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용사의 골목식당-284화 (284/335)

#284화

마계(魔界).

악마가 사는 세상이라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마계에는 악마의 수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마계를 만든 마신의 능력에 제한이 있기 때문이었다.

주신을 따로 ‘창조신’이라 부르는 것처럼.

마신의 또 다른 이름은 ‘파괴신’이었다.

파괴, 부패, 억제의 능력을 가진 그는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인 파괴를 써야 했다.

그렇기에 질보다 양을 선택하든지 양보다 질을 선택하든지 해야 했다.

하지만 침략을 위해서는 소수정예의 강한 힘이 필요했고 그렇기에 지휘 계통을 위한 이들을 빼고는 악마의 수를 늘리지 않았다.

물론 악마도 후손을 가지긴 하지만 죽기 전에 한 번 그것도 자신의 에너지를 전달하는 개념에 불과했다.

인간의 근본인 ‘생명력’과 달리 악마의 근본은 ‘암흑마기’였고 극도로 파괴에 치우친 힘이기에 다른 생명의 힘을 섭취하지 않고는 성장시키기 어려웠다.

비율로 따지자면 0.1% 악마가 99.9%의 주민이나 마수를 이끄는 수준이었다.

뭐. 그래도 상관없었다.

마왕은 모르고 있었지만 사실 마신은 악마의 번성 따위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마신이 유일하게 관심 있는 것은 오직 힘! 주신을 죽일 수 있는 절대적이고 파괴적인 힘뿐이었다.

창조한 세상이 번성하여 섬김을 받을수록 강해지는 주신과 달리 마신은 다른 생명체의 생명력이나 암흑마기를 흡수해야 강해질 수 있었다.

그래서 마계 침략의 궁극적인 목적은 단순히 마계의 세를 키우는 게 아니라 침략을 통해 강해진 마계를 통째로 흡수해 주신을 죽일 절대적인 힘을 얻기 위함이었다.

물론 그것을 모르는 마왕은 지구 침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마계 전체에 전체 동원령(動員令)이 내려졌다.

지구로 통하는 던전과 균열은 모두 폐쇄됐고 동시에 마계의 모든 주민과 마수는 침략을 준비하기 위해 마계의 중심인 ‘죽음의 평원’으로 집결했다.

마계에서 마수 다음으로 가장 많은 수를 가진 오크는 빠졌지만 다크엘프와 뱀파이어, 화염거인과 서리거인, 오우거와 트롤을 비롯해 상급 마수들까지 엄청난 숫자가 모였다.

또 오크와 달리 이들은 암흑마기로 변화된 이들이 아니기에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전력이었다.

‘사탄’의 3군단장인 오로바스가 죽음의 평원에 나타났다.

아스모데우스의 부관, 베리드가 옆에 서 있었고 그 뒤로는 꽤 많은 수의 악마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나는 이번 지구 침략의 사령관을 맡은 ‘오로바스’라고 한다.

마왕 회의를 통해 오로바스가 총사령관에 베리드가 부사령관에 임명됐다.

말의 얼굴을 한 오로바스가 붉은 눈동자로 주민과 마수로 가득 찬 죽음의 평원을 훑었다.

-우리의 임무는 간단하다. 지구를 지배할 때 필요 없는 모든 것을 파괴하면 된다! 그리고 그 위에 새로운 세상을 만들 거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죽음의 평원이 들썩일 정도의 커다란 함성이 울려 퍼졌다.

오로바스의 말처럼 어차피 지구에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뿐이기에 결국 인간을 제외한 모든 것을 파괴하라는 소리였다.

***

후두두두두두두두둑.

정령석.

그 귀하디귀한 정령석이 세계수 뿌리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렇게 뿌리에서 정령석 수백 개가 우수수 떨어지기 무섭게 다시 알알이 맺히며 순식간에 커지기 시작했다.

“아니 이러다 세계수 큰일 나는 거 아닙니까?”

파루스가 걱정할 정도로 엄청난 숫자의 정령석이 세계수 뿌리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사신이 온 힘을 쏟은 결과였다.

“너 지금 여유가 있구나?”

“네엣? 여유는요! 어제부터 물 한 모금도 제대로 못 마셨는데요.”

