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화
퍼억!
상일은 옆에서 벌벌 떨고 있는 상철의 뒤통수를 세게 때렸다.
“악!”
“야! 정신 안 차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그대로 목숨이 날아가는 곳.
바로 위험종 마수가 출몰하는 B등급 던전이었다.
“혀, 형.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우리 둘이서 C등급 던전도 간당간당한 데 정말 이렇게 욕심내다가 죽는다니까!”
동생 상철의 말에 상일이 손에 들고 있는 바주카포처럼 생긴 무기를 들어 보였다.
“야! 이거면 된다니까! 위험종 마수도 몇 방이면 보낼 수 있다고! 그러니까 그만 떨고 따라와!”
상일이 들어 보인 무기는 최근 갑자기 헌터마켓에 풀리기 시작한 아이템이었다.
일명 ‘마나 캐논.’
상일이 들고 있는 물건은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좋은 녀석으로 미국 최고의 마공 아이템 제조회사인 블랙스미스의 ‘MC-001’이었다.
마나 캐논이라는 이름처럼 총보다는 대포처럼 생긴 무기로 뒤쪽에 달린 구멍에 마석을 넣으면 그것을 흡수해 마력 광선을 발사하는 무기였다.
출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마나 캐논 신드롬이라 불리는 사태를 일으키고 있는 엄청난 물건이었다.
“그걸로 정말 상급 마수를 잡을 수 있다고? 지금 저 소리 안 들려? 흑색곰이 한 마리가 아니라고!”
크앙 크앙 거리는 소리가 동굴 안을 메아리쳤다.
“알아! 흑색곰에게 한 대만 맞아도 끝이라는 거 나도 안다고!”
동생 앞에서 의연한 척하고 있었지만 마나 캐논을 쥔 상일의 손도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최하급 주거지에서 살 건데! 이 던전만 공략해도 집이 바뀌고 차가 바뀐다고! 그러니까 정신 차려!”
“아, 알았어. 형.”
웃돈까지 줘서 정말 어렵게 구한 마나 캐논이었다.
동생의 특성인 [염력]으로 흑색곰을 멈칫거리기만 하게 해도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허리에 찬 가방에서 탁구공 크기의 마석을 꺼냈다.
천만 원을 써서 최하급 마석 이십 개를 사 온 그였다.
‘흑색곰 몇 마리만 잡아도 대박이니까!’
상급 마수인 갈고리흑색곰의 마석은 시세가 천만 원이 넘었다.
보통 던전에서 십여 마리의 마수가 출몰하니 마석과 갈고리손톱 같은 부산물까지 챙기면 최소 삼억은 챙겨 갈 수 있을 터였다.
석회 동굴처럼 생긴 던전 안을 조심스레 걸어가 모퉁이를 돌았다.
상일이 멈춰 서며 손짓하자 상철도 자리에 멈췄다.
저 멀리 거대한 흑색곰 세 마리가 모습을 보였다.
“형. 세 마리인데 괜찮겠어?”
세 마리가 뭉쳐 있는 모습에 놀란 상철이 형에게 물었다.
상일은 마나 캐논의 위력을 직접 봤기에 동생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니가 조금씩만 시간을 벌어 주면 가능하니까. 걱정하지 마.”
“길어야 3초야. 알지?”
[염력] 특성을 가진 상철이었지만 마력도 레벨도 모두 낮아서 위험종 1급 마수인 갈고리흑색곰을 잠시 멈칫거리게 만드는 수준이 고작이었다.
탈칵!
“3초면 충분해.”
상일이 마석을 마나 캐논에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둘은 바닥에 솟아 있는 거대한 석순을 끼고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흑색곰을 향해 다가갔다.
“저기 가운데 먼저 노릴 거니까. 먼저 달려오는 놈부터 멈추게 만들어. 알았지?”
상일, 상철 형제와 흑색곰 세 마리의 거리는 50m 남짓.
흔히 ‘미련곰탱이’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상급 마수인 흑색곰은 치타보다 더 빠른 다리를 가지고 있었기에 두 형제는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마나 캐논을 들어 가운데 있는 흑색곰의 머리를 겨눴다.
후욱. 후욱. 후욱.
숨이 가쁘고 손이 떨렸다.
심장이 쿵쾅거려 머리가 울릴 정도였지만 상일은 집중했다.
실패는 곧 죽음이었다.
콰앙!
동굴 안이 흔들릴 정도의 굉음과 함께 번쩍하고 샛노란 광선이 쭉 뻗어 나와 그대로 가운데 있던 흑색곰의 대가리를 때렸다.
퍼억!
잘 익은 수박이 터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흑색곰의 대가리가 사라졌다.
크엉! 컹! 크앙!
좌우에 서 있던 흑색곰이 마나 캐논을 들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상일을 발견하고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형!”
상철이 앞서 달리는 흑색곰을 향해 양손을 뻗었다.
크앙!
