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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용사의 골목식당-289화 (289/335)

#289화

‘속도가 생명입니다!’

대통령에게 은가누가 받은 부탁의 핵심은 ‘스피드’였다.

도로를 가장 빠르게 치우는 것.

방치된 차량이 너무 많아 불도저 같은 중장비를 이용할 수도 없는 상황.

이럴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식하게 힘을 쓰는 것이었고, 그에 가장 적절한 이들이 바로 마계에서 넘어온 오크 부족이었다.

가장 선두에 있는 은가누의 외침에 모두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모든 차량을 처리할 필요는 없었다.

가장 큰 도로만 정리하면 될 일.

오크가 차량을 향해 전투 도끼를 휘둘렀다.

쾅!

기운이 담긴 도끼질 한 번에 차량이 반으로 갈라졌다.

그다음은 더 쉬웠다.

쾅! 콰앙! 쾅!

마치 도마 위의 생선을 토막 내듯 반으로 갈라진 차량이 툭! 툭! 끊어졌다.

이제 그렇게 토막 난 차량을 마무리할 차례였다.

전투 도끼를 옆으로 눕혀 마늘 다지듯 때렸다.

쾅! 쾅! 쾅! 쾅! 쾅!

음료수 캔을 분리수거 할 때처럼 납작해진 차량.

폐차장 프레스 장치로 눌러도 저리될까 싶을 정도로 납작해진 고철만 남아 있었다.

차량을 고철로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채 일 분도 안 걸렸다.

쾅! 쾅! 쾅! 쾅!

수천 명의 오크가 점점 멀리 뻗어 나가며 경쟁하듯 도로에 있는 차량을 박살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빠르게 길이 뚫리며 차량을 이용해 시민을 태우고 대피를 돕기 시작했다.

***

“이, 이게 진짜 세계수!”

파병 온 헌터들은 신화동물원 중앙에 있는 거대한 세계수를 보고 입을 쩌억 벌렸다.

바오밥나무처럼 굵고 레드우드만큼 높았다.

물론 동물원에 들어오기 전 밖에서 봤을 땐 결계로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내부에서는 세계수의 위용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이 나무가 ‘세계수’라는 걸 몰라도 뭔가 대단한 나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강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다현과 수호신의 죽음, 세계수의 파괴를 모두 지켜봤던 이들이었기에 놀라움은 더 컸다.

다현과 수호신이 살아 있을 때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세계수도 멀쩡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특별팀 파병 헌터 중 선임조원인 영국의 보리스가 다현을 향해 손을 들었다.

“팀장님. 아까 차량에서 받은 작전에 대해 질문 있습니다.”

질문을 하겠다는 보리스의 표정에 불만이 묻어 있었다.

“보리스. 뭐죠?”

다현이 속으로 한숨을 쉬며 물었다.

“그게 작전이…. 조금 방어적인 것 같아서요. 우리의 전력이라면 세계수를 미끼로 함정을 파고 적극적으로 공세를 펼쳐서 단숨에 마왕을 잡는 방향으로 작전을 세워야 하는 거 아닙니까?”

작전을 짤 때부터 예상했던 질문이 바로 나왔다.

이 작전은 사실 처음부터 틀어졌다.

애초에 핵심인 경호도 빠진 작전이었기에 완전히 방향을 틀어 방어적으로 만들었다.

거기다 급하게 변경한 작전이기에 전략 전술을 조금만 알고 있는 이라면 누구나 허술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핵심인 경호가 빠졌으니 세계수를 지키며 마왕을 섬멸하는 방향이 아니라 세계수를 방패 삼아 시간을 끄는 방향으로 작전이 변경됐다.

경호의 정체와 지금 상황을 전혀 모르기에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작전.

그렇다고 이들에게 ‘정령계를 구하고 귀환한 골목식당에서 일하는 용사가 있는데….’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구구절절이 할 순 없었다.

사실 이들만 해도 대단한 전력이긴 했다.

대격변 이후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집단이 결성된 것이니.

하지만 이들은 마왕이 얼마나 강한지 모르고 있었다.

나라에서 가장 강한 이들이었고 대격변 이후 귀족처럼 대우받는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이들.

다현이 초반에 기를 죽여 놔서 이 정도지 아니었으면 작전을 듣자마자 반발했을 게 뻔했다.

모두가 레비아탄에 의해 천진이 파괴되는 영상을 봤으면서도 그저 ‘헐리웃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듯 크게 위기감을 느끼진 않았다.

하지만 다현은 아니었다.

경호는 떠나기 전에 분명 말했다.

