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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용사의 골목식당-294화 (294/335)

#294화

세계수는 뭐든 척척 해내는 슈퍼컴퓨터 같은 존재다.

거의 죽음 근처까지 갔던 경호를 여러 번 구해 주기도 했고 정령석 공장이 되기도 했다.

전 세계의 소원을 모으는 퀘스트 안테나 노릇을 하면서 흰둥이의 레벨업에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정령과 신수를 성장시켰으며 경호를 ‘신의 그릇’으로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도 했다.

일의 효율을 극대화하고 뭐든 빠르게 처리해 주는 바로 그런 존재.

“이제부터 죽는 영혼을 내가 모두 담을 수 있게 모아 줘.”

이번에도 경호는 세계수에게 혼자서는 못하는 부분을 부탁했다.

경호의 부탁에 세계수는 마왕에게 죽어 흡수되려는 영혼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퀘스트 안테나 역할을 하며 이미 지구에 흐르는 전자기장을 통제하는 법을 익힌 세계수에게 인간의 영혼을 끌어오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마왕 넷에게 죽는 인간의 수가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끌어온 영혼의 수가 너무 많아 세계수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순식간에 쌓여 버렸다.

막 의식의 세계를 벗어나 밖으로 나가려고 했던 경호를 향해 세계수가 다급히 말했다.

-경호 님. 영혼을 끌어오는 것은 가능한데 모아 두는 것은 힘듭니다.

경호는 한시가 급하기에 서둘러 자신이 나서 마왕을 처리하고 마왕의 기운을 가지고 돌아와 세계수가 모아놓은 영혼까지 함께 흡수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힘을 얻어야 마신에게 대항할 수 있으니까.

“이거 어쩌지….”

이렇게 고민할 동안에도 수만 명의 사람이 죽어 가고 있었다.

“내가 널 내 그릇에 담을 수 있을까?”

무려 ‘신의 그릇’이었다.

하지만 아직 LV4에 불과했다.

‘담아낼 수 있을까?’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무조건 담아내야 했다.

마신이 직접 지구에 강림하진 않겠지만 마신이 간접적으로 방해한다면 앞으로 세계수를 찾아오기 힘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계속 세계수의 능력이 필요했기에 슈퍼컴퓨터인 ‘세계수’를 태블릿PC로 만들어서 들고 다녀야 할 필요가 있었다.

-신의 그릇이라는 존재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에 불가능하진 않을 겁니다만….

용족과 세계수는 세상의 조율을 위해 만들어진 비슷한 존재였다.

‘용력’을 품을 때도 몇 번이고 죽을 뻔하고 환골탈태를 거쳐서 겨우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경호였기에 세계수가 하지 않은 뒷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해야 했다.

“후우. 용력도 버텼는데. 빨리 시작하자.”

***

멀쩡하던 세계수가 갑자기 엄청난 신력을 뿜어내며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뿜어내는 빛이 마치 태양처럼 강렬해서 서울 외곽에서도 그 빛이 보일 정도였다.

넷이나 되는 마왕이 강림해 지구가 멸망을 앞둔 상황이었지만 기자들이 이런 희한한 광경을 그냥 두고 보고 있진 않았다.

그것은 곧장 이슈화돼 다현에게 전해졌다.

마왕의 등장으로 고국이 파괴되고 언제 지구가 끝장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모두가 침울한 상태에서 딱히 방법이 없어 자리만 지키고 있는 상태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경호만 기다리던 다현은 세계수가 갑자기 빛을 뿜어내고 있다는 소식에 ‘마왕전담특별팀’ 전원을 소집했다.

“지금 세계수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합니다.”

세계수에 나타난 갑작스러운 기현상.

침울해하던 각국의 헌터들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만약 경호가 나온다면 그와 함께 마왕을 치러 갑시다! 그럼. 당장 이동하겠습니다!”

이 소식에 가장 기뻐 한 이는 당연히 지숙과 성원이었다.

“정말 우리 아들이 나오는 거니?”

지숙의 목소리엔 기쁨과 걱정이 섞여 있었다.

