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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용사의 골목식당-286화 (286/335)

#286화

개조 마석이라고 알려진 정령석을 가득 채운 화물이 비행기에 실려 세계 곳곳으로 배달됐다.

그리고 그렇게 배달된 나라에서 최상급 헌터 무리가 대한민국으로 파병됐다.

시차는 조금씩 있었지만 모두 한날에 도착했다.

19개국 176명.

이름조차 만들어지지 않은 태스크 포스 팀이었지만 전원 S급으로 이루어진 대격변 이후 창설된 가장 강력한 무력집단이었다.

헌터.

각성자 중에서도 C급 이상의 전투 등급을 받은 이들이었다.

선택받은 존재.

신흥귀족이라 불리며 당연히 특권 의식과 자존심이 강한 이들이었다.

악마군단의 침략을 대비해 비상이 내려진 상황이라 이들이 도착한 공항은 한적했다.

176명의 S급 헌터는 리무진 버스에 나눠 타고는 청와대로 이동해 곧장 비밀통로를 통해 청와대 지하에 존재하는 ‘긴급상황센터’로 움직였다.

공기순환장치와 여과장치까지 최첨단 시설이 설치된 곳이지만 폐쇄된 지하가 답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나 이들은 파병이라는 이름으로 오긴 했지만, 군인도 아니었고 국적도 제각각이었다.

거기다 보통 헌터도 아닌 최상위급의 S급 헌터였다.

참을성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티끌만큼도 존재하지 않는 신흥귀족 중에서도 ‘성골(聖骨)’인 이들.

당연히 영문도 모르고 이동한 답답한 지하 벙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두가 짜증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긴급상황센터 안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유독 눈에 튀는 이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이들과 달리 살기까지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가장 앞 열에 서 있는 거구의 금발 남성, 공식 세계 헌터 랭킹 1위인 ‘그림 리퍼’ 잭 윌슨.

프랑스 출신인 그는 유럽 랭킹 1위를 항상 차지하며 미국 랭킹 1위인 ‘드레고니안’ 볼칸 후커와 세계 1위 자리를 두고 경쟁하던 이였다.

볼칸이 극지던전에서 죽자 확고하게 세계 1위 자리를 지키는 중이었다.

물론 그 후 안 그래도 고약했던 성질은 더 고약하게 변했다.

이번 파병도 그간 저지른 불법 행위에 대한 형사면책권이 아니었다면 참가하지 않았을 터였다.

당연히 이곳에 와서 벌이는 일은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하고 말이다.

‘그림 리퍼’ 잭 윌슨은 태닝을 했는지 검게 그을린 피부에 핏줄선 단단해 보이는 근육을 불끈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아. 여기 뭐야? 답답하게. 환영식은? 대통령 안 나왔어?”

아무도 없는 지하 공터에 자신들만 덩그러니 있는 것이 화가 나던 참이었다.

그때 반대쪽 벽면에 문이 열리고 몇 명의 인원이 공터로 들어왔다.

다현을 비롯한 성원 일행과 흰둥이와 울피였다.

“대통령인가? 어? 빨간 머리? 뭐야? 저년 죽었다며!”

살기까지 흘리던 잭이 놀랐는지 삿대질까지 하며 소릴 지르고 있었다.

웅성웅성.

잭의 외침이 아니라도 모두 문을 열고 들어오는 다현과 울피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176명 모두가 다현이 마지막으로 남긴 특성에 의지를 담는 수련법 영상을 본 후였다.

그래서 그녀가 강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죽었다고 하던 그녀와 수호신이 멀쩡히 살아서 나타났다.

다현이 그들 앞에 섰다.

경호는 수련을 위해 떠났지만, 이 일을 대통령과 미리 이야기했기에 다현에게 따로 부탁해 놓은 상태였다.

-내가 하고 싶지만 어쩌면 금방 오지 못할 수도 있어. 그러면 네가 그들을 통제해야 해. 어차피 마왕과 싸움에 쓸 이들이야. 제대로 통제 못 하면 마왕과 싸움에 방해만 되니까 무조건 굴복시켜. 세뇌든 독을 먹이든 한 놈을 죽여 놓든 말이야.

경호가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까지 이야기하는 것을 처음 본 다현이었다.

‘역시나 했는데 역시나….’

176명의 신상 명세를 대충 확인한 다현이었다.

특히나 랭킹 1위인 ‘잭’이라는 놈은 더 상세히 살폈다.

한 마디로 쓰레기였다.

분리수거도 사치일 정도로 아주 더러운 놈.

역시나 놀라서 살기가 흩어졌던 잭의 몸에서 다시 살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거 완전 미친놈이네!’

눈동자에는 음심(淫心)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힘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다현이 가장 싫어하는 타입이었다.

그래도 우선 말을 준비했던 말을 꺼내 보기로 했다.

