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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용사의 골목식당-305화 (305/335)

#외전 005화

경호는 철저한 ‘육식주의자’다.

제육볶음, 보쌈, 불고기, 삼겹살, 갈비찜, 백숙, 닭볶음탕, 치킨, 탕수육.

세상에 불변의 진리는 없지만 고기는 언제나 옳았다.

그렇기에 풀뿌리로 연명하다 마수를 잡아 처음으로 요리를 해 먹을 땐 정말이지 눈물이 멈추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 이제 이것도 물린다. 물려.”

경호는 마수 뼈로 만든 냄비에 끓고 있는 뿔돼지 고기를 보며 중얼거렸다.

“시원한 굴김치, 아니 쌈 채소에 쌈장만 있어도. 아니 것도 말고 새우젓 하나만 있어도 정말 소원이 없겠네!”

배부른 소리일 수 있다.

하지만 맛있는 것을 찾는 인간의 욕구는 지극히 당연한 본능이다.

아무것도 안 먹던 신수야 지금도 단순하게 삶고 구운 마수 요리를 맛있게 먹지만 경호는 이미 옛적에 질려 버린 상태였다.

경호는 현대인이다.

그것도 요리 솜씨 끝내주는 엄마를 둔 현대인.

달고 짜고 맵고 고소한 미식에 길들어진 경호의 혓바닥이 너무 건강한 마수요리를 거부하고 있었다.

“에휴. 죽지 않으려면 먹어야지. 별수 있나.”

조미료와 조리도구의 부재.

조미료는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정령계의 풀과 나무를 직접 씹고 뜯고 맛보면서 조미료를 대체할 만한 것을 제법 찾은 상태였다.

물론 소금이나 고춧가루, 마늘, 후추 같은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은은한 단맛이나 약간의 짠기가 있는 풀뿌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 것으로 미식(美食)에 대한 욕구를 억누르고 있었는데.

“하아. 조리도구가 필요해. 조리도구가 필요하다고.”

처음에는 그냥 대충 나무에 꿰어 불 위에서 익혀 먹는 원시인 수준이었다.

그러다 돌을 이용해 냄비와 불판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것도 기술이 필요한 법.

지구에서와 달리 이곳의 돌판은 불 위에 올리는 족족 쪼개지기 바빴다.

“돌은 깨지고 마수 뼈는 맛이 없고. 쇠로 만든 냄비랑 프라이팬이 필요한데 그걸 어디서 구하냐고.”

지금 경호 앞에 끓고 있는 냄비도 삼족우의 넓적다리뼈로 만든 거다.

돌과 달리 단단하고 깨지지 않아 물이 아주 기가 막히게 끓었지만.

“쓰면 쓸수록 뼈에서 누린내가 올라온다는 게 문제라고.”

물을 끓이면 사골육수처럼 뽀얗게 올라오는데 그 특유의 냄새가 요리의 맛을 떨어뜨렸다.

뭐. 그래도 풀뿌리보다 백배 천배 낫고 사실 배부른 소리가 맞다.

하지만 영문도 모르고 정령계에 끌려와서 개고생하는데 먹는 거라도 잘 먹고 싶다는 게 그리 큰 욕심은 아니지 않은가!

아직 악마군단이 넘어오진 않았지만 때때로 강한 마수랑 싸울 때는 절로 간담이 서늘해졌다.

‘삶과 죽음을 오가는 상황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데! 맛있는 거라도 먹어야지!’

그렇기에 직접 뼈를 깎아 냄비까지 만드는 수고를 하는 거였다.

“하아. 그래도 먹어야지.”

인간은 저기 침을 질질 흘리며 쳐다보고 있는 리온과 달라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살 수 없다.

경호가 잘 익은 뿔돼지 고기를 건져 한 덩이 썰어 내고는 나머지를 리온에게 던져 줬다.

덥석! 찹찹찹찹찹!

던진 뿔돼지 고기를 쩝쩝거리며 먹는 리온의 표정이 아주 해맑다.

“참 입맛 한결같아서 좋겠네.”

경호도 한숨과 함께 고기를 뜯었다.

우물우물.

부드럽고 촉촉하고 적당히 쫄깃해서 먹을 만은 하다.

하지만 싱겁고 느끼하고 잡내도 났다.

딱 먹을 만한 정도.

맛있지는 않았다.

“아. 정말 새우젓 고프다. 새우젓 고파.”

-왜? 경호는 맛이 없어?

커다란 뿔돼지 고기를 모두 먹어 치운 리온이 놀랐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맛이 없다기보다……. 물렸다고 하는 게 더 맞겠지.”

