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화
레비아탄.
마신이 가장 최초로 빚어낸 ‘마수’이자 질투의 마왕.
아나콘다는 우스울 정도로 거대한 뱀의 형상을 한 레비아탄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여 서울에 도착했다.
-쥐새끼 같은 놈들. 모두 피했군.
그렇다는 건 함정을 파놓고 기다린다는 뜻이었다.
단순무식한 마왕 중에서도 으뜸인 레비아탄도 그 정도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함정?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오크만도 못한 인간이 파놓은 함정 따위에 걱정할 정도로 자신은 약하지 않았다.
함정 따위에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빨리 세계수를 없애고 다른 마왕 녀석들이 기웃거리기 전에 확실히 자리를 잡아야 했다.
세계수의 기운이 이제 정말 가까운 곳에서 느껴졌다.
그 주변으로 묘하게 걸리는 기운이 몇몇 있었지만 깊이 확인하지 않았다.
함정이라도 그냥 깔아뭉개면 될 일이었다.
레비아탄은 움직임에 속도를 더했다.
***
다현은 마왕전담특별팀을 셋으로 나눴다.
탱커, 원딜, 근딜.
정석이라고 할 수 있는 조합이었다.
탱커는 호돈과 제니, 비스트에 지숙이 포함된 탱커와 힐러 특성을 가진 이들을 모았고.
근딜은 정수, 테일러, 이나를 축으로 근접 딜러 위주의 인원을 모았다.
원딜은 성원이 나머지 이들을 이끌었다.
이렇게 셋으로 나눴지만 근본적으로 마나 캐논을 우선적으로 사용하기에 다들 원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마나 캐논으로 공격하다 레비아탄이 가까이 접근하면 탱커, 원딜, 근딜의 특성을 살리기로 한 것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자신의 기운을 숨기지 않고 닥치는 대로 파괴하며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는 레비아탄의 움직임에 은신하고 있는 세 팀 모두 긴장하기 시작했다.
멀리서 울리던 소리가 가까워지고 땅도 점점 더 크게 떨리기 시작했다.
아직 레비아탄이 시야에 들어오진 않았지만 섬뜩한 마기가 풍기는 기세는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강렬했다.
“자아. 모두 준비!”
마나 캐논의 안전장치를 해제했다.
성원과 정수를 비롯한 이들은 과연 마나 캐논이 통할 것인가를 걱정했고.
파병된 헌터들은 마왕의 숨통을 어느 팀이 끊을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생각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긴장하고 있는 순간!
저 멀리서 건물이 무너지며 무너진 건물보다 더 커다랗게 보이는 뱀의 대가리가 보였다.
세로로 쪼개진 새빨간 눈과 날름거리는 먹빛 혓바닥과 비늘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못 이긴다!’
아니 그런 생각을 했던 것조차 우스웠다.
저런 존재를 싸워 이길 생각을 하다니….
3km 남짓 떨어졌을 때부터 그런 기세를 느끼던 이들이.
2km.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고.
1km.
두려움에 식은땀이 흐르고 몸이 떨렸다.
“자아. 이제 준비! 절대 먼저 쏘지 말고 기다리세요.”
탱커팀의 호돈이, 근딜팀의 정수가, 원딜팀의 성원이 모두 지시를 내렸다.
500m.
이제 정말 코앞이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때 심리적으로 약한 이들 중 몇 명이 비명을 지르며 은신하고 있던 결계 밖으로 달려 나갔다.
“이런 제길!”
쾅! 콰앙!
마나 캐논이 마력 광선을 쏘았다.
당연하다는 듯 레비아탄 앞에서 꺾여 나가는 광선.
세계수를 향해 엄청난 속도를 향해 달려오던 그가 희미했던 기운이 갑자기 선명해지는 것을 느끼고 우뚝 섰다.
자신을 빗겨 간 마력 광선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너희가 날 막겠다고 숨어 있던 벌레들이구나?
그게 끝이었다.
멈춰 섰던 레비아탄이 다시 세계수를 향해 움직이려 했다.
이미 정령석으로 쏘는 마나 캐논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안 이상 매복도 필요 없었다.
성원 일행과 174명의 파병 헌터가 모습을 드러냈지만, 여전히 레비아탄은 심드렁했다.
비유하자면 개미 몇 마리가 나타나 무시하고 그냥 가려다 갑자기 개미 떼가 발아래 나타나 밟고 갈까 피해 갈까 고민하는 정도였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
레비아탄이 포효하며 몸에서 검은 마기를 뿜어내자 그것이 바닥에 깔려 주변에 있는 하수구로 흘러 들어갔다.
쿠웅! 쿠웅! 쿠웅!
그리고 잠시 후 굉음이 울리며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떨렸다.
콰드득! 콰득!
그리고 바닥을 뚫고 뭔가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가시쥐, 철갑지네, 무당두꺼비, 코뿔두더지 같은 하수구에 사는 최하급 마수였다.
하지만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레비아탄의 암흑마기를 흡수해 진화한 그들은 몸집은 몇 배로, 풍기는 기운은 그 이상으로 강해져 있었다.