솔딘의 말에 파루스가 펄쩍 뛰었다.

“그래? 그런데 세계수 걱정을 해? 지금 그보다 우릴 더 걱정해야 할 판 아니냐?”

솔딘과 파루스는 결국 해냈다.

경호가 던지고 간 ‘경유차를 굴릴 수 있는 휘발유’라는 희대의 개소리를 정말 해내고 말았다.

솔딘의 천재적인 기술과 파루스의 악마적인 재능에 대한민국의 국가적 지원과 신화연구소의 인력과 장비가 시너지 작용을 한 결과였다.

정령석에 마석 가루로 마력회로를 새겨 마석으로 인식하게 하는 꼼수를 쓴 것이었다.

그렇게 정령석으로 만든 ‘짝퉁 마석’ 개발에 성공했다.

마석을 쓸 때보다 마나 캐논이 더 쉽게 망가진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어차피 마나 캐논을 만들 수 있는 공장은 세계 곳곳에 널려 있었기에 물량은 걱정 없었다.

하지만 하루에도 수십만 개씩 쏟아지는 마나 캐논에 일일이 마력회로를 새길 순 없었다.

그래서 솔딘과 파루스는 또 스스로를 갈고 갈아 자동으로 정령석에 마력 회로를 새기는 장치를 만들었다.

단순하게 마력 회로를 새기는 기계라면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게 그렇지 않았다.

정령석의 크기나 담겨 있는 정령력의 수준에 따라서 새기는 회로의 깊이나 마력 수준이 미세하게 달라야 했기에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솔딘마저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설계도를 만들 정도로 고된 작업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장치.

‘이제 자유다!’를 외치고 싶었지만, 또 그게 그렇지 않았다.

후루룩! 후루룩! 후루룩!

컵라면을 세 젓가락 만에 끝낸 솔딘과 파루스가 서로를 쳐다보며 피식하며 미소를 지었다.

“야! 마계 최고의 장인이라고 큰소리치고는 벌써 지쳤냐?”

솔딘이 애써 힘을 내 파루스에게 시비를 걸었다.

물론 시비를 가장한 응원이었다.

“솔딘이나 정신 차려요. 저거에 손이라도 빨려 들어가면 망치는 다 잡은 거니까!”

파루스 역시 퉁명스럽게 솔딘을 걱정했다.

둘은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경호에 의해서 정말 영혼이 빠져나갈 정도로 갈려 나가는 사이 동병상련의 힘으로 진정한 동지애를 가지게 됐다.

손에 든 빈 컵라면 그릇을 바닥에 내려놓는 순간.

삐용! 삐용! 삐용!

공장 안에서 새빨간 경고등이 켜지며 요란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런! 파루스! 커피 두 잔!”

솔딘이 투덜거리며 외쳤고.

“커피믹스 두 개에 얼음 동동?”

파루스가 다크써클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뭘 물어! 빨리!”

파루스가 서둘러 공장 안으로 달려갔다.

하루에도 수십만 개의 짝퉁 마석을 만들다 보니 기계에 과부하가 걸려 하루에도 몇 번씩 말썽을 부렸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말썽을 잠재울 수 있는 이는 지구상에 솔딘과 파루스밖에 없었다.

***

마나 캐논, 마나 소드, 마나 폭탄.

악마가 마기를 더 빨리 퍼뜨리기 위해 제조법을 뿌린 무기들.

이것의 유무가 힘의 척도가 되던 시절은 벌써 끝났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더는 지구에 던전과 균열이 생겨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악마군단이 이제 곧 쳐들어올 거라는 걸 확신하고 있는 상황.

그렇게 되면 악마에게 타격을 줄 수 없는 마나 캐논 같은 무기는 하등 쓸모가 없었다.

그때 모두가 주목할 수밖에 없는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어딘가 출처는 확실하지 않지만 대한민국에서 개조한 마석을 쓰면 마나 캐논으로도 악마를 죽일 수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번 수호신과 다현의 수련법 영상으로 안 그래도 상승 중이던 대한민국의 위상이 아주 떡상했다.

이제 대한민국은 그저 그런 나라가 아닌 세계에서 가장 신비롭고 강한 나라라고 불리고 있었다.