“내가 누군진 모두 알 거로 생각한다. 모종의 이유로 죽음을 가장하고 있었다. 그건 나중에 차차 이야기 하기로….”

다현의 말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을 정도가 됐다.

“조용! 주목해라!”

하지만 웅성거리는 소리는 더욱 커졌다.

귀에 꽂힌 통역기를 통해 ‘뭔데! 지랄이래!’, ‘여자가 설치는 꼴이 같잖군!’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다 잭은 앞으로 걸어 나오며 대놓고 히죽거리고 있었다.

“오. 영상보다 실물이 훨씬 이쁘잖아. 어차피 악마놈들 쳐들어오려면 시간도 남았는데 우리 가서 조용히 이야기 좀 나눌까? 어때?”

후우.

다현은 속으로 ‘하나’를 세었다.

세 번.

딱 세 번만 참겠다고 다짐하고 들어온 다현이었다.

‘그래. 참을 인 자 셋이면 살인도 피한다고 했으니….’

다현이 잭의 번들거리는 눈을 쏘아보며 말했다.

“우선 전할 사항이 있다. 자리로 돌아가라.”

“자리로 돌아가라고? 내 자리는 네 옆인 거 같은데.”

“이런 씨…. 후.”

다현은 속으로 둘을 외쳤다.

“모르고 왔나 본데. 너희는 파병과 동시에 대한민국 청와대 소속 마왕전담특별팀 소속이 됐다. 그리고 그 팀의 팀장은 나다. 고로 너는 지금 명령 불복종 중이고. 알았나?”

다현의 말에 웅성거림이 배로 더 커졌다.

그리고 다현의 짜증도 배로 더 커졌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불꽃광전사의 특성인 [광분]이 발동되려 하고 있었다.

물론 그게 보는 사람에 따라서 충분히 착각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나 음심으로 번들거리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잭의 입장에서 보면 말이다.

“명령 불복종 좋아하네. 네년도 얼굴 벌겋게 달아오르는 거 보니 기대하고 있구….”

콰앙!

정말 갑자기 잭의 얼굴에 새하얀 불꽃이 생기더니 곧장 터졌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제대로 폭발을 제대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모두 S급 헌터였음에도.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바닥에 쓰러진 잭은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얼굴을 감싸 쥐고는 비명을 질렀다.

다현의 백염이 가진 위력은 이제 보통 S급 헌터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고 있었다.

그것도 [광분]이 발동된 상태에서 터진 백염.

거기다 죽여 버리겠다는 의지가 담긴 상태였다.

다현이 마지막에 살인을 피하려 마력을 줄이지 않았다면 목 없는 시체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을 것이었다.

“거참. 더럽게 시끄럽네. 난 세 번 다 참았다.”

다현이 발을 들어 올렸다.

신기하게도 들어 올린 다현의 발, 정확히는 신고 있는 군화에 새파란 청염이 붙어있었다.

퍼억! 퍽! 콰직!

그리고 얼굴을 감싸 쥐고 비명을 지르고 있는 잭을 밟기 시작했다.

콰직! 콱! 퍽! 퍽!

청염에 휩싸인 군화는 멀쩡했지만, 그것에 밟히는 잭은 멀쩡하지 않았다.

“닥쳐! 시끄러워!”

살벌한 외침과 함께 밟힐 때마다 밟힌 옷은 타서 재가 됐고 밟힌 피부는 화상으로 수포가 올라왔다.

잭의 비명이 점점 줄어들었다.

다현이 닥치라고 해서 억지로 참는 것도 있지만 점점 의식을 잃어 가는 중이었다.

퍽! 콰득! 콰드득!

갈비뼈가 나가고 양팔이 부러졌다.

발목은 모두 돌아갈 수 없는 범위로 돌아가 있었다.

죽진 않았지만 제대로 치료를 받는다고 해도 앞으로 세계 1위의 헌터로 돌아가지 못할 것은 분명해 보였다.

꿈틀거리며 가늘게 호흡을 이어가는 잭을 노려보다 다현이 고개를 들었다.

잭을 제외한 175명이 다현의 살기 어린 눈빛에 움찔거렸다.

다현은 강해도 너무 강했다.

모두 S급 헌터라고 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실력 차는 분명 존재했다.

특히나 ‘잭’과 ‘볼칸’은 실력은 압도적이었다.

괜히 ‘그림 리퍼’나 ‘드래고니안’이라고 불린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 ‘그림 리퍼’ 앞에 진짜 사신이 나타났다.

죽었다 살아난 지옥에서 온 진짜 사신.

“내가 할 말이 있거든요. 그런데 혹시 이놈처럼 따로 할 말 있는 분은 손 좀 들어보실래요? 한 명 한 명은 귀찮으니 단체로 상대해 드릴게.”

손을 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함부로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있었다.

잭이 설칠 때까지만 해도 웅성거려 시끄러울 지경이었지만 지금은 숨소리도 조심하는 이들이었다.