“아직 정확하진 않지만 뭔가 큰 변화가 생겼으니 그럴 거 같아요. 엄마. 빨리 가 봐요. 성원아. 빨리 출동 준비해서 이동시켜!”

다현이 지숙을 챙기며 성원에게 말했다.

“네엡! 누님! 3분 안에 준비 완료시킬게요!”

성원이 신난 표정으로 경례까지 붙이며 바로 달려 나갔다.

***

경호는 ‘신의 그릇’이라는 초월적인 존재가 됐지만 사실 그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신’에 가까운 초월적인 존재에 대해 아주 조금 맛만 본 상태였다.

하지만 분명 느낀 것이 있었다.

무한한 자유.

마치 가상현실 게임 속의 운영자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현실’과 ‘의식의 세계’ 속의 구분이 사라지고 그 힘이 무한하게 커진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지금도 그냥 외부로 시선을 돌리면 마왕의 존재가 느껴지고 자연스레 위치나 그들의 강함과 약점 같은 게 그냥 머릿속에 원래 알고 있던 것처럼 떠올랐다.

신기하고 낯설고 어색했다.

전지전능(全知全能)의 초월적인 능력.

경호는 우선 세계수가 끌어모으고 있는 영혼부터 자신의 그릇에 옮겼다.

이 영혼이 마왕의 먹이나 마계에 영양분으로 쓰이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마왕 넷에 죽임을 당한 수백만이 넘는 영혼이 경호의 의지에 따라 그의 그릇에 담기기 시작했다.

으윽!

경호의 눈이 부릅떠졌다.

용력과 사신의 힘, 세계수의 도움까지 받아 만들어진 경호의 그릇은 한없이 크고 단단했다.

당연히 수백만의 영혼도 아무런 문제 없이 담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담긴 영혼은 다시 경호의 그릇을 더 크고 단단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영혼들이 품은 작은 기억의 파편들은 경호의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감정이나 아끼는 물건에 대한 모습도 있었고 또는 각성자의 특성이나 기술에 대한 기억도 더러 있었다.

문제는 그게 몇십, 몇백이 아닌 몇백만이라는 점이었다.

강인한 육체와 그 안에 품고 있는 기운은 강제적으로 성장하며 초월자의 수준에 올라간 상태였지만 정신 수준은 아직 그에 훨씬 못 미쳤다.

물론 정령계부터 의식의 세계에서 많은 수련을 했기에 평범한 인간에 비하면 엄청나게 뛰어난 수준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의 범주에서였다.

수백만이 넘는 기억의 파편이 머릿속을 파고들어 희(喜), 노(怒),애(哀), 락(樂), 애(愛), 오(惡), 욕(欲)을 뿜어냈다.

경호는 머릿속에서 폭발하듯 넘쳐나는 감정의 폭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이런 미친! 이런 걸 버티는 신은 분명 싸이코패스가 분명해!’

경호는 고작 수백만의 영혼이 뱉어낸 기억이 흘러들어왔을 뿐인데 감정이 무뎌지고 인성이 메마르는 게 느껴졌다.

신은 자신이 만든 세상의 존재를 끊임없이 살펴야 하는 존재.

자신이 창조한 세상의 번영과 멸망을 수천수만 번도 더 지켜보며 살아온 신은 더 무뎌지고 메마를 마음도 없을 게 분명했다.

어쨌든 이제 조금이지만 적응이 되기 시작했다.

초짜 의사가 환자를 살리지 못한 것에 죄책감을 느끼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벗어나는 중이라고 할까?

경호는 영혼을 받아들이는 속도를 더 높였다.

그러자 이제 세계수가 영혼을 모으는 속도보다 경호가 받아들이는 속도가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제 합쳐 볼까?”

여유가 생긴 경호가 세계수에게 말을 건네자.

-알겠습니다.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그릇을 감싸는 형식으로 합쳐지도록 하겠습니다.