***

G20.

일곱 곳의 선진국과 유럽연합 의장국 그리고 열두 곳의 신흥국을 포함하는 국제기구였다.

대한민국은 원조를 받던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대열에 들며 눈부시게 성장했지만 아직 G7엔 들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2031년.

G7의 긴급 요청으로 열린 G20 비상대책회의를 주도하는 의장을 김이박 대통령이 맡았다.

김이박 대통령도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G7 및 유럽연합 의장국의 요청이 있었고 김이박 대통령 역시 영광스러운 자리를 굳이 마다할 필요가 없어 수락한 것이었다.

그렇게 청와대 집무실에서 G20 화상회의가 열렸다.

분할된 화면에 각국의 대통령과 총리들이 긴장된 얼굴로 김이박 대통령을 주시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갑작스럽게 이리 회의가 열려서 사실 어안이 벙벙한 상태입니다.”

동시통역 장치를 통해 모두에게 김이박 대통령의 말이 전해졌다.

그의 말처럼 G7 및 유럽연합 의장국이 갑자기 요청받은 터라 제대로 된 회의 내용조차 전달받지 못한 상태로 진행된 회의였다.

앞으로 다가올 마계의 침략에 대비해서 뭔가 협력할 게 있다고 한 것만 대충 들었던 김이박 대통령이었다.

“그럼. 회의를 요청하신 분들께 여쭙겠습니다. 회의 안건이 정확히 어떻게 됩니까?”

보통은 국가 정상 간의 회의인 G20 같은 경우 미리 일정부터 세부 회의 내용의 A부터 Z까지 세심하게 준비하여 진행하는 게 정상이었다.

지금 무슨 내용인지 모르고 이렇게 카메라부터 켜는 것은 사실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만큼 급작스럽게 회의 소집을 요청했다는 방증이었다.

“마계의 침략이 정말 코앞으로 다가온 이때, 초국가적인 협력을 대한민국에 요청하고자 합니다.”

김이박 대통령의 물음에 미합중국 대통령인 조셉이 답을 했다.

사실 오늘 이 회의는 말 그대로 회의의 본질인 의논하고 교섭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확인과 부탁.

이 두 가지를 위한 자리였다.

“아니 조셉 대통령님. 그게 무슨 소립니까? 대한민국에 요청하다니요?”

김이박 대통령이 고개를 갸웃하자.

“마나 캐논으로 악마를 죽일 수 있는 개조 마석을 개발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혹시 모르고 계십니까?”

하토야마 일본 총리가 고개를 갸웃하는 김이박 대통령을 향해 물었다.

“아! 그거 말씀이군요!”

대한민국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만들어진 ‘짝퉁 마석’이었다.

회의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십만 개씩 쏟아져 나오고 있는 그것을 당연히 김이박 대통령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안 그래도 이리될 것을 모르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프랑스 대통령인 마그롱이 놀란 얼굴로 탄성을 질렀고.

영상 속 다른 정상들 표정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놀란 얼굴.

그리고 그 속에 감추지 못하고 흘러넘치고 있는 탐욕.

김이박 대통령을 제외한 열아홉 정상들의 생각은 모두 하나같았다.

‘무조건! 최대치를 확보해야 한다!’

단순한 물욕이 아니었다.

생존에 대한 탐욕이었다.

각국이 보유한 최상위 헌터라 할지라도 악마와 싸워 이기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유일무이한 해결책은 바로 대한민국에서 개발한 개조 마석이었다.

그것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마나 캐논이야 차고 넘치는 상황에서 그것만 충분히 구할 수 있다면 악마군단을 막을 수 있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그것을 구하지 못한다면 침략하는 악마군단에 멸망의 길을 걷게 될 것이었다.

“맞습니다. 짝투, 아니 개조 마석에 대한 소문은 사실입니다.”

김이박 대통령의 말에 모두가 긴장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손을 들고 외쳐대기 시작했다.

“미국은 최상위 헌터도 지원하겠습니다!”

“가격이 얼마입니까?”

“수량이 얼마나 됩니까?”

“일본은 구매 금액에 더해서 마석도 지원하겠습니다!”

“저희도 사고 싶습니다!”

G20 회의가 도떼기시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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