-어떻게 고기가 물릴 수가 있어?

어릴 때 가장 좋아했던 간장계란밥도 며칠 먹으면 물리기 마련인데.

보디빌더도 아니고 5년간 굽고 삶은 고기만 먹다 보니 물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 이것도 너 먹어라.”

강아지처럼 꼬리까지 흔드는 모습에 경호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리온이야 한결같다지만 경호는 이제 고기만 봐도 속이 더부룩할 지경이다.

“하아. 제대로 된 조미료랑 조리도구만 좀 있었어도.”

***

드넓은 평원 한가운데 새파란 빛이 번쩍하더니 뭔가가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어이쿠! 으헉! 악!

“솔딘 족장님!”

족장님을 외친 이는 키가 사람의 가슴께 정도밖에 오지 않는 단신이었다.

철사 같은 거친 머리카락과 굵고 짧은 팔과 다리.

덥수룩한 수염에 고집스러운 눈빛을 한 난쟁이.

정령계에 갑자기 떨어진 이들은 바로 ‘드워프’였다.

“아이고. 머리야. 그나저나 루헨. 여기가 어디냐?”

솔딘이 비틀거리며 일어나 물었다.

“원래는 가장 가까운 다른 문명이 있는 차원이어야 했지만…….”

“했지만?”

“그게 넘어올 때 주변에 마기 파동이 일어나서 마법진이 꼬였습니다.”

부족의 최고위 주술사 루헨의 말에 솔딘이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럼. 살아가기 힘든 곳일 수 있겠구나. 더는 차원 이동도 불가능한데.”

솔딘이 한숨을 쉬며 서서히 정신을 차리고 있는 부족원을 돌아봤다.

“그래도 이렇게 평원이 펼쳐져 있는 걸 보면 우리가 처음 가려고 한 차원보다 더 나은 듯한데요? 분명 뭔가 살고 있을 듯하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쩌면 우리 종족도 살고 있을지 압니까?”

“그러면 좋겠지만.”

솔딘은 족장이었기에 걱정이 더 깊었다.

“뭐든 악마들에게 끝장난 곳보다는 낫겠지요.”

‘검은 망치 부족’이 있던 세상은 마계의 침략으로 멸망했다.

다행히 선조의 유물 중 드래곤하트의 조각이 있어 차원 이동을 할 수 있었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정령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아. 그래. 그곳보다는 낫겠지. 그곳보다는.”

단순히 삶의 터전을 이동한 것이 아닌 아예 사는 세상이 바뀐 것이었다.

주술사인 루헨은 어쨌든 차원이동이 성공한 것에 싱글벙글이었지만 부족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솔딘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래. 우선 돌아보…….”

키에에에에에에에엑!

솔딘의 말이 괴성에 묻혔다.

문제는 그 괴성이 굉장히 낯익다는 점이었다.

“족장님. 이거 설마?”

“칼날타조?”

“설마요. 아니…….”

루헨의 눈에 멀리서 달려오는 칼날타조가 눈에 들어왔다.

한두 마리가 아닌 십여 마리가 무리를 지어 오고 있었다.

“이런 미친!”

“뭐! 이놈아!”

솔딘이 눈을 부릅뜨자.

“아니 저기요! 저기!”

루헨이 그의 고개를 잡아 칼날타조를 향해 돌려 버렸다.

“이런 미친! 칼날타조잖아!”

솔딘이 루헨보다 더 큰 목소리로 외쳤다.

“모두 정신 차려라!”

차원이동의 후유증으로 비틀거리고 있는 부족원이 많았다.

부족장이자 최고의 전사인 솔딘과 주술사 중 가장 실력이 좋은 루헨이기에 그나마 회복이 빨랐던 것이다.

“루헨. 너는 이들을 최대한 회복시켜라! 그리고.”

솔딘이 자신의 전투도끼를 강하게 쥐었다.

“도망쳐! 마수가 살지만 마계화 되지 않은 것을 보면 분명 어딘가 저항 세력이 있을 거다. 그곳을 찾아가라.”

칼날타조의 숫자가 무려 열이 넘어갔다.

부족원 모두가 완전무장하고 달려들어도 이기기 힘든 상황.

솔딘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지시를 내렸다.

“솔딘 조, 족장님!”

“뭐해! 어서!”

“알겠습니다.”

루헨이 이를 악물고 돌아서서는 회복의 주술을 쓰기 시작했다.

끼에에에! 끼에에에엑!

“거 녀석들 하여간 시끄럽기는.”

시퍼런 발톱을 앞세워 달려오는 칼날타조를 보며 솔딘이 전투도끼를 들어 올렸다.