자신도 미르 없이는 마왕을 이길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그렇게 자신 없어 하는 경호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강하다 생각하지만 경호는 완전히 격이 다른 존재였다.

그런 경호도 자신 못 하는 존재가 마왕이었다.

“사실 마왕은 한 명이 아닙니다. 고로 지금 저 중국에 있는 마왕을 끌어들여 죽이면 끝이 아니기에 피해를 최소화해서 우리의 전력을 유지할 생각입니다. 우리는 지구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다시 우리 같은 전력을 만들 수 없고 그렇기에 우리가 당하면 지구는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공격보다 방어를, 희생보다 생존을 우선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나름 이해할 수 있게 잘 이야기한 것 같았다.

이게 지금 상황에서 해 줄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이 멍청한 놈. 자기 힘 하나 제대로 갈무리 못 해서 이렇게나 시간이 걸리냐!’

다현이 원망 어린 눈빛으로 세계수를 노려봤다.

“마왕이 하나가 아니라니. 저 거대한 뱀만 잡는다고 마계 침략을 막는 게 아니군요.”

다행히 다현의 말은 크게 의심받지 않고 먹혀들었다.

“물론입니다. 아직 악마군단의 침략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았습니다.”

“알겠습니다.”

다현은 서둘렀다.

“그럼. 당장 작전 지역으로 모두 흩어지세요! 수호신 님과 울피 님은 수고 좀 해 주시고요!”

그렇게 작전에 따라 동물원 밖으로 나가 골목으로 이동했고 그런 그들을 흰둥이와 울피가 결계로 숨겼다.

그렇게 성원과 다른 이들이 파견 헌터들과 나눠 모두 몸을 숨긴 후 다현과 흰둥이, 울피만 세계수 앞에 섰다.

마왕의 일격이라도 받아 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셋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분위기를 보니 동물원에 놀러 온 것 같진 않네요.

그때 운애가 그런 그들 앞에 나타났다.

다른 이들이 있어 나타나지 않고 있던 운애가 다현에게 농담 섞인 인사를 건넸다.

“후우. 그러게요. 오랜만이에요. 오늘은 세계수의 결계를 풀어 마왕을 이곳으로 부를 생각입니다. 레비아탄이 지구에 나타난 건 알고 있죠?”

-물론이죠. 저랑 땅개도 도울게요. 안 그래도 경호를 지키기 이곳에 계속 있던 거라서요.

“경호는 언제 끝날까요?”

-날짜는 잘 모르지만 잘 해낼 겁니다. 언제나 그랬듯이요.

그때 다현의 전화가 울렸다.

대통령이었다.

“네. 대통령님.”

-서울 시민은 모두 대피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저희도 바로 작전 시작하겠습니다.”

서울 시민들의 대피가 끝났다.

지금까지 조금의 여유라도 부렸던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이제 그런 여유가 사라졌다.

“그럼. 결계를 해제해 주세요.”

흰둥이와 울피가 거대한 늑대와 여우로 변해 신력을 끌어올렸다.

그 기운에 동물원 전체가 반응하며 바닥 곳곳에서 마법진이 선명하게 새겨지며 떠올랐다.

그리고 그렇게 떠오른 마법진이 터져 나갔다.

잠시 후 다현은 결계가 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솨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리고 세계수가 잘게 진동하며 강한 기운을 퍼뜨렸다.

***

모든 것이 파괴돼 있었고 모든 이가 죽어 있었다.

그렇게 파괴와 죽음만 남긴 채 빠른 속도로 천진시를 넘어 북경을 향하던 레비아탄이 움직임을 멈추고 몸을 세웠다.

혀를 날름거리며 무언가를 느끼던 레비아탄의 몸에서 갑자기 살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하하. 거기 있었나?

세계수였다!

저것을 없앤다면 마신께서도 자신의 공로를 인정해 줄 것이다!

레비아탄이 그 기운을 쫓아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세계수의 ‘의식의 세계’ 안.

경호는 죽은 듯 누워 있었다.

주변에는 기운이 약해져 흐릿한 사신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런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너무 뛰어나서 문제로군.

뛰어나다고? 누가? 경호가?

현무의 말에 청룡도 고개를 끄덕였다.

-짝퉁 용족이라 변화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걸 생각 못 했군.

청룡이, 아니 사신 모두와 세계수까지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있었다.

경호는 사실 용족이 겪는 헤츨링 과정을 모두 끝낸 상태였다.

육체가 용력이라는 엄청난 힘을 견딜 수 있게 변화하는 수백 년의 과정을 사흘도 안 되어 끝낸 것이었다.

