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용사의 골목식당-277화 (277/335)

#277화

모락스는 마수 혼혈 악마였다.

그것도 하급 마수인 삼족우와의 혼혈.

혈통을 중시하는 마계에서 그것은 치명적이었다.

모락스는 강했음에도 갖은 핍박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그냥 주저앉지 않았다.

더 강해지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다.

태생의 한계를 넘고 또 넘고 또 넘었다.

처음에 그에게 꽂히던 시선은 잘 봐줘야 ‘하급 마수 혼혈 주제에’ 정도였다.

하지만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마계에서 점점 한계를 넘어 강해지는 모락스는 이제 하급 마수 혼혈 주제 정도가 아니게 됐다.

결국 레비아탄의 눈에 들어 가장 측근이자 돌격대장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물론 머리도 나빴고 다른 악마 공작들처럼 독을 다루거나 흑마법 같은 특수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강했다.

다른 악마 공작을 압도할 정도로 특출나게 강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모락스의 암흑강기가 실린 도끼날과 다현의 백염, 흰둥이의 뇌전, 울피의 여우불이 가운데서 만나서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굉음과 빛의 폭발이 일어났다.

시간이 흘러 그 빛이 사라지자 처참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끄으. 끅.

신음을 흘리며 쓰러져 있는 다현의 입가에서 검붉은 피가 울컥거리며 흘러나오고 있었고 팔에도 깊게 베인 상처가 있었다.

끼잉. 케엥.

흰둥이와 울피 역시 어디 크게 다쳤는지 피를 쏟으며 바닥에 처박혀 있었다.

상성이 좋지 않았다.

다현과 흰둥이, 울피 모두 원칙적으로 원거리 마법을 주로 쓰는 이들이었다.

육체적 능력도 약한 건 아니었지만 모락스의 암흑강기와 충돌해서 버티기엔 부족했다.

물론 모락스도 멀쩡한 것은 아니었다.

여기저기 검게 그을리고 피부가 찢어져 검붉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누가 봐도 승부는 확연하게 갈려 있었다.

-내가 수호신과 용사를 잡았구나! 크하하하하하하하!

그때 웃음소리를 뚫고 들어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수호신은 맞는데 용사는 아니야. 그러니까 너무 좋아하지 말고.”

휘익!

모락스가 놀란 얼굴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곳엔 허름한 운동복에 커다란 검을 어깨에 걸친 한 남성이 있었다.

아무리 관찰해도 강해 보이는 구석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접근할 동안 내가 전혀 느끼지 못했다!’

모락스는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저자가 은밀히 접근해 검을 날렸다면 낭패를 봤을 터였다.

-인간. 그게 무슨 소리지? 용사는 아니라니?

경호는 대답 대신 몸을 움직였다.

그것도 용력까지 써서 마력을 폭발시켜서 말이다.

콰앙!

발을 디딘 바닥이 부서지고 경호가 총알처럼 튀어 나갔다.

그리고 그 방향 끝에는 쓰러진 이들이 있었다.

턱! 턱!

한 손에 다현, 다른 손에 울피.

퍽!

흰둥이는 어쩔 수 없이 발로 찼다.

그렇게 모락스에서 벗어난 경호가 바닥에 다현과 울피를 흰둥이 옆에 내려놓고는.

“하여간 이 힘만 센 무식한 새끼!”

힘만 센 무식한 새끼.

맞는 말이라 더 화가 나는, 모락스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었다.

그런 그에게 저 말을 직접 할 수 있는 이는 그의 주군인 레비아탄이 유일했다.

-인간. 죽.인.다.

커다란 코가 벌름거리며 씩씩 콧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너 나 기억 안 나? 그때 그렇게 맞았으면 까먹기도 어려울 텐데 말이야. 하여간 무식한 새끼! 이러면 기억이 나냐?”

용아검에서 새하얀 검기가 활활 타오르듯이 피워 올랐다.

모락스가 그것을 보고 움찔했다.

새하얀 검기, 싸가지 없는 말투.

-어! 어엇!

헝크러진 머리와 짙은 눈썹, 그리고 저 눈빛!

-어어어! 어엇!

어찌 잊을 수 있으리오.

-너, 너는 용사!

정령계에서 마계의 침략을 물리친 용사였다.

“그래. 이제 기억났냐? 어? 그때 꼬리는 아직도 안 났냐?”

-다, 닥쳐라!

경호와 싸우다 꼬리가 뽑힌 채 마계로 도망쳤던 모락스였다.

“미안. 꼬리를 잡고 던지려고 한 건데 그게 그렇게 쑥 뽑힐 줄은 나도 몰랐다. 무슨 도마뱀도 아니고 말이야. 참고로 꼬리는 잘 고아서 먹었다.”

경호는 스스로 말하고서도 피식 웃었다.

모락스와 싸웠던 때는 계속된 악마군단과의 전투로 반쯤 정신이 나가 미친놈처럼 쉬지 않고 악마를 죽이던 때였다.