용력처럼 완전히 기운에 합쳐지는 것이 경호가 세계수의 힘을 쓰기 가장 좋은 형태가 되겠지만 그러다가 또 제대로 흡수하는 데 며칠이 걸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 일은 무조건 막아야 했기에 합치긴 하지만 흡수는 아닌 방법을 고민하다 선택한 방법이었다.

의식의 세계에 우뚝 솟아있는 세계수가 황금빛을 내며 경호를 향해 뻗어 오기 시작했다.

***

지구 한 바퀴가 대략 40000km.

지구에서 태양까지 거리를 그렇게 따지면 대충 삼천 바퀴가 넘는 거리가 된다.

그렇게나 떨어져 있음에도 보통 사람은 눈이 부셔 태양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빛을 낸다.

지금 세계수는 마치 작은 태양이 가지에 매달린 것처럼 강한 빛을 내고 있었다.

“으윽! 이게 도대체….”

막 세계수 앞에 도착한 다현이 상황을 살피기 위해 눈에 마력까지 불어넣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다행히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오긴 했지만, 다른 에너지나 열기가 나오진 않아서 쳐다보지만 않는다면 문제될 것은 없었다.

“다현아.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니겠지?”

“경호라면 문제없을 거예요.”

다현도 자신은 없었지만 지숙을 안심시키기 위해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문제가 있는 것 같진 않아요. 신력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안정적이니.

옆에서 같이 지켜보던 흰둥이의 말에 조금 더 안심이 됐다.

뚜드드드득. 뚜드드드드드득.

그때 갑자기 태양처럼 강렬한 빛을 뿜어내던 거대한 세계수가 꿈틀거리더니.

콰드득! 콰드드드드드득!

건물이 붕괴하듯 크기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세계수가 무너지듯 작아지고 있었는데 부서지는 조각이나 잔해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콰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결국 산처럼 커다랗게 솟아 있던 세계수는 사람만 한 크기까지 작아졌다.

그리고 태양처럼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던 빛이 점점 사라졌다.

그리고 그곳엔 세계수가 아닌 푸른색 추리닝을 걸친 경호가 환하게 웃으며 서 있었다.

“아들!”

“경호!”

“형님!”

앙앙!

-경호 님!

지숙과 다현, 성원에 흰둥이까지 한달음에 경호에게 달려갔다.

“괜찮아? 괜찮은 거지?”

눈앞에서 세계수가 엄청난 빛을 내며 쪼그라들더니 아들로 변하는 해괴한 모습을 본 지숙이 놀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걱정 마요. 엄마. 멀쩡해요.”

“그래. 이제 또 어디 안 가도 되는 거지? 다 된 거지?”

지숙이 안심이 안 된다는 표정으로 어디 다친 지는 없는지 경호 여기저기를 만졌다.

“그럼. 이제 마왕 때려잡을 만큼 강해졌어요.”

에휴.

마왕을 때려잡을 만큼 강해졌다는 경호의 말에 지숙의 한숨이 깊어졌다.

“아들, 마왕을 상대하러 가야 하는 거지?”

지숙이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 엄마. 저밖에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엄청난 수의 사람이 죽고 있고요.”

경호가 그렇게 말하며 지숙을 향해 웃었다.

그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미소였지만 지숙은 그런 경호의 미소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경호의 몸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초월적 기운이 그러한 조화를 일으키는 것이었다.

“엄마. 그럼, 갔다 올게.”

세계수가 자신 내부를 휘어 감고 있는 상태였지만 이질감은 특별히 없었다.

당장 가도 마왕과 싸워서 이기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벌써 가게? 준비 같은 거는? 아니 마왕 잡으러 그냥 이러고 간다고?”

지숙은 경호의 말에 다시 불안해져서는 안절부절못했다.

완전무장하고 간다고 해도 걱정될 상황인데 그냥 집에서 입고 다니던 추리닝 차림으로 마왕을 잡으러 간다니!

“괜찮아. 엄마. 정말 괜찮다니까. 다현아. 금방 다녀올 테니까 엄마 청심환이라도 좀 드시라고 해.”