하지만 경호는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육체의 그릇은 용력을 담을 수 있을 만큼 커지고 단단해졌지만, 그의 영혼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육체와 영혼.

생명을 가진 존재를 지탱하는 커다란 두 축이었다.

동전의 양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런 존재.

하지만 세계수도, 사신도 영혼의 성장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안 했다.

그들은 인간과 비교도 할 수 없는 크고 강한 영혼을 가진 존재였으니.

청룡도 짝퉁 용족이었지만 자연의 기운이 뭉쳐 스스로 창조된 존재였기에 영혼의 힘은 진짜 용족에 못지않았다.

그렇기에 육체의 변화만으로 용력을 쓸 수 있었다.

그런 청룡과 경호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정령계를 구한 용사라고 하지만 경호는 인간이었다.

창조신인 주신이 자신을 닮은 무한한 가능성을 담아 빚어낸 존재라고 하나 그것은 가능성일 뿐 그만큼의 격을 당장 갖추고 있는 건 아니었다.

용력은 기운이지만 그냥 에너지가 아닌 ‘바이러스’와 비슷했다.

스스로 증식하고 변화하는 암흑마기와 비슷한 기운.

숙주가 있어야만 더욱 성장하고 번성하는 기운.

자신을 담고 있는 그릇, 숙주를 본능적으로 계속 강하게 만든다.

잠재력의 한계치까지.

그래야 용력도 더 강해지니까.

그렇기에 경호의 육체를 모두 만든 용력은 다시 활동에 들어갔다.

육체는 충분히 강해졌지만 영혼은 용력을 감당할 정도가 안 됐기에.

하지만 육체를 강화하는 것과 영혼을 강화하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육체의 강화는 단순했다.

기운을 받아들여서 그것을 흡수하면 강해진다.

세계수, 사신의 기운을 받아 충분하다 못해 넘치기 육체를 변화시킨 경호였다.

그러나 영혼은 그냥 그렇게 단순히 기운을 때려 붓는다고 강해지지 않는다.

영혼은 육체처럼 강하지 않기에 그런 무식한 방법을 쓰면 붕괴를 일으켜 자아를 잃어버릴 수 있었다.

인간이면서 신력, 정령력, 마력에 용력까지 담고 있는 경호도 특이했지만.

경호가 품고 있는 용력도 특이함으로 따지면 그 어떤 기운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기운이었다.

암흑마기의 힘과 마도공학 기술로 발생한 초진화의 힘이 담긴 기운.

그것이 ‘마수’라고 하지만 완전히 다른 존재를 만들었고 여러 인간과 마수를 잡아먹으며 더욱더 다른 존재가 됐다.

그리고 그것의 결정체가 경호의 심장에 달라붙어 그의 기운을 흡수하며 ‘용력’의 형태로 변화했다.

기생하며 강함을 추구하는 특유의 성격이 결국 변종이긴 하지만 ‘용력’이라는 대단한 기운으로 변화하게 만든 것이었다.

경호의 몸에 담겨 있는 이 변종 용력은 그렇기에 보통의 용력보다 생존과 강함을 추구하는 본능적 욕구가 더 강했다.

영혼을 강화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영혼을 강화하지 않으면 결국 경호는 붕괴한다.

그러면 결국 경호의 내부에 존재하는 용력인 스스로도 사라진다.

그건 있어서 안 되는 일이었다.

용력은 경호의 내부를 뒤지고 뒤졌다.

뭔가 경호의 영혼을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 헤매던 용력은 마침내 시스템에 연결된 그의 정보를 읽어 냈다.

<상태창>

이름:최경호

나이:35

클래스:용사[신화]

레벨:99

[근력-999][민첩-999][체력-999]

[마력-999][정령력-629][신력-632][용력-878]

특성:[검술LV10][궁술LV10][은신LV10][염력LV10][간파LV10][증폭LV10][요리LV6][용의 심장LV9]

카르마:13384261523323342(선)

육체의 그릇을 만들기 전보다 한계에 이른 마력을 제외하고 다른 기운들이 엄청나게 늘어난 상태.

용의 심장 레벨도 두 단계나 성장했지만 그런 것은 시스템에 접속한 용력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영혼을 강화하는 데 일절 쓸모없는 내용이었기에.

그때 용력이 미친 듯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따로 말을 못 하는 용력이 나름의 기쁨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찾았다! 찾았어!

1경이 넘는 카르마 수치!

용력은 드디어 경호의 영혼을 강화할 수 있는 재료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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