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화
“섬광탄을 터뜨리면 대충 1초 정도 무력화되니 그 동안 최대한 많이 처리하세요. 알았죠? 아. 두목처럼 보이는 놈은 건들지 말고요.”
경호의 말에 워울프 전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목부터 처리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게 두목에게 좀 물어볼게 있어서요. 어쨌든 추가적인 것은 전음으로 알려 드릴게요.”
경호가 간단하게 설명하고는 품에서 깡통처럼 생긴 금속 물체를 꺼냈다.
사실 지하에 섬광탄을 터뜨리면 꽤나 드라마틱한 효과를 볼 수 있지만 그건 상대가 일반인인 경우였고 각성자에게는 그렇게 효과적이지 않은 물건이었다.
‘그래도 없는 거보다 낫지.’
경호가 지하로 통하는 입구에 섬광탄을 던졌다.
그와 동시에 아래로 달렸고 푸른 이빨 부족 전사 둘도 곧장 그 뒤를 따랐다.
***
“늑대인간 따위에게!”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택춘은 CCTV를 확인하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제대로 모니터링하지 않고 졸고 있던 부하 녀석은 그의 망치에 머리가 깨진 채 싸늘하게 식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택춘도 경계가 허술함을 넘어 개판이라는 것을 예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군경에 연줄이 있고 회색지대 한 가운데인 이곳까지 올 놈들도 없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런데 CCTV를 돌려 보니 뚫려도 너무 허무하게 뚫리고 있었다.
그것도 늑대인간 따위에게!
늑대인간은 그저 보호구역에서 서커스나 하는 광대가 아니던가!
‘저건 최소 B급 이상은 돼야 막을 수준이다!’
하지만 그런 광대 같은 허접스러운 늑대인간이 아니었다.
마력이 깃든 손으로 머리를 으깨고 날카로운 이빨이 목을 물어뜯어 냈다.
상급 각성자인 부하들이 어! 어! 하는 사이 머리가 터져 나간 시체로 변해 버렸다.
콰앙!
택춘의 주먹이 모니터 화면을 부수고 들어갔다.
“으아아아아아아악! 저 늑대 새끼들 모조리 산채로 가죽을 벗겨 튀겨 죽인다!”
그때 택춘의 명령을 받았던 종건이 방으로 달려왔다.
“입구 쪽에 애들 모두 모았습니다.”
종건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부하를 쳐다보고는 인상을 굳혔다.
“그래. 가지.”
창고에서 내려오는 입구.
그 앞에 십여 명의 정도 모여 마나 캐논으로 입구를 겨누고 있었다.
“에라이! 이 멍청한 새끼들아! 그거 안 치워!”
택춘은 마나 캐논을 겨누고 있는 이들을 보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마나 캐논을 꺼내놓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왜? 다 같이 생매장 되자고? 죽고 싶어 환장했어?”
정예 상급 각성자만 백여 명, 그저 그런 조직원까지 합치면 수천이 넘어가는 초거대 빌런 조직이었지만 이곳에는 위쪽에 죽은 인원과 지금 십여 명이 다였다.
하지만 머리를 쓰는 놈들은 밖에서 아이템 확보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중이었고 사천왕이라 불리는 혈랑회 최고위 간부는 택춘의 ‘오른팔’이라 불리는 종건이 유일했다.
“후우. 이 멍청한 새끼들.”
그제야 마나 캐논을 뒤로 물리고 아티팩트를 꺼내들었다.
택춘은 속으로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 똑똑하면 헌터를 하지 이 짓거리를 했겠냐. 어휴.’
답답해 속이 터질 지경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조폭 놀음할 때는 지금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 하지 않았으므로.
그때 휘익! 하는 바람 소리와 함께 퍽! 하고 뭔가가 바닥에 꽂혔다.
자연스레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고.
‘응? 섬광탄?’
피하기는 늦은 상황이었다.
“이런! 제….”
콰아아앙! 번쩍!
엄청난 소음과 강령한 빛이 터져 나왔다.
보통 섬광탄이 터지면 강렬한 빛에 10초 정도 눈이 멀고 폭음에 고막과 달팽이관이 흔들려 균형 감각을 잃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각성자는 신체 능력과 마나 코어의 힘으로 3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만 시야가 흐려지고 잠시 멍할 뿐이었다.
탁! 타악!
