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화
다현의 바람대로 한 판, 두 판, 세 판을 넘어 둥근 해가 떠 중천에서 넘실거릴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하아. 진짜 이제 그만하자. 힘들다 힘들어.”
경호가 열두 번째 같은 말을 뱉었다.
“뭐야! 벌써? 벌써 힘들어?”
뭔가 빈정거리는 다현의 말투에 경호의 자존심이 꿈틀했다.
아니! 내가 힘들긴 뭘!
대충 스무 번이 넘는 대련을 했고 모두 경호가 가볍게 이겼다.
당연한 결과였다.
다현이 아무리 천재라고 하지만 경호는 규격 외 인간이었으니까.
평범한 성인과 천재 어린이가 싸운다고 해서 어린이가 이기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런 격차에도 불구하고 승부욕의 화신인 다현은 독기가 바짝 올라 더 맹렬히 덤벼들었다.
눈이 퀭하게 변해 입술이 갈라지고 팔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음에도 덤벼드는 걸 멈추지 않았다.
“이제 정말 그만!”
대련하는 건 좋은 일이었지만 이러다 마나 코어가 다치면 회복이 쉽지 않았다.
언제 마계의 침략이 있을지 모를 이때 너무 과한 것은 약이 아니라 독이었다.
경호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자 다현도 힘이 풀렸는지 털썩 주저앉았다.
“그럼. 조금 쉴까?”
아니 많이 쉬어! 많이 쉬라고!
그때 문득 든 생각.
“너 쉬면서 한번 볼래?”
“너도 힘들다며 쉬어.”
“나도 연습할 것이 있거든.”
경호가 힘들다고 한 것은 다현의 끈질긴 대련을 상대하는 것이 정신적으로 힘든 것이었지 체력적으로는 여유가 있었다.
“연습?”
경호의 말에 다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연습?
“이번에 새로운 힘을 얻었거든. 그런데 나도 처음 다루는 기운이라 사실 아직 제대로 다루질 못해서.”
다현이 싸움에 100%의 재능을 가진 천재라면 경호는 노력 100%의 둔재였다.
사실 그 노력도 스스로 했다기보다 미르나 다른 신수들, 그리고 대정령들이 강제적으로 시킨 것이었다.
그렇게 반강제적으로 강해진 경호는 그렇게 노력하다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또 그들에게 조언을 얻어 뚫어 냈다.
그렇기에 강했지만 약했다.
익숙한 것에는 강했다.
지금까지 걸었던 길을 다시 걸어가는 것이기에.
그 정도는 둔재인 경호도 할 수 있는 일이기에.
하지만 새롭게 얻은 힘.
새롭게 깨달아야 하는 것에는 약했다.
시작하자마자 막혔지만, 그것을 뚫을 수 있게 도와줄 이가 주변에 없었다.
물론 용력을 경험해 보긴 했다.
그것도 질리도록.
미르가 바로 용족 중에서도 강하기로 소문난 신룡이었기에.
그렇게 미르의 힘, 용력의 도움을 받아 마왕도 죽이고 마계의 침략을 막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미르가 잘나서 그 용력으로 자신을 도와준 것이고 스스로 용력을 사용할 줄은 당연히 몰랐다.
‘아씨! 알았으면 어떻게 쓰는지 배워 왔지!’
혈맥이 터져 죽을 위기를 넘기며 겨우겨우 용력에 대해 조금씩 알아 가는 중이었다.
그래서 경호는 미르와 신수, 대정령을 대신에 다현에게 조언을 얻어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걸 나보고 보라고?”
“솔직히 말해서 너의 전투 센스는 정말 대단하거든. 지금 대련도 내가 그냥 능력치로 누르는 거지. 동등한 조건이면 내가 널 못 이길 거야. 그러니 한번 보고 니가 느낀 점을 말해 달라는 거지. 너도 배울 점이 있을 거고.”
세상에 칭찬을 싫어하는 이는 없었다.
경호의 칭찬에 다현이 억지로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한번 보지. 뭐.”
***
‘어? 진짜 달라졌네?’
경호는 정말 자신의 몸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다현과 대련할 때만 해도 용력을 쓰지 않아 그냥 몸이 좀 가벼워진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심장에서 용력을 슬쩍 꺼내 혈맥에 흘려보내 보니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변했다! 그것도 엄청나게!’
용력이 몸에 흐를 때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할 정도로 몸에 부담이 갔었다.
