에 산처럼 쌓여 있던 정령석과 마나석 같은 에너지를 품고 있는 것은 싹싹 긁어서 모조리 때려 부었고 그렇게 나온 결과물이 바로 ‘경호’였다.
그 뒤 욕심을 버리고 살겠다고 다짐 또 다짐했지만 보물에 대한 욕구는 단순한 욕심이 아닌 종족 습성이었다.
용족에게 보물에 대한 욕심을 버리라고 하는 건 마치 사자에게 풀을 뜯으며 살라고 하는 것과 같았다.
“미르! 나왔어!”
경호가 레어로 들어오며 미르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어. 그래.
시름에 잠겨 대충 인사를 받은 미르의 눈에 경호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솔딘을 비롯한 드워프들이 들어왔다.
-어?
미르의 눈동자가 번쩍 커졌다.
-어어?
용이 저렇게 웃어도 되나 싶을 정도의 환한 미소를 보이며 미르가 솔딘을 보며 말했다.
-보물이구나! 보물이야!
두려워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던 솔딘이 갑자기 들려오는 ‘보물’타령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네엣?”
솔딘은 자신을 쳐다보는 미르의 눈빛에서 ‘조리도구’를 외치던 경호의 그 느낌을 읽어냈다.
‘분, 분명 이 수호신도 정상이 아니다! 정상이 아니야!’
용사도, 수호신도 다 미친 세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