은신한 채 날 듯 달려 내려온 워울프 전사 둘이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피는 택춘과 종건을 피해 뒤쪽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눈이 부셔 허우적거리는 부하들이 모여 있던 곳이었다.
둘은 서둘러 이들의 무기를 발로 차고 턱을 주먹으로 올려치며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었다.
퍽! 퍼억! 퍽! 퍽!
택춘과 종건도 섬광탄에 당해 자신의 부하들을 상대로 은신한 채 날뛰는 두 명의 워울프 전사를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짧지만 긴 3초가 지나고.
“뭐야!”
“아니!”
택춘과 종건이 알아챘을 때는 이미 십여 명의 부하 모두가 쓰러지고 난 다음이었다.
“이! 이이!”
그때 계단에서 테일러를 선두로 워울프 전사들이 우르르 내려왔다.
경호가 내려가고 십 초쯤 있다가 내려오라고 했음에도 거의 바로 따라 들어온 이들이었다.
넓지 않은 지하가 이들로 가득 찼다.
누가 봐도 상황이 종료된 듯한 모습이었다.
그때 택춘과 종건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그 눈빛에서 뭔가를 느낀 경호가 당장이라도 달려가 머리통을 터뜨리려고 하는 테일러와 다른 모든 전사를 향해 전음을 날렸다.
-멈춰요! 뭔가 믿고 있는 다른 수가 있어 보이니까. 지켜보죠.
사실 대한민국 최고라고 하지만 빌런 조직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A급 각성자가 강하긴 했지만 이제 신화길드에도 발에 차이는 게 그 정도 수준의 헌터였고 거기다 드워프제 아이템에 정령이나 신수와 계약까지 마친 이들은 S급 각성자도 이길 정도였다.
아니 그냥 마나 캐논만 들고 사격 연습 몇 시간만 해도 A급 각성자 수준의 화력을 낼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그렇기에 이들보다 뒤에서 조종하는 악마계약자 조직을 잡아야 했다.
물론 그들을 다 잡아들일 수는 없지만 이렇게 대놓고 설치는 놈들은 꼭 처리해야 했다.
그래야 조용히 움직이는 녀석들이 더욱 움츠리게 될 것이니까.
그렇지 않고 설치게 놔두면 조용히 움직이던 놈들까지 같이 날뛸 게 뻔했다.
마계 침공도 막기 힘든 판에 내부에서도 총질이 일어나면 정말 힘든 싸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경호의 전음에 모두가 멈칫했다.
아무 때나 허공에 고개를 쳐들고 하울링을 하는 희한한 종족이었지만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특히 푸른 이빨 부족의 대전사 테일러는 연기력도 제법이었다.
“크릉. 네 놈이 이곳의 두목이냐? 최근 무기 밀매를 준비한다는 소문을 들었지. 그래. 저 안에 있는 것들이 전부냐?”
“크크크크크크크.”
택춘은 테일러의 말에도 그저 큭큭 거리며 기분 나쁜 웃음만 흘리고 있었다.
“미친놈이군.”
테일러가 고개를 젓는 그때 종건이 순간 몸을 돌려 움직였다.
번쩍하더니 [이동] 특성을 가진 그가 점멸을 쓰며 뒤편에 놓여 있는 마나 캐논을 손에 쥐었다.
탈칵!
“크크크크크크크크.”
커다란 마석을 마나 캐논에 쑤셔 넣은 종건이 택춘과 비슷한 웃음을 터뜨렸다.
“종건아. 잘했다.”
택춘이 구부정하게 구부리고 있던 몸을 바로 피며 테일러를 노려봤다.
“네놈이 이 늑대새끼들 두목이냐?”
크르르르르르르.
테일러가 택춘의 말에 달려 나갈 듯 으르렁거렸다.
택춘이 손가락 들어 지하의 천장을 가리켰다.
“마나 캐논 한방이면 그대로 생매장이야. 어때? 우리 열 명에 그쪽 삼십 마리면 우리도 그리 손해 보는 건 아닌 거 같은데? 같이 손잡고 황천길이나 가 볼까?”
그때 경호의 눈에 종건이 조심스럽게 마나 캐논을 한 손으로 쥔 채 어깨에 걸치고 다른 손으로 휴대폰을 주머니에서 꺼내 조작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순간에 마나 캐논은 말 그대로 목숨줄이었다.
그런 목숨줄을 대충 어깨에 걸치다니.
‘호오. 그럼. 뭐하나 한번 볼까?’