최소 재난종 마수와 비슷한 기운이었고 도로를 뚫고 올라온 것만 따져도 수십 마리였다.
“제기랄! 모두 저것들을 공격해!”
성원은 매복한 자신들에겐 관심도 없는 레비아탄을 포기했다.
아니 포기고 뭐고 라고 할 것도 없었다.
레비아탄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었고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저 변종 마수를 처리하는 일이었다.
성원은 다현이라고 해도 레비아탄을 이기기 어려울 거란 생각을 했다.
‘제발! 형님! 빨리 좀 나와 주세요!’
다만 늦지 않게 형님이 나와 주길 바랄 뿐이었다.
***
흰둥이와 울피, 다현이라고 코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를 리 없었다.
비장의 무기인 정령석 마나 캐논도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했다.
접근은커녕 주변에 흐르는 기운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그런 존재감.
-헐.
흰둥이는 생각보다 더 강한 레비아탄에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고.
-이런.
울피도 당황했다.
“저런 걸 경호는 이기려고 한 거야?”
다현도 이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저건 그냥 자연재해잖아! 저런 걸 어떻게 두 놈이나 죽인 거야!”
새삼 경호의 강함을 절실히 알 수 있었다.
문제는 그런 경호가 지금은 없다는 점이었다.
-다현 씨! 우리가 막아설 테니 공격하세요!
운애가 땅개와 함께 앞으로 나섰다.
말리고 싶었다.
소용없다고.
가지 말라고, 어차피 못 막는다고.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어차피 세계수가 파괴되고 그 안에서 수련 중인 경호가 잘못되면 그냥 끝이었다.
정말 완전히 끝.
무협지처럼 다시 기연을 얻고 더 강해져 돌아와 복수하고 해피엔딩 같은 그런 끝이 아닌 정말 완전한 끝.
무조건 어떤 수를 써서라도 경호가 깨어날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했다.
아니 어떻게? 저런 자연재해를!
그런데 그 방법이 없었다.
“운애 씨. 부탁드립니다.”
한 번. 운이 좋아야 두 번.
그게 전부일 게 분명했다.
“우리도 준비하죠!”
모든 것을 걸어 최선을 다한 공격을 날려야 했다.
어차피 한 방을 먹이냐 마냐 하는 상황이 될 것이었다.
후우우우우우웅!
신력이 몰아치며 흰둥이와 울피도 거대한 원래의 모습으로 현신했다.
둘 다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강한 기술을 준비했다.
흰둥이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기운이 뇌(雷)를 품은 강기를 앞발에 씌웠고 울피는 자신의 목숨 같은 여우구슬에 화기가 실린 신력을 가득 담았다.
화르르르르르르르륵!
커다란 백염이 다현 앞에서 타올랐다.
그리고 다현의 양손이 그런 백염 속으로 들어갔다.
자신의 기운으로 만든 불꽃이고 화염 저항도 강한 다현이었지만 그렇다고 직접 손을 넣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니었다.
흰둥이와 울피가 그런 다현의 모습에 놀랄 때.
다현이 마나코어를 쥐어짜 타오르는 백염의 중심부에 마력을 밀어 넣었다.
새하얗게 활활 타오르던 불꽃이 점점 옅어지며 결국엔 투명하게 변해 공간을 자체를 일렁이게 만드는 불꽃으로 변했다.
‘됐다! 됐어!’
이번 수련 중에 개발한 백염을 넘어서는 무색투명한 불꽃으로 마음에 피어나는 불꽃, 심염(心炎)이라 이름 지은 기술이었다.
-그거 굉장하군.
다현과 같이 불을 사용하는 울피가 놀랄 정도로 심염의 기운은 강렬했다.
-이거 잘하면 먹히겠는데?
레비아탄을 죽일 수 있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눈을 노리면 꽤 타격을 입힐 수 있겠어.
그것도 무색투명한 불꽃이었다.
대신 강렬한 기운이 문제였다.
흰둥이가 손에 맺힌 뇌기를 흩어 냈다.
그리고 강렬한 기운을 흘리는 심염에 결계를 둘러쳤다.
-울피가 시선을 끌고 다현은 이것으로 레비아탄의 눈을 노려요. 알았죠?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때 헌터팀이 매복하던 곳에 잠시 멈춰있던 레비아탄이 포효하며 다시 날 듯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앞서 나가 있던 운애는 오랜만에 물의 정령인 운디네의 모습으로 변했다.
세계수 앞 정원 분수에서 물이 솟구쳐 마치 용과 같은 모습으로 위용을 뽐내고 있었고.
땅개 역시 높게 솟아오른 흙더미 위에서 말을 탄 개선장군처럼 당당한 모습이었다.
레비아탄 역시 그런 운애와 땅개의 모습을 봤다.
그리고 그 뒤편에 있는 다현과 흰둥이, 울피까지.
저 빨간 머리의 인간은 용사라고 했던 거 같은데 그래봐야 다른 인간보다 조금 더 강한 게 다였다.
