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화
“아, 진짜! 이렇게까지 해야 해? 그냥 특전팀 요원 쓰면 되잖아!”
다현이 인상을 팍 쓰며 경호를 짜증을 가득 담아 노려봤다.
경호는 그런 다현을 보며 단호하면서도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에이. 한 번만! 제발! 이거 절대! 절대! 절대! 새어 나가면 안 되는 특급 기밀이라서 그래. 특전팀 애들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너한테 부탁한 거야.”
양손을 맞대고 싹싹 빌며 조심스레 부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현은 팔자에도 없는 특전팀 요원 복장을 하고 있었다.
거기다 얼굴에 위장 크림까지 덕지덕지 발라야 한다니 화가 안 나려야 안 날 수가 없는 상태였다.
“아씨! 내가 카메라 들고 찍고 네가 연기하면 되잖아. 이러다 누가 우리 알아보면 그게 더 문제 아니야?”
“은신 쓸 수 있어야 카메라 들고 찍는데 넌 그게 안 되잖아. 그리고 저렇게 위장 크림 바르면 절대 못 알아 봐.”
경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성원과 정수, 호돈이 눈동자만 빼고 아주 새까맣게 위장 크림을 바른 채 서 있었다.
“하아. 그냥 세 명이 하면 되잖아? 나까지 꼭 해야 해?”
싫다는 투가 강하게 담긴 다현의 말에.
“특전팀 정규 최소 단위가 4인 1조야. 밀덕들은 또 이런 디테일로 시비 걸고 안 믿는다니까. 다현아. 친구로서 한 번만 부탁할게.”
경호는 열심히 손을 비비며 어떻게든 빠져나가려는 다현을 붙들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은근히 정에 약한 다현이었다.
타악!
다현이 경호 손에 들린 위장 크림을 빼앗듯이 들고서는 멍하니 그것을 쳐다봤다.
발라야 하는데. 발라야 하는데.
하아.
다현이 한숨을 푹 쉬며 머뭇거리자.
“다현아. 고마워.”
경호는 다짜고짜 고맙다고 말하며 카메라를 들었다.
그런 경호가 얄미웠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솟구치는 짜증에 살짝 투정을 부린 거지만 다현도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경호에게 들어 잘 알고 있었다.
에휴.
‘그래. 세상을 위한 일이다. 세상을 위한 일이야.’
다현은 치밀어오르는 화를 누르며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꼼꼼하게 위장 크림을 발랐다.
“자아! 됐지!”
“오케이!”
경호가 신화 연구소에 만든 정령석 캐논을 하나씩 건넸다.
“좋아! 그럼. 원테이크(one take)로 간다! 다들 동선 기억하지?”
“알았으니까! 빨리해! 얼굴 찝찝해 죽겠으니까!”
다현이 새까맣게 변한 얼굴로 전투헬멧을 쓰며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
그날 저녁 생방송으로 청와대 특별 기자회견이 열렸다.
미리 언급도 없이 갑자기 진행된 행사였지만 대통령이 직접 나오는 회견이라 모든 방송사가 달려들었고 외국의 굵직한 방송사도 송출을 결정했다.
하지만 사전 정보는 따로 없었다.
다만 엄청나게 중요한 사안이라고만 알려졌을 뿐.
애초에 엄청나게 중요한 사안이 아니라면 갑자기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생방송으로 기자 회견을 할 리도 없었다.
“뭐야? 무슨 내용인지 알아?”
“아니 대통령이 직접 진행하는 회견이라고만 들었는데.”
영문도 모르고 카메라나 노트북만 챙겨 온 기자들이 회견장에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때 청와대 춘추관 회견장으로 김이박 대통령이 굳은 얼굴로 들어섰다.
단상 앞에 선 대통령이 마이크를 잡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여러분. 오늘 이렇게 기자 회견을 가진 이유는 세상에 떠돌고 있는 마나 캐논이 가진 약점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대통령의 말에 엄숙해야 할 회견장임에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나 캐논’은 말 그대로 사기템이라 불리며 돈을 줘도 사기 어려운 핫한 아이템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약점이 있다니?
기자들이 웅성거릴 만한 이슈 거리였다.
“그럼. 약점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스크린에 악마에 빙의됐던 ‘김동진’ 대표의 사진이 올라왔다.
“김동진 대표의 사건 이후 악마계약자에 대한 수사를 대대적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화면이 넘어갔다.