경호가 은신을 유지한 채 소리 없이 종건의 옆으로 이동해 그의 폰 화면을 봤다.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는데 수신자의 이름은 ‘개새끼’였다.
-아이템 확보 때문에 조직원이 빠진 사이에 워울프 부족이 습격해 왔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상급 각성자 수준으로 삼십 마리 정도 됩니다.
내용을 보니 아무래도 저 ‘개새끼’가 바로 뒤에서 이들을 조종하는 악마계약자인 듯싶었다.
-3분 안에 사람을 보내지. 대신 내일 오후까지 마나 캐논 10정을 더 마련하도록.
잠시 후 답신이 떴고 그것을 확인한 경호가 바로 전음을 보냈다.
-3분만 시간 끌어 줘요. 악마계약자 놈들이 온다니까. 그럼. 내가 올라가서 해결하고 올 테니까요.
3분.
컵라면이 익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렇다고 멍하니 있는 것도 이상하기에 뭐라도 해야 했다.
“그럼. 절반. 저 무기의 절반만 가져가기로 하지.”
테일러가 협상을 시도하는 척을 했다.
그와 동시에 은신하고 있던 전사 둘이 모습을 드러내며 기절해 있는 조직원의 목을 움켜쥐고는 그대로 들어 올렸다.
“아니면 하나하나 목을 끊어 버리겠다.”
역시나 협박하는 척을 했다.
“그 손 안 놔? 같이 생매장되고 싶어?”
아직도 한 손으로 마나 캐논을 쥐고 있는 종건 역시도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해댔다.
양쪽 다 진심이 하나도 담겨 있지 않은 행동이었다.
택춘과 종건도 악마계약자가 오길 기다리는 중이었고 테일러와 부족원도 마찬가지로 기다리는 것이 들키지 않길 바라는 중이었다.
다른 행동이었지만 같은 마음이었기에 서로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기만 할 뿐 진짜로 물지는 못하고 있었다.
“부하 목이 떨어지는 꼴이 보고 싶은 모양이지?”
“어차피 산 채로 다 묻힐 텐데 그게 무슨 소용이지?”
그렇게 서로 협박만 하며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왔군.’
경호의 감각에 창고 쪽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이들이 느껴졌다.
-그럼. 조금만 더 놀아 주고 있어요. 혹시나 미친 척하고 마나 캐논 쏘면 바로 튀어 올라오시고요.
경호가 전음을 남기고는 바로 위로 올라갔다.
***
“이런 머저리 같은 놈들.”
최현식.
마왕 루시퍼가 선택한 계약자이자 대한민국 범죄사에 있어 최악의 연쇄살인마인 그였다.
그런 그가 종건의 문자를 받았다.
“무슨 일입니까?”
김건웅.
감옥에서부터 동생 노릇을 하던 최현식의 가장 가까운 존재였다.
악마와 계약하며 S급 헌터도 가볍게 처리할 힘을 가지게 된 상태였다.
“네가 혈랑회 창고 좀 지금 가 봐야겠다.”
“지금요? 거긴 내일 오후에 가기로 한 거 아닙니까?”
“쥐새끼. 아니 워울프 삼십 마리 정도가 들어온 모양이야. 가서 처리하고 와.”
“이거 오랜만에 몸 좀 풀겠네요.”
안 그래도 어수선한 정세에 제대로 몸 풀 기회가 없어 불만이 많이 쌓인 상태였다.
현식이나 건웅은 피를 봐야 스트레스가 풀리는 그런 타입이었다.
그것 때문에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더 많이 죽이고 더 많이 피를 볼 수 있어서 계약한 미친놈들이었다.
“늑대인간 놈들도 피는 빨갛겠지. 크크크. 그럼. 갔다 올게요!”
건웅이 곰처럼 커다란 몸과 어울리지 않는 엄청난 속도로 달려나갔다.
창고까지 거리는 직선거리로 따져도 3km는 떨어진 거리였지만 건웅은 날 듯이 달려 정말 3분도 되지 않아 창고에 도착했다.
입구에 머리가 터져 죽은 조직원을 보고는 건웅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이거 너무 싱겁진 않겠는데?”
너무 날파리 같으면 잡을 맛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건웅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 섰을 때였다.
“왔어?”
갑자기 반갑게 인사하는 낯선 목소리에 건웅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
그곳엔 무릎이 늘어진 추리닝을 입은 미친놈이 자신을 보고 씨익 웃고 있었다.
“넌 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