“그럼. 다시 이야기하죠. 모르고 오신 분도 계신 듯한데. 여러분은 파병과 동시에 대한민국 청와대 소속 마왕전담특별팀 소속이 됐습니다. 그리고 그 팀의 팀장은 저고 여기 뒤에 있는 분들은 조장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조원이고요.”

잭만큼은 아니지만 175명 모두 양아치 기질이 충분한 놈들이었다.

그런 놈들이 다현 때문에 참고 있었던 중이었다.

하지만 다현의 뒤에 보이는 성원 일행의 부하로 들어가라는 말에 참고 있던 성질이 다시 터져 나왔다.

“아니 우리가 나라별로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저런 사람들의 지시나 받으라고요?”

잭에 비하면 꽤나 공손한 편이었지만 분명 짜증이 가득 담긴 목소리였다.

그리고 다현 역시 다시 짜증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저기 이름이 뭐죠?”

다현이 불만을 이야기한 이를 보며 물었다.

“유럽 랭킹 27위 ‘아이언 스킨’ 티코요!”

덩치는 산만 한 녀석이 이름은 티코란다.

물론 다현이 모르는 놈이었다.

“그래. 티코 씨. 제가 설명하죠. 아니 모두 잘 들으세요. 여러분은 제가 마왕을 상대할 때 주변에 있는 마왕의 호위병을 막기 위해 파병된 겁니다.”

경호의 존재를 아직 알릴 필요가 없기에 다현은 자신이 마왕을 상대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호위병은 생각보다 강해요. 훨씬. 티코 씨 같은 분이 수십 명이 달라붙어야 겨우 상대할 정도로요. 그러니 국가별로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수십 명이 달라붙어도 상대가 안 될 가능성이 더 컸다.

하지만.

“그건 싸워 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 아니요!”

“아니 알아요. 그러니 조용히 하시죠. 아니면….”

다현이 아직 바닥에 뻗어 가늘게 숨을 이어가는 잭을 노려보다 다시 말을 이었다.

“한 판 붙어 볼래요?”

“당신이 팀장을 하는 것에는 불만이 없소!”

다현은 그런 티코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호돈. 나와!”

그럼. 그 불만을 없애주면 되는 것이었다.

“넵! 팀장님!”

호돈이 절도있는 모습으로 티코 앞에 섰다.

아무 말 없이 다현이 강렬한 눈빛으로 호돈을 쳐다봤다.

[무조건 압살해!]

다현의 눈빛이 호돈에게 말했다.

호돈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티코 씨. 제가 이기면 불만 없겠죠?”

“물론입니다.”

티코가 마력을 끌어 올리자 전신이 단단한 금속처럼 변했다.

호돈 역시 [압축]과 [연소]로 전신을 단단하고 강하게 만들었다.

선방 필승은 세계 공용인 듯 티코가 먼저 커다란 주먹에 힘을 주며 호돈을 향해 움직였다.

호돈은 느긋하게 지켜보다 날아오는 주먹을 향해 자신의 주먹을 날렸다.

콰아아앙!

주먹과 주먹이 부딪혔지만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티코의 비명이 내부를 가득 메웠다.

뼈가 튀어나와 피투성이가 된 손에 손목은 완전히 부러져 덜렁거리기까지 하는 것이 보는 사람도 손목이 시큰하게 만들 정도의 광경이었다.

퍼억!

거기서 끝내지 않고 뒤로 비명을 지르며 물러서는 티코를 호돈이 따라붙어 턱을 때렸다.

강하진 않았지만 정확히 턱을 향한 타격에 “컥!”이라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티코가 그대로 기절했다.

털썩.

바닥에 쓰러진 티코와 그에 반해 아무런 타격도 없다는 듯 가볍게 손을 쥐었다 폈다 하는 호돈.

그의 모습은 허세가 아닌 실력이었다.

다현이 다시 그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자아. 이제 정말 마지막이야. 불만 있나?”

지숙과 이나를 제외하고 가장 약해 보이는 호돈의 실력이 이 정도니 불만이 있을 턱이 없었다.

“자아. 그럼. 우리가 제대로 원팀으로 싸우기 위해서 거칠 절차가 있다.”

딱.

다현이 손가락을 딱하고 튕기자.

문이 열리며 연구원 가운을 걸친 이들이 뭔가를 들고 왔다.

약?

그것은 갈색 병에 담긴 알약이었다.

모두가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이었지만 괜히 다현에게 맞을까 봐 조용히 있었다.

“이거 약이야. 3일에 한 번씩 안 먹으면 죽는 약. 딸기 맛이니까. 모두 꼭꼭 씹어먹어. 아. 마왕 잡고 나면 완전히 해독시켜 줄게. 걱정하지 말고. 알았지?”

계속 먹어야 살 수 있는 알약.

그것이 이들을 통제하기 위해 다현이 생각해 낸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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