투명한 벽이라도 부딪힌 것처럼 갑자기 한 마리의 흑색곰이 멈춰 섰다.
뒤따르던 흑색곰이 그 모습에 멈칫하다 다시 달렸다.
탈칵!
상일은 그사이 마나 캐논에 마석을 장전했다.
콰아앙!
“됐어!”
달려오던 흑색곰의 대가리가 물풍선처럼 터져 나갔다.
정말 미친 위력이었다.
그동안 모아 둔 돈에 대출까지 영끌해서 산 마나 캐논이었지만 돈값을 제대로 했다.
“형! 빨리! 더는 무리야!”
탈칵!
다시 장전.
콰앙!
그리고 염력에 붙들려 있던 흑색곰까지 결국 쓰러졌다.
후욱. 후욱. 후욱.
상일이 털썩 주저앉아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었다.
“이제 이렇게 3번 정도만 더 하면 끝이야.”
“이 정도면 할 만하네.”
상철도 흑색곰의 머리를 펑펑 터뜨리는 마나 캐논의 위력에 자신감이 붙은 모습이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앙!
그때 동굴 전체가 떠나갈 듯 커다란 포효소리가 들렸다.
두 형제의 얼굴이 굳었다.
포효 소리에 실려 있는 마기가 지금 처리한 흑색곰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제길. 보스 몹이 있는 던전이었어.”
던전은 대부분 일반 몹이 여럿 출몰하는 형태였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 보스 몹이 나오는 던전이 있었는데 공략만 한다면 소위 ‘대박’을 칠 수 있었다.
보스 몹이 강하긴 했지만 마석이나 부산물의 가격이 일반 몹에 비해 수십 배나 비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강함도 한 단계 위라는 것이 문제였다.
“형! 뿔곰이야!”
재난종 3급 마수인 갈고리흑색뿔곰이 저 멀리서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흑색곰에 비해 2배는 더 커다란 덩치여서 200m도 더 떨어진 곳이었음에도 눈에 꽉 차는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탈칵! 콰앙!
“이런 제기….”
먼 거리라 자신이 없었지만 운 좋게 마력 광선이 어깨에 꽂혔다.
그리고 끝이었다.
피가 좀 터져 나오고 좀 그을리긴 했지만 달리는 속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탈칵! 콰앙!
이번엔 아예 앞발로 마력 광선을 쳐냈다.
탈칵! 쾅!
역시나 다시 앞발로 마력 광선을 쳐낸 흑색뿔곰이 이를 드러내며 더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100m.
바닥에 삐죽삐죽 솟아 있는 석순이 아니었다면 벌써 죽었을지도 모를 엄청난 속도였다.
“형! 혀어엉! 커억!”
상철은 양손을 뻗어 염력으로 흑색뿔곰을 묶어두려 했지만, 마력이 꼬이며 입가에 핏물이 흘러나왔다.
그때 상일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흑색곰을 향해 다가가 가슴에 단검을 꽂아 넣었다.
“뭐해! 지금 무슨 짓 하는 거야! 빨리 한 발이라도 더 쏘라고! 빨리!”
상철은 이해할 수 없는 형의 행동을 보며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탈칵! 콰아아앙!
마나 캐논에서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왔다.
퍼어억!
샛노란 광선을 다시 쳐내려고 휘두른 흑색뿔곰의 앞발이 진흙처럼 뭉개졌다.
크아아아아아아악!
앞발이 날아가며 그대로 바닥에 처박힌 흑색뿔곰이 괴성을 질렀다.
“됐어! 통한다!”
상일은 다른 흑색곰 사체로 달려가 서둘러 가슴을 갈라 마석을 꺼냈다.
개당 천만 원이 넘는 물건이지만 지금 그딴 걸 생각할 겨를 따윈 없었다.
탈칵! 콰아아아앙!
재난종 3급 마수인 갈고리흑색뿔곰의 대가리가 그대로 터져 나갔다.
***
마나 캐논.
그것은 신세계였다.
위험종 마수도 못 잡던 C급 헌터가 재난종 마수를 잡는 이변을 일으키게 만드는 마술 같은 무기.
무기에 의존하는 나약한 정신상태를 비판하는 헌터도 더러 있었지만 어디까지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능력 이상의 성능을 보여 주는 무기는 대환영을 받았다.
광풍!
‘마나 캐논 신드롬’이라 불리는 광풍이 아이템 시장을 몰아치고 있었다.
유명 마도공학 연구소나 아이템 제조회사에서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각각의 특징이 담긴 마나 캐논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신화 마도공학연구소.
킬러 로봇 mg-SP의 폭주로 연구소가 파괴된 후 최용사 공방 옆 공터에 새롭게 연구소를 만들어 확장 이전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 후 자연스레 드워프와 여러 가지로 교류하며 중이었다.
그리고 지금 경호와 성원은 새롭게 연구소장을 맡은 김범수 박사의 긴급 호출로 연구소를 찾은 상태였다.
