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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용사의 골목식당-276화 (276/335)

#276화

백 명의 악마계약자.

A급 빌런이 마나 소드와 마나 폭탄을 들고 킬러 로봇과 싸우고 있었다.

킬러 로봇, 가디언은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처음부터 대각성자, 대마수를 상정하고 만든 강력한 킬링머신이었다.

전력대로라면 악마계약자가 밀려야 했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결과는 달랐다.

생각 이상으로 치열했다.

아니 오히려 조금씩 악마계약자에게 밀리고 있었다.

사실 1대 1이라면 가디언이 악마계약자를 압도할 수 있는 전력이었다.

하지만 다수의 전투에서 전투력은 단순 숫자에 비례하지 않았다.

백 명의 악마계약자와 백 기가 조금 넘는 가디언.

분명 수적 우위까지 점하고 있었지만 밀리고 있는 것은 가디언이었다.

그 이유는 시너지 효과 때문이었다.

로봇인 가디언과 달리 악마계약자는 백 명 모두가 똑같은 능력을 가진 이들이 아니었다.

어떤 이는 원소력으로 원거리 공격을 했고.

어떤 이는 마나 소드를 휘둘러 가디언을 공격했다.

또 누구는 탱킹을 맡았으며 또 다른 이는 치유 특성을 이용해 부상자를 치료했다.

그렇게 악마계약자들은 각기 뭉쳐 각자 가진 특성을 적절히 사용해 1+1=3의 힘을 내고 있었다.

반면 가디언은 오히려 뭉쳐 있을 때 커다란 덩치 때문에 공간적 제약으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렇게 힘의 균형이 깨지기 시작하더니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잘하면 비슷하게 끝낼 줄 알았는데 안 되네.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한데?”

공장 옥상에 경호와 다현, 흰둥이와 울피가 은신을 한 채 지상에서 펼쳐지는 공방전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차피 ‘졌지만 잘 싸웠다’를 위한 싸움이었다.

터져 나가는 가디언들도 어차피 고철로 쓰일 녀석들이라 아깝지 않았고.

다만 어떻게 하면 더욱 그럴듯하게 보일지 고민하는 중이었다.

감독의 고뇌.

경호는 지금 감독으로서 어찌하면 관객인 마왕들에게 의심을 사지 않고 잘 보일 수 있을지를 거듭 고민하는 중이었다.

“그래. 다현이 나서기 전에 둘이 먼저 출연 좀 해 줘야겠다. 원래 주인공은 나중에 나서는 거니까.”

-경호 님. 저희 가요?

이기지 못하는 척해야 하는 흰둥이는 싫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경호에게 물었다.

“세계수가 떡하니 있는데 저런 장난감 같은 것만 가져다 놓으면 누가 의심 안 하겠어. 안 그래? 최소한 수호신인 울피와 그의 사도쯤으로 보이는 너라도 가야지. 그래야 마왕들도 의심을 안 할 거 아니야?”

경호의 말에 울피가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아. 저는 무출이 조종해야 해서 힘들 거 같은데요.

“이미 무출이 역할은 끝났잖아. 이제 조종 안 해도 되는구만 무슨 소리야.”

경호의 말처럼 무출의 역할은 진작 끝난 상태였다.

괜히 뭘 더 시킬까 봐 괜히 바쁜 척하고 있던 울피가 움찔했다.

“자아! 출동! 적당히 싸우다가 동귀어진(同歸於盡)하는 식으로 이해했지? 그러면 다현이 짠!하고 들어갈 거니까.”

물론 이해는 했다.

하지만 이해한다고 다 잘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것도 보는 사람, 아니 보는 마왕이 어색하게 느끼지 않게 하려면 정말 신들린 메소드 연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도 감독 및 작가를 겸임하고 있는 경호가 저리 노려보고 있으니 흰둥이나 울피는 열심히 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에휴. 흰둥이와 울피가 동시에 한숨을 푹 쉬었다.

밑을 보니 대충 악마계약자 50대 가디언 20 정도가 남은 상태였다.

마나 소드와 마나 폭탄으로 무장한 A급 빌런 50명.

솔직히 모락스를 빼고도 쉽지 않은 숫자였다.

“레디! 액션!”

하지만 감독은 가차 없었다.

***

미국에서 현상금 헌터로 유명한 ‘브라이언’은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

-지금 너희들을 마왕님께서 직접 보고 계시다. 오늘 활약을 보고 크게 상을 내릴 터이니 모두 최선을 다하도록!

머릿속을 울리는 모락스의 말에 손과 발에 힘이 더 들어갔다.

크게 상을 내린다니! 그것도 마왕이 직접!

이제 살아남은 경쟁자들은 절반 정도.

피융! 피융! 피융!

거대한 깡통 로봇의 레이저 광선은 제법 강했지만 총구만 확인하면 피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가까이 접근해 다리와 레이저 건을 박살내면 고철로 변했다.

그렇게 치열하게 공방이 계속되면서 바퀴벌레처럼 바글거리던 것들이 이제 끝이 보이고 있었다.