혈맥을 지나기만 해도 뜨끔거리며 상처를 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용의 심장 LV7]이 되면서 그러한 것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러면 폭렬검을 기운이 모자라지 않는 한 쓸 수 있을지도!’
폭렬검은 용력이나 마력이 부족해서 못 쓰는 것이 아닌 그 반발력이 너무 강해 못 쓰는 것이었다.
“우선 폭렬검이라는 걸 쓸 거야. 그러니까 마력이나 정령력, 신력이 불꽃이라면 용력은 화약 같은 역할을 하거든.”
“화약?”
화약, 그것도 거의 TNT급이었다.
“우선 봐.”
경호가 아공간에서 용아검을 뽑아 섰다.
그리고 용아검에 마력을 실어 새하얀 마력검기를 피워올렸다.
“후우. 이제 되겠지.”
심장 깊숙이 잠들어 있는 용력을 끄집어내 용아검을 보냈다.
체에에에에에에에에엥!
날카로운 검명이 울려 퍼지며 새하얀 빛무리가 검에서 뿜어져 나왔다.
탄검기와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기운.
탄검기가 총탄이라면 폭렬참은 미사일이었다.
저 멀리 폐허가 된 건물로 날아 꽂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건물이 먼지가 돼 사라졌다.
엄청난 위력에 다현이 입을 쩌억 벌리고 경호를 봤다.
“이야! 이거 엄청…. 어?”
다현이 경호를 보며 칭찬 한 바가지를 날리려다 그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말을 멈췄다.
‘이, 이거….’
경호가 미간을 찌푸리며 용아검을 쥐고 있는 손을 쳐다보고 있었다.
‘너무 아픈데.’
한두 번 폭렬참 날리고 기절할 정도는 아니니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폭력검은 앞으로 악마군단과 싸우려면 아주 달고 살아야 할 기술이었다.
하지만 너무 아팠다.
용력이 뿜어져 나가는 것은 확실히 무리가 되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마력과 섞이며 폭주하며 폭발할 때 그 기운이 검날을 따라 앞으로 쏟아져 나갔지만 그게 100%는 아니었다.
폭발할 때 전해지는 반발력도 검을 쥔 손을 아프게 했지만, 그것보다 폭주하는 힘이 남아 다시 흡수되는 것이 문제였다.
그것은 단순한 용력이 아닌 새로운 기운이다 보니 몸에 대미지를 줬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픈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기술을 쓸 때마다 아프다면 분명 장기전은 불가했다.
고통으로 인해 아주 잠시라도 틈이 생긴다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폭렬검을 쓰지 않는 편이 나았다.
“아파?”
“이게 아까 말했듯이 이게 불꽃에 화약을 넣는 거랑 비슷한 거거든. 그래서 그 폭발력을 최대한 검날 방향으로 쏟아 냈는데도 대미지를 좀 받네.”
“그럼. 그거 칼을 좀 떨어뜨린 다음에 폭발시켜 봐.”
“응?”
“그러니까 검을 쥐고 있지 않고 멀리 떨어뜨리면 되는 거 아니야?”
검을 쥐지 않고 떨어뜨려서 터뜨린다고?
음. 어. 아.
잠시 머릿속으로 상황을 그려 본 경호가 활짝 웃었다.
‘오옷! 그거 정말 그러면 될 수도 있겠는데?’
염력으로 자동차 같은 것도 날려 버릴 수 있는 경호였기에 용아검을 멀리 띄워놓고 방향을 잡는 것 정도는 우스운 일이었다.
“역시는 역시라니까!”
괜히 천재가 아니었다.
딱 한 번 보고 바로 해결책을 제시하는 다현을 향해 엄지를 척하고 치켜세우고는 경호는 검기를 두른 용아검에 염력을 썼다.
계속 손으로 잡고 있는 것과 공중에 떠 있는 것은 마력을 불어넣는 난도 차이가 엄청났다.
그렇기에 검기를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물론 경호에게는 둘 다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자아! 그럼. 다시!”
용력을 뿜어내 염력으로 띄운 용아검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체에에에에에에에에엥!
폭주하는 기운에 검이 깨질 듯 날카로운 소리를 터뜨리며 새하얀 기운을 뿌렸다.
그런데.
“으악! 다현아! 피해!”
폭발과 동시에 검이 허공에서 마구잡이로 회전했다.