‘저거 죽었다고 했던 용사? 그런데 이게 끝?’
레비아탄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런 허접한 수준이라면 지금까지 시간을 끌 필요도 없었다.
걱정하던 용사도 별거 없었고 정령 둘에 수호신과 그 사도로 보이는 신수 하나.
레비아탄이 봤을 땐 다 거기서 거기인 존재들이었다.
아까 매복한 이들이 개미라면 이들은 메뚜기 정도.
어차피 짓밟아 죽일 벌레인 것에는 차이가 없었다.
지금까지 저런 용사 따위를 걱정하며 침략에 시간을 끌었던 게 너무 아까울 지경이었다.
‘마신 님의 가장 큰 걱정거리인 용사와 수호신, 세계수를 내가 동시에 끝내는구나!’
레비아탄은 자신을 막아선 운애와 땅개를 향해 입을 벌려 ‘브레스’를 뿜어냈다.
콰르르르르르르르!
레비아탄의 입에서 맹독이 담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용의 숨결’이라 불릴 정도로 용족 전용기술처럼 여겨지는 브레스였지만 마수의 왕인 레비아탄 역시 자주 사용하는 기술이었다.
땅개가 세계수를 향해 곧장 날아오는 레비아탄의 브레스를 향해 커다란 흙벽을 세웠다.
정령력이 강하게 담겨 강철보다 더 단단하고 마기에 저항력도 가지고 있었다.
치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레비아탄의 브레스에 땅개의 흙벽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땅개는 계속해서 정령력을 쏟아 내며 녹아내리는 흙벽을 메꿨고 동시에 용처럼 허공을 맴돌던 운애의 물줄기가 레비아탄의 쏟아져 나오는 브레스를 때렸다.
운애가 다루는 물은 정화의 기운이 담겨있기에 맹독을 해독했고 부식되는 속도가 점점 줄기 시작했다.
효과가 있자 땅개와 운애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가볍게 뱉어낸 한숨을 막아 낸 것에 우쭐하는 모습이 우습구나.
후우우우우우웁!
숨을 들이켠 레비아탄이 목 아래 부분이 부풀며 마기가 끔찍할 정도로 모여들었다.
“운애! 땅개! 피해요!”
뒤에서 다현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피한다고 딱히 달라질 건 없었다.
운애가 뒤를 돌아봤다.
공격 준비를 마친 다현과 흰둥이, 울피.
자신과 땅개가 피한다면 공격 준비를 하고 있는 저들은 독기가 가득한 이 브레스를 막아 낼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 뒤는 바로 세계수였다.
-공격해요! 당장!
-우리가 어떻게든 막을 테니!
운애와 땅개가 죽을 각오를 하고 외쳤다.
다현과 흰둥이, 울피가 이를 악물고 앞으로 달렸다.
목숨을 걸고 막는 이들과 그런 그들을 방패 삼아 공격하는 이들.
레비아탄은 그들의 눈물겨운 한 편의 신파극에 웃음이 났다.
콰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좀 전보다 배는 더 굵고 짙은 검은 독기가 쏟아져 땅개가 세운 흙벽을 때렸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흙벽이 폭발하는 터졌다.
-크악!
흙벽에 온 힘을 쏟아 넣고 있던 땅개가 폭발과 함께 비명을 토하며 땅에 처박혔다.
동시에 운애가 자신의 힘을 담은 물줄기를 흙벽을 터뜨리고 뻗어 나오는 독기를 향해 날렸다.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
쏘아져 나가던 독기가 물줄기와 부딪히며 멈춰 섰다.
-지, 지금이에요!
힘겹게 운애가 소리쳤다.
동시에 뛰어오른 다현과 흰둥이, 울피는 화염에 감싸인 여우 구슬과 뇌전, 백염을 날렸다.
브레스를 뿜어내고 있던 레비아탄이 자신의 눈동자를 노리고 날아오는 그것들을 보고 브레스의 방향을 틀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흙벽을 터뜨리고 운애의 물줄기까지 상대하느라 약해진 브레스였지만 여우 구슬과 뇌전, 백염을 막아 냈다.
불과 번개의 기운답게 독기를 모두 태워 없앴다.
-크크큭. 준비한 것이 모두 사라졌구나.
땅개는 바닥에 처박혔고, 운애 역시 그 옆에서 헐떡이고 있었다.
레비아탄을 노리던 다현과 흰둥이, 울피 역시 공격이 막히고 패배감이 짙은 표정이었다.
후우우우우우웁!
레비아탄이 세계수를 날려 버리기 위해 다시 숨을 들이켰다.
그때 패배감이 짙었던 다현의 손에서 마력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동시에 레비아탄의 눈앞에서 강렬한 기운이 갑자기 나타났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하늘이 울릴 정도로 엄청난 폭발이 레비아탄의 눈동자에서 터졌고.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레비아탄은 바닥을 구르며 비명을 질렀다.
“지금이야! 모두 공격해요!”
소리치는 다현의 주변에 수백 개의 백염이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