정신을 반쯤 놔서였을까 삼족우와 악마 혼혈의 꼬리는 무슨 맛일까 궁금했던 경호는 그것을 삶아서 먹었었다.

“운동을 많이 해서 그런지 맛이 담백하고 좋던데?”

다행히 맛도 좋았다.

물론 그런 경호의 말을 들은 모락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부들부들부들.

살기 가득한 새빨간 눈동자의 모락스가 경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적당한 흥분은 전투력을 상승시킬 수 있는 요소였지만.

극도로 치솟은 분노는 독이 되기 마련이었다.

지금 모락스처럼.

끄아아아아악!

달려오던 모락스가 갑자기 바닥에 쓰러지며 비명을 질렀다.

참을 수 있는 범위를 넘어간 극렬한 고통.

다현과 흰둥이, 울피와의 격돌로 생긴 상처에 경호가 용력을 흘러 넣어 고통을 증폭시켜 생긴 일이었다.

악마계약자 수준의 조무래기가 아니기에 주의를 했다면 용력을 느낄 수 있을 거였고 그렇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이었다.

괴로움에 몸서리치던 모락스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모락스의 얼굴 앞에는 커다란 빛덩이가 떠 있었다.

-이건 또 뭐….

위이이이이이이이잉!

그것은 마력과 용력을 섞은 것이었다.

쉐에에에에에에에엑!

기운이 폭주하며 부풀어 오르던 빛덩이가 터지며 새하얀 반월 모양의 기운이 터져 나왔다.

촤아아아아아악!

그리고 그 기운은 모락스를 정수리에서 꼬리가 뽑혀 나간 엉덩이까지 그대로 베며 지나갔다.

-나, 나 죽는 거….

검붉은 실선이 몸 가운데 생기기 시작하더니 곧 피가 터져 나오며 반으로 갈라져 죽었다.

모락스는 강했다.

하지만 운이 나빴다.

경호에게 꼬리가 뽑히며 도망간 기억은 그에게 커다란 트라우마로 남았다.

위축된 마음을 숨기려 더 흥분했고 흥분은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용력을 허용했고 그것으로 승부가 갈렸다.

마계에서 마왕을 제외하고 가장 강한 존재를 쓰러뜨렸지만 경호는 환하게 웃을 수 없었다.

“고작 모락스 따위에 좋아할 순 없지.”

경호는 마왕이라는 존재가 모락스 같은 놈 열 명, 아니 백 명이 덤벼도 이기기 쉽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곧 그 존재가 지구로 올 것이었다.

***

모락스의 계약자 최무출.

그는 울피에게 조종당하는 처지가 됐지만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희망을 품고 있었다.

저 추리닝 입은 미친놈이 끔찍하게 강하고 화염의 마녀도 대단하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거기다 수호신에 그 부하놈까지.

하지만 모락스는 악마 중에서 가장 강한 이였다.

그리고 역시나!

화염의 마녀에 여우 수호신과 늑대 부하까지 한 방에 때려눕혔다.

모야호! 역시! 됐다! 됐어!

자신은 오늘의 공로를 인정받아 다시 승승장구할 수 있을 것이었다.

다만 저 추리닝 입은 미친놈이 화염 카메라를 끄는 바람에 이것을 마왕님들에게 보여 주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그때 추리닝 남이 움직였다.

엄청난 속도.

그렇게 셋을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

뭐. 그런다고 달라질 거 같냐?

어차피 네놈도 죽고 저 셋도 죽을 건데.

무출이 그런 경호의 행동을 비웃으며 지켜볼 때.

어! 어어! 어어어!

아니 뭘 했길래 그 대단한 모락스님이 바닥을 기면서 비명을 지른단 말인가!

그때 추리닝 남의 손에서 새하얀 기운과 푸른색 기운이 흘러나와 하나로 뭉쳐서는 빛덩이가 돼 모락스의 머리맡에 멈췄다.

저건 또 뭐란 말인가?

쉐에에에에에에에엑!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탄강기 같은 것이 빛덩이에서 터져 나왔고.

믿을 수 없게도 모락스님이 죽었다.

모락스님이 죽다니!

“야! 찍새! 이리 와봐!”

갑자기 추리닝 남이 손가락 하나를 까닥이며 나를 불렀다.

“네엡! 알겠습니다!”

나는 크게 대답하고는 최대한 밝게 웃으며 그를 향해 달려갔다.

***

경호가 주변을 살펴보니 살아남은 악마계약자는 없었다.

다현과 흰둥이, 울피도 출혈이 꽤 있었지만 위중한 상황은 아니었다.

회복력도 좋아 점점 혈색이 돌아오고 있었다.

“야! 찍새! 이리 와봐!”

눈이 튀어나올 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무출을 경호가 불렀다.

“네엡! 알겠습니다!”

무출이 밝은 표정으로 달려왔다.

하여간 태세 전환이 참 빠른 녀석이다.

“찍새 한 번 더 해야겠다.”

“네엣? 하지만 화염 카메라가 없는데 가능할까요?”