그러면서 폭렬참의 기운이 방향성을 잃고 여기저기로 쪼개져 날아갔다.
그리고 그렇게 쪼개진 폭렬참의 기운이 향하는 곳 중 하나에 다현이 있었다.
“이런 제길!”
다현은 경호와 스무 번이 넘게 대련하느라 다리가 풀린 상태.
빛살처럼 빠른 폭렬참의 기운을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었다.
무방비로 맞으면 악마 공작의 목도 날려 버리는 위력을 가진 폭렬참이었다.
경호는 하지에 마력을 실었다.
그리고 용력을 바로 쏟아 내 그 기운을 폭발시켰다.
거리는 대략 30m.
폭렬참과 다현의 거리도 대략 비슷했다.
콰앙!
바닥을 치고 나가는 소리가 마치 폭발음처럼 터져 나왔다.
폭렬참을 노려보며 다현의 앞으로 몸을 날렸다.
너무나 빠른 속도에 세상이 멈춘 듯했다.
멈춰 버린 세상에서 오롯이 ‘경호’와 ‘폭렬참’만이 다현을 향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지켜야 했다!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다현이었다.
찌질이 왕따 빵셔틀 때부터 자신을 지켜 주고 함께해 준 친구였다.
10년간 엄마를 곁에서 딸처럼 함께 한 녀석.
고집 세고 욱하기도 하고 제멋대로긴 하지만 목숨 걸고 지켜야 할 존재였다.
다현은 그런 존재였다.
진짜 병신같이 수련 중 실수로 그런 다현을 잃을 순 없었다.
‘살려야 해! 살려야 한다고!’
다행히 폭럴참보다 더 빨랐다.
경호가 다현의 허리춤을 잡고 그대로 몸을 뺐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 바닥이 폭발로 움푹 파여 있었다.
허억. 허억. 허억. 허억.
심장이 터질 거 같았다.
기운을 폭발시킨 허벅지는 너무 아파서 정신이 아찔할 정도였다.
그런데….
“무, 무거워.”
다현이 경호에게 깔린 상태로 힘겹게 말했다.
“어! 어엇!”
경호가 다현의 허리를 잡고 몸을 날리며 곧장 바닥에 쓰러졌고 그 와중에 몸이 엉키며 벌어진 일이었다.
“미, 미안해!”
경호가 당황한 얼굴로 몸을 일으키다가,
“으악!”
풀썩.
허벅지에서 터져 나오는 강렬한 통증에 다시 다현 위로 엎어졌다.
“야! 너 뭐야!”
“다리가 풀렸어. 미안.”
다현이 그런 경호를 옆으로 밀어 냈다.
“미, 미안해.”
“…됐다. 일부로 그런 것도 아닌데. 에휴.”
평소 같으면 주먹부터 날리고 봤을 다현이었지만 경호의 상태를 알기에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
그녀도 S급, 아니 그 이상의 각성자였다.
아무리 경호가 자초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을 구하기 위해 엄청난 일을 해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검에 터뜨리기만 해도 죽는다고 하던 놈이 허벅지에 기운을 터뜨리다니. 에휴.’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용의 심장LV7]이 되며 회복력도 비정상적으로 강해졌다는 것 정도였다.
한 시간 정도 뻗어 있던 경호가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몸을 일으켰다.
염력으로 저 멀리 떨어진 용아검을 다시 손에 쥔 경호가 고개를 저었다.
“염력으로는 폭발력이 감당이 안 되네. 다현아. 아까는 정말 미안하다. 내가 더 조심했어야 하는데.”
평소 같으면 ‘혹시 안 다친 거 아니지?’하면서 깐죽이라도 부렸겠지만 정말 목숨이 왔다 갔다 한 상황이라 경호도 머쓱한 표정으로 사과를 했다.
그런데 다현은 단단히 화가 난 듯 그런 경호를 보지도 않고 혼자 인상을 쓰고는 가만히 있었다.
죄인이 무슨 말을 하리오.
경호가 그런 다현의 눈치만 살피고 있는데.
“야! 니가 나에게 기운에 의지를 담으라고 했잖아!”
아이! 깜짝이야!
갑자기 벌떡 일어나며 소리치듯 말하는 다현의 말에 경호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러니까 용력에 의지를 담으라고?”
“그래! 그 화약이라는 놈에 의지를 담으면 폭발도 니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어쨌든 니 몸 안에 담겨 있는 기운이잖아!”
“당장 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