칼날타조가 달려올수록 바닥에 진동이 강해졌다.

‘내가 시간을 끌 수 있을까?’

검은 망치 부족 최고의 전사라 하지만 부족장이 되면서 이런저런 핑계로 전투도끼를 휘두르지 않은 지 오래였다.

‘할 수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무조건 해야 해!’

자신은 없었지만 무조건 해야 하는 일이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이 빌어먹을 마수놈들! 여기다! 날 죽여 봐라!”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끌기 위해 솔딘이 미친것처럼 소리를 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끼엑! 끼에에엑!

효과가 있었다.

선두에서 달려오던 칼날타조가 멈춰 서서는 솔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여기! 여기라고! 이 멍청한 놈들아!”

적당히 거리를 벌린 솔딘이 멈췄다.

드워프의 짧은 다리로 기를 쓰고 달려봐야 칼날타조의 무시무시한 속도에 금세 따라잡힐 수밖에 없었다.

죽기로 각오한 솔딘의 주위를 칼날타조가 빙 둘러쌌다.

처음 보는 생명체에 대한 호기심이었을까?

멈춰 서서 대치 중인 상황에서 먼저 움직인 것은 솔딘이었다.

“죽엇!”

솔딘의 거대한 전투도끼가 가장 가까이 있는 칼날타조의 다리를 때렸다.

콰직.

단단한 칼날타조의 다리를 단번에 자르진 못했지만 완전히 꺾어 버릴 수 있었다.

키에에에엑!

하지만 고작 한 마리.

엄청난 수확이었지만 암담하기는 여전했다.

아니 한 마리의 다리를 꺾고 나머지 칼날타조의 화를 일으켰으니 오히려 손해였다.

사방팔방에서 칼날보다 더 위협적인 부리와 발톱이 날아왔다.

당당하게 맞서리라 다짐했던 솔딘이었지만 즉시 몸을 날려 바닥을 굴렀다.

“으아아아아아아악!”

부리와 발톱이 날아와 바닥을 찍자.

쾅! 쾅! 쾅! 쾅! 쾅!

흡사 쇠망치질보다 더 커다란 소리가 나며 바닥이 파였다.

“크윽! 크악!”

구르는 재주가 좋다고 해도 십여 마리의 칼날타조가 둘러싸 하는 공격을 모두 피할 순 없었기에 어깨며 허벅지에 날카로운 상처가 생기기 시작했다.

피 맛을 본 칼날타조가 더 발작적으로 움직일 찰나.

“족장니이이이이이이이임!”

커다란 외침과 함께 루헨을 필두로 부족원들이 저마다 무기를 꼬나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이놈아! 도망치라고! 도망쳐!”

모두가 달려들어도 이길 가능성이 없는 싸움.

자신만 희생해서 부족 전체를 살릴 수 있다면 남는 장사였다.

“거 족장님도! 드워프 고집이 좀 쎕니까! 말을 들어먹어야 도망이든 뭐든 가지요!”

“하아. 말이나 못 하면…….”

선조의 유물인 드래곤하트까지 써서 탈출했지만 결국 여기까지였다.

“그래. 이 고집불통들아! 다 같이 죽자! 다 같이 죽어!”

솔딘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때.

“모두! 엎드려어어어엇!”하는 소리와 함께 새하얀 빛이 날아왔다.

갑작스러운 외침에 엎드린 이는 한 명도 없었지만 드워프의 키가 원래 작아 새하얀 빛은 여유롭게 그들의 머리 위로 지나갔고.

퍼버버버버버벅!

빠르게 날아 칼날타조의 목을 모조리 베어 버렸다.

목이 잘린 칼날타조가 미친 듯이 날뛰며 사방으로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솔딘은 피 분수를 맞으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이게 도대체.”

칼날타조 십여 마리의 목을 한 번에 베어 내는 위력이라니.

소드마스터가 오러를 날려도 이렇게 한 번에 많은 수를 단번에 베어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게 고개를 돌린 솔딘의 눈에 한 인간이 들어왔다.

거대한 사자를 탄 그의 손에는 이글거리는 검이 들려 있었다.

터억.

그 인간이 걸어와 솔딘 앞에 서서 환하게 웃었다.

“반가워요. 조리도구.”

“네엣?”

솔딘이 멍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니! 말이 잘못 나왔네요. 드워프 분들 맞죠?”

분명 조리도구라고 한 것 같은데?

“네. 맞습니다.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오예! 드디어! 드디어 조리도구! 아니 반갑다고요.”

“…….”

솔딘은 눈앞에 인간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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