“알았으니 다치지나 말고 와! 경호, 너 정말 마왕이랑 싸우다 다치면 나한테 맞아 죽는 줄 알아!”

이건 응원인지 협박인지 모르겠지만 경호는 다현의 따뜻한 진심이 느껴지기에 피식 웃었다.

그렇게 피식 웃은 경호는 다현과 성원, 흰둥이에게 전음을 보냈다.

-나는 지금 마왕 넷 모두를 죽이고 그들의 힘을 흡수해서 바로 마계 너머에 있는 마신에게 갈 거야.

“뭐! 야!”

“형님! 미쳤어요!”

-경호 님!

지숙은 갑자기 경호를 향해 소리를 빽 지르는 다현과 성원, 흰둥이를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다들 왜 그러니?”

“아니. 아니요.”

“네. 아무것도 아니에요.”

-응원한다는 의미로 기합을 넣은 거죠.

다현과 성원, 흰둥이가 어색하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고는 경호에게 한 발 더 밀착했다.

“도대체 그게 무슨 개똥 같은 소리야! 마신이라니! 지구를 구한 용사만 돼도 충분하잖아! 무슨 우주를 구한 신화 속 영웅이라도 되고 싶은 거야? 마계 너머에 있는 마신을 왜 찾아가서 죽인다고 난리냐고!”

다현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낮게 으르렁거렸다.

경호는 간단하게 ‘신의 그릇’과 그것을 마신이 탐낸다는 걸 설명했다.

-그래서 경호 님에게 희미하게나마 주인님의 느낌이 풍긴 거군요.

흰둥이는 경호에게서 묘하게 흘러나오는 주신의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하아. 이제 용사를 넘어서 신의 그릇이라고? 미치겠네. 정말!”

다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형님. 정말 마신과 싸우시게요?”

성원도 걱정이 한가득 담긴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내가 있는 한 마신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계속 지구를 공격할 거야. 내 몸을 차지하려고 말이지.”

하아.

다현, 정수, 흰둥이 모두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마왕도 아니고 마신이라니.

아무리 ‘신의 그릇’이니 뭐니 해도 아직 완전한 신도 아니었다.

그에 반해 ‘마신’은 억겁에 가까운 시간 동안 신의 역할을 해 온 존재였다.

체급이 다른 싸움 상대였다.

“경호. 마신이고 뭐고 난 모르겠고 너 정말 다쳐서 돌아오면 나한테 죽는다. 알았지?”

다현의 눈동자에 눈물이 글썽거리는 걸 본 경호가 피식 웃었다.

“너 우냐?”

퍼억!

“너 지금 죽을래. 울기는 누가 운다고. 하여간 조심해. 신의 그릇이니 뭐니 강해졌다고 까불다가 다치지 말고.”

“걱정해줘서 고마워. 조심할게.”

“걱정은 누가 했다고. 쳇!”

다현이 투덜거리며 옷소매로 눈가를 쓱쓱 닦았다.

“형님. 잘 다녀오십시오. 저는 언제나 형님을 믿습니다.”

“그래. 혹시나 내가 못…. 아니다. 다녀와서 술이나 한잔하자.”

“네. 빨리 다녀오세요.”

성원이 웃으며 경호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마신은 마왕과는 또 차원이 다른 존재입니다. 경호 님. 조심하세요.

“그래. 너한테는 고맙고 미안하고 그러네.”

-고마울 것도 미안할 것도 없죠. 저야말로 경호 님. 감사했습니다.

“야. 너 지금 나 사망플래그 세우는 거 같은데. 그만해. 돌아올 거니까.”

-네. 그럼. 다녀오세요.

경호를 둘러싸던 이들이 물러나자.

“엄마! 나 금방 다녀올게요! 저녁 맛있는 거 해 놓고 있어!”

경호의 말에 지숙이 소리 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울지 말고! 그럼. 갈게요!”

경호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땅을 박찼다.

콰앙!

굉음과 함께 하늘로 치솟은 경호가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 아들. 조심히 다녀와!”

그제야 지숙이 입을 열어 아까 못 한 말을 힘겹게 뱉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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