경호가 카메라를 날려 버렸기에 찍을 수가 없었다.

“너한테 마기가 있으니까 직접 연결하면 되지. 마기 부족한 건 내가 채워 줄 테니까.”

“네엣?!”

모락스와 여러 번 연락을 주고받았기에 마기만 충분하다면 무출도 마계에 영상을 연결할 수는 있었다.

문제는 지니고 있는 마기의 양이 너무 적다는 것.

“그, 그걸 어떻게 채워 주신다는 건지. 가능한 일입니까?”

하지만 모락스도, 악마계약자도 모두 다 죽은 상태에서 마기를 어디서 충분할 정도로 구한단 말인가?

“마법진이나 그리고 있어. 할 줄 알지?”

고위 악마라면 손가락 한번 튕기면 되는 일이지만 저런 수준의 계약자에게 마법진은 필수였다.

“아. 네! 그릴 수 있습니다!”

경호의 눈빛 속에 담긴 살기를 본 무출은 고개가 부러져라 끄덕였다.

경호는 무출이 바닥에 마법진을 그리는 것을 지켜보다 쓰러져 있는 다현과 흰둥이, 울피를 향해 갔다.

“괜찮아?”

경호가 걱정스레 묻자.

“넌 이게 괜찮아 보이냐? 소 대가리 새끼가 힘은 무식하게 세네.”

다현이 피가 철철 흐르는 팔을 들어 보이며 투덜거렸다.

“모락스 상대로 이 정도면 선방한 거지.”

마기 농도가 아직 마계에 비해 약한 상태라 모락스의 힘이 약해져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선방이고 뭐고 간에 어서 공장에 가서 약통 있나 좀 봐 봐. 아파 죽겠다.”

“미안한데 마지막으로 한 장면만 더 찍어야 할 거 같은데 도와줘라? 흰둥이랑 울피도.”

“뭐?”

-저 여기서 피나는데요?

-네엣? 연기요?

아니 악마도 다 죽은 판에 무슨 연기 타령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셋이 경호를 쳐다봤다.

“아니 그게 관객이 지켜보고 있었는데 마무리는 해야지.”

“뭐? 마무리?”

“가장 재미있는 부분에서 끊겨서 지금쯤 답답해 죽으려고 하고 있을 거거든.”

그때 무출이 경호를 향해 외쳤다.

“마계 연결 마법진 다 그렸습니다!”

***

악마계약자에 의해서 세계수가 불타고 불여우 수호신과 그의 사도가 모락스에게 얻어터져 쓰러지자 오만의 루시퍼, 탐욕의 마몬, 질투의 레비아탄, 분노의 사탄, 색욕의 아스모데우스는 모두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특히 모락스의 상관인 레비아탄은 더욱 신이 났다.

-그렇지! 내 저놈이 이런 대형 사고 한번 칠 줄 알았지! 내가 키웠지만 정말 대단하군! 대단해!

레이아탄의 말에 나머진 마왕들이 미소를 지우고 한 마디씩 덧붙였다.

-더럽게 운이 좋은 놈이군.

-저 지구에 ‘소 뒷걸음치다 쥐 잡는다.’라는 말이 있다던데 딱 그 꼴이군.

-정말 그렇군.

그때 다현이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나타났다.

-용사요! 용사!

-아니 세계수에 수호신, 거기에 용사까지!

다들 눈이 동그래지며 화면 속 다현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이거 모락스 녀석이 용사까지 죽이면 어떤 상을 내려야 할지 상상도 되지 않는구만.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

레비아탄이 그 모습에 광소를 터뜨렸다.

그리고 다현과 흰둥이, 울피가 모락스와 충돌하며 화면이 꺼져 버렸다.

한순간 회의장에 숨 막힐 듯한 정적이 찾아왔다.

아니 이게 무슨 개 같은 경우란 말인가!

드라마 마지막 화가 끝나갈 때쯤 주인공을 향해 그의 사랑하는 연인이 갑자기 “실은 오빠, 나는 사실….” 하는데 정전이 일어나 TV가 꺼진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강렬한 기운이 충돌하자 그 힘을 견디지 못하고 연결이 끊긴 모양이군. 뭐. 어차피 우리 모락스가 이겼겠지만 말이야.

응. 아니야. 그거 경호가 끊은 거야.

어쨌든 모두가 레비아탄의 오해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이제 지구 침략은 우습게 됐군. 수호신도 용사도 없으니 말이야.

-이거 참. 일이 이렇게 풀리다니. 세계수만 없애려고 한 일에 그동안 속을 썩이던 것이 한 번에 해결되다니 말이야.

-다 모락스가 뛰어나서 그런 것 아니겠소.

레비아탄의 말에 모두가 배알이 꼴렸지만 다들 침묵을 지켰다.

그렇게 의미 없는 대화가 한동안 이어졌다.

-다시 연결됐군! 역시 모락스 녀석이 이긴 모양이야!

그때 레비아탄이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불꽃 속 화면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곳엔 그들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