그리하여 연구소장 사무실에 경호와 성원, 파루스와 김범수 박사가 탁자를 가운데 두고 서 있었다.
“용, 아니 경호 님. 악마 놈들이 정말 급하긴 급했던 모양입니다. 이거 보시죠.”
김범수 박사에게 적당히 경호를 소개했지만 정령계 용사였던 과거까지 다 밝히긴 어려웠기에 파루스가 서둘러 호칭을 바꿨다.
파루스가 탁자에 놓인 설계도를 가리켰다.
경호가 가리킨 곳을 힐끗 봤지만, 딱히 알아볼 만한 것은 없었다.
설계도 중간에 그려진 마법진이 증폭 효과가 있다는 정도만 알아볼 수 있었다.
“무슨 말이야? 악마 놈들이 급하긴 급했던 모양이라니?”
“마나 캐논에 대해 들어보셨죠?”
요새 연일 뉴스에 나오는 물건이라 아이템엔 통 관심이 없는 경호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대충. 왜? 이게 그 설계도야? 신화 연구소에서도 마나 캐논 만들려고?”
그때 아까 인사만 나눴던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연구소장이 입을 열었다.
킬러 로봇 사건 때 죽은 신재용 박사의 후임이자 마력회로에 관한 세계적 권위자로 유명한 김범수 박사였다.
“그 부분은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연구소가 이곳으로 이전하고 최용사 공방과 협업하며 그전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연구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신재용 박사는 기계공학 분야의 선구자였기에 킬러 로봇을 만드는 연구를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죽고 다른 문제점이 여럿 발견되며 로봇 연구는 사실상 끝이 났다.
그리고 평소 마력회로 분야에 성과를 보이던 김범수 박사가 새롭게 취임하며 아이템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계적인 마력회로 권위자인 김범수 박사와 마계에서 목숨 걸고 마력회로를 배운 악마계약자 파루스의 만남은 폭발적인 시너지를 일으켰다.
특히 솔딘과 파루스 조합일 때는 분야가 달라 투닥거리는 일이 많았지만 김 박사와 파루스 조합은 그 캐미가 아주 뜨거웠다.
노총각인 그가 집에도 안 들어가고 연구소에서 먹고 자며 파루스와 몇 날 며칠을 함께한 일화는 연구소 내에서 꽤 유명했다.
인제 와서는 김 박사는 이제 파루스를 거의 스승으로 모시는 상황이었다.
성원이 아는 척을 했다.
“저번에 들었던 정령석을 이용한 아이템 개발 관련 말씀이시죠?”
“맞습니다. 파루스 님과 함께 연구하며 정령석을 에너지원으로 삼는 고출력 무기를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한 그가 탁자 밑에서 설계도를 하나 꺼내 겹쳐서 펼쳤다.
마도공학에 까막눈인 경호가 보더라도 두 개의 설계도는 비슷해 보이는 구석이 많아 보였다.
“전체적인 모양은 다르지만 마력회로 부분은 비슷한 곳이 많네요? 그러니까 이쪽이 마나 캐논이고 지금 꺼낸 것이 새롭게 개발하던 아이템인가요?”
“맞습니다. 에너지원이 마석과 정령석으로 다르긴 하지만 기본적인 구조는 거의 같습니다.”
파루스에 대해선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경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파루스가 냉소적이고 비관적이며 야비한 구석도 꽤 있는 드워프였지만 마력회로를 설계하고 다루는 실력 하나는 마계에서도 인정받을 만큼 대단한 이였다.
그런데 갑자기 전 세계 곳곳에서 이런 아이템이 쏟아지고 있다고?
파루스 같은 실력자가 숨어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면 한마디로 어불성설(語不成說) 같은 이야기였다.
“파루스 님은 이것이 마계에서 넘어온 것이라 확신하고 계십니다.”
어? 뭐라고? 그럼. 그래서?
“아까 그래서 악마놈들이 정말 급하긴 급했던 모양이라고 한 거였어?”
경호의 말에 파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마계에서 배웠기 때문에 장담할 수 있습니다. 이건 확실하게 마계에서 넘어온 기술입니다. 그것도 제가 배운 기술보다 더 수준이 높은 부분도 있고요.”
경호도 마나 캐논이 엄청나게 강력한 아이템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마계에서 뿌린 기술이라니.
앞뒤가 맞질 않는 소리였다.
“아니 왜? 그런 기술을 넘겨준 거지?”
“마수에는 통해도 악마에게 마석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마기를 방출하는 무기는 타격을 줄 수 없거든요.”
“아! 그렇지!”
“그런데 그 에너지원을 마석에서 정령석으로 바꾸면 악마에게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물론 이걸 푼 악마 놈들은 상상도 못 하고 있겠지만요.”
그렇게 말한 파루스가 사악한 미소를 띠며 큭큭거리고 있었다.