특전팀들이 마나 캐논을 들고 악마계약자와 싸우는 영상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중간쯤 마나 캐논에서 발사된 마력 광선이 악마계약자의 몸에 닿자마자 반사되듯 튕겨 나오는 장면이 뚜렷하게 나왔다.
“엇! 저게 뭐야!”
“어엇! 마나 캐논이 튕겨 나오잖아!”
“아니 마수에게 통하는 마나 캐논을 인간이 튕겨 낸다고?”
역시나 기자들은 대통령이 직접 진행하는 기자회견이라는 것도 망각하고 중얼거릴 정도로 놀랐다.
그때 영상이 멈추고 대통령의 말이 이어졌다.
“모두 보셨습니까? 상급의 악마계약자는 마나 캐논을 튕겨 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을 몰랐던 탓에 대한민국 최강으로 불리는 빌런 전담 특전팀 3개 소대를 잃었습니다.”
대통령의 표정에 분노가 일었다.
“그럼. 다음 영상을 보겠습니다.”
애써 감정을 참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영상에는 악마가 있었다.
“아, 악마! 악마다!”
“악마라고?”
“아니 살아 있는 악마잖아!”
다시금 놀라게 만든 영상의 주인공은 아가레스가 왼손을 잘라 만들어 낸 악마였다.
사지가 거의 으깨진 채 목숨만 붙어 있는 상태로 ‘혈사자의 숲’ 지하에 처박혀 있었던 그놈을 끄집어내 온 것이었다.
“참고로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촬영한 영상입니다.”
영상에는 흰색 가운을 걸친 연구원이 마나 캐논을 들고 악마를 조준하고 있었다.
탈칵! 콰앙!
마석을 넣고 온몸이 기계 장치에 묶인 악마를 향해 마력 광선을 쏘아냈다.
강렬한 빛을 뿜어내며 일직선으로 날아간 광선이 악마의 앞에서 마치 벽에 부딪힌 것처럼 튕겨 나갔다.
콰아아아앙!
그렇게 튕겨 나간 마력 광선에 애꿎은 실험실 벽만 박살이 나 버렸다.
탈칵! 콰앙!
같은 동작을 반복했지만 역시나 애꿎은 실험실 벽만 무너뜨리는 결과가 나왔다.
곧이어 화면이 반전됐다.
마치 적외선 카메라로 찍은 듯한 어둡고 흐릿한 영상이었다.
“이것은 조금 전 마나 캐논을 쐈을 때 나오는 마기의 파동을 촬영한 영상입니다.”
강한 부분은 붉게, 적은 부분은 파랗게 나오는데 연구원이 손에 든 마석 주변은 아주 새빨갰다.
“마석에서 마기가 저렇게나 나온다고?”
“저 정도면 몸에도 안 좋은 거 아니야?”
마나 캐논에 넣어 장전하자 마기가 총구 쪽으로 응축되는 것이 또렷하게 보였다.
마력 광선, 정확히는 마기 광선이 악마를 향해 쏘아졌다.
악마의 몸 주변에는 아지랑이처럼 붉은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었는데 마기 광선은 그것과 부딪히더니 그대로 방향을 틀었다.
이번에는 기자들이 입만 쩌억 벌린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아까 봤던 영상이었지만 마기가 선명하게 보이자 그 이유가 명백했기 때문이었다.
“여러분도 보셔서 아시겠지만 마석으로 작동하는 마나 캐논은 악마에게 아무런 타격도 줄 수 없습니다. 바로 마석이 ‘마기’로 만들어졌고 악마는 마기를 몸에 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듣자마자 타자 쳐서 바로 ‘속보’로 쏴야 하는 상황임에도 기자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다들 손을 놓고 있었다.
“그럼. 우리 다 죽는 거야?”
“S급 헌터도 악마에게는 밀리잖아!”
“마나 캐논이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망연자실해서 웅성거리다 기자 하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질문하세요.”
“대통령님. 신화일보의 박대길 기자입니다.”
이번 기자 회견에 대해 유일하게 성원을 통해 미리 언질은 받은 기자였고 가장 먼저 혼잣말로 웅성거리며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한 일등 공신이기도 했다.
“그럼. 악마군단이 쳐들어오면 인류는 이렇게 끝인 겁니까?”
“인간은 예부터 언제나 문제에 부딪혀 왔고 항상 그 답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이게 바로 저희가 찾은 답입니다.”
다시 화면이 반전됐다.