이제 정말 공장이 코앞이었다.

허리에 찬 두 개의 마나 폭탄!

그것으로 세계수를 태워 버린다면 어쩌면 미국을 지배하는 인간의 왕이 될 수도 있을 터였다.

탐욕으로 이글거리는 브라이언의 눈에 무언가 흙먼지를 날리며 달려오는 거대한 존재가 보였다.

하나가 아닌 둘이었다.

‘뭐지? 마수?’

자신만 본 건 아닌지 주변에 있던 다른 놈들도 어! 어!를 외치며 주춤거리고 있었다.

피융! 피융! 피융!

크악! 커억! 크아악!

그 와중에 멍 때리다 레이저에 맞아 쓰러지는 멍청한 놈들도 있었다.

원래 같으면 경쟁자가 줄어 좋아해야겠지만 지금은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시발! 저거 저번에 봤던 수호신 같은데?! 저 옆에 있는 커다란 개새끼는 또 뭐야!”

울피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유명한 인사였다.

하지만 아직 그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게 있었다.

흰둥이의 폭렙업과 그로 인해 더욱더 강해진 울피의 전투력이었다.

흰둥이의 몸에서 번쩍하며 뇌전이 튀어나와 주변에서 달려드는 악마계약자에게 날아갔다.

울피 역시 백색의 여우불을 일으켜 폭풍처럼 쏟아 냈다.

-울피! 서둘러야 한다! 손을 쓰는데 자비를 두지 마라!

-카니스님! 알겠습니다!

모락스가 끼어들기 전 최대한 숫자를 줄여야 했다.

킬러 로봇이 원거리 공격을 막아 냈고 그사이 뇌전과 여우불로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하자 정말 순식간에 오십에 달하던 악마계약자들의 숫자가 십여 명으로 줄었다.

물론 흰둥이와 울피도 가진 힘을 단시간에 오버해서 쏟았기에 꽤나 지친 상태였다.

그리고 그런 흰둥이와 울피를 향해 모락스가 달려오고 있었다.

***

흐으흥! 흐으으흥! 흥흥!

한껏 기분 좋아진 모락스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릴 지경이었다.

물론 듣기 좋은 가락은 아니었다.

-좋아! 아주 좋아!

소모품에 불과한 놈들이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잘해 주고 있었다.

모두가 자신의 공이 될 일이었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강렬한 기운이 공장을 향해 달려오는 게 느껴졌다.

‘둘이다. 제법 강한 놈들인데?’

잠시 후 모락스의 눈에 들어온 커다란 불여우와 늑대.

바로 ‘흰둥이’와 ‘울피’였다.

모락스도 지구에 오기 전 미리 봐서 알고 있는 바로 그 여우 수호신이었다.

-수호신과 사도인가?

모락스의 생각과 완전 반대였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뛰어든 지 1분도 지나지 않아 엄청난 무위를 보이며 계약자 수를 확 줄였다는 것은 중요했다.

-이런! 감히!

모락스의 눈에서 살기가 번뜩거렸다.

-무출! 이것을 들고 나를 따라와 잘 찍도록 해라!

카메라 역할을 하는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마법진을 몇 개 걸더니 그것을 무출에게 건네고 곧장 공장을 향해 달렸다.

“앗! 뜨…. 뜨겁지 않네.”

혹여나 뜨거운 건 아닌지 걱정하던 무출은 불꽃을 받아 들고는 서둘러 모락스의 뒤를 쫓았다.

***

-울피야. 모락스가 온다!

-카니스 님. 조심하세요!

-그래. 이제부터는 진짜 조심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이제부터는 진짜였다.

졌지만 잘 싸웠다를 보여 줘야 했고 하지만 스스로도 지켜야 했다.

거기다 마왕의 눈초리에 연기가 걸리지 않아야 했기에 난도는 거의 아카데미 시상식 주연상감 수준이었다.

-조심하고 내가 위급하면 갈 테니 걱정하진 말고.

때마침 경호의 전음과 함께 [증폭]이 둘에게 흘러 들어왔다.

동시에 흰둥이의 몸 주변에 뇌전이 휘몰아쳤고 울피 주변으로 여우불이 떠올랐다.

콰아앙!

단숨에 날아온 모락스가 대지를 울리며 땅에 내려섰다.

읏차!

거구의 반우반마(半牛半魔) 모락스가 동시에 손에 든 전투 도끼를 휘둘렀다.

-피햇!

-이런! 미친!

보통의 악마들은 꽤나 고전적이었기에 당연히 자기소개나 읊어대고 싸울 줄 알았던 둘은 갑자기 진한 마기를 품고 날아드는 도끼날에 서둘러 몸을 날렸다.

자기소개 따위.

우직하고 저돌적인 모락스에게는 그저 눈앞에 적을 죽여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

더구나 수호신을 죽이는 것이 세계수를 파괴하는 것만큼이나 큰 공적이기에 더욱 그랬다.

-죽어엇!

울피가 뒤로 피하며 날아오는 도끼날을 멈추기 위해 여우불을 중첩해 도끼날을 향해 날렸다.