똑같이 악마가 기계에 묶여 있었고 하얀 가운을 걸친 연구원이 조금 더 곡선이 강조된 처음 보는 종류의 마나 캐논을 들고나왔다.
그리고 다른 손에는 에너지원으로 쓰는 마석이 아닌 사각형의 배터리를 쥐고 있었다.
탈칵!
이것 역시 뒤쪽에 배터리를 꽂아 넣었다.
대신 반응은 확실히 달랐다.
SF영화에 나오는 레이저건처럼 마나 캐논 전체가 밝게 발광하더니 웅웅거리며 울었다.
또 다른 건 악마의 반응이었다.
좀 전 마나 캐논과 달리 기계 장치가 마구 흔들릴 정도로 세차게 몸을 흔들고 있었다.
콰앙!
커다란 소리와 함께 새하얀 광선이 악마를 향해 쏟아졌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악!
빛이 사라졌을 때는 잿가루만 연구실 한곳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청와대 춘추관 회견장이 들썩거렸다.
아니 전 세계 생중계로 화면을 보고 있던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때도 이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압도적인 시청률을 보였고 모두가 세상이 축제 분위기로 변했다.
“새롭게 개발한 K-마나 캐논, K-101 ‘대장군포’입니다.”
K-101 대장군포.
파루스와 김범수 박사가 합작하여 만든 신형 마나 캐논이었다.
‘국뽕’이 좀 과하게 들어간 이름이었지만 이름을 지은 이가 경호라는 것을 알게 되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처음에는 ‘K-바주카’로 하자는 것을 겨우 성원이 말려서 바꾼 게 저 정도였다.
“국방과학연구소와 신화 마도공학 연구소가 협력하여 전기 배터리로 마나 캐논을 사용할 수 있게 개량했고 지금은 배터리 효율을 더 높이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곳에 서기 직전까지 공개할지 말지 고민했던, 최초로 실전에서 대장군포를 사용한 영상을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회견장은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해졌다.
전투헬멧을 쓰고 두텁게 위장 크림을 바른 4명의 특전팀 요원이 화면에 나왔다.
손에는 모두 대장군포가 들려 있었다.
바로 경호가 찍은 영상이었다.
거칠게 호흡하며 달려온 특전팀 요원들이 한 건물을 노려봤다.
가장 선두에 선 이가 손가락을 까닥거리자 동시에 달리기 시작했다.
전투화를 신고 달림에도 신기하게 고양이처럼 소리 하나 나지 않고 빠르게 움직였다.
빠르게 계단을 오른 이들이 문을 발로 찼다.
콰아앙!
“뭐야!”
이미 울피에 의해서 완전히 세뇌가 끝난 건웅이 미리 짜놓은 대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말투가 조금 어눌하긴 했지만, 팔목에 새겨진 계약의 문양에서 마기가 솟아나며 검은 거인으로 변하는 모습은 그러한 점을 흐리게 만들었다.
영상으로 보는 것이었지만 건웅의 강함이 생생히 느껴졌다.
광택이 날 정도로 단단해 보이는 검은 육체와 터질 듯한 근육, 주변이 어그러지게 보일 정도의 강렬한 마기까지.
콰앙!
하지만 새하얀 광선이 ‘대장군포’에서 쏟아져 나갔고.
끄아아아아아악!
다리 두 쪽이 그대로 사라졌다.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진 건웅에 이어 옆에 있던 현식이 벌떡 일어났지만.
콰앙!
역시나 마찬가지로 다리가 무릎 아래로 사라졌다.
끄어어어어어억!
맨 앞에 선 특전팀 요원이 대장군포를 내리며 물었다.
“너희가 혈랑회를 조종하던 놈들이지?”
다현이 애써 목소리를 굵게 냈지만, 그녀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갸웃할 정도로 크게 변한 게 없는 목소리였다.
“살려 주십시오! 뭐든 말하겠습니다!”
현식과 건웅이 검붉은 피를 쏟아 내며 양손으로 싹싹 비는 모습은 놀람을 넘어 충격이었다.
화면이 끝이 났다.
“우리는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K-101 대장군포를 최대한 대량으로 생산해 전 세계 모든 각성자 기관 및 헌터 길드에 판매할 생각입니다. 그럼. 질문받겠습니다.”
기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손을 번쩍 들었다.
대통령이 힐끗 단상 뒤편을 돌아봤다.
그곳엔 경호가 그런 대통령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