퍼버버버버버버벙!

하지만 도끼날에 닿은 불꽃은 물거품처럼 터져 나갔고 도끼날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날아오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이런!

도끼날이 울피의 머리를 쪼갤 듯이 빠르게 날아왔다.

콰지지지지지직!

그때 흰둥이가 쏘아 낸 굵은 뇌전이 모락스의 옆구리에 꽂혔다.

-크어어억!

뇌전 공격에 모락스가 옆으로 튕겨 나갔다.

콰아앙!

울피가 곧장 달려가 땅에 처박힌 모락스를 향해 입을 벌려 화염을 쏟아냈다.

화르르르르르륵!

강철도 녹이는 푸른색 화염이 울피의 입에서 쏟아져 나와 모락스를 덮쳤다.

-울피야! 피해!

그때 흰둥이가 울피를 향해 다급하게 외쳤다.

슈와아아악!

새파란 화염을 가르며 커다란 손이 쑤욱하고 솟아나왔다.

콰아아악!

-캐에엥!

그 손은 순식간에 울피의 목을 틀어잡았다.

-잡았다! 이 여우 새끼야!

목을 한 손에 틀어쥔 모락스가 몸에 붙어 넘실거리고 있는 푸른 불꽃을 툭툭 털어 꺼뜨리며 인상을 썼다.

미리 마기로 강기막을 치지 않았다면 위험할 뻔한 공격이었다.

치지지지직!

흰둥이의 몸에서 엄청난 뇌전이 들끓었다.

-어이. 그 번갯불 안 꺼뜨리면 이 여우 새끼 모가지 바로 틀어 버린다!

치지지지지지직!

하지만 그런 협박에도 흰둥이의 몸에서 나오는 뇌전의 양은 더욱 커졌다.

-그 목을 꺾기 전에 네 놈을 숯덩이로 만들어 주마!

흰둥이 역시 8레벨의 수호신이었다.

마왕이라면 모를까 악마 공작은 해볼 만한 상대였다.

-그래. 그거 꽤나 따끔할 거 같긴 한데 말이야. 한 방에 날 죽일 수 있을까?

-왜? 못 할 거 같아?

치지지지지지지지지지직!

뇌전의 빛이 너무 강해 흰둥이의 모습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대치 상황이 계속 때였다.

콰아아앙! 쾅! 콰아아앙! 콰아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하늘이 진동하고 땅이 울렸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핫!

그리고 모락스의 광소가 터졌다.

-잘했다! 아주 잘했어! 크하핫!

공장 외벽이 종잇장처럼 터져 나가고 세계수가 화염에 휩싸였다.

-안 돼!!! 세계수가! 세계수가!!!

흰둥이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짝퉁 세계수에 불과했지만 그 고통이 느껴질 정도로 절절한 아주 절정에 오른 연기력이었다.

-그럼. 너희 두 놈의 모가지를 꺾어 주….

빠악!

울피가 미리 하늘에 띄워 놨던 여우구슬을 이용해 자신의 목을 잡고 있는 모락스의 손목을 후려쳤다.

크악!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며 손을 푼 모락스.

그렇게 풀려난 울피가 뒤로 물러나 흰둥이 옆에 섰다.

비통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는 흰둥이와 괴로운 듯 비틀거리는 울피의 뒤로 활활 타오르는 세계수.

다섯 마왕 모두가 박수를 치며 흥분해 마지않은 정말 끝내주는 그림이 연출됐다.

“다현아. 클라이맥스를 부탁할게.”

경호가 옆에 있는 다현에게 말했다.

“대신 대련 열 판이야! 알았지?”

경호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은신하고 있던 다현이 뛰어내리며 외쳤다.

“이 빌어먹을 악마 새끼야!”

타악!

그렇게 다현은 흰둥이와 울피 사이에 서서 모락스를 노려봤다.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백염을 피워 올리는 그녀를 본 모락스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이거 정말 미치겠네! 크하하하하하하하!

모락스의 몸에서 마기가 폭발하듯 흘러나왔다.

-지구를 구할 용사에 수호신, 거기다 사도까지? 이거 누구부터 죽여야 하는 거야? 야! 무출아! 찍고 있지?

모락스가 고개를 돌려 무출을 보며 말했다.

“넵! 지금 찍고 있습니다!”

-자아! 그럼! 싸워 볼까!

치지지지지지지지직!

화르르르르르르르륵!

후우우우우우우우웅!

뇌전과 백염! 여우불까지!

모락스와 충돌하며 엄청난 빛이 터져 나왔다.

“으헉!”

너무 밝은 빛에 카메라맨 무출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그런 무출의 뒤로 경호가 나타났다.

휘익!

경호가 가볍게 손을 젓자 피익!하며 불꽃 카메라가 꺼져 버렸다.

“히익!”

경호를 보고 놀라는 무출을.

퍼억! 털썩!

가볍게 손을 휘둘러 기절시킨 경호가 용아검을 꺼내 어깨에 걸쳤다.

“자아. 그럼. 이제 액션 영화 그만 찍고 제대로 싸워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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